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당신의 마나통은 안녕하십니까?-88화 (88/350)

88. 고혈(膏血)

던전에서 나온 후 던전의 입구를 확인했다.

내 눈에는 던전의 입구가 보이지만 남의 눈에는 보이지 않을 것이었다.

내 소유로 넘어온 던전이니 이제 이곳의 활용은 내 재량에 맡겨진 상태였다.

"잠시 들어갔다 가자."

<좋지. 냉동 창고처럼 사용할까?>

"그것도 나쁘지 않지. 대변혁 이후에는 이 던전은 사막형 던전이었는데 이번에는 어떻게 되는지 모르겠다."

미개방일 때는 설원이었다가 대변혁과 동시에 사막형으로 변해버린다면 보관할 물건을 잘 선정해야 했다.

대변혁 이후라도 내가 허락하기 전까지는 지금의 환경이 유지된다면 나호 말대로 냉동 창고로 사용해도 좋을 것 같았다.

화순에서 구매하고 있는 물자 중에서는 냉동 보관하면 좋은 것들도 많으니 그것들도 이곳으로 옮겨놓고 말이다.

그런 생각을 하면서 던전으로 입장했다.

던전은 우리가 퇴장하기 전과 동일했다.

칼바람이 불고 있었고 눈이 내리고 있었다.

<여기 입구에 보관하면 좋겠네.>

물건을 보관한다면 딱 좋을 장소가 던전 입구에 있었다.

"생각해 보자. 우선 급한 것은 아니니까. 반반아. 한동안 못 올 수도 있으니까 한번 둘러볼래?"

꿀꿀!

반반이가 설원은 쳐다보지도 않고 고개를 가로저으며 대답했다.

<집사! 어쩔 때 보면 말이야. 집사는 동물들 마음을 정말 모르는 것 같아. 저런 곳에 있는데 지금 설원이 눈에 들어오겠어?>

나호가 대기실을 가리키며 말했다.

"그래도 반반이 가족에게는 이곳이 고향이잖아."

<고향이라도 정도라는 것이 있는 거야. 너무 고생하잖아. 그럼 고향이라도 고개도 돌리고 싶지 않다니까. 남자들이 괜히 군대있는 방향으로는 소변도 보지 않는 줄 알아?>

"알았어."

나호의 말은 간혹 아버지의 잔소리처럼 느껴질 때가 있었다.

살아오면서 보고 들은 것이 워낙 많기 때문인 것 같았다.

전생에 가족처럼 살아서 아버지를 닮은 것인지도 모르고 말이다.

<예전에 할머니 할아버지들 중에 보리나 콩을 절대 밥에 넣어 드시지 않는 분들이 계셨어. 고생할 때 생각이 나신다고 말이야. 살만해졌는데 왜 좋은 쌀밥을 두고 잡곡을 섞느냐는 거지.>

"그건 나도 알고 있어. 어린 적 책에서 읽었어. 그럼 여기 더 볼 것은 없겠다. 나가자."

전생과 같다면 이곳에도 워프 게이트가 생성될 것이다.

그것도 우리나라에서 두 번째로 좋은 게이트가···.

생각만 해도 부자가 된 것 같았다.

물질적인 부(富)도 그렇지만 정식적으로도 부자가 되었다.

외국으로 이동할 수 있는 게이트를 모두 수중에 넣고 있으면 우리나라 국민을 지키는데 보탬이 될 것이었다.

외국에서 들어오는 모든 사람과 물자를 통제할 수 있으니 이것보다 좋은 것은 드물었다.

<그런데 집사! 비무장 지대에 있는 게이트는 어떻게 할 거야? 그 게이트도 동아시아에서는 중요한 역할을 했잖아.>

"거기는 현재로는 들어갈 수 있는 방법이 없잖아. 내가 직접 가야하는데 지금은 불가능하지. 대변혁 날 가보든지 해야지."

<거기도 놓치면 안 돼. 워프 게이트가 있는 던전 중 그곳처럼 접근성이 좋은 곳도 없었어.>

"알고 있어."

비무장 지대에 있는 던전은 평지에 있었다.

그래서 도로만 놓으면 누구든 쉽게 접근할 수 있었다.

