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4. 지리산 던전
비행기를 타고 한국으로 돌아왔다.
그리고 바로 지리산으로 향했다.
전생에 한국에서 화순 던전 다음으로 좋았던 던전을 찾기 위해서였다.
이곳을 찾은 것은 벌써 일곱 번째였다.
<나는 7이라는 숫자에 의미를 두지 않는데 오늘은 행운이 좀 깃들어주면 좋겠어.>
쫑!
꾸!
나호의 말에 쪼롱이와 꾸루가 자신들도 같은 생각임을 드러냈다.
지금 쪼롱이의 휘하의 사냥조들은 지리산에 흩어져서 산을 샅샅이 뒤지고 있었다.
화순의 던전을 처음 발견한 것도 이들이었으니 믿고 맡기는 것이었다.
물론 나도 전생에 던전의 입구가 있었던 주변을 열심히 찾을 것이지만 그러기 위해서는 등산이 필수였다.
<집사! 힘들지 않아?>
"이 정도쯤은 일도 아니야."
<좋은 던전은 죄다 사람을 힘들게 해.>
"그래서 특별한 인연이 있는 사람에게만 발견된다고 하잖아."
<화순 던전이 가장 먼저 발견된 것을 보면 그 말도 일리가 있는 것 같기는 해.>
나호가 시원스럽게 인정을 해버리니 괜스레 민망해지려고 했다.
꾸루룰루! 꾸룰루우루!
꾸루가 노래를 불렀다.
산에 오면 자주 들을 수 있는 꾸루 특유의 노래인데 은근히 중독성이 있는 가락이고 마음을 편안하게 하는 음색이었다.
특히 꾸루는 산 중에서도 이곳 지리산을 참 좋아했다.
이곳에 오면 마음껏 비행하는데 특히 제 휘하의 새들과 무리지어 나는 것을 좋아했다.
자신들이 사는 습지와 다른 환경이 색다른 재미를 선사하는 것 같았다.
지금 우리는 화엄사에서 출발해 노고단을 거처 돼지령을 지나 피아골 삼거리를 향해 걷고 있었다.
노고단까지는 차를 이용해서 올라와도 되지만 우리는 매번 직접 걸어서 올라왔다.
대변혁 이후에 보게 되는 식물들이 혹시 지금부터 자라는 것은 아닌지 확인하기 위해서였다.
던전의 입구가 바뀌었을 가능성도 있기 때문이었다.
특히 이렇게 직접 걷을 때만 느낄 수 있는 것들을 놓치지 않기 위해서라도 수고로움을 마다하지 않았다.
쫑!
피아골을 향해 걸을 때 쪼롱이가 내 옷깃을 잡아당겼다.
또 뭔가를 발견한 모양이었다.
<이번에는 뭐야? 야생 삼(蔘)? 영지버섯은 보여도 놔두라니까. 조금 더 자라야 해. 6월의 영지는 귀엽고 사랑스럽지만 아직 따기에는 그렇지. 좀 더 자라게 둬.>
이번에도 나호는 어르신 같은 이야기를 했다.
6월의 산에는 정말 영지버섯이 많이 올라오고 있었다.
등산로를 벗어나 걷고 있었기 때문에 더 자주 보였다.
쪼롱이가 이끄는 곳으로 오니 풀숲에 알이 놓여 있었다.
알이 자그마치 열두 개나 있었다.
<꿩 알이야. 옛날 말에 꿩 알을 주우면 부자가 된다고도 하고, 농사가 대박이 난다고도 했지만 그건 다 말쟁이들 말일 뿐이야. 알을 함부로 주워오면 안 되지. 주위에 어미가 있을 텐데···.>
유월하순이니 알을 조금 늦게 낳은 것 같기도 하고···.
"어미는 어디 갔지? 어지간해서는 알 주위를 떠나지 않을 텐데?"
사람들이 몰라서 그렇지 꿩은 생각보다 은신 능력이 뛰어났다.
풀숲에 있는 것을 보고 고개를 돌렸다 다시 보면 움직이지 않았는데도 찾기 어려울 정도였다.
그러니 주위에 어미가 있어도 우리가 보지 못할 수도 있었다.
알 주변에 사람이 나타나면 필사적으로 알에서 관심을 돌리기 위해 노력을 하는데 알 가까이 다가가는데도 어미가 보이지 않았다.
