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1. 쓰레기 버섯
"큰아버지!"
이른 새벽!
경주의 황성공원에 가벼운 차림의 큰아버지가 계셨다.
이렇게 만날 확률이 얼마나 될까?
"큰아버지!"
그제야 돌아본 큰아버지의 눈이 한없이 커지고 있었다.
"아이고! 대한아! 어떻게 여기에 있는 거야? 더어···. 아니 사업장 알아보러간다고 했던 것 같은데···?"
큰아버지께서 나를 보시고는 매우 놀라시며 물으셨다.
너무 놀라셔서 던전이라는 말을 뱉으려다 황급히 사업장이라고 돌리시는 모습에 나도 모르게 미소가 지어졌다.
쪼로롱!
쪼롱이가 반갑다며 큰아버지 앞으로 날아가더니 눈을 마주치고는 어깨에 앉았다.
"그래 쪼롱이도 반갑다."
쪼로롱!
"큰아버지는 여기에 웬일이세요?"
"나야 싸리나무 사러 왔지. 어제 돌아가려고 했는데 어제 만난 황 사장이 다른 사람을 소개해준다고 해서 만나고 가려고 여기 앞에서 잤고."
가벼운 차림인 것으로 보아 운동을 나오신 것 같았다.
비세계를 다녀온다고 해서 기억을 하는 것은 아니지만 비세계에 대한 이야기를 들은 후 하루도 운동을 거르지 않는 세 분이었다.
매달 1일 오션 28이 자연 치유되는 사람들이 나오니 비세계의 존재와 대변혁이 일어날 것이라는 것을 완전히 믿으시는 것이었다.
싸리나무도 대변혁 준비 중 하나였다.
싸리나무는 근육과 뼈를 튼튼하게 해주어서 힘을 기르는데 아주 도움이 되는 식물이다.
또한 해독과 해열 작용이 있고, 노폐물 배출에 효능이 있어서 대변혁 시대에 각광을 받았던 식물이었다.
대변혁 이후 이런 사실들이 알려지면서 구해보려고 해도 그때에는 구하기가 쉽지 않았다.
그래서 미리 구해 화순의 밭과 산에 심고 있는데 취급하는 곳이 마침 이 부근인 모양이었다.
"얼마나 구하셨어요?"
"이번에는 그리 많지 않아. 황 사장에게 만이천 주 구했고, 황 사장 지인 중에 많지는 않지만 기르는 사람이 있어서 거기서도 좀 구해가려고."
많지 않다고 했지만 큰아버지께서 여기서 주무신 것으로 보아 오천 주 이상은 되는 것 같았다.
"다 사지는 않으셨죠?"
"그럼. 누구 말이라고 거역을 하겠니."
큰아버지께서 장난스런 목소리로 말씀하셨다.
"사실 모조리 샀다."
"예?"
"황 사장에게 이백 주는 남겨두고 팔라고 했지. 그랬더니 굳이 임자 만났을 때 팔겠다고 하지 않겠니. 그래서 다 산 다음에 이백 주는 선물이라고 줬다. 좋은 싸리나무 잘 길러줘서 고맙다고."
"잘하셨네요."
"깜짝 인기가 있어서 길렀는데 인기가 그렇게 빨리 식을 줄 몰랐다고 하더구나. 사줘서 고맙다고 다른 나무까지 챙겨준다고 한 걸 사양하느라 애 좀 먹었다."
보지 않아도 어떤 상황인지 그러졌다.
싸리나무를 판 사람은 대변혁이 일어나고 나면 땅을 치고 후회할 것이었다.
물론 살아남아야 가능한 일이지만···.
그런 후회를 덜어주고자 제값에 매입하는 것은 물론이고 꼭 몇 십 주에서 일이백 주 남겨두고 사들이고 있었다.
"이제 싸리나무는 그만 사들이셔도 되겠네요."
"그렇지 않아도 오늘이 마지막 거래야. 재배하는 사람이 많지 않아서 더 사려고 해도 없어. 그런데 너는 여기 웬일이냐?"
"뭐 좀 확인할 것이 있어서요."
"여기도 생기는 거야?"
"예. 말썽쟁이가 생기죠."
