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5. 1인 던전
"빠뜨린 것이 있다고?"
시스템이 이런 실수를 할 리 없었다.
이것은 장사하기 위한 사전 물밑 작업에 지나지 않았다.
[띠링! 누락된 보상을 지급하겠습니다. '최초로 1인 던전을 소유한 각성자'가 된 것에 대한 보상입니다.]
"잠깐! 최초로 1인 던전이라고?"
[그렇습니다.]
이미 네 개의 던전을 보유하고 있는 중이었다.
현재는 나만 출입할 수 있으니 어떤 면에서는 1인 던전이라고 할 수 있었다.
하지만 지금까지 1인 던전에 따른 보상은 없었다.
그때 지급해야 할 보상을 지금까지 미뤘을 리도 없었고···.
그렇다는 말은 오늘 새벽 지급된 보상이라는 말이었다.
"대기실로 던전 덩굴을 옮기면 더 이상 일반던전이 아니라고 했잖아? 혹시 1인 던전이 되었다는 말이야? 나만 출입할 수 있는···? 이미 둘 다 대기실에 던전을 뿌리내리기 시작했고?"
시스템은 대답이 없었다.
스스로 알아내야 하는 것이 보상으로 인해 알려주는 꼴이 되었기 때문인 것 같았다.
<집사! 1인 던전이라면 쓰레기 던전 관리를 어떻게 해? 집사가 하루 종일 저기만 매달려 있을 수도 없잖아.>
머리가 지끈거렸다.
쓰레기 버섯 던전은 안전수칙만 지키면 인명피해는 나지 않는 던전이지만 보기도 추하고 냄새는 심한데다 쓸 데도 없는 버섯이 양산되던 던전이었다.
계속해서 헌터들을 투입해서 정리 작업을 해줘야 해서 돈 먹는 하마였던 던전인데 그 던전이 1인 던전이 되면 그 모든 작업을 혼자 해야 한다는 말이 된다.
만약 제대로 정리 작업을 하지 못하면 밀려나온 버섯이 갈 곳은 뻔했다.
대기실이나 내 주변이 될 것이다.
나호와 나의 심기를 느꼈는지 다시 쓰레기 덩굴이 축 늘어졌다.
"후우우! 알았어. 그래서 보상이 뭐야?"
어쩔 수 없다는 것은 알지만 다른 때와 달리 말이 조금은 거칠게 나왔다.
[보상으로 1000마나가 지급되었습니다.]
마나를 지급해야 해서 이제야 지급하는 것 같았다.
주는 만큼 받아가려는 속셈이기도 했을 것이다.
마나를 아끼고 싶지만 필요한 물건이 있을 때마다 몇 시간이고 물건을 찾고 있을 수도 없었다.
"923마나라고? 검색과 쇼핑 가이드가?"
[그렇습니다. 묶음으로 판매했을 때만 드리는 특전입니다. 처음이자 마지막 찬스죠.]
장사를 시작하면 시스템은 말투도 부드러워지고 조금은 친근하게 다가왔다.
평상시의 딱딱하고 꼭 필요한 말만 하는 것과는 다른 모습이었다.
작은 차이지만 이것은 지갑을 열게 하는 원동력이 되었다.
자신에게만 친절하게 맞춤 서비스를 해준다는 착각에 빠지게 만드는 것이었다.
여기에 걸려들지 않을 것 같지만 많은 헌터들이 이런 작은 변화에 지갑을 열었다.
이런 모든 것을 알고 있지만 이건 구매해야 할 것 같았다.
앞으로의 시간 절약과 합리적인 소비를 위해서 말이다.
"구매하겠어."
[잘 생각하셨습니다. 합리적인 소비를 하신 겁니다.]
[띠링! 923마나를 투자하여 '쇼핑 가이드'와 '검색'을 구매하셨습니다. 쇼핑 가이드와 검색은 상점창 상단에 표시되게 됩니다. 즐겁고 편리한 쇼핑을 하실 수 있을 겁니다.]
시스템의 말과 함께 상점창 상단에 쇼핑 가이드와 검색이 나타났다.
필요에 따라 사용가능한 모양이었다.
<집사! 물건을 사니까 목소리 달라지는 것 좀 봐. 얄미워 죽겠어.>
"어쩌겠어. 목마른 사람이 우물 파야지. 그럼 확인해보자. 물건이 있는지. 이거 검색이 히든, 일반 구분이 없는 건가?"
