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9. 저걸 줘도 좋제.
"어르신! 이거 제게 주시면 어떨까요? 이런 것이 꼭 필요한데."
"엥? 자네 혹시···? 아니지? 골동품점이나 허는 청년으로는 안뵈기는디? 어디다 쓸라고?"
젊은 내가 누구도 쓰지 않을 물건을 탐을 내자 어르신의 눈에 호기심이 어렸다.
"이거 쓸 데가 있습니다. 기계가 들어갈 수 없는데 농사를 지어야하는 곳이 있거든요."
"그런 곳이 지금도 있어? 요즘은 첩첩산중도 기계 들어가지 못허는 곳은 없을 텐디?"
"귀하게 쓸 곳이 있습니다."
"내 처음 보는 사람헌테는 절대로 물건을 팔지 않는 사람이여. 사고 싶으먼 자주 오든가. 이리 안거. 찻물이 딱 좋게 식었구만."
어르신이 찻잎이 든 찻주전자에 알맞게 식은 물을 부었다.
그렇게 잠시 기다리시더니 다관에 찻물을 부었다가 찻잎이 가라앉자 찻잔에 차를 따라주셨다.
<제대로 차를 드시네.>
"마셔. 바다를 보고 마시면 맛이 더 좋제. 내 이 맛으로 여기에 살잖어. 원래 내 집은 여그가 아니여."
"그럼 어디가 고향이세요?"
"나? 자네 요즘 독도 알제?"
뜬금없이 독도를 말씀하시는 어르신이었다.
"알죠. 요즘 독도 모르면 간첩이죠."
"그라제. 내 입 냄새를 싹 사라지제 해준 것도 독도제. 가슴은 계속 아퍼도 어쩔 것이여. 그거사 다들 그러니께 그러려니 허고 살아야제."
"드시나보네요."
"마시제. 내가 엄청 자랑하먼서 마시제. 내 고향이 화순이거든. 춘양면은 아니고 그 옆에 살았제. 독도가 난다는 거그도 내가 잘 알제. 춘양면에 내 친구도 몇 있었는디 한 놈 빼고 다 황천길 가브럿어."
"춘양 옆이면 능주나 한천이 고향이세요?"
"능주나 한천을 어찌 안댜? 그람 이양도 알 것구만. 내 고향은 이양이여. 여그서 30년을 살았으니 여그도 고향이나 진배없지만 서도. 능주나 한천을 아는 것이 화순사람인가?"
<집사! 독도면 저거 사갈 수도 있겠다. 공략해봐.>
'기척을 잘 숨기시는 것도 그렇고···. 화순으로 모시고 가고 싶기도 하네.'
사람을 접하다보면 욕심나는 사람이 있다고 하더니 전생의 인연 이외에 처음으로 욕심나는 사람을 만났다.
연세가 너무 많다고 생각할지 모르겠지만 나이는 문제가 되지 않았다.
"예. 저 춘양면 사람입니다. 월평리에 살고 있죠."
"월평에 산다는 말이여? 독도 맹그는 회사도 월평에 있는디···."
어르신의 눈이 커지더니 목소리까지 높아지셨다.
독도에 대한 관심이 무척이나 많은 것 같았다.
어르신은 고치에서 실을 뽑아내듯 이야기를 술술 풀어내기 시작하셨다.
말씀하시는 도중 독도에 대한 자부심도 빼놓지 않으면서 말이다.
"내가 요즘 독도 덕분에 어깨를 펴고 살잖은가. 하하하! 여그 동네 친구들이 내 고향 화순을 그리 무시혔다니께. 썩을! 뭐 볼 것 있냐고 말이여. 여그 땅 끝은 관광객이라도 많지만 거기는 볼 것이 아무것도 없다고······."
'이런 걸로 어른들이 싸우나?'
<집사! 나이가 들수록 유치해지는 거야. 무슨 낙이 있어? 옛날이야기하고, 자식자랑하고 사는 거지.>
전생에 40이 넘도록 살았지만 이런 소소한 삶에 대해서는 무지했다.
살아남는 것도 힘겨운 세상이니 저런 일로 티격태격하는 것은 상상도 하지 못하고 살았다.
