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6. 반반
호기심을 보인 순간 절반 이상 넘어왔다고 봐도 좋았다.
몬야크의 몸부림이 조금 잦아들었다.
하지만 완전히 복종을 한 것은 아니었다.
꿱! 꾸에엑!
울부짖는 소리가 한결 부드러워졌지만 여전히 등에 탄 내가 못마땅한 모양이었다.
"후회하지 않을 거야. 자 봐! 네가 내 가족이 되면 저런 곳에 살게 될 거야."
소환 대기실을 몬야크 앞으로 띄웠다.
혹시 놀라 발버둥을 칠까 싶어 멀찍이 떨어뜨려 띄우는 것을 잊지 않았다.
꿀! 꾸우우울!
이제 몬야크의 몸짓은 이전에 비하면 앙탈에 가까웠다.
조금 전까지는 내 머리가 어지러울 정도로 몸부림을 치던 녀석이 많이 순해진 것이었다.
여기에 쐐기를 박아야 했다.
"저기 보이지? 저곳에서 네 후손도 살 수 있어. 젖과 꿀이 흐르는 땅이지."
<집사! 맞는 말인데 왠지 사기꾼 같아. 끽끽끽!>
지금 소환 대기실을 보면 젖과 꿀이 흐른 것은 물론이고 이상세계, 유토피아를 보는 것 같았다.
천사를 닮은 거대한 하얀 새가 창공을 날고 각양각색의 이름 모를 새들이 나무에 앉아 있었다.
숲과 습지가 잘 어우러져서 꿈에서나 볼 것 같은 모습이었다.
거기에 독충이나 뱀 같은 위험한 동물도 없으니 몬야크에게는 그야말로 낙원이 따로 없을 곳이었다.
더구나 저곳은 덥지 않았다.
만약 몬야크가 소환수가 되어 저기에 들어갈 자격이 생기면 저곳의 일부는 몬야크가 살기 가장 좋은 환경이 될 것이었다.
환경 조성은 시스템이 알아서 해주는 것이니 내가 신경 쓸 일도 없었고···.
대기실의 환경은 소환수들의 바람도 어느 정도 참작이 되는 것 같으니 이렇게 좋은 곳을 찾기는 어려울 것이었다.
<너 우리 집사 선택하는 것이 좋아. 혹시 네가 나중에 다른 누군가의 소환수가 된다고 해도 저런 대기실을 가진 사람은 없을 거야. 그리고 네가 원하지 않아도 가족과 헤어지게 될 거고···. 하지만 우리 집사는 그럴 일이 없어. 우리 집사는 말이야······.>
나호의 자랑이 시작되었다.
거의 넘어온 몬야크가 나호의 이야기를 경청했다.
이제 더 이상 몸부림을 하지 않는 몬야크였다.
시스템의 인정이 있어야하겠지만 몬야크는 이미 우리 가족이 된 것 같았다.
목덜미를 쓸어주었다.
뿔이 참 거대하고 아름답기도 했다.
전생에 숱하게 몬야크를 봤지만 이렇게 거대한 몬야크는 본 적이 없었다.
색깔도 그렇고 덩치로 그렇고 탐이 날 만큼 멋진 녀석이었다.
꿀꿀!
몬야크가 꿀꿀거리는 순간 메시지가 들렸다.
[띠링! 몬야크의 수장(首長)을 강대한 님의 소환수로 삼으실 수 있습니다. 이름을 지어주시겠습니까?]
이름을 지어주는 것은 필수 사항은 아니었다.
하지만 가족이 되는 것이니 이름을 지어주는 것이 좋을 것 같았다.
"원하는 이름이 있니?"
이왕이면 원하는 이름을 지어주고 싶어서 물은 것이었다.
그 순간 예상치 못한 답변이 들려왔다.
음머어어!
<어? 집사! 이 녀석 지금 소처럼 운 것 맞지?>
"맞아! 신기하네. 이런 소리를 내는 몬야크는 처음 보는 것 같아."
<처음 맞을 거야.>
[띠링! 강대한 님께서 보신 몬야크 중 소와 비슷한 소리를 내는 몬야크는 존재하지 않았습니다.]
'예', '아니오'와 같은 대답이어서 권능 기억이 바로 알려주었다.
