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당신의 마나통은 안녕하십니까?-93화 (93/350)

93. 소환 나무

잠들기 전의 상황을 생각하면 절대로 숙면을 취할 수 있는 상황이 아니었다.

그런데 나는 의외로 숙면을 취했다.

그것도 회귀 후 몇 손가락 안에 들만큼 푹 잔 것 같다.

잠에서 깨어 일어나니 큰아버지께서는 계시지 않았다.

약속 시간이 되어 먼저 나가셨다는 메모가 침대 옆 탁자에 놓여있었다.

"얼마나 잔거야?"

<집사! 일어났네. 죽은 듯이 자서 걱정했잖아.>

나호의 말에 나도 모르게 미소가 지어졌다.

"그래서 시간이···."

시계가 보이지 않아서 상태창을 확인하려는데 나호의 목소리가 먼저 들려왔다.

<열두 시야. 배고프지 않아? 집사 어제 저녁 이후로 먹은 것이라고는 몬넛 하나가 전부였잖아. 던전 클리어 하느라 힘은 많이 뺏는데···.>

"그랬나? 먹었는지 기억도 나지 않네."

<너무 바쁘게 돌아다니니까 그래. 그렇다고 쉬엄쉬엄 할 수도 없고···. 에효오! 던전이 좀 일찍 열렸으면 오죽 좋아. 늦장 부려서 사람 고생시키고 말이야. 집사 잘못되면 시스템이 책임질 것도 아니면서···.>

나호가 혼자 생각하다 혼자 열을 냈다.

"워워! 됐어. 동요하지 마. 네가 동요하면 저 녀석들은 더 해."

침대 끝에 쪼롱이, 침대 아래엔 꾸루가 앉아서 나와 나호를 쳐다보고 있었다.

둘 다 뭔가를 잘못하고 주인 처분만 기다리는 강아지 같은 표정을 하고 있었다.

반반이도 같은 표정을 짓고 있을 것 같았다.

소환 대기실을 확인해야 하는데 불러오는 것이 겁이 났다.

회귀 후에 잘 하고 있는데도 전생에 20년간 구른 실패의 잔재가 그림자처럼 드리워 있는 것이었다.

이럴 때 감정에 매몰되면 누워있던 그림자가 언제 그랬냐는 듯이 일어나 집어삼키려 들 것이었다.

심호흡을 하며 부정적인 감정을 몰아냈다.

가족과 소환수를 생각하는 것만으로도 상당히 도움이 되었다.

<집사! 대기실 보기 전에 미확인 메시지부터 확인해. 그것이 속이 편할 거야.>

침대에 눕기 전 소환 대기실을 띄워놨으니 내가 완전히 잠이 들 때까지는 대기실 안이 보였을 것이다.

"무슨 일 있었어?"

<뭐라고 표현해야 할지 모르겠어. 집사가 직접 보고 판단해. 나는 저런 거 처음 보니까.>

나호의 반응도 그렇고 쪼롱이와 꾸루의 반응도 심상치 않았다.

잔뜩 주눅이 든 아이들 같았다.

"물 한 잔 먹고 보자. 분초를 다투는 일은 아니잖아."

<그래. 이왕이면 밥도 먹어. 저기 전자레인지도 있더라. 꾸루에게 데워두라고 할까?>

영체이니 도와주고 싶어도 말 이외에는 도움을 줄 수 없는 나호였다.

그러다 보니 꾸루와 쪼롱이에게 이것저것 가르쳐서 내 생활에 도움을 주려고 애를 쓰고 있었다.

하지만 꾸루는 늘 허당기가 충만했다.

덩치가 크기 때문인지 저런 일을 시키면 반드시 흘리고 쏟았다.

"됐어. 내가 할게."

침대에서 내려서려고 할 때였다.

평상시 사용하는 침대에 비해 높다는 것을 잊고 발을 내딛다가 움찔했다.

넘어질 뻔 한 것이다.

하지만 아무리 갑작스런 상황이라고 해도 어지간해서 넘어질 일은 없었다.

그런데···.

<집사!>

쫑!

꾸루!

나호를 시작으로 소환수들의 외침이 들려왔다.