그러고 보면 대변혁이후에는 저런 자잘한 삶의 즐거움을 잃어버리고 살았던 것 같다.
이번에는 조금 달랐으면 좋겠는데···.
어르신의 이야기는 계속되고 있었다.
이야기를 계속 듣다보니 여기 물건을 사가는 것보다 더 좋은 방법이 생각이 났다.
"생활사 박물관을 만드시는 것이 꿈이시라고요?"
"꿈은 무신. 한때 꿈을 꿨다는 것이제. 다들 미쳤다고 혔지만 내는 귀히 쓰던 것들이 잊히는 것이 싫더만. 언제고 빛을 발하고 사용될 날이 올 줄 누가 알 것어? 안그랴?"
젊은 사람이 자신의 이야기를 진지하게 들어주자 신이 나시는지 얼굴까지 발그레해지시는 어르신이었다.
"그란디 내는 그냥 박물관은 싫어. 그것이 뭐여! 관짝이여! 관짝! 사람 손에 들려서 움직여야 허는 것들을 유리관에 쑤셔 박아놓으니 관짝이 아니고 뭐여! 내는 자그마한 논밭에다 직접 농사를 지으면서 뵈게주고 싶어. 그란디 자식 놈들이 결사반대여! 썩을!"
"그거 정말 좋은 생각이네요. 어떻게 그런 생각을 하셨어요?"
"어떻게는···. 우리 아들 놈 어릴 적에 교육에 좋다고 혀서 박물관엘 데꼬 갔제. 그란디 만져볼 수 있는 것이 없더라고. 그래서 그때부터 모으기 시작했제. 그란디 손주 때도 박물관은 변헌 것이 없드라고. 그래서 더 열심히 모았제."
아들사랑, 손주 사랑에서 시작된 수집이었던 모양이었다.
그런 자식들을 자주 보지 못하고 사시고, 손주는 5년이 넘도록 보지 못하셨다니 안타까웠다.
<이 할아버지 은근 선견지명이 있으시네. 대변혁 이후에 한동안 기계를 사용할 수 없었잖아. 옛날 방식으로 농사를 지어야 하는 때가 잠시였지만 있었지. 저런 것을 구하기 힘들어서 애를 먹었는데···.>
대변혁 후 어느 정도 복구가 되는 동안 기계를 제대로 사용할 수 없었다.
기반시설의 대부분이 파괴되다보니 멀쩡한 기계를 두고도 사용할 수 없는 경우가 많았다.
복구가 되는데 지역에 따라 다르지만 최소 2년 이상은 걸렸으니 그동안은 옛날 방식으로 농사를 지어야했다.
"어르신! 이왕이면 고향에 박물관을 지으시면 어떻습니까?"
"좋제! 좋다뿐이여. 헐 수만 있으먼 당장 허고잡제. 이것들 다 가지고 가서 살아 숨 쉬게 해주고 잡당께. 그렇지 않아도 알아봤는디 자식들이 죽어도 안된댜. 썩을! 내가 모은 재산 내가 쓰것다는디 왜 지랄인 건지···."
말씀은 저렇게 하시면서도 자식들이 반대하니 자신의 꿈을 접은 어르신이었다.
이쯤 확인하면 됐다 싶어서 월평 주식회사 사람이라고 밝혔다.
어르신의 눈의 휘둥그레진 것은 당연한 것이었다.
거기서 그치지 않고 회사에서 그렇지 않아도 이런 박물관을 하나 건립하고 싶다고 말씀을 드렸다.
"그람 시방 나를 스카웃인가 뭐신가를 허것다는 것이여?"
"예. 애지중지하신 것 모두 가지고 오세요. 나머지는 다 책임져드릴게요. 평생 관장으로 사시면서 하고 싶으신 일 하시고 사실 수 있게 도와드릴게요."
어르신의 입이 쩍 벌어지셨다.
우연히 만난 청년의 입에서 자신의 평생 꿈이 이루어질지도 모를 순간이었던 것이다.
하지만 어르신이 고개를 살짝 저으시더니 한숨을 푹 내쉬며 말씀하셨다.
"고마우이. 고마워. 들은 것만으로도 꿈을 이룰 것 같어. 눈에 훤허니 그려지는구만. 허허허!"