"너 소와 연관되는 이름을 갖고 싶은 거야?"
음머어어!
"너 조금 전까지 내던 소리는 뭐야? 인간으로 치면 외국어 하는 거야?"
음머어어!
깊고 묵직한 소리로 다시 대답하는 몬야크였다.
조금 전까지 내던 꿀꿀 소리보다는 확실히 더 어울리는 소리였다.
<집사. 이 녀석 두 가지 소리를 다 낼 수 있나봐. 이런 녀석은 처음이야. 정이 확 가는데?>
쫑!
꾸!
쪼롱이와 꾸루도 호기심을 보였다.
<너희는 다른 언어 못하지?>
쪽!
꾹!
쪼롱이와 꾸루가 제법 사나운 소리를 내며 나호를 쏘아보았다.
"나호야. 그러지 마. 다 다른 거잖아."
<이렇게 하면 혹시 한글을 배울 의욕이 생길까 싶어서···. 미안···.>
나호가 쿨하게 사과를 했다.
"네 이름을 '음머'라고 할 수도 없고···."
<집사! '반반'이는 어때? 절반은 블랙이고 절반은 화이트이니 저 녀석만 좋다면 좋은 이름인 것 같은데···.>
"나중에 반반 치킨을 알고 나면 서운해 하지 않을까?"
<에이. 풀만 먹는 녀석이니까 서운해 하지 않을 거야. 블랙 몬야크와 화이트 몬야크 모두의 수장이기도 한 것 같으니까 반반이도 좋을 것 같아.>
"네 생각은 어때?"
음머어어!
몬야크가 고개를 끄덕이며 좋다는 내색을 했다.
등 근육마저도 덜썩이는 것이 썩 마음에 드는 모양이었다.
"그래. 그럼 네 이름은 '반반'이라고 하자."
음머어어!
[띠링! 축하합니다. 몬야크의 수장 반반이가 강대한 님의 소환수가 되었습니다. 반반이에 대한 정보는 소환수 관리창을 이용해 확인하시기 바랍니다.]
<아싸아아! 대장 추가요오오오!>
나호가 기쁨의 포효를 내질렀다.
설원에 멀리멀리 퍼져나갈 것 같은 소리이지만 그러지 않았다.
영체 상태이기 때문에 소리 또한 우리 머릿속에 울리는 것이 끝이었다.
반반이도 소환수가 되었다는 의미를 파악했는지 기쁨을 표출했다.
제자리에서 걸었는데 눈밭에서 가볍게 총총거리듯이 걷는 것이어서 미끄러질 것 같지만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
몬야크는 설원을 누구보다도 잘 아는 존재였다.
인간은 보지 못하는 크레바스까지도 파악이 가능한 녀석들이었다.
그리고 어지간해서는 미끄러지는 일이 없었다.
미끄러지면 거대한 덩치 때문에 쉽게 일어나지 못하는 단점이 있지만 놀라운 균형감각 덕분에 넘어지는 일은 거의 없었다.
음머어어! 음머어어!
이제는 식구가 된 몬야크가 조금 전 자신이 밟아 짓뭉개진 풀에 얼굴을 가져가려고 했다.
<야! 그거 먹지 마. 저기 좋은 것이 널리고 널렸는데 왜 밟은 것을 먹으려고 해?>
음머어어!
몬야크가 나호와 슬쩍 눈을 마주치더니 눈에 박힌 풀을 용케 꺼내 먹었다.
그러더니 세상을 다 가진 듯한 몸짓을 보였다.
"입맛에 맞나보네."
음머어어! 음머어어!
<짜식! 맛있지? 힘 빼지 않고 먹었으면 얼마나 좋아. 이제라도 식구가 된 걸 축하한다. 잘 지내보자. 여기는 쪼롱이, 그 옆은 꾸루. 먼저 식구가 된 녀석들이니까 알아서 잘 하고.>
음머어어!
<쪼롱이 너 한글 배우지 못하게 하지 말고!>
쭈루!
쪼롱이가 세상 억울한 표정을 지었다.
<너 수상해. 아까는 정신이 없어서 말을 하지 않았는데 독이 있을지 모르는 풀도 집사가 먼저 먹게 하고···. 아무래도 정신 교육이 필요할 것 같아.>
쭈룰루루! 쭈룰루!
