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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의 마나통은 안녕하십니까?-83화 (83/350)

83. 던전 찾아 삼만 리

대변혁 이후 각성자가 있는 집안은 그나마 나았지만 각성자 단 한 명도 나오지 않은 집은 먹고 사는 것부터 문제가 되었다.

입 냄새와 가슴 통증도 서러운데 먹거리를 구해야 하는 숙제가 안겨진 것이었다.

각성자가 있는 집이야 던전에서 사냥을 해오거나 먹거리를 채취를 해오면 그만이지만 그렇지 않은 집은 사냥은 엄두도 낼 수 없었고 목숨을 걸고 먹을 만한 것을 채취해야 했다.

돈만 주면 해결되던 것이 목숨을 걸어야하는 일이 되어버린 것이었다.

시간이 지나면서 식량문제는 차츰 해결이 되었지만 그렇다고 해도 대변혁 전과는 비교할 수 없는 가격이었다.

사실 먹는 문제는 일반인만의 문제는 아니었다.

던전을 드나들며 사는 각성자들에게도 먹거리는 늘 문제였다.

그것은 던전 때문이었다.

몇 시간 만에 공략이 가능한 던전도 있었지만 그렇지 않은 던전이 더 많았다.

공략에 오랜 시간이 걸리는 던전은 준비할 것이 한두 가지가 아니었다.

인벤토리에 비해 챙겨야할 것은 많으니 무기위주로 챙길 수밖에 없었지만 그렇다고 다른 것을 소홀히 할 수도 없는 것이 던전이었다.

던전에서 늘 문제가 되는 것 중 하나가 바로 음식이었다.

어떨 때는 챙겨온 식량을 소비할 필요가 없는 던전이 있는가하면 넉넉히 챙겨왔는데도 부족한 던전도 있었다.

그런데 우리는 앞으로 그런 걱정은 없을 것 같았다.

"꾸루가 소환 대기실과 전령조의 쉼터를 자유롭게 오갈 수 있다고 했잖아. 꾸루 뿐만 아니라 전령조 전체가 그렇다고 하니까 언제든 물고기를 사냥해 올 수 있잖아."

꾸! 꾸루룰루!

꾸루가 격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야! 야! 네 목이 굵기는 하다마는 너무 심하게 흔들지 마. 그러다 부러지겠다. 뭐든 아껴야 하는 거야. 젊었을 때 그렇게 몸 함부로 쓰면 늙어서 골병 나.>

꾸!

나호의 말이 기꺼운지 꾸루가 제법 귀엽게 대답을 했다.

덩치는 산만한 녀석이 은근히 귀여운 구석이 있었다.

"이해를 정말 잘하네. 쪼롱이도 그렇고 꾸루도 그렇고 정말 똑똑한 것 같아."

쫑!

꾸!

<얘네 웃겨. 둘이 같이 대답할 때는 꼭 쪼롱이가 먼저 대답해. 하는 짓이 재밌어.>

나호의 즐거움이 배가 될 것 같았다.

소통할 수 있는 동물이 늘어나는 만큼 나호의 영향력도 넓어지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잠시 해보았다.

전령조의 쉼터를 발견한 후 또 던전을 발견했으면 정말 좋았겠지만 그런 일은 없었다.

미우라의 장례식장에서 퇴사하고 취업 형식을 빌려 화로 청소 전문업체를 차렸지만 생활은 달라진 것이 거의 없었다.

대신 자유로워지니 '온전한 마나통' 수거는 훨씬 많이 하고 있었다.

장례식장이나 의료폐기물 처리업체의 화로만 전문으로 청소하기 때문에 일정을 짜서 주기적으로 방문을 해서 청소를 했다.

화로는 날마다 청소할 필요는 없기 때문이었다.

돌아가신 분의 몸에서 나오는 마나통의 수거도 문제될 것은 없었다.

이제는 대부분의 장례식장에서 화장이 끝난 유골에서 마나통을 제거하기 때문이었다.