워프 게이트를 품은 던전이 평지에 있는 경우는 흔하지 않았다.

더구나 비무장 지대 던전에서 이동할 수 있는 곳에는 귀한 것이 많이 나오는 던전들이 있었다

"대변혁 날 일정을 잘 짜야겠다."

<그래야지. 미리미리 해놓을 수 있는 일들은 해놓고. 이제 어디로 갈 거야?>

"이곳에 열렸으니 다른 던전들도 열렸을 수 있잖아. 확인해야지."

다른 나라에 비해 우리나라는 워프 게이트를 많이 품고 있었다.

특히 외국으로 나갈 수 있는 워프 게이트를 우리나라처럼 많이 보유한 나라는 드물었다.

면적은 물론이고 인구 대비로 따진다고 해도 타의추종을 불허했다.

전생에 확인된 워프 게이트 중 외국으로 나갈 수 있는 것은 총 일곱 곳.

비무장 지대에 있는 것은 현재는 접근할 수 없고, 두 곳은 확보를 했으니 앞으로 네 곳의 워프 게이트가 더 남아있었다.

이것만 확보하면 하늘과 바다를 모두 장악한 것과 같았다.

우리나라 워프 게이트들은 한 게이트에서 이동할 수 있는 나라의 수가 많기로도 유명했다.

지금 같은 시대에 비유한다면 항공노선을 많이 확보하고 있는 셈이었다.

그러니 같은 게이트라도 가치부터가 달랐다.

우리나라 게이트를 통하면 가지 못할 나라가 없을 정도라는 말까지 있을 정도였다.

전생에 미우라는 게이트를 통한 이득만도 엄청나게 챙겼을 것이다.

이런 귀한 것들을 헐값에 팔아넘긴 것이 잘못이지만 그때에는 정보가 부족해서 어떤 던전이 워프 게이트를 품고 있는지 알지 못했다.

이해할 수 없는 것은 이런 정보를 가진 일부 매국노 놈들이 개인적인 이득에 눈이 멀어 친일 매국적인 행각을 벌렸다는 것이었다.

아직 공략되지 못한 던전에 대한 위험성을 부각하고, 공략하지도 못하는 던전을 보유하는 것은 무책임하다는 비판을 가해왔다.

던전으로 인한 피해가 발생하면 당연히 배상을 해야겠지만 계속해서 불안감을 조성하고 아무렇지도 않은 일들까지 들추면서 압박을 가해왔다.

서민의 입장에서는 싼 값에라도 사주겠다는 사람이 있으면 팔아넘길 수밖에 없도록 만든 것이었다.

나처럼 사유지에 있는 것을 사간 것은 그래도 양반이었다.

국유지, 그것도 국립공원에 있는 던전들은 공략의 대가로 무상 영구 임대가 가능한 법안을 만들어 통과시켰다.

그것도 관리를 핑계로 일정 이상의 길드에 한해서 허가를 해주었다.

한 마디로 특정 길드만을 겨냥해서 만든 특혜성 법안이었다.

그런데 그런 법안이 너무도 쉽게 통과되었다.

말이 임대이지 공짜로 퍼준 것이나 다름이 없었다.

그것도 어이가 없는데 위험한 던전을 관리 유지한다는 명목으로 세금까지 따박따박 받아갔다.

그것도 천문학적인 돈을 말이다.

그러니 나라에 돈이 없고 국민은 죽어나갈 수밖에 없었다.

비옥한 토지와 넉넉한 워프 게이트 거기다 기연에 비견될 만한 약초가 자생하는 던전들이 많았던 나라임에도 늘 허덕허덕 살 수 밖에 없었던 이유였다.

그 모든 것이 미우라와 일본 놈들 그리고 친일 매국노들 때문이었다.

그런데 방금 그 고리 하나를 끊었다.

전생에 지리산 던전은 미우라 길드와 한국의 윤 씨 가문이 공동으로 관리했었다.

물론 윤 씨 가문은 들러리나 바지 사장쯤이었지만 그러면서 얻은 이득이 적지 않았다고 알고 있다.

아무튼 두 가문에게 고혈을 빨린 주민들의 눈물로 섬진강 수위가 높아졌다는 말이 나올 정도였는데 그것을 차단한 것이었다.

