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5. 자발적으로
다음 날 아침은 조금 빨리 일어났다.
미리 연락해 둔 변호사를 만나기 위해서였다.
큰아버지 지인이기도 한 변호사는 지난번 회사를 인수할 때도 도움을 준 분이다.
"그러니까 강대한 씨는 이 사업을 앞으로 육 개월 정도 할 생각이라는 말이죠?"
"그렇습니다."
"그렇다면 굳이 새로운 회사를 차릴 필요는 없을 것 같습니다. 지금 있는 회사로도 충분하죠."
기업자문을 주로 한다는 변호사는 업무의 형태를 듣더니 동업보다는 거래 관계를 추천했다.
미우라는 마나통을 전국 장례식장이나 화장장에서 수거를 해오고 나는 그 마나통을 처리해주는 형식을 취하라는 말이었다.
이렇게 하면 굳이 새로운 회사를 차릴 필요도 없고, 회사를 정리할 때 복잡한 문제도 발생하지 않을 것이라는 말이었다.
거기에 더해 미우라와 굳이 독점 거래를 하지 말하는 말까지 했다.
여러 장례업체에 경쟁을 시키라는 말이었다.
독점 계약을 해버리면 차후 거래를 원하는 업체와 거래를 할 수 없는 것은 물론이고 가격책정에서도 불리할 수 있다고 했다.
변호사의 의견을 듣는 것이 나로서도 확실히 이익일 것 같았다.
많은 마나통을 얻을수록 이득이니 굳이 미우라와만 거래를 할 필요가 없었다.
미우라가 가장 먼저 사업제의를 해왔지만 미우라와의 거래가 소문이 나면 찾아올 업체는 차고 넘치게 많았다.
우리나라는 화장장의 대부분을 국가나 지방자치단체가 운영하지만 일본은 민간이 운영하는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그것도 장례식장에 화장장이 딸린 형태가 많고 이런 장례식장이 도심 한 가운데나 주택가에 위치해 있었다.
물론 외곽에 있는 것도 있지만 말이다.
우리는 상상도 하지 못할 일이지만 일본은 이것을 아무도 이상하게 생각하지 않았다.
주택가에 공원묘지가 있고, 멀지 않은 곳에 납골당인 빌딩이 있는 나라였다.
이런 상황이니 일본은 전국망을 가진 장례업체들이 여럿 있었다.
도쿄는 화장(花葬) 장례 주식회사가 거의 장악하고 있지만 그렇다고 다른 장례식장이 없는 것은 아니었다.
화장 주식회사가 전국망도 잘 갖추어졌고 부동의 1위라고 하지만 전국적으로 이에 버금가는 장례업체도 여럿 있었다.
그 업체들도 마나통으로 인한 냄새에 골머리를 썩고 있었다.
물론 이들은 마나통이라고 부르지 않지만 말이다.
미우라의 회사에서 나와서 이런 곳을 부지런히 찾아다니면서 화로 청소를 전담하는 중이기도 했다.
<왜 이런 생각을 못했을까? 미우라도 생각했던 것을···.>
나호가 안타까워했다.
우리가 먼저 생각하고 움직였으면 훨씬 좋았을 것이라는 말이었다.
'미우라 말대로 우린 인프라가 구축되지 않았으니까.'
인프라도 인프라지만 솔직히 이런 발상 자체를 하지 못했다.
그저 직접 발로 뛰는 것만 생각한 것이다.
그럴 수밖에 없었다.
내가 생각하는 열심은 직접 움직이는 것이었고 그것이 가장 확실하다고 생각했다.
서민과 재벌의 차이라고도 생각할 수 있었다.
우리는 늘 직접 움직여서 돈을 벌 생각을 하지만 재벌이나 기업가적인 마인드를 가진 사람은 남을 통해 그리고 돈이 돈을 벌게 하는 데 능한 것이었다.
이번에 그걸 확실히 체감한 것이고···.
변호사와 충분한 상담을 통해 앞으로 어떻게 움직여야 하는지 가닥을 잡고 계획을 모두 정리했을 때 미우라가 변호사를 대동하고 나타났다.
