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당신의 마나통은 안녕하십니까?-104화 (104/350)

104. 사업제의

이곳에서는 절대로 볼 것이라고는 생각지 못한 사람이 내가 사는 건물 앞에 서 있었다.

<아니! 이 시간에···. 시간이 중요한 것이 아니지. 저놈이 왜 여기에 와 있는 거야? 아니! 그것보다 집사가 여기 사는지는 어떻게 알고 온 거지?>

나호가 목소리를 높이고 빠르게 앞으로 나아갔다.

항상 우아한 허공답보를 하는 나호인데 지금은 상당히 서두르고 있었다.

현재 나로부터 5미터 이내에서는 어디든 갈 수 있기 때문에 나보다 놈에게 먼저 다다른 나호가 놈의 주위를 돌며 살피기 시작했다.

쪼옥! 쪽! 쪽!

꼭! 꼭!

쪼롱이과 꾸루도 대기실 안에서 목소리를 높였다.

함께 했던 시간이 길어진 만큼 미우라 저 놈이 우리에게 어떤 의미인지 정확하게 알고 있는 것이었다.

미우라 에이지!

현재 나이 27세, 금수저가 아닌 다이아수저를 물고 태어났지만 그 가치를 전혀 모르는 놈!

전생에 동아시아를 시작으로 세계 1인자의 자리에 섰던 놈이었다.

그런 놈이 작은 가방을 하나 옆에 메고 바닥을 툭툭 차고 있었다.

풍기는 느낌으로 보아 분명 누군가를 기다리고 있는 것 같았다.

설마 나를 만나기 위해 이곳에 왔을 리는 없다고 생각하고 건물의 입구로 다가서려고 할 때 동시에 두 음성이 들려왔다.

한 음성은 머리에, 다른 한 음성은 귀를 통해 들려왔는데 내게 조금 먼저 인식된 것은 시스템의 메시지였다.

[띠링! 수거할 마나통이 있습니다. 수거하시겠습니까?]

[띠링! 수거할 마나통이······.]

인근에 병원이 있으면 간간이 들을 수 있는 소리였다.

일본에서는 마나통 제거수술이 일반화 되어가는 추세여서 대형 병원이 아니라도 수술하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었다.

그런데 지금 내가 서 있는 곳으로부터 5미터 이내에는 병원은 없었다.

이 소리가 들리게 한 원인을 제공한 것은 아무리 봐도 미우라 놈이 들고 있는 가방이었다.

거기에서 마나통 특유의 냄새가 나고 있었다.

"야! 안 들려?"

대답이 없자 미우라 놈이 비꼬는 듯한 목소리로 다시 불렀다.

"여기는 웬일이냐?"

"뭐? 지금 너 반말한 거냐?"

"야! 그럼 네가 반말하는데 나는 바보처럼 말을 높이냐? 내가 바보로 보이냐?"

미우라 놈은 전형적인 강약약강인 놈이었다.

한 번 굽히고 들어가면 골수까지 뽑으려 드는 놈이니 늘 관계설정을 확실하게 해야 했다.

"너! 너!"

"뭐 어째! 비켜!"

"너! 전직 직장 상사에게 이래도 되는 거야? 이래서 한국인들은···. 지금도 우리 장례식장이 모두 너희 회사 거래처야! 거래처 관리를 이따위로 하는 거 네 사장은 아냐? 나 같으면 당장···."

형식적으로는 나는 여전히 고용인(雇傭人)에 지나지 않았다.

회사를 인수했지만 이전의 사장이 사장직을 그대로 수행하고 있고, 사명(社名)도 바꾸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으그! 징징징! 저놈 레퍼토리는 변함이 없어요. 그리 대단한 일본 놈들은 어떻게 하는지 두 눈 뜨고 똑똑히 지켜볼 테니까.>

놈이 떠들든 말든 지나쳐 들어가려할 때였다.

놈이 불쑥 가방을 들이밀었다.

"네 놈 비결이 이거지?"

<집사!>

나호의 목소리에 긴장감이 어렸다.

그렇지 않아도 메시지를 들을 때부터 은근 가방이 의식이 됐었다.

수거하겠냐는 시스템의 메시지에 거절의사를 표한 것도 그래서였다.

