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2. 불편하십니까?
사실 전생에 '쓰레기 버섯 던전' 때문에 스트레스를 받지 않았다면 이곳까지 달려오지는 않았을 것이다.
아무리 쓰레기 버섯에서 나는 냄새가 고약하다고 해도 냄새가 화순까지 날 리 없었고, 아무리 번식력이 무섭도록 좋다고 해도 화순까지 뻗어올 수는 없었다.
더럽고 추한 모습, 고약한 냄새, 놀라운 번식력이 눈살을 찌푸리게 하지만 버섯자체가 사람에게 해를 끼치는 것도 아니니 모르는 척 넘길 수도 있는 문제였다.
그런데 새벽에 잠을 마다하고 이곳까지 온 것은 사실 돈 때문이었다.
금전적인 이득이라면 포기할 수 있었지만 이곳은 돈을 먹는 하마였다.
국민의 고혈로 버섯의 번식을 막아야 했던 것이다.
이 던전 하나만 사라져도 국민의 식단이 달라질 것이라는 말이 나올 정도였다.
20년이 지나도 사라질 기미조차 보이지 않던 던전이니 20년의 후환을 막은 것이었다.
그런데 20년의 후환을 막으려다 대기실에 문제가 생겼다.
천안에서 캤던 '단프'가 얌전해서 쓰레기 덩굴도 당연히 얌전히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아직 던전이 생기지 않았으니 덩굴이 살아있는 생명처럼 움직이는 것은 무리라고 생각했던 것이다.
그런데 그런 안일한 생각이 대가(代價)를 요구하고 있었다.
한 그루를 무사히 봉지에 넣고 쪼롱이를 시켜 봉지를 묶으려는 찰나 나호의 비명 같은 외침이 들렸다.
그리고 나호의 시선을 따라가자 치료수를 흡수하고 있는 쓰레기 덩굴이 보였다.
빨대로 빨아먹는 것처럼 바닥에 쏟아진 치료수를 쪼옥 빨아들인 쓰레기 덩굴의 뿌리가 조금은 통통해지는 것 같았다.
그러더니 다른 뿌리들도 꼬물꼬물 움직이기 시작했다.
움직임이 빠르지 않게 보이지만 그렇지 않았다.
목적을 두고 움직이는 것처럼 망설임 없이 뿌리의 끝을 대기실 바닥에 대더니 순식간에 땅속으로 파고들어버렸다.
말린 사이도 쓰레기 덩굴을 대기실 밖으로 꺼낼 시간도 주지 않고 순식간에 일어난 일이었다.
뿌리가 땅속으로 박히는 모습은 벌침이 살 속으로 급하게 파고드는 것과 아주 흡사했다.
"헉!"
대기실에 뿌리를 박은 순간 내 힘으로는 쓰레기 덩굴을 뽑을 수 없었다.
대기실로는 손끝조차 넣을 수 없으니 소환수의 도움을 받아야 했다.
"쪼롱아! 아니 꾸루야 저거 뽑아."
꾸!
꾸루가 대기실 바닥에 박힌 쓰레기 덩굴 앞으로 다가왔다.
그리고 우람한 발을 들어 쓰레기 덩굴을 잡으려는 순간 쓰레기 덩굴의 뿌리 하나가 땅속에서 쏙 뽑아져 나오더니 다가오는 꾸루를 겨냥했다.
치료수를 흡수했다고 해도 아직은 이쑤시개보다 가는 뿌리였다.
그런데 그 뿌리를 보고 움찔하며 뒤로 물러나는 꾸루였다.
놀라 뒤로 발라당 넘어지지 않는 것이 다행이었다.
얼굴이 사색으로 변한 것이 상당히 놀란 것 같았다.
<어찌 저리 겁이 많은지···. 덩치가 아깝다!>
흥분한 나호가 조금 세게 나왔다.
루우루!
전에 없이 풀이 죽은 목소리를 낸 꾸루가 다시 시도를 했지만 움직이는 뿌리를 보고는 다가서지 못했다.
안 되겠다 싶어서 쪼롱이에게 부탁하려는 순간이었다.
