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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의 마나통은 안녕하십니까?-102화 (102/350)

102. 심을 시간

골칫덩어리인 던전을 어디에 심을 것인가는 신중하게 따져볼 문제였다.

쓰레기 버섯 덩굴이 대기실에 자리를 잡지 않았다면 이것이 자리 잡을 곳은 두 군데 중 한 곳이었다.

야스쿠니 신사나 일왕의 거처인 고쿄!

미관상 보기 흉한 것은 물론이고 냄새까지 장난이 아니었고, 덩굴까지 까칠했으니 이곳에 던져주면 딱 좋았다.

그런데 쓰레기 버섯 덩굴은 대기실에 자리를 잡고는 꼬물이라는 이름까지 얻은 소환 식물이 되어버렸다.

지금 대기실에 보관 중인 채 일본에 심겨지기를 기다리고 있는 덩굴은 '유기견묘 던전'이라 불리던 던전이 있던 자리에 자라던 덩굴과 일명 '꽝 던전'이라고 불리던 던전이 있던 자리에 자라던 덩굴이었다.

유기견묘 던전은 계속적인 폭발로 피해를 양산했던 던전이고, 꽝 던전은 폭발하는 일은 거의 없었지만 입장하면 얻을 것은 없고 인명피해는 잦았던 던전이었다.

'아직 고민이야.'

<집사 일왕 거처나 야스쿠니 신사에 심고 싶어 했잖아.>

'그 두 곳에는 다른 것을 심고 싶어서.'

<뭐? 더 좋은 게 있어?>

'적당한 던전이야 차고 넘치지. 지금이 아니라도 있을 거고.'

던전은 대변혁의 날에만 열리는 것이 아니었다.

한 번 열리고는 20년 넘게 지속되는 던전도 있었고, 몇 년이나 며칠 만에 사라지는 던전들도 있었다.

그런 던전 중에는 골칫거리라는 말은 양반인 던전들도 많았다.

<대변혁 이후로 미루려고?>

'미쳤어? 왜 그때까지 미뤄? 선물은 빨리빨리 배달해야 하는 거야.'

<하하하! 그래 선물이지.>

이러고 있으니 악당이 된 것 같았다.

'유기견묘 던전은 덴엔초후에 심을까 생각 중이야.'

<덴엔초후? 도쿄의 강남이잖아. 땅값이 어마무시하다던데···.>

덴엔초후는 서울의 강남 같은 부촌이다.

예전부터 부촌으로 유명했지만 최근 10년 사이 부쩍 집값이 오른 지역이었다.

'코로나 19'라는 세계적인 질병으로 세계 경기가 하락할 때 자연환경이 잘 보존되면서 도심과 가까운 몇몇 곳은 집값이 큰 폭으로 상승했던 적이 있었다.

그중 한 곳이 덴엔초후라고 한다.

그때 이후 도심에 있는 것이라고 믿기 어려울 정도로 자연환경을 잘 보존하고 있는 이곳의 인기는 식을 줄을 몰랐단다.

그곳의 중심은 덴엔초후역!

거기에 유기견묘의 던전을 심으면 그때 우리가 당했던 온갖 조롱을 되갚아줄 수 있지 않을까 싶었다.

<집사! 정말 좋은 생각이다. 거기 정재계 힘깨나 쓴다는 놈들이 많이 사는 곳이잖아. 전생에 우리 국민의 고혈을 쪽쪽 빨던 놈들! 그놈들 집을 잃고 질질 짜는 모습이 볼만하겠어. 으하하하!>

나호가 호탕하게 웃었다.

어떤 사람은 아무 잘못도 없는 사람들에게 폭탄을 안기는 것이냐고 말하는 사람이 있을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전생을 단 하루만 살아보았다면 저런 말은 결코 하지 못할 것이다.

전생을 살아본 나는 단호하게 말할 수 있다.

선량한 일본인은 없었다고.

사실 선량이라는 말을 꺼내는 것 자체에 어폐가 있었다.

초유의 사태!

그리고 생존!

일본인들은 그것을 그들의 정당성을 주장하는 도구로 사용했다.