"맞지? 이거지? 이걸 제거해서 냄새가 나지 않는 거지?"

미우라는 큰 비밀을 알아낸 것 같은 표정을 지으며 나를 쳐다보았다.

득의양양한 것이 큰 전투를 승리로 이끈 장수라도 되는 줄 아는 모양이었다.

"그래서?"

"그, 그래서라니?"

이렇게 반응할 것이라고는 생각하지 못했는지 미우라 놈이 당황스러워했다.

<잘했어. 집사!>

나호가 씨익 웃었다.

내 대응이 상당히 마음에 드는 모양이었다.

<그래서 어쩌자고? 요놈!>

나호가 앞발로 놈의 머리통을 후려갈겼다.

영체 상태가 아니고 실체가 있었다면 미우라의 머리는 멀찍이 날아갔을 것이다.

"비켜!"

"야! 아니···."

놈을 피해 건물로 들어가려했더니 손을 뻗어오는 놈이었다.

뱀 대가리가 다가오는 것보다 싫어 슬쩍 손을 피했다.

"사, 사업제의를 하러왔다!"

자신의 손을 거부한 나를 잠시 쳐다보더니 툭 내뱉은 말이었다.

<아닌 밤중에 홍두깨도 아니고 뭔 소리야?>

"······."

사업이라는 소리에 팔짱을 끼고 놈을 보자 말할 기회를 얻었다고 생각하는지 빠르게 제 생각을 쏟아내는 놈이었다.

"사업하자고! 그런 좋은 아이템을 가지고 남 밑에 있을 필요 없잖아! 너 이거 냄새를 지우는 방법을 알고 있는 거지? 내가 도와줄게. 우리 사업하자!"

<우리? 우리이이이!>

나호가 못들을 걸 들었다는 표정을 지었다.

아마 내 표정도 크게 다르지 않았을 것이다.

"아니! 내가 네게 못 해준 것도 없잖아! 사업을 같이 할 수도 있지! 수당도 꼬박꼬박 챙겨줬고! 나처럼 하나하나 잘 챙겨준 사람도 드물어!"

놈의 언성이 높아지는 만큼 말도 장황해지고 있었다.

지나가는 사람들이 흘끔흘끔 쳐다보기 시작했다.

<평상시에 한국인들이 시끄럽다고 개지랄을 하더니 지가 더 시끄럽네. 그리고 당연히 받아야 하는 수당 주고는 생색은···. 집사가 근로계약서 꼼꼼하게 작성하지 않았으면 이런저런 핑계로 주지도 않았을 거면서···.>

나호가 놈의 머리통을 한 번 더 휘갈기고는 속사포처럼 쏟아내는 말이었다.

"그래서 이런 야밤에 찾아온 거냐?"

<저놈에게는 본격적인 활동 시간이지. 낮에는 자기 바쁘잖아.>

밤새 뭘 하는지 낮에 근무할 때는 병 걸린 닭처럼 꾸벅거리는 것이 일상인 놈이었다.

"좋은 아이템이 있을 때는 놓치지 말라고 했다. 누군가 알아내면 금세 널 채갈 텐데 그 전에 잡아야지."

"······."

<집사! 왜 들어가지 않고 저런 놈의 말을 듣고 있는 거야? 저 목소리 듣기도 싫은데.>

'이거 오늘은 복이 제 발로 굴러 들어오는 날인 것 같다.'

나호에게 심상으로 대답을 하고는 입을 꾹 닫고 놈을 보았다.

<집사! 복이라니? 설마 저놈을 보고 복이라고 말한 거야? 내가 잘못 들은 거지?>

'제대로 들은 거 맞아.'

"무슨 방법을 쓰는지 모르겠지만 너는 기술이 있고, 나는 돈과 인프라가 있잖아. 얼마나 좋아. 너도 좋고 나도 좋은 거지."

<어쭈? 정말 의외네. 저놈의 입에서 저런 말이 다 나오고 말이야. 그래도 다이아 수저라는 건가?>

미우라의 입에서 나온 그럴 듯한 말에 나호가 제법 놀란 것 같았다.

사업하는 아버지 밑에서 자란 미우라였다.