꾸루를 겨냥하고 있던 뿌리가 갑자기 빠르게 움직이기 시작했다.
모터라도 달린 것은 아닌지 의심이 될 정도로 빠른 움직임이었다.
뿌리가 향한 곳은 편의점 봉지!
봉지 안에 든 쓰레기 덩굴을 향한 것이 분명했다.
무슨 일이 더 생길지 몰라 봉지 째 쓰레기 덩굴을 꺼내려고 할 때였다.
쿵! 쿵!
"저기! 손님? 어디 불편하십니까?"
편의점 직원의 목소리였다.
봉지를 들고 화장실에 들어가는 것도 수상쩍은데 화장실에서 소리를 지르니 이상한 사람이라고 생각한 모양이었다.
"나, 나갑니다."
화장실 문을 두드리는 소리와 직원의 목소리에 당황한 그 찰나의 순간이 운명을 가르고 말았다.
봉지로 향하던 뿌리는 너무도 쉽게 봉지를 뚫고 그 안의 든 다른 뿌리와 만나버렸다.
그것으로 끝이었다.
봉지를 뚫는 순간 꺼낸다고 생각했지만 이미 한 몸이 되어 버렸는지 꺼내지지 않았다.
쿵! 쿵!
"손님! 나와 보시겠어요?"
편의점 직원의 목소리에는 의심이 가득했다.
"우리 조카가 변비가 심하다니까 그러네. 애가 일을 보려면 고통스러워서 그래요···."
큰아버지께서 어떻게든 시간을 끌어보려고 애를 쓰시는 것 같았지만 누가 들어도 옹색한 변명으로 들렸다.
"손님! 강제로···."
더 이상 화장실에 있을 수는 없을 것 같았다.
'쪼롱아! 뽑아!'
짧게 쪼롱이에게 명령을 내린 후 변기의 물을 내리며 화장실 문을 열었다.
그렇게라도 해야 조금이라도 덜 이상해 보일 것 같았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그런 노력은 아무런 힘을 발휘하지 못했다.
편의점 직원이 위아래로 나를 훑어보더니 생각이 났다는 듯이 툭 말을 뱉었다.
"가지고 들어가신 봉투는 어떻게 하셨어요?"
"예?"
"가지고 들어가신 봉투는 어떻게 하셨냐고요?"
편의점 직원의 목소리는 잔뜩 날이 서 있었다.
"아니. 열 장도 넘게 가지고 들어가셨잖아요! 그 많은 봉투를 어떻게 했냐고요!"
직원은 변기 옆의 휴지통까지 거칠게 확인을 하며 말했다.
"그게 제가 변비가 심해서···."
순간 나도 모르게 큰아버지께서 하셨던 옹색한 변명을 이어가고 있었다.
"변비가 심한 것과 봉투와 무슨 상관이 있다고! 설마 변기에 넣은 거예요? 아니 하루 이틀도 아니고! 아저씨! 자기 집 화장실 아니라고 이러시면 안 되죠. 이런 거 한두 번인 줄 아세요?"
"아니 그게 아니···."
직원은 내 말은 들으려고도 하지 않았다.
변기에 넣고 내렸다고 확신을 하는 것 같았다.
"호의로 이용하게 해주면 고맙게 생각해야지! 아저씨 같은 사람이 한두 명인 줄 아세요? 멀쩡하게 생겨서 설마, 설마 했는데···. 엿이나 먹으라는 거예요? 어떻게 하실 거예요!"
세상에는 생각보다 이상한 사람이 많은 모양이었다.
이런 오해를 받을 것이라고는 생각도 해본 적이 없었다.
순간 당황스러웠지만 직원이 쏘아붙이는 말을 듣고 있는 사이 차분해졌다.
봉지는 여전히 대기실에 있었다.
그리고 그것을 꺼내는 것은 생각만으로도 가능했다.
조금 전처럼 당황해서 1, 2초 지체되는 경우는 있을지라도 꺼내지 못하는 일은 없는 것이었다.
대기실의 봉지를 꺼낸다고 생각하자 등 뒤로 가있던 왼손에 봉지가 잡혔다.
부스럭!
