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9. 던전 이식?
쪼로록! 쪼로록! 쪼록!
유난히 날카롭게 울며 날아온 쪼롱이가 내려앉은 곳은 우리가 굴리고 있는 바위의 앞이었다.
쪼로로루! 쪼로로!
바위 앞에 내려앉고는 유난히 불쌍한 음색으로 노래를 하며 올려다보던 쪼롱이가 몬게의 등딱지를 톡톡 쪼았다.
"부수지 말라는 거야?"
쫑!
<아이고 두야! 집사는 참 대단한 소환수를 둔 것 같아. 세상에 저런 소환수는 없을 거야.>
나호가 이마를 짚으며 뒤로 넘어갔다.
"어려운 일도 아니니까 그렇게 하지 뭐."
쫑!
일일이 수거하는 것이 귀찮아서 바위를 굴렸던 것이었다.
몬게를 잡아 한쪽으로 쌓아두며 가만히 보니 굳이 내가 나설 필요가 없을 것 같았다.
몬게를 잡는 경험치가 많은 것 같지도 않았고, 사냥조들이 몬게를 잡는 것을 좋아하는 것도 같아서 쪼롱이에게 알아서 하라고 맡겨버렸다.
쪼롱이가 날갯짓까지 하며 좋아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쪼롱이까지 61마리의 사냥에 능한 사냥조들은 빠르게 몬게를 잡아 한쪽으로 모으기 시작했다.
해변 가득 꼬물거리던 몬게는 빠르게 사라지고 있었다.
<먹탐이 좀 있어서 그렇지 참 멋진 녀석들이야.>
"쪼롱이의 말을 저렇게 잘 따르는 것이 나는 가장 좋아 보이더라. 따로 비결이 있는 것인지···."
전령조들은 같은 종이니까 꾸루의 명령을 잘 따른다고 하겠지만 쪼롱이가 이끄는 사냥조들은 아니었다.
모양과 색깔이 다양한 만큼 여러 종의 새가 섞여 있는데도 명령체계는 확실하게 서 있었다.
그렇다고 쪼롱이가 위협적으로 대하는 것도 아닌데 말이다.
"타고 난 건지···?"
쪼롱이에게 해안은 맡겨 놔도 될 것 같아서 안쪽으로 조금 들어가 보았다.
내가 움직이자 쪼롱이가 재빨리 열 마리의 사냥조를 내 옆으로 보냈다.
호위를 하라고 보내는 것이었다.
영리하기도 하지만 늘 모든 상황을 주시하고 있기 때문에 할 수 있는 행동이었다.
"저거 하나 따봐야겠어. 미개방 던전에서 익은 과일을 보는 것은 처음이잖아."
나무에 오르려고 하자 이번에 나선 것은 꾸루였다.
나무에서 슬쩍 나를 밀어내더니 넓은 날개를 펼치며 날아올랐다.
꾸루의 날갯짓에 모래가 일어날 것 같지만 전령조들의 비행은 흔적을 남기지 않았다.
전령조의 특징인 것 같았다.
높이 달린 열매를 물고 내려온 꾸루가 열매를 내게 건네주었다.
"고마워."
꾸!
칭찬에 어깨가 들썩이는 꾸루였다.
자신이 할 일이 생긴 것이 기쁜 모양이었다.
[잘 익은 '마넛'입니다. 미량의 마나가 함유되어 있습니다. 꾸준히 마시면 마나가 상승할 수도 있습니다. 몸의 피로를 풀어주는 효과도 가지고 있습니다. 익지 않은 마넛은 먹지 않는 것이 좋습니다.]
<오오! 집사! '마나의 눈'이 반응한 거지? 마나통 이외의 것에 반응한 것은 처음인가?>
나호의 목소리가 높아졌다.
흥분할 만하기는 했다.
회귀하면서 얻은 마나의 눈은 '눈'이라는 이름이 붙은 것 중에서는 최고의 권능이었다.