쫑! 쪼로롱!
쪼롱이가 가리키는 곳을 보니 어미의 사체가 있었다.
둥지와 5미터 정도 떨어진 풀숲이었다.
"죽은 지 얼마 안 된 것 같은데···? 왜 죽었지? 상처도 없는데···. 주위 좀 살펴봐야겠어."
굶주려 죽은 것도 아닌 것 같았다.
대변혁이 6개월 남아 있기 때문에 혹시 대변혁 이후에나 나타나는 변이체가 벌써 나타나서 공격을 한 것은 아닌지 살피려는 것이었다.
<벌써 마나에 영향을 받기 시작했을까?>
"사람들도 마나통이 생기기 시작했으니 아주 영향이 없지는 않겠지."
깊은 산에 들어오면 멧돼지를 한 마리씩 잡아서 확인을 했었다.
지난번 산행까지는 동물들은 아직 마나통이 생기기 시작한 것은 아니었던 것 같았다.
물론 이것은 백 프로 확신할 수는 없었다.
동물이나 몬스터의 마나통은 개체마다 있는 위치가 달랐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각성자들이 전생에 도축 스킬은 기본적으로 가지고 있었다.
아무튼 확실히 알기 위해서는 이곳에서도 직접 잡아서 확인하는 것이 가장 빨랐다.
주변을 확인하며 다른 동물의 흔적이 있는지 살폈다.
하지만 다람쥐나 청설모 같은 작은 동물들의 흔적만 보일 뿐 꿩을 공격했을 만한 동물은 보이지 않았다.
"저 녀석들은 공격적으로 보이지는 않는데···."
<'공격성이 높아요.'하고 광고하고 다니지는 않지만 저 녀석들이 꿩을 죽였다고 보기는 어려울 것 같아. 꿩을 죽였으면 먹었을 거야. 알도 먹고.>
나호가 다람쥐와 청설모를 가리키며 말했다.
"주변은 이상이 없는 것 같으니까 알은 챙겨가자. 이거 전생에 종종 먹었는데."
쪼록! 쪼로록!
먹는다는 말에 쪼롱이가 날카롭게 울어댔다.
<동류라는 거냐? 이 녀석 웃기는 녀석일세. 몬오구리 알은 넙죽넙죽 잘도 먹었으면서.>
나호가 이야기하자 쪼롱이가 먼 산을 쳐다보았다.
몬오구리 알을 먹었던 것은 도통 기억에 없다는 듯 행동하고 있지만 쪼롱이와 사냥조들은 알을 무척이나 좋아했다.
당연하다는 듯 조류의 알은 먹지 않았지만 항상 그런 것도 아니었다.
쪼로롱! 쪼롱!
쪼롱이가 꿩 알을 품는 시늉을 했다
<이미 부화하지 못하게 됐을 수도 있어.>
쭈루!
쪼롱이가 격하게 고개를 가로저었다.
<아니라고?>
쫑!
<확실해?>
쫑!
<그걸 어떻게 알아?>
쫑쪼로로롱! 쪼로롱!
뭐라고 열심히 설명을 했지만 알아들을 수는 없었다.
"그럼 꿩 알이 소환 대기실에 들어가면 너희가 돌봐. 거기서 부화를 할 수 있을지 모르겠지만."
쫑! 쪼로로롱!
허락을 하자 기분이 좋은지 포르르 날아오르더니 볼에 얼굴을 비비는 쪼롱이었다.
기분이 정말 좋을 때 부리는 애교 중의 하나였다.
"알았어. 네가 직접 넣을 수 있지?"
쫑!
쪼롱이가 꿩 알 옆으로 내려앉더니 순식간에 꿩알을 대기실에 넣어버렸다.
<야! 조심해야지. 그렇게 하다 깨져.>
쭈루!
깨지지 않을 것이라고 대답하는 쪼롱이였는데 확인하니 정말 소환 대기실 한쪽에 잘 놓여있었다.
<녀석 마지막에 재주 좀 부렸나보네.>
쪼로로롱!
별 것 아니라는 듯한 표정을 짓던 쪼롱이가 사냥조 한 마리에게 명령을 내렸다
명령을 받은 사냥조가 대기실로 들어가더니 꿩 알을 품었다.