그것으로 끝났다면 대수롭지 않은 일로 넘어갔을 것이다.

그런데 그때 생각지도 못한 것이 보였다.

가늘고 여린, 어떻게 보면 하얀 실지렁이나 갯지렁이 같은 것이 내 허리에 닿았다.

감으려고 했는데 길지 않아 감을 수는 없었던 것 같은데 어쨌거나 허리를 단단히 잡으려고 했다.

내 시선을 따라온 나호의 눈이 왕방울 만해진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쪼로록! 쪽!

쿠우우!

쪼롱이와 꾸루도 날카로운 소리를 내며 쪼려는 듯한 동작을 취했다.

하지만 위협이 되지 않는 것을 확인하고는 다시 얌전해졌다.

하지만 눈은 꼬물거리는 것에서 떨어지지 않았다.

<집사!>

"이거 던전 덩굴 뿌리 아니야?"

<그런 것 같아. 그 녀석 유난히 꼬물거리더라고. 천안에서 온 덩굴은 얌전한데.>

천안에서 온 덩굴은 이런 반응 자체를 보이지 않았다.

그런데 이 녀석은 이런 반응을 보이고 있었다.

꼬물거리는 것의 끝을 따라가 보니 역시 소환대기실이었다.

꼬물꼬물 움직이던 뿌리는 내가 안전하다는 것을 확인하자 아무 일이 없었다는 듯 대기실로 들어가더니 대기실 바닥으로 다시 꼬물거리며 들어가 버렸다.

"저거 도대체 뭐야?"

<그러니까 내가 메시지부터 확인하라고 했잖아. 나오지 말라고 해서 반반이만 나오지 못한 거야. 그렇지 않았으면 반반이도 나오려고 했을 거야.>

대기실 안을 보니 쓰레기 버섯 덩굴에서 모두 멀찍이 물러나 있었다.

쭈루!

루루!

쪼롱이와 꾸루가 풀 죽은 모습을 보였다.

반반이의 힘으로도 뽑아지지 않은 식물이니 당황했을 것이다.

"괜찮아. 뭔지 보고 처리해줄게."

쫑!

꾸!

<집사! 먹고 해. 다 먹고 살자고 하는 일인데···. 건강 망가지면 이렇게 애 쓰는 거 도루아미타불이야. 아무도 알아주지 않는다니까.>

"잠깐, 여기 체크아웃 시간이···?"

<큰아버지께서 처리하셨어. 나갈 때까지 연장하기로 했으니까 편하게 있어도 돼. 지금쯤 오시고 계시겠다. 나무만 사고 바로 오시기로 하셨거든.>

그때 노크소리가 들렸다.

똑! 똑! 똑똑똑!

<큰아버지시네. 집사 깨우지 않게 저걸 신호로 했거든.>

나호가 말하는 사이 쪼롱이가 포르르 날아가더니 문을 열었다.

"일어나 있었네. 마침 잘 됐다. 배고프지? 따듯한 것과 시원한 것 모두 사왔으니 같이 먹자."

두 손 가득 음식을 가지고 오신 큰아버지께서 상을 차리기 시작하셨다.

"식사 안 하셨어요?"

"같이 먹으려고 안 먹었지. 싸리나무는 배달해주기로 했으니까 내가 더 신경 쓸 일은 없고. 화순으로 갈 테냐?"

"아니요. 한두 곳 더 다닐 거예요."

"그럼 내가 운전해주마."

"에이. 괜찮아요. 저 생생해요."

"젊고 치료수도 있어서 몸이야 괜찮지. 하지만 정신까지 그런 것은 아니잖아. 새벽에 널 보니 혼자 보내서는 안 되겠다는 생각이 들더구나. 한국에 왔을 때만이라도 같이 움직이는 것이 좋지."

"저야 좋기는 한데 워낙 바쁘시잖아요."

"좋은 사람들 채용해서 많이 좋아졌어. 네가 찾아보라고 하는 사람 중에 우리 회사로 이직한 사람도 몇 있고. 하나 같이 좋은 사람들이더구나."

"전생에 목숨을 나눈 사람들이에요. 믿어도 좋으실 거예요."

"그래."

<상황이 바뀌면 사람은 변하기도 해. 백 프로 확신하면 안 돼.>

나호가 훈수를 두었다.