열심히 쏘아붙이던 직원의 눈이 커지면서 입이 다물어졌다.
비닐 봉투 특유의 소리라는 것을 안 것이었다.
"여기 호주머니에 있었습니다."
바지 호주머니에서 꺼낸 것처럼 봉투를 보이며 말했다.
"아니! 있으면 있다고 미리 말씀을 하셔야지···."
얼굴이 벌게지며 사과의 말을 꺼내려던 직원의 눈이 다시 꺼졌다.
"저기! 손님! 설마 파셨어요?"
인상을 잔뜩 찡그리며 코를 막으며 뒤로 물러나는 직원이었다.
그제야 내 코에도 냄새가 확 밀려왔다.
조금 전 쓰레기 버섯 덩굴을 넣었던 봉투까지 손에 잡힌 것이었다.
봉투에 묻은 흙과 냄새에 이상한 상상을 한 것 같았다.
"무슨 냄새가 난다고···?"
큰아버지께서 봉투와 직원 그리고 나를 번갈아 보시며 말씀하셨다.
"저 냄새가 안 난다고요? 아이씨! 거기 떨어지잖아요! 여기 다 청소 해놓고 나가세요! 그냥 가면 가만 안 둘 거예요!"
톡 쏘아붙인 직원은 못 볼꼴을 봤다는 듯이 카운터로 홱 돌아가 버렸다.
그러더니 손세정세를 꾹꾹 눌러서는 손을 박박 문질렀다.
보기만 했는데 오물이 자기 손에 묻기라도 한 것처럼 말이다.
"여기 물티슈 가져가서 닦으세요! 아니 거기 아저씨는 움직이지 마시고요! 닦은 물티슈는 이 봉투에 넣어서 단단히 묶으셔서 화장실 휴지통에 넣으세요."
직원은 큰아버지에게 물티슈와 봉지를 건넸다.
큰아버지께서 바닥을 닦으시려고 하는 것을 말리고 내가 닦았다.
그리고 직원이 시킨 대로 처리를 끝냈다.
하지만 쓰레기 버섯 덩굴을 넣었던 봉지는 버리지 않고 다시 대기실로 보냈다.
밖에 버렸다가 무슨 일이 생길지 모르기 때문이었다.
화장실에서 나오자 직원이 밀걸레로 바닥을 다시 닦고 있었다.
밀걸레라고 부르기 미안할 정도로 희고 깨끗한 걸레였다.
당장 얼굴을 닦아도 될 것 같았다.
"종종 화장실을 이용하고는 남은 음식과 쓰레기를 변기에 버리는 사람이 있어서 그랬어요. 자기 집 쓰레기까지 여기 화장실에 버리고 가는 사람이 있다니까요. 버리는 사람은 어쩌다 한 번, 아니 평생에 한두 번 하는 일인지 모르겠지만 저에게는 아니거든요. 막힐 때마다···. 에휴. 죄송합니다."
넋두리 같은 말을 쏟아내더니 사과를 하는 직원이었다.
아주 막돼먹은 사람은 아닌 것 같았다.
밀걸레를 저 정도로 관리하는 사람이라면 민감할 수밖에 없을 것 같기도 했다.
시도 때도 없이 막히는 변기도 짜증스러울 것이고···.
"아닙니다. 잘 사용했어요. 그리고··· 아닙니다."
직원이 오해하는 그런 일은 아니라고 말하려다 그만두었다.
그런 말을 꺼내는 것이 더 이상할 것 같았기 때문이었다.
깨끗한 봉투를 가지고 들어갔는데 누렇게 묻은 오물과 냄새···.
누구라도 그렇게 생각할 것 같았다.
아직은 아무도 맡지 못하는 냄새까지 맡는 것을 보면 유난히 예민한 코를 가진 사람이기도 했다.
이런 사람은 뛰어난 후각으로 위험을 빨리 감지할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그것을 잘 활용하면 대변혁에서 살아남을 수 있을 것이고 언젠가 다시 만나게 될지도 모르겠다.
인사를 하고 편의점을 나왔다.
그런데 큰아버지께서는 조금 후에 나오시며 커다란 봉투 두 개를 들고 나오셨다.