늘 기대에 미치지 못하는 아들이라 인정받지 못했지만 하나밖에 없는 후계자이니 오죽 교육을 시켰겠는가.

지금도 죽을상을 하고는 시간마다 찾아오는 각 분야의 전문가에게 교육을 받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

장례식장에 근무하면서는 그래도 많이 줄였다고 하는데도 하루에 한 명 이상의 선생이 찾아오고 있었다.

교육을 시키는 것이 아니라 거의 만들어 내고 있는 꼴이었다.

억지로 주입이 되더라도 아무것도 모르는 일반인과는 비교할 수 없을지도 모른다.

<생각해보면 전생에 저놈이 사업수완이 좋기는 했어. 나쁜 쪽으로 너무 밝아서 탈이었지.>

대변혁 3년 후 장례식장에서 봤던 모습과는 전혀 다른 얼굴을 하고 나타난 놈은 이전의 놈이 아닌 것 같았다.

표정부터 달라져 있었다.

누구도 놈의 진심을 의심하지 않을 정도로 놈은 친절한 친구가 되어 있었다.

또한 하는 일마다 못하는 것이 없고 모르는 것이 드물었다.

재능충이라는 말을 들을 정도로 변한 미우라는 돈마저 잘 벌었었다.

미우라가 손대는 것은 무조건 된다는 말을 누구도 반박할 수 없었으니 놈의 사업수완을 비하할 것만은 아니었다.

이런 생각을 하는 동안에도 놈은 열심히 떠들고 있었다.

놈이 전생이 아닌 현생에서 저렇게 진지하게 뭔가를 이야기하는 것은 처음 보았다.

"이 사업은 지금이 적기야. 빠르게 수술이 진행되고 있잖아. 2, 3년이면 끝날 사업이라고. 나는 3년 본다. 이 사업!"

'제법이네.'

<집사! 같이 하려고? 저놈이랑!>

나호도 상황은 다 파악한 것 같았다.

하지만 심정적으로 받아들이기는 어려운 것 모양이었다.

대답 없이 듣고만 있자 애가 달은 놈이 이런저런 제안을 해왔다.

이건 꼭 되는 사업이라고 생각하는 것 같았다.

"전국에 있는 장례식장을 네가 다닐 필요가 뭐가 있어? 이미 구축된 인프라를 이용해서 이것만 수거해오라고 하면 되잖아. 별짓을 다해도 없어지지 않던데. 그렇다고 어디 묻어버릴 수도 없고···. 일부 비양심적인 기업은 야산에 묻기도 하는 것 같지만 우리 장례식장은 절대로······."

<전생에도 마나통에 관심을 가졌다고 하더니 사람은 역시 변하지 않구나. 집사 없었다면 정말 마나통에 집착했을 놈이야. 빠지면 깊게 파고드는 놈이잖아.>

미우라는 특이한 구석이 많은 놈이었다.

그렇게 키워진 건지 모르겠지만 절대로 일반적인 사람은 아니었다.

"그래서 어떻게 하자고? 네가 모아주기라도 하겠다는 거야?"

반응을 보이자 그것이 기쁜지 냉큼 대답하는 미우라였다.

"비법을 알려주면 더 좋지만 그건··· 알았어. 동업하자고. 너는 기술! 나는 돈과 인프라."

"좋아. 이야기보자. 대신 화장 장례식장 뿐만 아니라 다른 장례식장들 것도 모으는 것으로 하자."

"그거야. 아버지께 부탁하면 어렵지 않지. 마침 아버지께서 이번에 협회장이 되셨으니까."

제 아버지가 장례업 협회장이 되었다는 말을 하며 떨떠름해하는 놈이었다.

여전히 평행선을 걷는 부자관계인 것 같았다.

"그, 그럼 저기 카페에 가서 이야기라도···."

"밝은 날 하는 것이 어때? 변호사 대동하고···."

"벼, 변호사까지? 아! 너는···. 알았다. 그럼 내일 아침 열 시에 우리 장례식장으로···. 아, 알았다. 어디로 오면 되는 거야?"

"여기로 와라. 열 시까지."

"알았다. 가, 간다! 이건 선물이다. 선물일지 모르겠지만"

놈이 내 옆으로 마나통이 담긴 가방을 조심스레 내려놓고는 휙 돌아서 멀어져갔다.