유일 권능이기도 해서 내가 죽기 전에는 상점에 나타날 리도 없는 물건이었다.
마나의 눈은 주변에 마나가 깃든 물건이나 마나통이 있으면 말을 해주었다.
처음 마나통을 얻게 된 것도 이 마나의 눈 덕분이었다.
사실 마나의 눈은 지금까지 일상에서는 꺼둔 채 생활을 했었다.
너무 시끄러웠기 때문이었다.
근처에 있는 마나통을 알려주기도 하지만 내가 마나통을 소유한 사람이 지나가면 그 사람에 대한 신상정보를 끊임없이 알려주기 때문이었다.
일상생활에 방해가 되기 때문에 꺼두었으니 이런 물건에 반응을 보이는 것은 비세계나 던전에서만 가능했다.
"비세계에서 빛나정 얻을 때 반응이 있었지 않았나?"
<그랬던가?>
[빛의 나무의 정기를 발견···.]
권능 기억이 반응을 보이려고 했다.
하지만 이런 것까지 정확하게 알 필요는 없어서 중지를 시켰다.
마넛!
이름처럼 코코넛을 닮은 열매는 코코넛보다 두 배 정도 컸다.
칼로 구멍을 뚫자 향긋한 냄새가 났다.
쫑!
음식 냄새를 쪼롱이처럼 잘 맡는 동물도 없을 것이다.
언제 왔는지 어깨에 내려앉아 마넛을 들여다보고 있었다.
<집사가 먼저야. 알지?>
쫑!
밍밍한 맛일 것이라고 생각했는데 마넛은 의외로 달았다.
꿀물을 마시는 것 같았다.
<집사! 맛이 어때?>
"달달한 아카시아 꿀을 잘 풀어놓은 맛이야."
<달겠네?>
"심하지는 않아서 먹기 딱 좋네."
쫑!
쪼롱이도 맛을 보고 싶은 모양이었다.
"자 너도 먹어봐."
쫑!
허락이 떨어지자 냉큼 날아와 마넛 가에 앉더니 부리를 마넛 안으로 넣는 쪼롱이었다.
쪼로로롱!
한 모금 마시더니 고개를 들고는 맛있다는 표현을 했다.
<녀석! 저런 애교가 없었으면 밉살스러웠을 거야.>
"자. 먹어."
마넛을 바닥에 내려주고는 꾸루에게 익지 않은 마넛을 하나 따오게 했다.
익지 않은 마넛은 먹지 않는 것이 좋다고 했지만 왜 그런지는 말해주지 않았다.
<그러게 먹지 마라니까.>
꾸루가 따온 마넛을 먹고 인상을 쓰자 나호가 한 말이었다.
"확인을 해 두는 것이 좋으니까 먹은 거야."
<어서 치료수 마셔.>
"그럴 정도는 아니야."
<그래도 먹어둬. 텁텁한 것이 얼마나 견디기 힘든데···.>
익지 않은 마넛은 떫은 감은 양반이라고 할 정도로 심하게 떫었다.
마신 순간 입 안 전체가 떫고 텁텁해지니 저절로 인상이 써진 것이었다.
<그래서 누구 말이든 잘 들어야 하는 거야.>
나호의 잔소리를 뒤로 하고 잘 익은 마넛으로 입 안의 텁텁함을 떨쳐버리려고 했는데 이게 쉽지 않았다.
"이거 생각보다 쉽지 않네."
그대로 두면 상당 시간 지속이 될 것 같아 치료수로 입 안을 정리했다.
"그나저나 여기 대변혁이후에는 환경이 바뀔 수도 있잖아."
<집사 이 나무 탐이 나는 거지?>
"가져갈 수 있으면 좋지. 이런 나무는 전생에 본 적이 없어."
마나를 올려주는 과일이 있다는 말은 들은 적도 없었다.
하지만 나무를 통째로 옮겨 심는 것은 불가능했다.
열매를 심는다고 나무가 날 것 같지도 않고···.
"가지 심기로 되려나?"