앞으로 매국노의 배를 불려주었던 기연이나 던전은 모조리 수중에 넣을 생각이다.

물론 가능하다면 말이다.

하산을 하는 것은 오래 걸리지 않았다.

올라 갈 때 충분히 산을 살폈기 때문에 내려올 때는 빠르게 내려오면 그만이었다.

산을 내려온 후 차를 타고 이동한 곳은 충북 제천의 월악산이었다.

서둘러 왔는데도 어느새 해가 기울어지고 있었다.

늦은 시간이라도 산행을 하는 것에는 어려움이 없었다.

이 산도 3월 이후 일곱 번째인데다 전생에도 숱하게 왔던 곳이기 때문이었다.

<여기도 열렸으면 대박인데···. 이곳은 뭘 줄까?>

"모든 곳에 보상이 있을 것이라는 생각은 버리는 것이 좋아."

<그 정도는 나도 알지. 그런데 왜 외국으로 통하는 워프 게이트들은 하나같이 접근하기 힘든 곳에 있을까?>

지리산에서 했던 질문을 또 하는 나호였다.

그만큼 궁금하기 때문일 것이다.

외국으로 갈 수 있는 워프 게이트가 있는 곳에서는 당연히 국내로도 이동이 가능했다.

그리고 그런 던전 안에는 워프 게이트만 있는 것이 아니었다.

대부분 얻을 것이 많은 던전이었기 때문에 헌터들의 출입이 많을 수밖에 없었다.

자연 함께 입장하는 일반인들도 많았고···.

높은 산에 있는 던전을 입장하는 것은 헌터들에게는 별 것 아닌 일이었지만 일반인에게는 그렇지 않았다.

먹는 것도 부실한데 짐을 지고 산을 오르내리는 일은 곤욕이었다.

나중에는 던전 입구까지 쉽게 갈 수 있는 길이 만들어지지만 공짜로 이용할 수 있는 것은 아니었다.

공사비를 뽑는다는 명목으로 통행료를 받았던 것이다.

그런 비용이 부담스러운 일반인들은 헌터들보다 빨리 출발해서 직접 산을 올랐다.

고생이 말로 표현할 수 없을 정도로 심한 것은 물론이고 목숨을 내놓고 해야 하는 일이 되어버린 것이었다.

헌터 없이 일반인들끼리 산을 올라야 하니 자칫 사냥감이 될 수도 있었던 것이다.

그런 것을 보고 살아온 세월이 20년을 훌쩍 넘었다.

그러니 저런 의문을 갖는 것은 지극히 자연스러운 일이었다.

"던전이네. 저기!"

이번에는 너무도 쉽게 던전 입구를 발견했다.

이곳은 전생에 던전 입구가 있던 곳에서 멀지 않은 곳에 입구가 형성되어 있었다.

던전 입구에 다가서자 미개방 던전을 발견했다는 메시지와 함께 입장하겠냐는 물음이 들려왔다.

당연히 입장을 했고 입장을 하자마자 몬스터를 발견할 수 있었다.

우리가 서있는 곳은 해안.

주변에는 코코넛 나무와 흡사한 나무들이 즐비했다.

그리고 해안이 있는 던전에서 흔하게 볼 수 있는 '몬게'가 돌아다니고 있었다.

쫑!

쪼롱이가 몬게를 보고 호기심을 드러냈다.

자신들도 충분히 잡을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 같았다.

비세계에서 몬가재를 상대해봤기 때문에 비슷하게 생긴 녀석들이 만만해 보이는 모양이었다.

<몬게 중에서도 저 녀석들은 '몬코코넛게'라고 해. 나는 직접 코코넛게를 보지 않아서 모르겠는데 닮았다고 하더라.>

나호가 말했다.

<하지만 그냥 우리는 몬게라고 불렀어. 사람들이 다람쥐와 청설모를 정확하게 구분해서 부르지 않는 것처럼 말이야. 저 녀석들은 태어난 지 얼마 되지 않은 녀석들일 거야.>

나호가 몬게에 대해 차근하게 설명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얌전하게 설명이 끝나기를 기다려줄 몬스터는 세상에 존재하지 않았다.