'알고 있어. 경계해야지. 전생에 사람에게 당한 것이 한두 번이 아니었잖아.'

나호에게 심상으로 대답했다.

슬쩍 대기실을 보니 지금은 쓰레기 버섯 덩굴이 움직이지 않고 있었다.

지금은 그저 일반적인 덩굴 식물로 보일 뿐인데···.

"저 간단히 씻고 나올게요."

"그래."

우선 배를 좀 채우고 확인을 해도 될 것 같아서 간단히 씻고 점심을 먹었다.

이런 숙소에서 큰아버지와 둘이 식사를 하고 있으니 전생의 기억이 새록새록 났다.

전생에 공략을 다닐 때면 늘 큰아버지와 같은 방을 썼다.

지금 이 방처럼 좋은 방은 아니었지만 작은 방에서 참 많은 이야기를 나누곤 했는데···.

왼쪽 팔을 쓰지 못하셨지만 쾌속쾌검으로 유명했던 큰아버지는 내겐 스승 같은 존재였다.

"어제 정부 관계자가 다녀갔다."

"주기적으로 다녀가잖아요."

"어제는 조금 기분 나쁜 소식을 들고 왔더구나."

식사가 끝나고 커피를 드시던 큰아버지께서 말씀하셨다.

커피도 큰아버지께서 사온 것이었다.

"안 좋은 일이에요?"

"그런 것까지는 아니고···. 유진이 말이다."

큰아버지께서 조금은 어렵게 말을 꺼내셨다.

회귀 직후 전생의 일을 반복하지 않기 위해 큰아버지의 주변을 정리했었다.

그 이후로 저 이름은 처음 듣는 것이었다.

"······."

"어이가 없더구나."

"왜요? 혹시 연락을 하려고 했대요?"

"그렇다고 하더구나. 오션 28이 자연 치유되는 비율이 높아지자 그만 뒀대."

독도는 공식적으로는 의약품이 아니다.

의약품으로 허가를 받으려면 절차상 너무 오래 걸리기 때문에 건강 음료로 판매를 하고 있다.

물론 의약품에 버금가는 음료이지만 말이다.

독도가 입 냄새를 제거해주면서 관심이 집중되자 정부에서 세 분을 경호하고 있었다.

중요 물자를 생산하는 주요 인물쯤으로 보호를 하는 것이었다.

첩보에 의해 경호를 시작했다고 하는데 지난번 사고 이후에 조금 더 밀착 경호를 하고 있었다.

물론 그 이후로 별 문제는 없었지만 경호는 물리지 않고 있었다.

"대변혁 이후에 다시 연락이 올 거예요. 전생에도 그랬거든요. 아주 오랫동안 큰아버지께 빨대를 꽂았었죠."

전생에 인터넷이 다시 활성화되자 바로 연락이 왔었다.

어디서 들었는지 이미 큰아버지께서 각성자라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

대변혁이라는 초유의 사태!

외국에 두고 자주 보지 못했던 딸!

그런 딸이 울며 살아가는 것이 너무 힘들다며 도움을 요청했었다.

그런 상황에서 도움을 거절할 수 있는 사람은 흔하지 않을 것이다.

차후 이미 법적으로 부녀 사이가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될 때까지 큰아버지는 그들의 지갑역할을 했었다.

철저하게 속았다는 것을 알고 조치를 취하려고 했을 때는 손 쓸 방법이 없었다.

"설마 연락을 하리라고는 생각지도 못했다. 나 같으면 다시는 연락하지 못할 것 같은데···."

"마음 쓰지 마세요. 인간의 허울을 쓰고 있다고 해서 다 같은 사람은 아니니까요,"

"그래야지. 그런데 할 일 있다며···."

"예. 저 잠시 일 좀 할게요."

"그래. 나는 잠시 나갔다 오마."

"오래 걸리지 않을 거예요."

"알았다."

큰아버지께서 방에서 나가시자 쪼롱이가 냉큼 문을 잠갔다.

문단속하는 소환수는 생각지도 못했는데 쪼롱이는 문단속에 열심이었다.

영역을 관리하던 것이 배어있기 때문인지···.