<가지 심기가 가장 일반적이긴 하지.>
가지 심기 정도는 쪼롱이나 꾸루에게 잘 가르치면 할 수 있을 것도 같았다.
얕게 땅을 파는 것은 꾸루의 큰 부리로도 가능할 것 같고, 깊게 파야하면 반반이를 가르쳐보는 것도 좋을 것 같았다.
"우선 익은 열매부터 다 따자."
꾸!
꾸루가 우렁차게 대답을 하더니 전령조들을 불러냈다.
꾸루의 명령을 들은 전령조들이 위풍도 당당하게 날아왔다.
<사람이든 동물이든 일이 있어야 저리 당당할 수 있는 거야. 저 녀석들 봐. 날갯짓에 힘이 넘치잖아.>
대기실에서 나온 전령조들은 꾸루의 지휘아래 마넛을 따기 시작했다.
큰 부리와 매서운 발톱은 마넛을 따기 적합했다.
<집사! 이런 상황 생각해본 적 없지?>
"상상도 하지 못했지. 농사도 가능하다고 했으니 한쪽에 마넛 농장을 만들어도 좋겠어."
<사냥조들 단속하지 않으면 남아나지 않을 거야.>
나호가 쪼롱이를 의식하며 작은 목소리로 말했다
"먹성이 좋기는 해도 아무것이나 먹지는 않으니까 괜찮을 거야."
<과연 그럴까···?>
"애들이 적당히 먹어도 상관없고."
사냥조는 몬게를 잡고, 전령조는 몬넛을 따고 있는 것을 보고 있자니 먹지 않아도 배가 불렀다.
"모두 대기실에 보관해줘. 쪼롱아 너도."
쫑!
꾸!
몬게와 몬넛을 모두 대기실에 넣고 나니 시스템이 반응을 보였다.
이 던전이 내 소유가 됐다는 메시지였다.
10분 후에 던전 밖으로 나가게 된다는 말에 몬넛 나무 가지 30여개를 꺾어 대기실에 보관했다.
10분이 지나 던전 밖으로 이동된 우리는 다시 한 번 던전으로 입장했다.
클리어 후의 던전을 확인하기 위해서였다.
"몬게는 더 이상 보이지 않고 몬넛들도 그대로네."
<나갔다 들어오면 몬넛들이 다시 주렁주렁 달려있을 줄 알았더니···.>
"그럼 좋기는 하지. 던전 중에는 그런 던전도 많았는데···. 일정 시간이 필요하기는 했지만."
던전 중에는 일정한 주기로 리스폰 되는 던전이 많았다.
그래서 던전이 인류의 새로운 희망으로 떠오르기 했었다.
하지만 지금 이곳처럼 리스폰이 되지 않는 던전도 상당했다.
자연의 흐름에 맡겨진 던전이었는데 이런 던전이 리스폰되는 던전보다 가치가 떨어지는 것은 아니었다.
이런 던전 중 위험도가 낮은 곳은 사람이 생활하는 것이 가능해서 또 다른 대안이 되기도 했다.
"나가자. 확인했으니 됐지."
<바로 다른 던전 확인하러 갈 거야?>
"그래야지. 왜 피곤해?"
<내가 피곤할 일이 뭐가 있어? 피곤하려면 저 녀석들이나 집사가 피곤하지.>
우리는 남은 세 곳의 던전을 더 확인했다.
하지만 세 곳의 던전은 아직 드러나 있지 않았다.
우리가 발견하지 못한 것일 수도 있지만 말이다.
<집사! 국내만 이동 가능한 워프 게이트가 있던 곳은 가지 않을 거야?>
"중요 던전부터 열리는 것 같아서 가지 않는 거야. 열리지 않았을 것이 분명하니까."
<혹시 모르잖아. 한두 군데만 확인해보자.>
나호가 그렇게 말을 하자 정말 혹시나 하는 생각이 들어 지금 있는 곳에서 가장 가까이 있었던 던전이 있었던 곳부터 확인을 했다.