후각이 무척이나 발달한 녀석들답게 낯선 존재의 등장을 바로 눈치 챈 것이었다.

몬게들은 특유의 소리를 내며 몰려들었다.

입에서 거품을 내는 소리도 마저 큰 녀석들은 가까이 접근하더니 사람을 전봇대라도 되는 양 타고 오르려고 했다.

"이거 숫자가 많아서 처리하기 귀찮겠다."

<맛있는 거라고 하면 쪼롱이와 사냥조들이 알아서 처리할 것 같은데? 반반이가 몇 번 굴러도 끝날 것 같고.>

나호가 이렇게 느긋하게 말하는 이유는 말 그대로 몬게가 아직 새끼이기 때문이었다.

이 녀석들이 제대로 성장하면 처리하기 제법 애를 먹이는 녀석들이지만 이런 상태일 때는 줍는 것이 빠를 정도로 공략하기 쉬웠다.

물론 대변혁 이후에는 이렇게 어린 몬게만 등장하는 일은 거의 없었다.

쫑?

맛있다는 말이 귀에 꽂혔는지 쪼롱이가 바로 반응을 보였다.

"구워먹으면 몬가재 이상으로 맛이 있기는 해."

함께 다니면서 쪼롱이와 사냥조들의 사냥술은 한층 발전했다.

이제는 누구도 새라는 이유로 무시하지 못할 정도는 되었다.

아직 각성을 하지 않았는데도 저 정도인데 각성까지 하게 된다면 얼마나 강해질지 상상이 되지 않았다.

맛이 있다는 말에 쪼롱이의 날개가 들썩거렸다.

어서 허락이 떨어지기를 기다리는 것이었다.

"좋아. 처리하자."

쪼롱이와 사냥조에게만 맡겨두어도 처리가 되겠지만 그렇게 되면 내 성장에 도움이 될 것이 없었다.

시스템은 의외로 정확했다.

내가 부리는 소환수이기는 하지만 손도 대지 않고 코를 푸는 것은 좋아하지 않았다.

그러니 적당히는 움직여야 했다.

이런 곳에서는 창이나 검이 필요하지 않았다.

드럼통 같은 것을 굴려주는 것이 가장 빨리 처리할 수 있을 것 같았다.

하지만 드럼통을 가지고 다닐 일은 없었다.

해안에서 굴릴 만한 것이 있나 살펴보니 제법 둥근 형태의 바위가 있었다.

그것을 굴리면 제격일 것 같았다.

바위를 굴리자 몬게가 힘없이 터져나갔다.

<집사 이거 너무 날로 먹는다는 느낌이 든다. 그치?>

"바위를 굴리는 것이 그리 만만하지는 않거든. 여기 모래사장이잖아."

<그래? 너무 쉽게 굴려서 보기보다 가벼운 돌이라고 생각했지.>

음머어어!

우리 이야기를 들었는지 몬야크인 반반이가 대기실에서 나오고 싶다는 몸짓을 보였다.

<집사! 저 녀석 눈치 좀 있는데? 도와주려나봐.>

음머어어!

다시 반반이가 나오려고 했다.

쪼롱이와 꾸루는 언제든 나올 수 있도록 허락을 해두었지만 반반이는 아니었다.

쪼롱이야 조금 눈에 띄는 외양을 하고 있지만 작은 새이니 사람들 눈에 띄더라도 반려동물이라고 생각할 것이고, 꾸루는 나와 꾸루가 허락하지 않으면 누구도 볼 수 없었다.

하지만 몬야크는 아니었다.

저 거대한 덩치가 현실로 나온다면 그건 특종감이었다.

그래서 나오고 싶을 때마다 허락을 받도록 해두었더니 저렇게 허락을 청하는 것이었다.

"나와도 좋아."

허락이 떨어지자 대기실에서 나온 반반이가 바로 바위 앞으로 다가왔다.

그러더니 앞발로 툭툭 바위를 밀었다.

밀면 미는 대로 공깃돌 움직이듯이 굴러가는 바윗덩어리였다.

그리고 그 바윗덩어리가 지나간 자리에는 몬게의 사체가 즐비했다.

그런데 갑자기 쪼롱이가 다급하게 날아왔다.

던전 이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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