<돈 먹는 하마 쓰레기 버섯이 자라는 던전이 생겨요. 정말 싫었던 던전이에요.>
큰아버지께서 자신의 말을 들을 수 있는 것도 아닌데 투정부리듯 말하는 나호였다.
"내가 함께 있으면 방해되는 일이냐?"
"아니에요. 함께 가실래요?"
"나야 좋지."
큰아버지의 눈이 아이처럼 빛났다.
전생에 악취와 강한 번식력을 자랑하던 '쓰레기 버섯' 던전의 입구가 있던 곳에는 던전 덩굴 식물이 보이지 않았다.
혹시 몰라서 주변을 수색하기 시작했다.
다른 것은 몰라도 이곳에 던전 덩굴이 자라고 있다면 그것을 꼭 뽑고 싶었다.
지금도 생각만 하면 냄새가 코를 찌르는 것 같다.
그런 생각을 해서 그러나?
전생에 맡았던 냄새가 근처에서 나는 것 같았다.
착각이겠지 하면서도 냄새를 따라갔다.
냄새가 나는 곳은 사철나무 사이였다.
"나호야 이 나무 안에 있는지 살펴봐줘."
아직 던전 덩굴은 크지 않아서 자세히 보지 않으면 발견할 수 없었다.
그런데 하필 냄새가 나는 곳이 정성들여 가꾸어둔 사철나무 안이었다.
바닥까지 잘 자라서 내가 안쪽까지 살피는 것은 무리가 있었다.
<정말 싫지만 어쩔 수 없지.>
나호가 나무 사이로 사라졌다.
"그쯤이야."
<누군가가 던져둔 음식물이 썩는 냄새일 수도 있어.>
쓰레기 버섯 던전은 주위에 엄청난 악취를 풍겼는데 당시에는 쓰레기 버섯 때문이라고 생각했다.
던전이 폭발하지 않아도 냄새가 났지만 던전에서 냄새가 새어나온다고 생각한 것이다.
워낙 냄새가 심한 던전이어서 그렇게들 생각할 수밖에 없었다.
그런데 지금 생각하니 그것이 아닐 수도 있을 것 같았다.
던전은 폭발하기 전에는 그 어떤 것도 밖으로 내보내지 않는다.
그것은 냄새에도 적용되는 법칙이었다.
그러니 그 냄새는 밖에서 나는 냄새였다.
던전에 드나드는 헌터가 묻혀왔다고 생각할 수도 있지만 그렇다고 생각하기에는 냄새의 정도가 심했다.
이 부근에서 비슷한 냄새가 나는 것도 그렇고, 아무래도 던전 덩굴도 같은 냄새를 풍기는 것 같다.
"아무 냄새도 안 나는데 무슨 냄새가 난다고 그러니?"
허공에 대고 이야기하는 것은 그러려니 하셨다.
보이지 않지만 나호라는 존재가 함께 있다는 것을 아시기 때문이었다.
그런데 나지도 않는 냄새 타령을 하는 것은 이해가 되지 않는 모양이었다.
"제 감각 때문이에요."
"무슨 말인지 알겠다."
빠르게 이해하시는 큰아버지셨다.
그때 나호의 목소리가 들렸다.
<이거 좋아해야 하는 거야? 말아야 하는 거야?>
"있어?"
<응! 여기 있어. 이 냄새를 맡았다는 거지?>
"음식물 쓰레기 썩는 냄새와 흡사한 냄새잖아. 그런 냄새가 톡 쏘면서 들어오고···. 그래서 더 견디기 힘들고 머리도 아팠지."
<전생에 다들 그렇게 표현했는데. 이거 어떻게 해? 사철나무가 빽빽이 자라고 있어서 뽑기 쉽지 않겠어.>
"자신을 보호하려고 이런 곳에서 자라는 건가?"
아직은 어려서 냄새가 심하지 않지만 좀 더 자라면 참을 수 없는 냄새를 만들어낼 식물이었다.
사람의 왕래가 많은 공원이니 자신을 보호하기 위해 빽빽한 사철나무 사이에 자리를 잡았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대변혁 전에는 냄새가 심해지지 않을지도 모르겠지만 말이다.
