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0. 던전 들고 일본으로
만약고를 쪼롱이 둥지로 쓰라고 그냥 주신단다.
가치를 모르고 하시는 말씀이지만 그냥 받을 수는 없었다.
하지만 할아버지를 설득하는 데는 시간이 좀 걸릴 것 같았다.
우선은 투박하게 보이는 돌화로를 챙겨들었다.
돌화로를 들어 올려도 쪼롱이는 돌화로 속에서 나올 줄을 몰랐다.
"허허허! 아주 맘에 드는가벼. 사람이든 짐승이든 살다보믄 맘에 드는 물건이 있기 마련이제. 내겐 이것들이 그랬제."
사랑이 가득 담긴 눈으로 마당에 놓인 물건을 바라보시는 어르신이었다.
얼마나 아끼시는지 얼굴에 그대로 드러나 있었다.
<저거 다 주시고 허전해서 어찌 사시려고 그냥 주신다고 하시는지···.>
자식사랑으로 하나둘 모은 것들이 이제 자식을 대신해 어르신을 지켜주고 있었다.
'큰아버지께 말씀드려서 어떻게든 화순으로 모시고 와야지. 그런 것은 큰아버지께서 더 잘 하실 거야.'
<큰아버지께서 사람 마음 여시는 것은 정말 잘 하시지.>
전생에 길드를 세워 운영해도 잘했을 것이라는 평가를 듣던 큰아버지셨다.
이번 생에서는 월평의 사장이자 길드장으로 사시게 될 것이다.
거기에 대한 준비도 착착 진행 중이고 말이다.
허리 아프다, 다리 아프다 하셨을 마을의 어르신들이 여행 준비에 걸린 시간은 젊은 사람들보다 더 빨랐다.
짧은 시간이었는데도 불구하고 어디서 가지고 오셨는지 바리바리 음식까지 챙긴 상태였다.
<여행이 아니라 이사를 가시는 것 같은데? 저걸 누가 다 먹어?>
어르신들께서 챙긴 음식을 보고 놀라는 나호였지만 먹성 좋은 쪼롱이는 별 반응이 없었다.
말을 할 수 있었으면 분명 한 끼 식사꺼리도 되지 않는다고 했을 것이다.
마을 사람을 실은 버스는 화순으로 출발하고 어르신과 친구 두 분은 내 차를 타고 화순으로 향했다.
화순으로 가는 차 안에서 어르신은 잠시도 쉬지 않으셨다.
독도 자랑, 화순 자랑에 입술이 닳을 정도였다.
아이마냥 좋아하시는 모습은 보고 있는 것만으로도 덩달아 기분이 좋아졌다.
<에헤라 뒤야! 아싸아아! 놀아보세!>
나호는 만약고를 챙긴 후부터 계속 저 상태였다.
<집사가 소환수 복이 참 많아. 쪼롱이가 이렇게 활약할 줄 누가 알았어!>
나호의 수다도 쉽게 끝나지 않았다.
나호와 어르신의 수다가 계속되는 사이 만약고를 어디에 둘지 잠시 고민했다.
현재는 마나의 눈으로도 만약고는 감정이 되지 않았다.
아마 마나가 깃들지 않았기 때문인 것 같았다.
분명 이동제한이 걸려있을 것이 분명한데 이동제한이 걸리는 시점이 문제였다.
만약고는 인벤토리나 대기실에 넣는 것이 모두 가능할 것 같았다.
아직은 마나가 깃들지 않아서 이동제한이 걸리지 않았겠지만 내가 일본에 있을 때 이동제한이 걸려버리면 만약고는 일본을 벗어나지 못할 수도 있었다.
그러니 한국에 보관해두어야 하는데···.
'아무래도 화순던전에 넣어두어야겠지?'
<만약고? 화순 던전이 가장 좋지. 대변혁 후에는 거기가 근거지가 될 테니까.>
'이번에 들어갈 때 컨테이너도 몇 개 넣어두어야겠다.'
<국수와 통조림?>
함께 생활하니 모르는 것이 없는 나호였다.