사냥할 때의 매서움과 달리 제 무리는 알뜰하게 챙기는 녀석들이니 꿩도 부화에 성공할지도 모른다.
<집사! 저 알들이 부화되면 어떻게 되는 거야? 소환조의 반려조로 인식되나?>
"그게 무슨 상관이야. 서로 잘 지내면 그만이지."
<저 알들이 변이체가 되면?>
"그러지 않기를 바라야지."
쫑?
변이체라는 소리에 쪼롱이가 의문을 표시했다.
"사랑을 많이 쏟아주면 돼. 그럼 변이체가 되지는 않을 거야. 잘 할 수 있지?"
쫑!
<변이체가 되면 처리해야 하니까 그런 일 없도록 잘 해야 한다.>
쫑!
나호의 다짐에 자신 있게 대답하는 쪼롱이었다.
꿩 알을 발견 이후에도 쪼롱이와 사냥조들은 여러 약초를 발견했다.
산에 올 때마다 하나둘 씩 알려주었더니 그걸 기억하는 것이었다.
열매나 버섯처럼 내 도움 없이도 채취가 가능한 것은 알아서 채취해서 대기실에 넣어두기도 했다.
소환수들이 필요하다고 생각해서 넣는 것은 특별한 제한이 없기 때문에 약초는 문제없이 대기실에 보관이 되었다.
이렇게 모인 약초들은 대변혁 초기에 알차게 사용될 것이다.
<전생에는 이곳에 던전 입구가 형성됐었는데.>
쫑쪼로로롱! 쪼로롱!
피아골 삼거리에 도착하자 먼저 정찰을 나갔던 사냥조들이 돌아왔다.
쪼롱이가 사냥조들의 보고를 듣고난 후 내 옷깃을 잡아 당겼다.
"열린 모양이야. 지난번과는 확실히 느낌이 다르기도 하고."
<그러게 묘하게 느낌이 다르네.>
쪼롱이가 안내한 곳은 피아골 삼거리에서 300미터 정도 떨어진 곳이었다.
등산로에서는 완전히 벗어난 곳으로 혼자 찾았다면 과연 찾을 수 있었을까 싶은 곳이었다.
쫑! 쫑!
쪼롱이가 던전의 입구를 보며 소리를 높였다.
"고마워."
<잘했어. 쪼롱아.>
쫑!
[띠링! 미개방 던전을 발견하셨습니다. 입장하시겠습니까?]
"당연히 입장해야지."
[던전으로 이동합니다.]
여섯 번의 소환을 거치면서 시스템은 조금 더 친절해진 상태다.
내가 강해진 만큼의 대우를 해주는 것 같았다.
쪼쫑! 쪼로로!
꾸꾹! 쿡!
던전으로 이동되자 쪼롱이와 꾸루가 당황하며 기침하는 소리와 비슷한 소리를 냈다.
<킥킥킥! 너희 설원(雪原)은 처음이지? 앞으로는 종종 보게 될 테니까 잘 봐둬.>
나호가 조금은 거만한 목소리로 말했다.
"미개방 던전일 때는 다 환경이 다른 건가?"
<그러게. 이 던전은 설원과는 거리가 멀었는데 말이야.>
전령조의 쉼터는 전생에 어떤 환경이었는지 모르겠지만, 화순 던전도 그렇고 이곳도 그렇고 던전의 환경이 전생에 내가 알던 것과 일치하지 않았다.
전생에 이곳은 설원이 아니라 사막에 가까웠었다.
완전한 사막은 아니었지만 사막화가 급속하게 진행되고 있는 것 같은 환경이었다.
그래서 식물이 잘 자라지 않고 모래 바람이 많이 불고 건조했었는데 지금은 눈이 내리고 있었다.
인벤토리에서 선글라스를 꺼내 썼다.
"사막을 대비해 넣어둔 건데."
<사막에서도 선글라스를 껴야하지만 설원에서는 반드시 껴야해. 눈에 반사되는 햇볕이 얼마나 강렬한데.>
쫑?
꾸?
<하하하! 너희는 괜찮을 거야.>
눈이 상할 수도 있다는 말에 쪼롱이와 꾸루가 날개로 자기들 눈을 가렸다.
새들이 안경을 쓰고 있는 모습을 생각하니 귀엽기도 하고 재미있기도 했다.