"쪼롱아! 네가 들어가서 캐볼래?"
쫑!
큰아버지의 어깨 위에 앉아있던 쪼롱이가 나호가 있는 사철나무 사이로 파고들기 시작했다.
워낙 빽빽하게 자라 있어서 몸집이 작은 쪼롱이도 들어가기 쉽지 않았다.
"저기 몹쓸 것이 자라는 거야?"
"예. 자세한 것은 이따 말씀드릴게요."
<쪼롱이 겨우겨우 바닥까지 내려왔어.>
"쪼롱아 되도록 건드리지 말고."
쫑!
"캐서 바로 넣어."
쫑!
<집사! 쪼롱이가 부리와 발을 이용해서 캐고 있어. 쓰레기 덩굴이 워낙 어려서 캘 수 있을 것 같아. 조금만 늦었으면 캐기 힘들었겠다. 사철나무에 손상을 주지 않고 캐기는 지금이 적기야.>
"다행이네. 모두 네 덕분이야."
나호가 골칫거리 던전을 일본으로 몰아주자는 말이 아니었으면 이곳의 던전을 생각하지 못했을 것이다.
일본 놈들을 생각하니 또 화가 나려고 했다.
이 던전을 온 세상에 알리면서 우리나라를 동급으로 취급하는데 가장 열을 올린 것은 일본 놈들이었다.
사실 이 던전은 악취가 심하고 꾸준히 공략을 해줘야 해서 골칫거리이기는 했지만 인명피해는 일반 던전에 비해서 적었다.
안전수칙을 어긴 헌터나 호기심에 접근한 사람이 아니면 다치거나 죽을 일이 없었던 것이다.
그래서 세계 최악의 던전에 들 일이 없던 던전이었다.
그런데도 매년 최악의 던전에 꼽혔던 이유는 일본 놈들 때문이었다.
쓰레기 버섯의 모습과 악취를 계속해서 퍼다 나른 것이었다.
이런 행위가 지속되니 어느 틈에 쓰레기 버섯 던전은 사람들 뇌리 속에 최악의 던전으로 견고하게 자리 잡았고 이는 국격을 실추시키는데 한몫을 톡톡히 했다.
정작 주기적으로 인명 피해를 양산하는 일본의 던전은 쉬쉬했으면서 말이다.
쓰레기 버섯 덩굴을 캐는 데는 생각보다 시간이 걸렸다.
쪼롱이 혼자 손상되지 않게 두 그루나 캐야 했기 때문이었다.
<집사! 다 됐어. 쪼롱이가 가지고 들어갔어.>
소환 대기실을 바로 확인했다.
쪼롱이는 소환 대기실에 널브러져 있었다.
배를 보이고 누운 모습이 얼마나 지쳤는지를 보여주고 있었다.
아직 어린 던전 덩굴이라고 해도 손상되지 않게 캐내는 것은 쉽지 않았을 것이다.
그것을 증명이라도 하는 듯이 쪼롱이의 깃털은 잔뜩 흐트러져 있었다.
휘하의 사냥조들이 날이면 날마다 최상의 상태로 다듬어주는 깃털인데···.
흙까지 묻어 더 엉망으로 보였다.
"고생했어. 쪼롱아!"
쪼롱이 옆으로 '던전 쓰레기 덩굴'이 보였다.
다른 때 같으면 냉큼 쫑! 하고 대답했을 쪼롱이가 아무런 대답을 하지 않았다.
"꾸루야! 네가 쪼롱이 치료수 좀 먹여줘."
꾸!
대기실 입구에서 대기하고 있던 꾸루가 제 부리 가득 치료수를 머금더니 쪼롱이 옆으로 다가갔다.
그리고 쪼롱이 입에 치료수를 부어주려고 할 때였다.
조금 전까지 시체마냥 축 늘어져 있던 쪼롱이가 옆으로 재빨리 구르며 피했다.
촤아악!
쪼롱이가 누워있던 자리에 치료수가 부어졌다.
조금만 늦었으면 치료수로 샤워를 했을 쪼롱이었다.
<아이고! 아이고 웃겨! 저 녀석 영악한 것은 알아줘야 한다니까. 어디서 저런 것이 생겨났을꼬!>
나호가 어르신들이나 할법한 이야기를 했다.