월평리에 도착해서 마을 구경을 시켜드렸다.
어르신들이 좋아하신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공장이라 그래서 공단 같은 곳을 생각혔는디 여그는 마을 같구만."
"같구만이 뭐여어. 완전히 마을이구만. 저그 아그들 좀 봐. 사람 사는 곳 같아서 좋구만. 우리 마을은 더 죽어가는 늙은이들뿐인디 말이여."
"요런 데서 살먼 좋컷구만."
"에이 이 사람아! 못 들었어? 여기 취직허기가 하늘의 별따기여. 우리 아들도 여그 취직허고 싶다고 허더라고."
어르신들의 수다가 이어졌다.
방문 기념으로 받은 독도 한 병씩은 잘 챙겨두시는 어르신들이었다.
현재는 일주일에 일곱 병씩 구매할 수 있지만 많아서 나쁠 것은 없었다.
"그란디 나는 이거 먹은 후부터 속이 편혀."
"영식이 할매는 다리가 덜 아프다더만."
"좋은 약이라고 허니께 착각허는 거 아니여?"
"아이 이 사람아. 내가 위장약을 달고 살다가 안 먹은 지가 세 달이 넘었다니께. 영식이 할매도 약을 먹지 않고도 쌩쌩 잘 댕기잖어."
얼마 전부터 일부 사람들이 하는 말이었다.
전생에는 듣지 못했던 소리였다.
물론 그때 미우라 길드에서 우리나라에 푼 약은 가장 약효를 줄인 약이었다.
대변혁 이후에는 입 냄새 제거제에 마나를 불어넣으면 가슴 통증도 일부 줄일 수 있었다.
그런데 미우라 길드가 우리나라에 푸는 약은 입 냄새도 완전히 제거 되지 않은 것은 물론이고 가슴 통증의 경감도 가장 약한 것이었다.
우리 산야에서 난 재료로 만든 것은 물론이고 우리나라에서, 우리 국민의 손에 의해 만들어졌는데도 가장 비싼 값에 가장 하급을 풀었다.
으드득!
생각을 하니 나도 모르게 이가 갈렸다.
어르신들이 공장과 마을을 둘러보는 사이 부모님과 큰아버지를 만나 오늘 있었던 이야기를 했다.
이렇게 세 분을 만날 때는 되도록 상세한 것 까지 말씀을 드리는 편이다.
이왕 아시게 된 거 정확하게 아시는 편이 나았기 때문이었다.
"내 생각에는 황금 던전은 네 대기실이라는 곳에 넣어도 좋을 것 같다."
모든 설명을 들으신 큰아버지께서 하신 말씀이었다.
"이곳이 아니라요?"
"이곳은 미국의 던전을 가져다두는 것이 나을 것 같아. 채굴 방식도 조금 더 복잡하다며."
"아무래도 그렇죠. 매장량과 채굴 방식까지 따지면 황금 던전만한 곳이 없었으니까요."
<황금 던전은 굴러다니는 돌멩이도 금덩이인 경우도 있었는데 말 다했지.>
나호가 전생을 추억하고 있었다.
"그러니 하는 말이야. 너만 들어갈 수 있다고는 해도 네 소환수들을 보면 나중에 해결책을 발견할 수도 있을 것 같거든. 그리고 네가 하려고하는 일에는 생각보다 많은 돈이 들 거야."
"드러나지 않는 돈이 필요하다는 말씀이시죠?"
"그렇지. 무슨 일을 하든지 자금은 많을수록 편해. 네가 하려고 하는 일은 더 그렇지."
"며칠만 더 생각해보고 결정할게요."
"그래. 그 어르신은 걱정하지 마라. 내가 알아서 할 테니."
어르신은 아무것도 모르고 주신 것이지만 만약고를 주신 분인데 그냥 이대로 넘어갈 수는 없었다.
어떻게든 마을로 이주를 시켜서 병도 고쳐드리고 이곳에서 꿈도 실현하게 해드리고 싶다.
세 분과 조금 더 이야기를 하다 어르신을 세 분께 소개를 시켜드린 후 화순 던전에 잠시 들렀다.