「일본은 운 좋게 한국이라는 맛있는 먹이가 절반이상 요리되어 있었고, 그것을 맛있게 먹었다.」

「살아남기 위한 선택이었고, 차려진 밥을 먹는 것이 무슨 잘못이냐!」

「밥이 된 너희가 무능한 것이고 어리석은 것이다.」

「차려진 밥상 받은 것이 잘못이냐! 그럼 밥상 엎으라는 소리냐!」

「입장이 바뀌었다면 너희도 우리와 다르지 않았을 것이다.」

「국제관계에서 뭘 기대하는 거냐!」

이 정도로 말하는 사람들은 그래도 양심적인 사람들에 속했다.

「덜 떨어진 한국인은 이런 것에서도 정을 논하냐. 바보 같은 족속이다. 그러니 다시 우리 텃밭이 된 것이다.」

「조센징은 예로부터 핑계가 많았던 민족이다.」

「이쯤 되면 신이 버린 민족, 대변혁이 버린 민족이라고 봐야하지 않나.」

「치료제를 먹고도 입 냄새가 없어지지 않는 유일한 민족이다. 저급하고 변화를 따라가지 못하는 하등한 민족이다.」

「유전학적으로 문제가 많은 족속들이다.」

「한국인은 일본인 발가락 사이의 때보다도 못한 것들이다.」

이런 비난이 주를 이루었고 수탈의 대상이 되는 것을 당연하게 생각했다.

그리고 그것을 은근히 즐겼다.

그래도 저런 생각이라도 있는 사람은 다행이었다.

대다수는 우리에게서 수탈해 간 것으로 호의호식하는 것에 대해 아무런 생각이 없었다.

그저 자신들의 삶에 큰 변화가 없는 것을 다행으로 여길 뿐이었다.

한국인의 고통은 알려고도 하지 않았고 혹시 듣게 되더라도 외면했다.

누군가 말이라도 할라치면 '모르겠네요.', '저와는 상관없는 일이에요.', '관계자에게 말씀하시는 것이 좋겠네요.' 이런 소리나 지껄여 되던 사람들이었다.

던전을 함께 여러 번 돌아 제법 친해진 일본 헌터조차 이런 반응을 보였으니 일반 일본인들은 오죽했겠는가.

이제는 우리가 들었던 말을 그대로 돌려줘볼 생각이다.

'국제 정세의 큰 흐름이다!'

'그리고 그 흐름은 거스를 수 없다.'

이번에 일본은 과연 어떻게 나올까?

항상 그렇듯 순응적으로 나올까 아니면 촛불이라도 들어 올릴까?

아무것도 모르는 양 차린 '밥상이니 드세요.'라고 할까?

심히 기대가 되었다.

<집사! 집사! 무슨 생각을 그렇게 해. 침 닦아! 옆에 아가씨가 이상하게 보잖아. 집사 조금 전에 실실 웃기까지 했어.>

깜짝 놀라 옆을 돌아보니 옆에 앉은 여자가 별 미친놈 다보겠다는 눈빛으로 쳐다보고 있었다.

여자의 눈이 슬쩍 향한 것은 메모지였다.

하트와 기억(ㄱ), 니은(ㄴ)이 여러 개 그려진 메모지와 내 눈을 번갈아 보던 여자가 고개를 돌려버렸다.

고개를 돌리기 직전 얼굴에 떠오른 감정은 약간이지만 혐오였다.

'아니 왜 저래?'

<어휴! 창피해. 침부터 제대로 닦아 도대체 무슨 생각을 그리 깊이 한 거야? 몇 번을 불러도 모르고 말이야.>

나호가 앞발로 제 눈을 가리는 것으로 봐서 내 꼴이 추하긴 한 모양이었다.

재빨리 입가를 닦았다.

침이 흘러나온 것은 아니었다.

아마 생각을 하다 보니 괴상한 소리를 낸 모양이었다.

<그 종이도 치워. 하필 방향을 그리 해놔서.>

나호가 메모지를 가르켰다.