<구분하지 않겠지. 그래야 사고 싶은 물건이 나오면 히든 상점도 오픈할 거 아니야.>
"오! 우리 나호 똑똑하네."
나호를 칭찬한 후 검색을 시작했다.
'던전 덩굴'이나 '던전 식물'을 검색하자 의외로 여러 물건들이 있기는 했다.
하지만 모두 입장에 관한 아이템들이었다.
그중 대부분은 덩굴손에게 빼앗기지 않고 물건을 던전에 가지고 들어갈 수 있게 만들어주는 아이템이었다.
던전 덩굴이 사용할 물건은 검색에 나오지 않았다.
<없네. 이거 어떻게 해? 먹는 것도 좋아하는 애 같던데 매일 굶길 수도 없잖아.>
'던전 덩굴 기르기'
'소환 식물 기르기'
'어린 던전 덩굴'
'던전 덩굴 냄새'
여러 검색어를 넣어보아도 원하는 상품은 나오지 않았다.
"가이드를 이용해봐야겠어. 이건 누르면 되는 건가?"
상점창 아래에 생성된 쇼핑 가이드를 눌렀다.
누르는 것과 동시에 낭랑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이건 시스템과 완전히 다른 목소리였다.
[고객님! 반갑습니다. 고객님의 쇼핑 가이드! '쇼이' 인사드립니다. 무엇을 도와드릴까요?]
톡톡 튀는 목소리가 생동감 있게 느껴졌다.
"던전 덩굴의 냄새를 제거하고 싶은데 어떻게 하면 되지?"
[고객님 던전 덩굴이라고 말씀하셨습니까?]
목소리에 당황했다는 것이 그대로 느껴졌다.
"맞아. 쓰레기 버섯 덩굴을 기르고 있어."
[기르신다고요? 그건 기르는 것이 아닌데···. 헙! 이건 못 들은 것으로 해주십시오. 쓰레기 버섯 덩굴의 냄새를 제거하고 싶으시다는 거죠?]
<몇 번을 확인하는 거야? 집사! 할인해주더니 능력도 다운된 녀석을 붙여준 거 아니야?>
[헙! 최고의 쇼핑 가이드, 쇼이에게 그런 말씀을 하시다니···. 슬프네요.]
쇼핑 가이드라고 해서 프로그램 같은 건 줄 알았는데 그런 것이 아닌 모양이었다.
저렇게 대답하는 것까지 프로그램화 되어 있는지도 모르겠지만···.
[쓰레기 버섯 덩굴의 냄새를 없애는 상품은 존재하지 않습니다. 던전 덩굴 성질을 변화시키는 상품 자체가 없다고 보시면 됩니다.]
검색에 나오지 않았지만 가이드를 받다보면 있을지 않을까 했는데 역시 없다는 답변이 돌아왔다.
[하지만···.]
망설이는 듯한 쇼핑 가이드, 쇼이였다.
[저에게 처음으로 청한 도움인데 빈손으로 가시게 할 수는 없죠. 아무에게도 말씀하시지 않겠다고 약속하시면 약간의 도움 정도는 드릴 수 있습니다.]
"도움?"
[확실한 것은 아닙니다. 하지만 시도 정도는 해봐도 좋을 것 같습니다. 민간요법 같은 거니까요.]
지금은 찬밥 더운밥 따질 때가 아니었다.
어떻게든 쓰레기 버섯의 문제점을 해결해야 했다.
대변혁이후 쓰레기 버섯에 묶여서 다른 일을 전혀 못할 수는 없었다.
"그거라도 알려줘."
[마나가 무척이나 많이 소모되는 것이라 말씀드리기 민망하기는 한데 중급이상의 치료수를 하루에 세 번 이상 던전 덩굴 전체가 푹 젖도록 부어주면 던전 덩굴의 성질이 변한다는 말이 있어요.]
중급 이상의 치료수를 그것도 푹 젖을 정도로 부어주려면 어지간한 헌터는 어림도 없었다.
치료수의 가격이 만만치 않기 때문이었다.
[그것도 세 달 이상 꾸준히 하셔야 효과가 있다는 소문을 들었습니다.]
"소문이라니?"
[쇼핑 가이드들의 커뮤니티에는 별별 이야기가 다 올라오죠. 다른 물건을 구매하실 의향은 없으십니까?]
"당장은 없어. 아! 소환수의 언어스킬은 얼마나 하지?"
[저기 있는 소환수 말씀이시지요?]