루루룰루! 루루!
쪼롱이와 꾸루가 동시에 억울한 표정을 지으며 절대 그런 것이 아니라는 몸짓을 보였다.
"나호야. 애들 그만 잡아. 소환 대기실에 독초가 자랄 리가 있겠어? 소환수에게 위험할 수도 있는데···. 몬야크들이 단 맛이 나는 풀을 더 좋아하는 것 같아서 맛을 본 것뿐이야."
음머어어어!
반반이의 눈이 왕방울만 해졌다.
그것을 어떻게 알았냐고 묻는 것 같았다.
<우리 집사가 이런 사람이야. 그러니 잘해. 블랙 몬야크의 성질을 그대로 가지고 있다면 절대 배신할 리 없는데 화이트의 성격을 가지고 있다면 조심하기는 해야지.>
꿀꿀!
반반이가 고개를 가로저었다.
"꾸루야. 반반이 풀 좀 부탁할게."
꾸!
꾸루의 우렁찬 대답과 함께 전령조들이 바구니를 발에 쥔 채 날아왔다.
전령조들이 반반이의 앞에 풀을 부어주고는 바구니를 들고 대기실로 후다닥 들어가 버렸다
꾸루는 몬야크를 보고도 겁을 내지 않는데 다른 전령조들은 커다란 덩치가 무섭게 느껴지는 모양이었다.
사실꾸루도 내색은 하지 않고 있지만 은근히 무서워하고 있는지도 모를 일이었다.
음머어어어어! 음머어어어!
이제 확실하게 소환수가 되었으니 등에서 내려와도 될 것 같았다.
워낙 거대한 덩치를 자랑하는 녀석이어서 어깨 높이가 4미터는 될 것 같았다.
등에서 내려가려고 하자 반반이가 엉거주춤 몸을 낮추어주려고 했다.
"괜찮아. 이 정도는 걱정 없어."
지난 세 번의 소환 중에 8을 더 높여 현재 민첩 수치가 28이었다.
감각도 5를 높여 이제 15가 되었다.
이런 능력치를 가지고 몬야크 등에서 내려오는 것에 빌빌 거린다면 더 이상 헌터라고 할 수 없었다.
가볍게 뛰어내렸다.
별것도 아닌 일에 반반이의 눈빛이 빛났다.
풀을 먹으려다 말고 나를 빤히 쳐다보았는데 신기한 생명체를 보는 눈빛이었다.
그런데 그 눈빛이 반짝거리는 것이 살짝 걱정스러웠다.
"어서 먹어. 먹고 이 던전 안내 좀 해줘."
음머어어어!
반반이는 정말 맛있게 먹을 줄 아는 녀석이었다.
영상을 찍어서 올리면 먹방계의 1위는 무조건 반반이가 될 것 같았다.
<집사! 확실히 초식을 하는 녀석들이 많이 먹는구나. 이거 큰일 나겠는데?>
나호의 목소리에 걱정이 어리며 소환대기실을 바라보았다.
소환 대기실은 여전히 아름다웠다.
누구나 한 번 보면 잊을 수 없는 곳!
우리는 그런 곳을 소환 대기실로 가지고 있었다.
<집사. 염소가 살기 시작한 무인도가 어떻게 되는지 알지?>
"잘 알고 있지. 얼마 전에도 TV에 나왔잖아. 풀 한 포기 남아나지 않더라고. 왜? 우리 대기실도 그렇게 될까봐?"
나호가 격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걱정 마. 그런 것은 시스템이 어느 정도 감안해 줄 거야."
<다른 건 몰라도 시스템이 소환수의 먹이까지는 배려하지 않았던 것 같은데···. 이 애들은 육식이 아니니까 조금은 신경 써주려나?>
시스템의 반응은 없었다.
반응이 없다는 것은 직접 확인하라는 것이었다.
"더 먹어. 나호의 말이 신경 쓰인 거야?"
꿀꿀!
고개를 가로 저으며 꿀꿀 소리를 냈다.
반반이는 긍정에는 '음머'를 부정에는 '꿀꿀'이라고 답하는 것 같았다.