하트와 기억(ㄱ), 니은(ㄴ)을 쓸 때 쪼롱이와 꼬물이에게 보여준다고 방향을 자꾸 틀어서 쓴 것이 화근이었다.

이건 누가 보나 옆 아가씨에게 사랑 고백을 하는 것처럼 보였다.

오해하기 딱 좋은 상황인데 괴상한 소리까지 냈으니···.

여자는 비행기에서 내릴 때까지 내 쪽으로는 고개 한 번 돌리지 않았다.

그러자 조금 기분이 나빠졌다.

'내가 그리 비호감인가? 아닌데? 한 번도 그런 말을 들은 적은 없었는데?'

이제는 자퇴하긴 했지만 대학을 다닐 때도 늘 인기가 많은 편이었다.

얼굴을 보면 웬만한 일은 용서가 된다는 말까지 들었었는데···.

저리 얼굴을 돌릴 정도는 아닌 것 같은데···.

그간 던전에 다니느라 너무 삭았나?

치료수를 꾸준히 먹어서 더 좋아진 것 같은데 착각이었나?

별 생각이 다 들었다.

<어이구! 집사가 이상한 소리를 내서 그러잖아. 원래 멀쩡한 얼굴로 그러는 사람이 더 무서운 거야. 이상하게 생겼으면 그러려니 하지. 멀쩡한 얼굴로 그러니 더 무섭게 느껴진 거라고. 그리고 방금 전 약하지만 살기까지 뿌렸다니까.>

살기를 뿌렸다고 하니 그제야 이해가 되었다.

소환을 거듭하면서 슬슬 사람들이 변하고 있었다.

물론 본인들은 잘 느끼지 못하는 것 같지만 말이다.

전생에 나도 이 시기에 변하고 있다는 것을 느끼지 못했다.

당시에는 집이 망한 것 때문에 정신을 아직 차리지 못한 시기이기도 했지만, 누가 자신이 변하고 있다고 생각하겠는가.

슬슬 변하기 시작하는 사람들은 오로지 마나통을 유지하고 있는 사람들뿐이었다.

아직 변화가 워낙 작아서 누구도 느끼지 못하지만 살기를 가까이에서 느꼈다면 지금 옆자리의 여자와 같은 반응을 보일 수도 있었다.

아마 이 여자도 아직은 마나통을 보유하고 있는 것 같았다.

호리호리하게 생긴데다 균형이 잘 잡힌 몸을 가진 것으로 보아 꾸준히 운동을 하는 사람 같았다.

'아! 미안. 전생을 잠시 생각하느라.'

<얼마나 다행인지 몰라. 대변혁 전까지 공격을 할 수 없는 거 말이야. 간혹 겁이 날 때가 있다니까. 무의식중에 공격할까봐.>

'별 걱정을 다해. 아버지 닮아가니?'

<집사가 전생을 떠올릴 때 자신의 얼굴을 보지 않아서 그런 소리를 하는 거야. 얼마나 무서운 얼굴을 하는 줄 알아? 이해는 하지만···. 그나저나 비행기 내리면 미우라에게나 좀 가보자.>

'왜 보고 싶어?'

<우에에에엑! 네네! 보고 싶습니다. 그것도 미치도록! 우에에엑!>

나호가 토악질을 했다.

저러면서도 미우라를 보러가자고 하는 데는 이유가 있었다.

이전의 세 번의 소환에서 미우라 놈이 보여줬던 모습 때문이었다.

소규모 그룹으로 시험이 치러져서 잠깐 스치듯 본 것이 전부였지만 갈수록 미우라가 강해지고 있었다.

비세계에서 유독 적응을 잘하는 놈이지만 그의 성장세가 무서울 정도여서 한번쯤 밟아줄 필요가 있을 것 같았다.

이곳에서의 일이나 몸 상태가 비세계에서까지 영향을 미치는 것은 아니지만 정신에는 알게 모르게 영향을 미칠 것이 분명했다.

또한 이곳에서도 변화가 있는지도 살펴봐야했다.

전생에는 대변혁 3년 후에 다시 봤을 때 미우라는 완전히 달라져 있었다.