<아우! 지랄 염병! 차라리 욕을 하고 말지. 저건 또 뭐야?>

함께 사업을 하자고 하는 순간부터 볼까지 발그레 붉히는 놈의 모습에 당황한 나호였다.

"미우라 안에 잠자고 있던 여린 소년을 본 것 같지?"

<집사! 정확해! 딱 그런 느낌이야. 저런 놈에게도 저런 모습이 있네. 상상도 못했는데 말이야.>

수많은 세월을 살아왔지만 인간에 대한 세밀한 이해는 부족한 나호였다.

겉으로 보기만 하는 것과 부대끼며 살아가는 데서 오는 간극이었다.

경험은 풍부하지만 간접 경험만으로 채워진 것과 비슷했다.

인생을 책으로 배운 사람 같다고 할까?

"인정받고 싶은 아이인 미우라도 있겠지. 정신연령은 거기에서 멈춰버렸는지도 모르고. 인생은 선택의 연속이라고 하더라. 저놈은 저 얼굴이 아니라 가장 악랄한 얼굴을 선택했지."

<전생에.>

"한 번 그런 놈은 다시 그럴 확률이 높지. 인정받고 싶은 욕구가 강할 테니까."

<아!>

놈이 시야에서 사라질 쯤 돌아보더니 손을 흔들었다.

무시하고 집으로 들어와 버렸다.

<미쳤나? 친근하게 느낀 건가?>

"모르지."

집으로 들어와 바로 대기실을 거실과 연결시켰다.

이렇게 해두면 거실도 넓어진 것 같고 아이들의 활동도 자유로웠다.

반반이는 여전히 나올 수 없지만 말이다.

꼬물!

꼬물!

꼬물!

쪼롱이와 꾸루가 자유로이 거실과 대기실을 오가는 것을 보더니 저도 나오고 싶은 모양이었다.

꼬물거리며 자꾸 나오고 싶다는 몸짓을 했다.

적극적으로는 표현하지 못하고 꼬물거리며 눈치만 보는 꼬물이었다.

"미안하지만 안 돼. 대신 치료수는 마음껏 부어줄게."

감각 수치가 낮아 냄새를 느낄 수 없다면 나오라고 허락을 해줬을 것이다.

하지만 뻔히 느껴지는 냄새를 무시할 수는 없었다.

저 냄새도 마나통 냄새와 마찬가지로 절대로 익숙해지는 냄새가 아니었다.

계속 풍기는 냄새 때문에 두통을 유발하기 때문에 불쌍해도 어쩔 수가 없었다.

밖으로 나올 수 없다고 하자 풀이 죽은 꼬물이가 거의 바닥에 엎드린 채 뿌리로 하트 문양을 그렸다.

<반려견의 애교에 넘어가서 주지 말아야할 것을 주게 된다고 하더니···.>

나호가 고개를 돌려버렸다.

계속 보고 있으면 마음이 약해질 것 같은 모양이었다.

치료수를 듬뿍 그릇에 채워주고 꼬물이와 꼬물이 짝이 흠뻑 젖도록 부어주었다.

이내 쭈욱 치료수를 흡수한 꼬물이가 다시 바닥에 글씨연습을 했다.

어디로 다 들어가는지 방금 부은 치료수가 단 한 방울도 남지 않았다.

바닥까지도 뽀송뽀송해진 상태였다.

치료수를 흡수하고 몸을 조금 더 세우기는 했지만 여전히 몸을 수그린 상태로 공부를 하고 있어서 마음이 편하지 않았다.

<에궁! 다 하나씩은 고민을 안고 살아가는 거야. 다 좋을 수는 없잖아. 꼬물아 너만 아픈 거 아니야.>

꼬물!

그래도 대답은 잘하는 꼬물이었다.

<그래. 예뻐! 꼬물이 저렇게 열심히 하는데 선물 하나 해줘야겠다. 그런데 집사! 내일 당장 만나도 돼? 너무 촉박한 거 아니야?>

"괜찮아. 내일 열 시면 충분해. 내일부턴 적의 손으로 모은 총알을 얻게 되겠다."

자발적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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