쪼롱이가 치료수를 피해냈지만 피곤하지 않은 것은 아니었다.
툭툭 털면서 일어나는데 힘이 하나도 없어 보였다.
그리곤 옆에 놓인 치료수 그릇에 머리를 박고 급하게 치료수를 먹었다.
<싸울 때는 용맹하기가 사자 못지않은데 던전 덩굴이 진을 빼는 재주가 있나보다.>
던전 덩굴을 다룰 때 크게 느끼지 못했는데 나호의 말대로 힘을 빼는 뭔가가 있는지도 모를 일이었다.
"쪼롱아 고생했어. 좀 쉬어."
그렇게 이야기를 하고 있는데 놀라운 일이 벌어졌다.
꾸루가 쏟아놓은 치료수 쪽으로 던전 쓰레기 덩굴의 가는 뿌리 하나가 꾸물꾸물 움직이기 시작한 것이었다.
"어? 저거 저렇게 두어도 되는지 모르겠네. 저기에 심을 생각은 전혀 없는데."
<두 그루 모두 반응을 보이네?>
나호가 사철나무 사이에서 나오며 말했다.
"무슨 문제 있는 거냐?"
"빨리 비닐봉투를 좀 구해야겠어요."
"왜?"
"뿌리를 내리지 않아야 할 식물이 뿌리를 내리려고 해요."
"그래? 저기 앞에 편의점 있던데 어서 가보자꾸나."
큰아버지께서 편의점이 있다는 쪽으로 달리기 시작하셨다.
달리는 자세가 무척이나 자연스러웠다.
많은 힘을 들이지 않으면서 빠르게 이동하기 좋은 자세였다.
꾸준히 운동한 것이 여실히 드러나는 순간이었다.
필요한 것을 언제든 살 수 있다는 것이 얼마나 편한지···.
편의점에서 과자와 라면 등을 몇 개 사면서 비닐봉투도 넉넉하게 얻었다.
따로 파는 것이 있으면 좋은데 이곳은 비닐봉투만 팔지는 않았다.
비닐봉투를 들고 화장실로 들어갔다.
그리고 소환 대기실로 보냈다.
"쪼롱아! 힘들어도 이건 하고 쉬어야겠다."
쪼옹!
"그래. 맛있는 거 많이 사줄 테니까 조금만 더 힘을 내봐."
쪼옹!
"네가 방금 캐온 거 봉지에 담을 수 있겠어? 아니 봉지만 네가 벌려. 담기는 내가 할 테니."
쪼옹!
쪼롱이의 작은 덩치로는 봉지를 벌리기 힘들었다.
하지만 쪼롱이는 굳이 그것을 혼자 할 필요가 없었다.
제 휘하의 사냥조 두 마리를 부르더니 함께 봉지를 벌렸다.
세 마리가 봉지를 벌리니 그 안에 쪼롱이가 캐둔 던전 덩굴을 넣기만 하면 그만이었다.
먼저 한 그루를 들어 올려 봉지 안으로 집어넣었다.
소환 대기실에 넣은 물건은 내가 이리 저리 옮길 수 있으니 가능한 일이었다.
내가 관리하는 소환 대기실이지만 내가 넣은 물건 이외에는 내가 관여할 수 있는 것은 많지 않았다.
소환 대기실 자체에 심어져 있는 나무를 다른 곳으로 옮겨 심는 것도 불가능했다.
하지만 뽑힌 나무라면 옮길 수도 있고 밖으로 꺼낼 수도 있었다.
물론 다시 넣을 수도 있었다.
다시 넣을 때는 소환수의 필요가 전제되어야 하지만 말이다.
한 마디로 땅바닥에 심겨진 것은 마음대로 하지 못하지만 나뭇잎이나 돌멩이처럼 움직일 수 있는 것은 마음대로 조정할 수 있다는 말이었다.
어쨌든 꼬물거리고 있는 뿌리가 있었지만 한 그루는 무사히 봉지 안으로 들어갔다.
이제 봉지를 묶고 다른 한 그루만 더 봉지에 넣으면 안심할 수 있었다.
그때였다.
<집사! 저기!>
불편하십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