어르신께서 잠시 꿈을 꾸시는 듯한 표정을 지으셨다.
지금 이 순간 어르신은 자신이 꿈꾸는 박물관을 거닐고 계실 것이다.
녹음이 푸르른 논두렁 밭두렁을 아이들 손을 잡고 걸으시며 설명하시는 어르신의 모습을 어렵지 않게 상상할 수 있었다.
"좋구만! 늘 이룰 수 없는 꿈이라고 생각혔는디 이제 여한 없이 갈 수 있것구만. 고마우이."
실제로는 어느 것도 이루어진 것이 없었다.
그런데도 어르신의 눈가가 촉촉해졌다.
"그냥 하는 말 아니에요. 월평의 대표님을 모시고 올 수도 있어요."
"됐어. 뭐드러. 사실 내 갈 날이 얼마 남지 않았구만. 내 죽으먼 저것들 다 내다버릴 것이 훤혀서 눈에 밟혔었는디 그런 뜻이라먼 총각이 가지고 가. 공짜라도 줄 수 있구만."
'건강이 좋지 않으신가?'
<내가 살펴볼까?>
당장이라도 어르신의 몸을 훑어보려는 나호였다.
다른 때 같으면 막았겠지만 살짝 고개를 끄덕이며 바다로 시선을 돌렸다.
나호가 어르신의 머리부터 발끝까지 살피는 모습은 보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누군가의 몸속에 백호의 머리가 들어가 있는 모습은 아무리 의도가 좋다고 해도 좋게 보이지 않았다.
<뇌혈관은 나이에 비해 짱짱하시고, 폐도 깨끗하고···. 이런! 약주를 좋아하셨나? 간이 엉망이네. 이식이라도 받아보시지.>
'많이 안 좋아?'
<이 상태라면 병원에서 올해를 넘기지 못할 거라고 말했을 것 같은데?>
직접 간을 보고 하는 말이니 나호의 진단은 정확할 것이다.
회귀하고 저렇게 사람의 속을 들여다본 것이 적지 않아서 웬만한 명의보다 진단만큼은 확실한 나호였다.
물론 저렇게 증상이 보이는 것만 정확하게 알 수 있지만 말이다.
이야기가 좀 길어질 것 같았다.
"독도 만드는 회사 구경하고 싶다고 하셨죠?"
"그라제 보고 잡제. 왜 구경시켜줄라고? 내가 거기로 가지 못혀도 구경은 시켜줄 것이여?"
어르신의 눈이 별처럼 빛났다.
꿈이 있는 사람의 눈은 나이의 고하를 떠나 빛나기 마련이었다.
"구경시켜드릴게요. 가실래요?"
"참말이여?"
"예. 어르신이 보고 싶다고만 하시면 당장이라도 구경시켜드릴게요."
"그람 미안혀도 말이여. 내 여그 30년 살믄서 동네 친구들헌테 잘 해준 것이 아무것도 없어. 맨날 얻어먹기만 혔구만. 돈 생기면 저것들 살 생각에 아끼고 또 아꼈거든······."
"······."
"내 가기 전에 울 친구들헌테 독도 공장이랑 화순을 뵈게 주고 잡은디···. 이런 말 허면 염치가 없제?"
"아니요. 제가 어르신 산에서 흙을 퍼 왔으니 그 값으로 해드릴게요."
"아이고 무신! 곧 나라땅 될 언덕빼기여. 자식 새끼들 등쌀에 낼모레 도장 찍을 것이여. 저 자리에다가 박물관을 세울까도 생각혔던 적이 있었는디···."
어르신의 눈이 여러 감정을 담아 언덕을 바라보셨다.
나라 땅을 자신의 땅이라고 억지를 부린다고 생각했는데 정말 땅주인이었던 것이다.
그렇다면 정신없이 자라고 있던 칡도 정말 일부러 심어두신 건가 싶었다.
독도에도 칡이 들어가기 때문에 괜한 호기심이 일었다.
"칡도 직접 심으신 거예요?"
"정말 심제 그람. 찰 칡은 드물다니께. 사람들이 칡이 다 같은 칡이라고 생각허는디 아니여."