제거한 마나통은 한쪽에 모아두거나 의료폐기물 화로에 넣어 다시 때우기 때문에 그것까지 자동으로 수거가 되었다.

간혹 빠진 것이 있다고 하더라도 이제 자동입고와 자동수거가 5미터 안에서 되기 때문에 주기적으로 납골당이나 신사를 방문하면 그만이었다.

돌아가신 분의 몸에서 나오는 마나통은 그동안 모인 마나가 흡수되면서 사라지니 좋은 일을 하는 것이기도 했다.

아무튼 시간은 빠르게 흘렀다.

그 사이 세 번의 소환을 더 다녀왔다.

예상대로 네 번째 소환부터는 쪼롱이가 있던 숲으로 가지 않았다.

매번 다른 곳으로 소환이 되었고 짧게는 일주일, 길게는 한 달을 보내고 왔다.

물론 빠르게 미션을 달성하고 부모님의 그룹으로 넘어가서 세 분을 돕는 것도 잊지 않았다.

그 덕분에 세 분 모두 비세계의 생활을 잘해나가고 계신다.

<집사! 습하다. 벌써 이래서 여름에는 어떡하지?>

유월이 되면서 비가 많아지더니 월말이 가까워지자 습할 때가 있었다.

그런데 지금은 습한 것이 문제가 아니었다.

나호가 습기를 느꼈다는 것이 중요했다.

"너 습한 것을 느낀 거야?"

<어? 집사! 습해! 나 습기가 느껴져.>

나호의 목소리가 귀청을 뚫을 것만 같았다.

"나호야. 목소리 좀···."

사실 나호의 목소리는 엄밀하게 말하면 귀로 듣는 것이 아니었다.

머릿속으로 바로 들어오는 소리인데 묘하게 목소리를 높이면 귀가 아팠다.

그렇게 생각을 해서 그런 건지···.

<미안! 집사. 나 물에 들어가 봐야겠어. 욕실에 가자. 어서!>

"그래. 가자."

나에게서 벗어날 수 있는 거리가 5미터로 늘었지만 이렇게 중요한 순간에는 함께 움직이는 것을 좋아하는 나호였다.

전생에 평생 함께 다녔기 때문일 것이다.

나호만큼이나 나호가 실체를 가졌으면 하는 마음이 강하기 때문에 냉큼 욕실에 들어가서 욕조의 수도꼭지를 들어올렸다.

기다리기 힘든지 바로 욕조로 들어가던 나호의 눈꼬리가 축 처졌다.

"왜 그래? 안 느껴져?"

힘없이 고개를 끄덕이는 나호였다.

<내 착각인가 봐. 미안 아침부터 설레발쳐서···.>

"습기를 분명 느꼈다고 했잖아."

<비가 오니까 습도가 높겠네 하는 생각에 그런 느낌이 들었던 것 같아.>

나호의 목소리에는 힘이 하나도 없었다.

"아닌데···? 너 아까 습하다고 할 때 말이야. 아주 자연스러웠어."

<그러게. 나도 그렇게 생각했는데···. 이렇게 많은 물이 느껴지지 않는데 습기를 느꼈을 리 없잖아.>

"그 순간에는 확실히 느꼈을 거야. 너무 실망하지 말고. 날마다 조금씩 무게감도 늘고 네 몸도 더 느껴지니까 머지않아 실체를 가지게 될 거야."

<고마워. 집사, 집사는 참 좋은 집사야.>

"그래. 나가자. 생선 타겠다."

<또?>

"꾸루가 날마다 챙겨오기도 하지만 정말 맛이 있어. 쪼롱이도 저렇게 좋아하잖아."

퇴사를 하고 이사를 한 집은 우에노 공원에서 멀지 않은 곳이다.

다른 던전을 발견했으면 그 던전이 가까운 곳으로 집을 얻었겠지만 지금은 전령조의 쉼터가 일본에서 발견한 유일한 던전이니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다.

그런데 이 집에서는 날마다 생선 굽는 냄새가 났다.

꾸루가 날마다 생선을 물어오기 때문이었다.