"그럼 왜 안 먹는 거야?"
반반이가 풀을 입에 물고는 고개를 뒤로 저치며 물고 있던 풀을 휙 던졌다.
물어 던진 풀 중의 일부가 반반이의 등에 올려졌다.
반반이는 그런 행동을 반복했다.
"혹시 누구 가져다주려는 거야?"
음머어어!
<녀석 기특하네. 이런 신선한 풀은 오랜만일 텐데. 제 무리를 생각하고 말이야. 우리 집 대장들은 하나같이 멋지네.>
"반반아! 그런 것이라면 걱정하지 마. 내가 얼마든지 챙겨줄 테니까. 소환 대기실에 있는 풀 말고도 생초든 건초든 얼마든지 구매할 수 있어. 정 안 되면 대기실 한 쪽에서 키워도 좋고."
음머어어어!
<집사! 혹시?>
"맞아. 시도해봐야지. 지금 심으면 대변혁이 일어날 즈음에는 수확이 가능할 거야."
<오오오! 집사! 역시 집사는 똑똑해.>
지금까지는 정신없이 바쁘기도 했지만 사냥조와 전령조가 초식을 하지 않기 때문에 시스템이 용인해주지 않을 것 같아 농사는 아예 시도조차 하지 않았다.
소환수를 위한 거라는 핑계를 가져다 대려고 해도 적당해야 하는데 육식을 하는 새들을 위해 농사를 짓는다는 것은 말이 되지 않았다.
더구나 농사일하기에는 사냥조와 전령조는 적합하지 않았다.
억지로 시켰다면 했겠지만 그래서는 서로 좋을 것이 없었다.
벼농사를 짓는다면 습지 일부를 이용하면 되고, 보리농사를 짓는다면 숲의 일부를 이용하면 되지만 초반에 땅을 갈아엎는데 상당한 노동력이 필요했다.
몬야크를 보니 농사가 가능할 것도 같았다.
실제로 전생에 일부 던전에서 농사를 지을 때 길들인 몬야크를 이용하기도 했었다.
<농사를 지을 수 있다면 정말 좋기는 하겠다. 미리 쌀을 많이 확보해둔다고 해도 혹시 모르니까 말이야.>
우리만 먹는 것을 생각하면 이렇게 까지 철저하게 준비를 하지 않아도 되었다.
하지만 세상은 혼자 사는 것이 아니었다.
전생에 매국 행위를 했던 놈들까지 도와줄 생각은 없지만 선량한 국민들에게는 힘이 되고 싶었다.
일개 개인이 얼마나 준비가 가능할지 모르겠지만 이미 당첨된 로또로 화순에서 착착 준비에 들어가고 있다.
뭐든 대단위로 사들이고 있지만 아무도 그걸 이상하게 생각하지는 않았다.
공장에 워낙 많은 사람이 드나들어서 그러려니 한단다.
하지만 그렇게 사들인 물건의 상당량은 화순 던전에 보관되고 있다.
물론 소환 대기실 한쪽에 끝도 없이 쌓인 컨테이너에도 여러 물품이 보관 중이었다.
당연하게 대기실은 소환수들도 쓸 만한 물건에 한정되었지만 말이다.
음머어어어!
반반이가 묵직하게 울었다.
소리만 들어도 믿음직스러웠다.
"그래. 출발하자. 네 무리가 있는 곳에 먼저 가도 좋아."
솔직한 심정은 던전을 먼저 클리어하고 싶었지만 지금 내 감정만 내세울 수는 없었다.
가자는 말에 반반이가 살짝 몸을 낮추었다.
"그러지 않아도 된다니까."
반반이의 몸에 폴짝 뛰어올랐다.
그러자 반반이가 걷기 시작했다.
<우와아아! 이거 높이가 다르니까 느낌이 새롭다. 쪼롱아, 꾸루야 너희도 타봐.>
나호가 권하자 기다렸다는 듯이 날아오더니 쪼롱이는 뿔과 뿔 사이에, 꾸루는 내 뒤에 앉았다.
온 식구가 같은 승용차를 타고 이동하는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나호도 비슷한 느낌이 들었는지 힘차게 외쳤다.
<출바아아알!>
농자재 출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