화순 던전에 만약고와 통조림이 가득든 컨테이너를 몇 개 내려놓았다.
엄청난 양이지만 대변혁 이후가 되면 빠르게 사라질 물건들이었다.
화순 던전을 나와서 다시 차를 출발시켰다.
갑자기 생각난 던전을 한 곳 가볼 생각이다.
이 던전도 지난 생에 대변혁의 날 열린 던전이었다.
그리고 자그마치 20년간 지속되면서 국민들을 힘들게 했던 던전이었다.
그 던전의 던전 덩굴을 채취해서 이번에 일본으로 옮겨 심어볼 생각이다.
화순을 출발해 전주로 향했다.
우리가 도착한 곳은 전주 동물원 부근의 도로였다.
전생에 이곳에 열린 던전에서는 들개와 들고양이를 닮은 몬스터가 나왔었다.
'몬들개', '몬들고양이'라고 불렸던 종인데 생긴 것이 약간 닮았을 뿐 들개와 들고양이는 아니었다.
이곳의 던전을 일본으로 옮기려고 하는 가장 큰 이유는 잦은 폭발 때문이었다.
이 던전은 공략을 꾸준히 해줘도 툭하면 터지는 던전이었다.
어떻게 보면 이 던전은 폭발이 아니라 언제든 몬스터가 밖으로 나올 수 있는 던전으로 봐야 한다는 말이 더 많았던 던전이었다.
"꼬물아! 보이면 말해!"
<으하하하! 집사! 정말 웃기다. 식물에게 보이면 말하래. 우하하하!>
소리를 낼 수 있는 것은 아니지만 꼬물이를 보고 있으면 어지간한 의사소통은 다 됐다.
그래서 한 말이었는데 나호에게는 웃기게 들렸던 모양이었다.
"이곳의 던전을 두고 일본 놈들이 했던 말 생각나?"
<그걸 어떻게 잊어? 절대로 잊을 수 없지. 이런 던전이 일본으로 옮겨졌을 때 저들은 과연 뭐라고 할지 기대되네.>
전생에 이 던전에 일본 놈들이 붙인 이름은 '유기견묘의 복수'였다.
그동안 한국인이 버린 유기견, 유기묘가 몬스터가 되어 복수를 한다는 것이었다.
말도 되지 않은 이름이었지만 일본 놈들은 그렇게 이름을 붙이고는 조롱을 했었다.
전생처럼 쉽게 조롱하지 못하겠지만 이곳은 정리하는 것이 좋았다.
던전에서 나온 녀석들이 떼로 몰려다니며 피해를 양산했기 때문이었다.
간혹은 하루에 세 번 이상 몬스터가 나오는 날도 있었다.
그래서 이 던전은 24시간 상시적으로 경비를 해야 했었다.
그것도 한두 명이 경비를 서는 것으로는 어림도 없었다.
잊을 만하면 수십에서 수백의 몬스터가 튀어나왔기 때문이었다.
인근에 사람이 살지 못한 것은 당연한 일이었고 그래서 이곳을 떠나 살게 된 사람의 수가 적지 않았다.
쫑! 쪼로로!
쪼롱이가 포르르 앞으로 날아가며 맑은 소리를 냈다.
그 순간 대기실을 보니 꼬물이도 쪼롱이가 날아간 방향을 가리키고 있었다.
쪼롱이와 사냥조들도 던전 덩굴을 잘 발견했었다.
겉으로 드러나는 것은 곧잘 찾았었는데 지금 쪼롱이의 눈에 던전 덩굴이 보인 모양이었다.
쫑!
큰 길을 건너간 쪼롱이가 길가에 앉았다.
"거기에 있는 거야?"
쫑!
쪼롱이야 날아가면 그만이었지만 나는 길을 건너는 것이 쉽지 않았다.
8차선 도로였기 때문에 차를 돌려서 오는 것이 좋을 것 같은데 그러기도 애매했다.
갓길이 없었기 때문이었다.
"그냥 건너가야겠다."
<너무 위험한데?>
"괜찮아!"