좋은 것을 나누고 싶은 마음 때문인 것 같은데 그 덕분에 매일 최고급 생선을 먹고 있다.

<쪼롱아! 너 침 떨어져. 여기서는 많이 굽지 못해. 어제 던전에서 원 없이 구워줬잖아.>

쭈루!

집에서 다량의 생선을 굽는 것은 무리가 있었다.

워낙 맛있는 냄새라 문제가 될 것 없지만 지나쳐서 좋을 일은 없었다.

그래서 종종 쉼터에서 모두가 만족할 정도의 생선을 구워먹고 오곤 한다.

그곳에서 마음껏 훈련도 하고 말이다.

<집사! 이 집도 좁다. 도쿄에서 이런 집 얻기 정말 힘든데···. 저 녀석들이 그걸 아는지 모르겠네.>

이사한 집은 넓은 것도 좋지만 우에노 공원의 시노바즈 연못이 훤히 내려다보여서 더 좋았다.

꾸루와 전령조들도 자신들의 쉼터가 내려다 보여서 좋아하고 새벽이나 늦은 밤에 던전에 들어가기도 좋았다.

쪼롱이와 사냥조들도 공원이 내려다보이는 것을 좋아하고 말이다.

<집사! 오늘은 유의미한 성과가 있으면 좋겠다. 매번 헛걸음이었잖아.>

"헛걸음은 아니었어. 길드원들도 만나고 자원도 확보하고 있잖아."

퇴사를 하고 회사를 운영하기 시작한 이후로는 최소 보름에 한 번은 한국에 다녀오고 있다.

일정을 조정해서 3일에서 5일 정도 머물고 오는데 들어갈 때마다 가는 곳이 있었다.

전생에 워프 게이트가 있던 던전들.

한국은 다른 나라에 비해 워프 게이트가 많이 형성됐었다.

괜히 전생에 최고의 조건을 가지고도 최악의 성장과 최악의 활용을 하는 나라라는 조롱을 받은 것이 아니었다.

그 모든 것이 미우라와 일본놈들의 수작질 때문이었지만···.

어쨌든 한국의 워프 게이트를 통하면 가지 못하는 나라가 없었다.

그 중 가장 가치가 높은 것은 우리 산에 형성된 화순 던전이었고, 다음으로 이름난 곳은 '지리산 던전'이었다.

워프 게이트를 품은 던전은 주로 국립공원이나 자연이 잘 보존된 곳에 형성이 되었는데 지리산 던전도 그런 곳이었다.

워프 게이트가 깊은 산중에 있지 않았다면 한국에 갈 때마다 최소 3일 이상씩 걸리지는 않았을 것이다.

<그래도 시간이 아까울 때가 있어. 여기 마나통 수거에 좀 더 박차를 가해야 하는데 말이야. 슬슬 날이 따뜻해지면서 수술 받는 사람들이 더 많아지던데.>

"어차피 다 우리 거잖아. 어제도 한 바퀴 돌았고 한국 다녀오자마자 바로 또 돌 거야."

<알고 있는데···. 서두르지 말자라고 생각하는데도 자꾸 마음이 앞서. 대변혁이 가까이 다가와서 그런 것 같아.>

"너만 그러는 거 아니야. 나도 그래. 단지 자제하는 것뿐이지."

<집사도 그렇구나. 하긴 그러지 않기가 더 어렵기는 해.>

불안이나 초조는 표출할수록 그 정도가 심해지는 것 같아서 내색을 하지 않은 것뿐이었다.

간혹 시간 가는 것을 의식하면 속이 바짝바짝 타들어가고 손에 땀이 배었다.

긴장이 되는 것이었다.

이건 모두 실패의 경험 때문이었다.

전생이 반복될 리 없다는 것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지만 실패의 그림자는 간혹 얼굴을 들이밀었다.

그래서 더 철저하게 준비하고 있지만 그럼에도 전생의 상흔이 완전히 없어진 것은 아니었다.

"막상 대변혁이 일어나면 이런 초조함은 사라질 거야. 초반에는 정신없이 바쁘기도 할 거고."