쇼핑 가이드라고 말하는 쇼이는 지금 우리를 보고 있는 모양이었다.
"맞아."
[소환수의 언어 스킬은 바로 구매하실 수 없습니다. 소환수의 각성이 전제되어야 하고 무엇보다 소환수에게 '언어' 특성이 있어야 마나를 버리지 않으실 겁니다.]
헌터들의 마나를 잡아먹는 것 중의 하나가 '특성'이었다.
특성이라는 것은 다른 말로 하면 헌터 개인의 특별한 재능이다.
그런데 이 특성이라는 것은 상태창에 나타나지 않았고 미리 알 수 있는 방법도 없었다.
문제는 권능, 직업들을 구매해도 이 특성과 맞지 않으면 적용이 되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권능과 직업에 비하면 스킬은 그래도 조금 나은 편에 속했다.
특성을 따지지 않고 적용은 되었기 때문이다.
상태창에 등록은 된다는 말이다.
하지만 스킬도 특성의 지배를 받았다.
같은 스킬이라도 특성에 따라 효과가 천차만별이었던 것이다.
특성이 없는 사람이 스킬을 구매해서 등록하면 빗 좋은 개살구에 지나지 않았다.
그런데 이런 특성의 성질이 소환수에게도 그대로 적용되는 모양이었다.
"소환수의 각성은 비용이 얼마나 들지?"
[지금은 판매하지 않습니다. 상품이 등록되면 말씀드릴까요?]
"좋아. 등록해줘."
[등록해 드렸습니다.]
"아! 입 냄새 제거제의 제조법이나 제조 스킬이 지금 등록되어 있나?"
[입 냄새라면 마나통증으로 인한 입 냄새를 말씀하시는 거겠죠? 아직 등록되어 있지 않았습니다. 이것도 '우선 구매' 목록에 올려드릴까요?]
"좋아."
쇼이를 구매한 것은 나쁘지 않은 선택 같았다.
엄밀히 따지면 쇼이의 안내를 받을 권리를 구매한 것이겠지만 이 정도로 안내를 해준다면 정말 천 마나를 주고 사도 좋을 것 같았다.
[등록해드렸습니다.]
"고마워. 지금은 내가 바빠. 다음에 차근히 이야기해."
[언제든 불러주십시오. 그럼 강대한 님의 쇼핑 가이드, 쇼이는 이만 물러갑니다.]
<목소리가 통통 튀네. 쇼핑 호스트 같아.>
"시스템처럼 팔지 못해 안달을 부리지 않아서 좋네. 낚시질도 덜 할 것 같고."
<그러게. 다 됐네. 이제 어디로 갈 거야? 아니 대기실에 어떤 던전을 심을 거냐고 물어야 하나?>
대기실에는 이제 하나의 던전만 더 심을 수 있었다.
천안에 있던 아수라 던전은 단프 덩굴이 자라고 있는 것으로 알 수 있듯이 단거리 워프 게이트를 품고 있다.
아수라 던전이 유명했던 건 국내의 모든 워프 게이트로 이동을 할 수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런데 아수라 던전은 이것만 유명한 것이 아니었다.
대변혁의 날 천안을 공포의 도가니로 몰아갈 수 있었던 원인이 된 몬스터!
이 몬스터로도 아수라 던전은 유명했다.
다양하면서도 강한 개체들이 많았기 때문에 나중에는 돈이 되는 던전으로 각광을 받았지만 꾸준히 공략을 잘 해주어야 한다는 단점도 있었다.
하지만 이건 내게 큰 문제는 되지 않을 것 같았다
혼자만 입장할 수 있다고 해도 내게는 소환수들이 있기 때문이었다.
쓰레기 버섯 던전은 우선 지켜보아야 할 것 같았다.
그냥 던전 식물이면 이식의 조건을 맞춰서 다른 곳으로 이식을 하면 그만이지만 이미 소환 식물이 되었으니 그것도 불가능했다.
마지막 남은 던전!
이건 위의 두 던전과 달리 신중하게 선택해야 할 것 같았다.
혼자 관리하기 쉬우면서도 이왕이면 돈이 되는 던전이 좋을 것 같았다.
대변혁 시기에 가장 필요하면서도 쉽게 구할 수 없는 것!
"황금! 금이 가장 많이 나던 던전을 넣어도 좋은데···. 캐는 것이 문제네."
대기실에 옮기는 순간 혼자 들어가야 하니 그럴 바에는 차라리 화순으로 옮기는 것이 나았다.