일시에 변했다고는 믿기 어려울 정도로 변해 있었는데 뭔가 계기가 있을 것이 분명했다.

뭐가 그를 변하게 했는지도 확인하고 미우라를 변화시킬 만한 요인이 있다면 그것을 제거할 생각이다.

미우라는 지금 이 상태로 있어주는 것이 여러모로 도움을 주는 것이었다.

평생 내 마나 밧데리로 살아가야하는 놈이니···.

'내일 가자. 오늘은 덴엔초후부터 들르고.'

<거기에 미우라 본가 있지 않아?>

'그렇다고 하더라.'

<집사도 미우라 본가는 본 적 없지?>

'네가 안 봤으니 나도 모르는 거야.'

나호는 대변혁 3년 후부터 내게서 벗어날 수 없었다고 하니 미우라에 대한 것은 거의 공유한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아참! 그렇지.>

우리는 비행기에서 내려 공항에 세워두었던 차를 타고 덴엔초후로 향했다.

이곳은 일반 고급 주택가이지만 은근히 관광객들도 많은 곳이었다.

특히 덴엔초후역 앞은 더 그랬다.

<집사! 어디에 심어? 밤에도 이리 사람이 많은데? 볼 것도 없구만 뭔 놈의 사람이···.>

나호가 혀를 끌끌 찼다.

덴엔초후역의 분위기를 좋아하는 사람은 은근히 많았다.

내 취향과는 거리가 멀었지만 사람의 취향이 모두 같은 것은 아니었다.

"육 개월 간 뽑히지 않아야 하는데···. 어디가 가장 좋을까?"

쫑!

쪼롱이가 대기실에서 소리를 냈다.

이렇게 사람이 많은 곳에서는 쪼롱이라도 대기실에서 나오지 못하게 했다.

"왜?"

대기실을 바라보니 꼬물이가 가장 긴 뿌리로 한 방향을 가리켰다.

"너 어디에 심어야 가장 좋은지도 아는 거야?"

꼬물!

꼬물이가 뿌리를 꼬물거리며 대답을 했다.

그 사이에도 다른 뿌리들은 부지런히 움직이고 있었다.

기억(ㄱ)을 쓰기도 하고, 하트를 만들어 흔들기도 했다.

비행기 안에서부터 계속 저러고 있었다.

노력을 넘어 집착처럼 보이지만 정말 즐거워하는 것이 보여서 말리지 않고 있었다.

알아서 뿌리를 치료수에 담가서 치료까지 하며 공부를 하는데 뭐라고 하겠는가.

머지않아 필담이 가능해질 것이라는 기대를 안고 꼬물이가 가리키는 방향으로 향했다.

뿌리로 가리키는 것이라 여러 번의 시행착오 끝에 꼬물이가 말한 장소는 정말 의외의 장소였다.

하지만 안전하게 육 개월 동안 던전 덩굴이 자랄 수 있는 것은 물론이고 충분한 영양분까지 흡수할 수 있는 곳이었다.

"너 어떻게 이런 것까지 아는 거야? 설마 농사까지 능한 것은 아니지?"

이 말에는 꼬물이라고 대답하지 않는 것이 농사라는 것이 뭔지 모르는 것 같았다.

농사에 대한 것은 다음에 설명해주기로 하고 던전 덩굴을 심기 위해 주변을 살폈다.

당장은 꼬물이가 알려준 자리에 던전 덩굴을 심을 수가 없었다.

주변에 사람이 너무 많았기 때문이었다.

<뭔 사람이 이렇게 많은 거야? 뭔 볼 것이 있다고! 알다가도 모르겠어.>

"이런 분위기를 좋아하는 거겠지. 솔직히 나도 이해하지 못해. 내 취향은 아니야. 여기는 너무 정형화 되어 있어. 나는 조금은 더 자연스러운 것이 좋더라."

<나도! 이런 건 재미없어.>

자신과 같은 생각인 것이 기쁜지 한층 가볍게 허공답보를 펼치는 나호였다.

그 사이 인적이 드물어진 틈이 생겼다.

이제 이 골칫거리를 심을 시간이었다.

두 세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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