<지금도 쓸어 담고 있지만 그때는 정말 쓸어 담아버려야지. 그러려면 주요 국가의 워프 게이트를 손에 넣어야 하는데 아직 보이질 않으니···.>

지난 삼 개월 동안 일본과 한국의 던전만 찾아다닌 것은 아니었다.

인구가 많아서 의외로 강자가 많았던 중국에도 가보았고, 러시아의 블라디보스토크에도 다녀왔었다.

당일치기가 가능한 홍콩이나 대만도 시간을 내서 다녀온 것은 물론이고 지난달에는 미국에도 가봤지만 이상하게 던전은 보이지 않았다.

대변혁에 있어서는 뭐든 늦기로 유명했던 일본의 던전이 열렸으니 웬만한 던전은 다 열렸다고 생각했는데 예상이 보기 좋게 빗나간 것이었다.

하지만 여섯 번의 소환이 끝났으니 이제는 조금 다를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처음 던전을 발견했을 때도 세 번의 소환이 끝난 뒤였으니 이번에는 발견할 것 같은 묘한 기분이 들었다.

"이번에는 다를 거야."

<전반기가 끝났으니까?>

"그렇지. 후반기의 비세계는 기억하는 사람도 많았잖아. 기억하는 정도에는 차이가 있었지만···. 기억하기 시작했다는 것은 그만큼 알게 모르게 일상에서 마나의 작용이 풍부해졌다는 말일 거야. 마나를 풍부하게 해주는 원동력은 던전이고 말이야."

<후반기를 기억하는 사람이 많으니 활동에 주의가 필요하려나?>

나호는 전생의 비세계를 모른다.

전생에는 가본 적이 없으니 당연한 일이었다.

그저 들은 것을 바탕으로 이야기를 하는 것이라 지금처럼 간혹 헛다리를 짚을 때가 있었다.

"마지막 소환이 끝나고 비세계를 기억하게 되지만 그곳에서 만난 사람까지 정확하게 기억하지는 못해. 대부분이 그랬어. 물론 어디나 예외는 있지만 말이야."

<그럼 지금 집사가 은혜를 베풀어 놓은 그룹원들도 집사를 기억하지 못한다는 말이잖아.>

"그렇지. 내가 전투 스타일을 바꿔버리면 기억을 잘 하지 못할 거야. 비세계에서 만난 사람을 기억하는 방식은 이상하게 특별한 스킬이나 무기로 기억을 했거든."

전생에 비세계에서 제법 유명했다는 미우라도 특이한 무기가 아니었으면 사람들이 기억하지 못했을 것이다.

마나를 너무 많이 잡아먹어서 '마나 귀신'이라고 불리던 무기를 사용했던 미우라였는데 그런 무기를 사용할 수 있었던 것이 모두 우리 국민의 마나통 때문이었다.

으드득!

생각하는 것만으로도 이가 갈렸다.

당시에는 아무것도 모르고 환호하고 열광했었다.

그런 우리 국민을 보고 얼마나 비웃었겠는가.

으드득!

이번에는 그것을 그대로 돌려줄 생각이다.

물론 마나귀신 같은 비효율적인 무기를 사용할 생각은 없지만 미우라의 손에 들어가게는 하지 않을 것이다.

<집사! 미우라 생각했지? 이 부러져. 젊을 때 아껴야 한다니까. 치료수를 꾸준히 마시고 있지만 너무 맹신하지 마. 뭐든 관리만한 것은 없어. 알지?>

나호는 내 건강에 관한 것에 있어서는 아버지보다 잔소리가 심했다.

물론 이런 면이 싫지는 않지만 고양이만한 덩치로 어르신들이나 할 이야기를 하니 아이가 어른 흉내를 내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

"알고 있어. 그나저나 오늘은 꼭 던전을 발견했으면 좋겠다. 도쿄에서는 발견하지 못했지만 말이야."

<이거 완전 던전 찾아 삼만 리야.>

지리산 던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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