<세상에서 가장 좋은 '금광 던전'도 우리나라에 있었는데.>
"그러게."
생각하니 치가 떨렸다.
전생의 일을 생각하면 당장이라도 일본을 갈아엎어도 시원치 않았다.
세계에서 가장 좋은 금광이라고 이름이 날렸던 던전은 매장량이 가장 많아서 가장 좋은 던전이라고 하지 않았다.
추정 매장량으로는 3, 4위정도 되었지만 채굴방식이 가장 쉬웠다.
던전 안의 환경도 좋았고 몬스터도 많지 않아서 안정적으로 금을 채굴하기 쉬웠다.
간혹은 던전에서 금을 주울 수도 있던 곳이었다.
물론 순금은 아니고 금이 많이 함유된 돌이었지만 말이다.
<전생의 일을 생각하는 거지? 광산하면 생각나는 일이 참 많지. 광산은 땀과 눈물이 멈추지 않았던 곳이야. 집사의 전생에도 그랬지만 더 옛날에도 그랬어.>
나호는 인간사에 관심을 두지 않았다고 하지만 그렇다고 보기에는 아는 것이 많았다.
관심을 두지 않은 것이 아니라 차마 보지 못한 것이 아닌가 싶었다.
<집사 집이 있는 화순에는 예전에 석탄광산이 많았어. 알아?>
"알고 있어. 할아버지께 들었어."
<정말 옛날이야기지. 지금은 없지만 제철공장으로 유명한 광양에도 금광산이 있었지. 일본 놈들 수탈이 장난이 아니었던 곳이야. 그곳만 그런 일이 있었던 것은 아니지만···.>
나호가 한숨을 쉬며 더 이상 말을 하지 않았다.
생각하는 것만으로 가슴이 아프기 때문일 것이다.
많은 사람들이 모르고 있지만 우리나라는 면적에 비해 금 매장량이 높은 나라라고 한다.
그중 대부분은 일제 강점기에 수탈의 대상이 되어 씨가 말라버렸지만 말이다.
대변혁 이후에 던전을 통해 황금의 나라라는 과거의 영광을 다시 되찾았지만 다시 일본 놈들 손아귀에 가져다 바치는 꼴이 되고 말았다.
미우라 놈과 매국노들에 의해서···.
"매국노들의 기연회수를 해야 하는데···. 미국도 다시 한 번 다녀와야겠고."
<미국이라면 네바다?>
"맞아. 금광이 있던 던전을 옮겨올 수 있으면 좋지. 남아프리카 공화국도 좋지만 거기는 시간도 많이 걸리고 대변혁 이후에 금광 던전이 열렸다는 것으로 알고 있어. 그러니 지금 가도 없을 거야."
[전생에 금광을 품은 던전에 대한 정보가 있습니다. 열람하시겠습니까?]
권능 기억이 반응을 보였다.
"아니야. 됐어. 중요 던전은 기억하고 있어."
미국의 금광 던전은 가지고 온다고 해도 대기실에 넣을 수는 없었다.
이곳은 매장량은 한국의 던전보다 많았지만 채굴 방식도 까다롭고 혼자서는 도저히 관리할 수 없는 곳이었다.
<에궁! 우리 집사 한동안 바빠지겠네. 잘 생각해서 조정해야겠다. 그렇다고 다 우리나라에 가져다둘 수는 없잖아.>
"가져다 둬야지. 좋은 것은 말이야. 하지만 시기를 맞추기가 쉽지 않을 것 같아. 이미 던전이 형성되기 시작하면 옮기는 것이 불가능하다고 하다니까."
<미리 알 수 있는 방법이 있으면 좋은데···.>
"나가자. 이제 슬슬 움직여야지."
큰아버지 짐은 이미 정리가 되어있었기 때문에 내 짐만 정리해서 나오면 되었다.
빠진 물건이 없는지 확인을 하고 방을 나와 엘리베이터에 올랐을 때였다.
마나의 눈이 반응을 보였다.
[띠링! 50센티미터 이내에 마나통의 원소유자가 있습니다. 확인하시겠습니까?]
현실에서는 마나의 눈을 꺼두는데 이전 던전에서 켜둔 후 다시 끈다는 것을 잊어버렸나 보다.
아마 지금 함께 엘리베이터에 탄 사람의 마나통이 내게 수거된 모양이었다.
<집사! 봐보자. 어떤 사람인지···.>
황금 던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