"잘했어."

쫑!

미확인 메시지를 확인하려고 하자 쪼롱이와 꾸루가 옆으로 바짝 붙어 앉았다.

<야! 떨어져 더워. 그렇게 붙지 않아도 다 보이잖아.>

쭈루!

"괜찮아."

대답과 함께 메시지를 확인했다.

[띠링! 미확인 메시지 41건이 있습니다. 모두 확인하시겠습니까?]

"스팸메일도 아니고 41개나 있다고?"

[그렇습니다.]

"혹시 중요도에 따라 확인 가능하나?"

[강대한 님은 가능합니다.]

<오랜만에 특별 서비스를 받고 있는 느낌이 나네. 그 동안은 잘 느끼지 못하겠더니.>

시스템 들으라는 소리였다.

"그럼 중요한 것부터 말해줘."

[띠링! 중요하다는 기준은 저희와 강대한 님의 기준이 조금 다를 수 있습니다. 그러니 모든 메시지를 확인하시는 것을 추천 드립니다.]

"알겠어."

[첫 번째 메시지입니다. 축하합니다. 강대한 님께서는 이지(理智)가 있는 소환수를 가지게 되었습니다. '소환수를 가진 최초의 각성자'가 되셨습니다.]

<집사! 시스템 맛 갔나봐. 소환수는 이미 셋이나 데리고 있는데 이제 와서 무슨 소리야?>

"소리는 같은데 의미가 다른 것 같은데? 수는 '짐승수(獸)'도 있고, '나무수(樹)'도 있거든. 혹시 나무를 가리키는 말이라면 가능한 이야기지."

[정확합니다. 이번의 소환수는 동물이나 몬스터를 가리키는 것이 아니고 나무입니다.]

"던전 덩굴을 말하는 건가?"

[던전을 이루는 중요 매개체입니다.]

"발음이 같으니 구분하기 쉽게 '소환 나무'라고 할게. 소환 나무라는 것도 있는 거야. 처음 듣는 건데?"

[그만큼 흔하지 않습니다. 조금 더 자랐다면 소환 나무가 되지는 않았을 겁니다. 개별적이고 독립적인 것을 좋아해서 누군가의 휘하에 들어가지 않습니다.]

<절호의 찬스였네. 저런 나무가 또 있을까? 집사는 어떻게 생각해?>

처음 듣는 개념이니 나도 알 수가 없었다.

"소환 나무가 또 있는 거야?"

[그것은 말씀드릴 수 없습니다. 있다고 해도 발견하는 것은 쉽지 않을 겁니다. 그리고 강대한 님처럼 대기실이 없다면 소환 나무는 소환수가 되지 않습니다.]

<여기서 또 이렇게 들어맞네.>

나호가 추임새를 넣었다.

전생에는 아깝게 기회를 놓친 적이 많았다.

많은 노력을 했는데도 불구하고 간발의 차로 놓치는 것이 반복되자 다시 도전하는 것조차 망설여지곤 했었다.

부모님을 모셔야하니 좌절할 시간도 없었지만···.

이번 생은 반대의 경우가 많은 것 같다.

척척 들어맞는 것이 크고 작은 톱니바퀴가 잘 맞물려 돌아가는 것을 보고 있는 느낌이 들 때가 있었다.

"소환 나무라면 밖으로 불러내지기도 하는 건가?"

[그렇지 않습니다. 소환 나무에 대한 정보를 확인하시면 아시게 되겠지만 소환 나무는 한 번 자리를 잡은 곳에서 쉽게 움직일 수 없습니다.]

"그런데 소환물이라고? 밖으로 나올 수도 없는데?"

[조금 전처럼 강대한 님을 보호할 수도 있고, 강대한 님을 공격하는 적을 공격할 수도 있습니다.]

<우하하하! 우하하! 세상에 이런 얘기는 처음 들어봐. 이쑤시개보다 가는 나무가 뭘 한다고?>

나호가 웃음을 터트렸지만 나는 웃을 수 없었다.

전생에 던전 덩굴이 얼마나 강했는지 알기 때문이었다.

지금은 저런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었다.

"모든 던전 덩굴이 소환 나무가 될 수 있는 건가?"

시스템의 아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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