하지만 역시 던전은 보이지 않았다.
<미안! 고생만 시켰네.>
"아니야. 잘 온 것 같아. 여기 오지 않았으면 저걸 발견하지 못했을 거야."
던전입구에 자라는 덩굴 중에는 특이한 덩굴식물이 종종 있었다.
그 중 워프 게이트가 있는 곳에만 자라는 덩굴식물은 지구에서는 볼 수 없는 종이었다.
그래서 확실하게 기억하고 있었는데 전생에 던전입구가 있던 곳에 그 덩굴 식물이 자라고 있는 것을 발견했다.
던전 입구를 정확하게 알지 못했으면 발견하지 못했을 것이다.
그만큼 아직 어린 덩굴식물이었다.
그러다 말도 안 되는 호기심이 일었다.
"이것을 옮겨 심으면 어떻게 될까?"
<어?>
너무 뜻밖의 말이었는지 나호의 눈이 왕방울만 해졌다.
"이 식물이 자라는 곳에 던전이 생겼잖아. 던전이 생길 곳에 이 식물이 자라는지는 모르겠지만 말이야."
알이 먼저냐 닭이 먼저냐 같은 문제지만 시도를 해보는 것도 나쁘지는 않을 것 같았다.
<뭔가 문제가 생기지는 않겠지?>
"그럴 것 같으면 시스템의 제재가 있겠지."
<어디로 옮기려고?>
"그래도 화순이 낫지 않을까?"
<화순?>
"아니! 대기실입구에 심어볼까?"
<집사! 지금 무슨 말을 하는지 알고 하는 거지?>
"알고 하는 거야."
처음에는 화순에 옮겨 심을 생각이었다.
대변혁이 일어나면 화순에 살 생각이니 당연한 선택이었다.
그런데 다시 생각하니 굳이 그럴 필요가 있나 싶었다.
다른 사람의 대기실은 어떤지 모르겠지만 내 대기실은 던전과 비슷했다.
그것도 성장형 던전.
거기다 대기실의 입구는 내가 자유롭게 설정할 수 있었다.
혹여 대기실 안쪽으로 던전이 형성된다고 해도 입구를 내가 출입 가능하도록 조정할 수 있다는 말이었다.
대기실만 들어가지 못하는 거지 던전에 들어가지 못하는 것은 아니지 않는가.
<집사! 지금 내 심장 뛰는 소리 들려? 미친 듯이 뛰고 있어.>
"덩굴 식물을 옮겨 심는다고 던전이 옮겨진다면 이건 엄청난 발견이야."
<전생에 애를 먹였던 던전들은 관리하기 가장 쉬운 곳으로 옮겨버리면 되잖아. 일본에는 돈은 안 되면서 탈만 많았던 던전 몽땅 옮겨 버리고.>
나호의 눈이 위험하게 빛났다.
"그 생각까지는 하지 못했는데 나쁜 생각은 아니네. 만약 그게 가능하다면 더 부지런히 움직여야겠다."
아무런 가치는 없으면서 문제만 잔뜩 안겨주는 던전은 차고 넘치도록 많았다.
그런 던전은 골칫거리를 넘어 재앙이었다,
다른 나라만큼은 아니었지만 우리나라에도 그런 던전은 있었다.
그런 던전을 미리 치울 수 있다면 이건 엄청난 것이었다.
심장이 뛰기 시작했다.
<집사! 어서 파봐. 그게 파져야 뭐라도 해보지.>
"잠시만."
던전 덩굴식물을 다루기 위해서는 준비가 필요했다.
안전을 위해 장갑을 끼고 땅을 파헤치기 시작했다.
어두운 밤, 산에서 땅을 파헤치고 있는 사람을 보면 두려움에 떨지도 모르겠다.
그런데 지금 나도 떨렸다.
물론 두려움과는 다른 떨림이었다.
던전 덩굴 식물의 뿌리가 드러날수록 떨림은 점차 강해졌다.
그리고···.
워프 덩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