덩치답지 않게 순진하고 겁이 많은 꾸루에게는 안경이 잘 어울릴 것 같기도 했다.
늘 그랬던 것처럼 쪼롱이가 사냥조들에게 정찰을 명령했다.
추위에 움츠러들고 나는 것을 힘겨워하면 어떡하나 했는데 그런 것은 아무 문제가 되지 않았다.
사냥조들이 각양각색의 날개를 펴고 설원으로 흩어지는 모습은 장관이었다.
루루!
던전에 들어오거나 비세계로 소환돼서 사냥조들이 정찰을 할 때마다 꾸루는 풀이 죽은 모습을 자주 보였다.
쪼롱이는 던전에 입장하면 할 일이 확실하게 정해져 있었다.
낯선 곳에서는 정찰을 하고, 사냥을 할 때는 직·간접적으로 사냥을 도왔다.
하지만 꾸루는 사냥에는 소질이 없었고 정찰도 아직은 시스템이 허락하지 않고 있었다.
꾸루를 비롯한 전령조의 성격은 사냥에 맞지 않았다.
꾸루와 전령조가 사냥을 하는 것은 오로지 물고기뿐이었다.
간혹 던전에서 발견하는 알을 물어오기도 하지만 그걸 사냥이라고 부를 수는 없었다.
그러다보니 괜스레 눈치가 보이는 모양이었다.
그래서 더 부지런히 물고기를 물어다주기도 하는 것 같고···.
각자 하는 일이 다른 것이니 신경 쓰지 말라고 해도 간혹 저런 모습을 보였다.
"조금 더 시간이 지나면 너희가 하는 일도 쪼롱이 못지않을 거야. 지금은 네가 물어다 주는 물고기만으로도 충분해."
<신경 쓰지 말라니까. 괜찮아! 괜찮아! 몸이 없는 나도 살잖아. 너처럼 반응하려면 나는 죽어야 해.>
나호가 꾸루를 다독였다.
꾸우우!
꾸루가 머리를 나호에게 기대려 했지만 영체인 나호에게 기대질 리 없었다.
꾸룩!
넘어질 뻔한 꾸루가 내는 소리였다.
덩치답지 않게 허당기가 있는 꾸루는 이런 상황에서도 즐거움을 선사하고 있었다.
정찰을 나갔던 사냥조들이 바로 돌아오지 않는 것을 보면 주변은 안전한 것 같았다.
전생에 설원형 던전에서 봤던 몬스터들을 생각하면서 앞으로 나아갔다.
그리고 얼마가지 않아서 몬스터를 발견했다.
사실 몬스터라고 말하기 애매한 녀석이었다.
잘 길들이면 설원형 던전에서 가축처럼 사용할 수도 있기 때문이었다.
<여기도 몬야크가 사네. 집사 어떻게 할 거야?>
"길들여야지. 타고 가면 편하잖아. 발을 헛디뎌 넘어질 걱정도 없고."
설원형 던전의 입구에서 몬야크를 만나면 복불복이었다.
길이 들여지면 다행이지만 길이 들여지지 않으면 처리해야 했기 때문이었다.
몬야크는 실제 야크와 비슷하게 생겼는데 '블랙 몬야크'와 '화이트 몬야크'가 있었다.
블랙 몬야크가 덩치도 크고 성격도 좀 더 난폭해서 길들이는 것은 어려웠지만 한 번 길이 들면 매우 충직했다.
한 번 길이 들면 절대로 배신을 하지 않고 자신이 죽을지언정 자신의 등에 탄 사람을 위험에 노출시키지 않으려고 했다.
정(情)도 많아서 헤어질 때가 되면 눈물을 보이는 경우가 많아서 몬스터라고 부르기 힘든 녀석이었다.
반면에 화이트 몬야크는 블랙에 비해 몸집이 좀 더 작고 성질도 온순해서 길은 더 쉽게 들일 수 있지만 영악했다.
그래서 계속해서 복종을 확인해야 안전을 확보할 수 있었다.
위험한 순간이 오면 조금의 망설임도 없이 주인을 버리고 달아나는 녀석이기도 했지만 그만큼 위험에 대한 반응이 빨라서 이 점을 이용하면 좀 더 안전하게 이동할 수 있었다.
그런데 지금 우리 앞에 등장한 몬야크는 처음 보는 종이었다.
평생 책임질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