아버지께서 봤다면 석 달 열흘 동안 잔소리를 들었을 일이이다.
차가 지나가지 않을 때까지 기다리는 시간도 만만치 않았다.
이런 곳에서의 무단횡단이 얼마나 위험한 것인지 알지만 차가 오지 않는 틈을 타서 도로를 가로질렀다.
<아우! 살벌해. 대변혁 이후에는 도로에 차가 이렇게 많지 않아서 좋은데.>
"대신 도로가 지금처럼 잘 유지되지 않았지."
툭하면 몬스터 때문에 도로가 엉망이었다.
빠른 대처를 위해서 최소한의 도로는 유지해야 했지만 그것만으로도 적지 않은 비용이 들었었다.
그래서 근처에 던전이 있지 않으면 외곽 도로는 거의 방치되었다.
워프게이트가 있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었다.
쫑!
"잘했어."
얼마 전에 도로변의 풀을 제거한 것 같았다.
그래서 던전 덩굴을 더 쉽게 발견할 수 있었다.
"이거 더 적극적으로 찾아다녀야 하는 거 아니야?"
너무 쉽게 발견되자 이런 던전 덩굴이 많을 것만 같은 느낌이 들었다.
<무슨 걱정이야? 내일 비행기 뜨기 전까지 부지런히 다니면 그만이지.>
"그래. 말썽쟁이들만 모조리 일본으로 옮겨두자. 특히 도쿄에 말이야."
전생에 일본에는 다른 나라에 비해 워프 게이트도 적고 좋은 던전도 많지 않았다.
거의 우리나라에서 수탈해 간 것으로 먹고 살았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이번 대변혁 이후에는 일본이 과연 어떻게 나올지 심히 기대가 되었다.
이곳의 던전 덩굴도 주변의 흙까지 충분히 덜어서 스텐 용기에 보관했다.
그리고 잘 담긴 던전 덩굴을 대기실에 보관했다.
<구분해야하는 거 아니야?>
"스텐용기에 스티커 붙여두었잖아. 저기!"
<아! 저런 것은 또 언제 산 거야?>
"해남 가기 전에 들른 마트에서 샀지."
일본으로 무조건 가지고 갈 던전 덩굴이 담긴 스텐 용기에는 검정색 스티커를 붙이고 보류할 것은 노란색 스티커를 붙여두었다.
<저기에 이름도 써놔. 그래야 확실하지.>
"그러지 뭐."
붙이는 위치를 조금씩 다르게만 해도 권능 기억이 있으니 문제될 것은 없었다.
하지만 혹시 모르니 나호가 시키는 대로 이름까지 써두었다.
우리는 천안을 출발해서 비행기에 오르기 전까지 다섯 곳을 더 확인했다.
모두 대변혁의 날 오픈되고 두고두고 문제가 많았던 던전이었다.
다섯 곳을 살폈지만 찾은 던전 덩굴은 단 하나였다.
하나 더 찾은 던전 덩굴도 문제가 많았던 던전이었다.
이 던전은 겉으로 보기에는 아무 문제가 없었다.
그런데 던전에 입장하면 문제가 발생했다.
이 던전은 유독 얻을 것은 없으면서 인명 피해가 많았던 던전이었다.
인명 피해가 많다고 공략하지 않을 수도 없는 것이 던전이다보니 이곳도 관리비용만 들어가는 던전이었다.
일본으로 이식할 두 개의 던전 덩굴을 가지고 비행기에 오른 순간 심장이 두근거렸다.
그저 비행기를 타고 이동하는 것으로 보일지 모르지만 던전을 가지고 국경을 넘는 것이었다.
시스템은 별 말이 없었지만 혹시 문제가 생길 수도 있었다.
나호도 긴장이 되는지 비행기 좌석 앞에 보이는 화면을 주시하고 있었다.
화면에는 우리가 타고 있는 비행기가 어디를 지나고 있는지 나타내주고 있었다.
<이거 떨리네. 평상시에는 쳐다보지도 않던 거였는데···. 어?>
작은 탄성과 함께 나호의 시선이 내 왼쪽 어깨 위로 향했다.
우쭈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