미안한 마음에 잔뜩 구매를 하신 것 같았다.
"내가 얻어놓은 방에서 좀 쉬는 것이 좋겠다. 피곤해 보여."
"예."
당장 그 자리에서 대기실을 확인하고 싶은데 편의점에서 쳐다보고 있는 직원 때문에 이동하는 것이 좋을 것 같았다.
<집사! 웃프다! 그나저나 저건 어떻게 하지? 쪼롱이도 어찌하지 못하는 것 같은데?>
슬쩍 보니 봉지 속에 담겨있던 쓰레기 덩굴까지 땅에 뿌리를 박고 서 있었다.
쪼롱이는 덩굴의 움직임은 아랑곳하지 않고 덩굴을 당기고 있었다.
"심각한 일이야?"
"좀 머리가 아프네요. 우선 차로 가요. 저 렌트해왔거든요."
타고 온 차에 편의점에서 산 것들을 싣고 큰아버지께서 묵으셨다는 호텔로 이동했다.
"좋은 방에 묵으시라니까."
"내년이 되면 이런 방도 사치라고 했잖아. 이만하면 됐어."
"그러니까 지금이라도 누리시라니까."
"괜찮아. 괜찮아. 이만하면 됐지. 나가서 먹을 것 같지는 않고 주문 좀 해주랴?"
"예. 얼큰한 것이 먹고 싶네요."
"알겠다."
스트레스가 쌓여서 그런지 매운 것이 당겼다.
큰아버지께서 이른 아침을 주문하는 사이 대기실을 확인했다.
대기실은 지금 후끈 달아올라 있었다.
다들 쓰레기 버섯 덩굴을 어떻게든 뽑아보겠다고 일손을 거들고 있었던 것이다.
쪼롱이가 쓰레기 덩굴의 어린 줄기를 두 발로 꽉 움켜잡고 그런 쪼롱이를 꾸루가 당기고 있었다.
그 옆의 쓰레기 덩굴에는 반반이가 매달려 있었다.
반반이도 쓰레기 덩굴의 줄기를 물고 당기고 있지만 소용이 없는 모양이었다.
"전생의 이론 하나는 확실히 증명된 거네."
<집사! 어떻게 해?>
"모르겠어. 저거 냄새 날 텐데···. 아니 뽑을 때는 얌전하던 녀석이 왜 저런 거지?"
의문을 제기한다고 답을 알 수 있는 것은 아니었다.
전생의 던전 식물은 절대로 옮길 수 없을 것이라는 주장을 한 학자가 있었다.
그것이 하나 증명된 것에 만족해야 할 것 같았다.
뽑을 때는 얌전했던 것까지는 알 수 없지만 말이다.
"애들아! 그만해. 다치겠다. 냄새 나지?"
소환수들이 대답하지 않고 눈치를 보았다.
"미안해. 어떻게든 해보자."
<시스템은 왜 반응이 없을까? 이거 생각보다 심각한 일인 것 같은데?>
"모르겠어."
순간 전생의 악몽들이 한꺼번에 밀려드는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다시 전생의 일들이 그대로 재연될지도 모르겠다는 막연한 불안감.
절대 그럴 일이 없는데도 근거 없는 불안감이 가슴을 훑고 지나간 것이다.
축 쳐지면서 힘이 쭉 빠졌다.
감정의 장난이라는 것을 아는데 가슴이 서걱거렸다.
<집사! 좀 자!>
"······."
<밥 오면 깨워줄 테니까 그때까지라도 자.>
피곤한 것 같기도 했다.
치료수를 마시면 몸의 피곤은 풀리겠지만 정신의 피로는 여전할 것이었다.
이럴 때는 잠시 눈을 붙이는 것도 좋을 것 같았다.
문제를 방치해두고 잠으로 도망치는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하는 순간 등으로 푹신한 침대가 느껴졌다.
그리고 그대로 잠이 든 것 같다.
잠결에 띠링! 하는 소리를 들은 것도 같고 누군가의 말소리를 들은 것도 같았다.
하지만 나의 잠을 방해할 수는 없었다.
소환 나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