이런 분을 모셔다 독도에 들어갈 칡의 관리만 부탁드려도 좋을 것 같았다.
이런저런 이야기를 좀 더 나누다 어르신의 친구 분들까지 회사를 구경시켜드리기로 했다.
그런데 이 소식을 전하러 회관에 다녀오신 어르신의 표정이 복잡했다.
"이걸 어째! 내가 독도가 얼매나 유명헌지 잊어쁘럿구만. 신세갚는다 생각허고 친구 몇만 데불고 갈라고 혔는디 옆에 할망구들이 들어쁘렀어. 온동네 소문나는거 5분도 걸리지 않더만. 무서버."
미안해 어쩔 줄 몰라 하시는 어르신을 안심시킨 후 대형버스 두 대를 불렀다.
<집사! 만약고는? 만약고를 두고 가는 거야? 나 못가! 아니 안가! 어떻게 만약고를 두고 집을 비워? 누가 집어가면 어떻게 해?>
나호가 만약고 안에 억지로 몸을 욱여넣고는 나오려고하질 않았다.
'지금까지 아무 문제없었어. 다녀오는 동안 어디 가지 않을 테니까 걱정하지 마.'
심상으로 나호를 달랬지만 불안한 것은 나도 마찬가지였다.
가치를 몰랐을 때야 아무렇지 않지만 마당에 값으로 매길 수도 없는 보물이 나뒹굴고 있는데 그것이 아무렇지 않을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모든 사람이 만약고의 가치를 알아볼 것 같고, 누구라도 집어갈 것만 같았다.
<더구나 온 동네가 1박2일간 텅텅 비게 되잖아. 나 불안해서 못가. 아니 안가!>
젊은 사람들이 대부분이라면 1박을 할 필요가 없었다.
그런데 어르신들이 대부분이어서 무리하게 일정을 짤 수 없었다.
그렇게 결정된 것이 1박 2일 일정의 여행이 되어버렸다.
일이 커지는 것 같아 여행사에 맡겼더니 여행보험부터 시작해서 자잘한 일은 물론이고 일정까지 모두 책임지기로 했다.
"이거 미안혀서 어째?"
"흙도 얻고, 좋은 물건들도 보고, 귀한 말씀도 들었으니 제가 더 많이 얻어가는 거예요."
땅은 대변혁 전에 팔았다고는 하지만 황금 던전을 얻어가니 이런 여행쯤은 아무 것도 아니었다.
"그랴. 고마워. 대신 여기 있는 거 싹 줄 테니께. 그건 걱정허지 말어. 이리 맘 알아주는 사람을 만나니 좋구만. 어젯밤에 꿈자리가 그리 좋더란 말이제. 허허허!"
어르신께서는 당장이라도 어깨춤을 추실 기세였다.
<집사! 만약고!>
쫑! 쫑! 쫑!
나호가 만약고를 외치자 쪼롱이까지 만약고인 돌화로 위에 앉아 지저귀고 있었다.
"자네가 기르는 새지? 참 이삔 새가 따라댕기구만. 새가 저 화로가 맘에 드는 모양이여."
어르신께서 그 말씀을 하시는 순간 쪼롱이가 투박하게 생긴 돌화로 안으로 쏙 들어가 앉았다.
그러더니 마치 제 둥지를 만난 새처럼 편안한 표정을 지으며 쪼로롱거렸다.
"허허허! 맘에 드는가벼. 그렇지 않아도 저기에 간혹 새들이 둥지를 틀려고 허더라고. 허지만 물이 고여서 최악의 집이 될 거 아니여? 그래서 말렸었는디 자네가 키우는 새라면 저걸 줘도 될 것 같어."
쫑! 쪼로로로롱! 쫑! 쫑!
쪼롱이가 기쁨의 노래를 불렀다.
"말 못허는 짐승들도 인간사를 다 안다고 허더니 저 새도 그런가벼. 말을 알아듣는 것 같어. 허허허!"
<집사! 빨리 챙겨! 빨리! 할아버지 맘 바뀌기 전에. 빨리!>
나호가 어깨춤을 덩실덩실 추며 재촉을 했다.
던전 들고 일본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