<저놈 봐. 기대되나봐.>
'처음으로 자신이 구상한 사업일 테니까.'
"뭐라고? 동업을 하지 않겠다고?"
"생각해보니 굳이 그럴 필요가 없겠더라고. 네가 그걸 모아와. 그럼 내가 처리해줄 테니. 그럼 깔끔한 거 아니야? 서로 편하지도 않은 우리가 굳이 동업까지 할 필요가 있어?"
"동업을 해야 여러모로···."
"아니 이게 편해. 너는 자체 회사를 차리든 그렇지 않으면 기존 네 아버지 회사에서 추가로 이 일을 처리하든 알아서 하고."
"그럼 너는? 네 사장만 배불려주겠다는 거야? 남자가 포부가 있어야지. 기회가 왔으면 잡을 줄도 알고···."
제 아버지 잔소리는 질색을 하면서 슬슬 말이 길어지는 미우라였다.
"됐고! 그렇게 할 거야? 말 거야?"
"동업을 하지 않는다고 하면 이런 중요한 결정은 네 사장과 해야 하는 거 아니야?"
"그 사장이 나다. 그러니 긴말 필요 없고 본론만 얘기하자."
미우라는 내가 사장이라고는 생각도 해보지 못한 모양이었다.
사장이라는 말을 듣더니 믿을 수 없다는 듯 두 눈이 한없이 커졌다.
그러더니 이내 눈매가 가늘어지고 얼굴이 굳더니 코까지 씩씩 불기 시작했다.
<저놈 왜 저러는 거야? 갑자기?>
'의문의 1패를 당한 것 같은 기분인가 봐. 독립을 꿈꾸는 자신은 여전히 아버지 잔소리 아래에 사는데 나는 보란 듯이 독립한 거잖아.'
<아! 그 1패가 더구나 한국인에게 당한 것이라 더 기분 나쁜 거고?>
'그렇지.'
나호와 심상으로 대화를 하는 사이 미우라의 눈은 바쁘게 돌아갔다.
그러더니 잠시 변호사와 이야기를 하고 오겠다며 카페를 나갔다.
"저 사람이 화장의 후계자군요. 처음 봅니다."
미우라가 자리를 비운 사이 변호사가 꺼낸 말이었다.
"아십니까?"
"기업 자문을 전문으로 하니 얼굴은 모르더라도 정보는 대부분 가지고 있죠. 미우라는 얼굴 보기 힘든 청년으로 유명하죠. 부친이 고민이 많던데. 오늘 보니 감각은 나쁘지 않을 것 같습니다."
"그렇습니까?"
우리가 생각하는 이미지와 전혀 다른 말을 하는 변호사였다.
"사업가들을 만나다보면 감이라는 것이 생기죠. 물론 다 맞는 것은 아니지만요. 저 청년은 기회가 오면 도약할 것 같습니다. 감이 그렇다고 하네요."
<우리가 너무 색안경만 끼고 봤나? 앞으로 더 조심해야겠다. 미우라 놈 각성을 하지 못한다고 해서 끝이 아닐 수도 있겠어. 감각이 좋은 놈이면 위험해.>
'우선은 마나통 수거 대행자로 써먹어보고. 나중에 자신이 한 일의 의미를 알았을 때 과연 어떤 표정을 지을지 궁금하기도 하니까.'
<그건 정말 기대가 되는 일이야. 저놈 성질에 반쯤 미칠게 분명해.>
미우라는 질투가 유난히 많은 놈이었다.
장례식장에서는 화로 청소를 통해서, 이번에는 사업제의를 통해서 마나통을 거의 가져다 바친 꼴이라는 것을 알게 되면 놈은 쉽게 자신을 용서하지 못할 것이다.
더구나 자신이 그토록 싫어하는 한국인을 키워준 꼴이니···.
이야기를 빠르게 정리했는지 미우라와 변호사는 15분 만에 카페로 돌아왔다.
그 이후 이야기는 빠르게 진행되었다.
독점으로 거래를 하고 싶은 미우라와 그렇지 않은 나 사이에서 잠시 실랑이가 있었지만 기술을 가진 나와의 사이에서 미우라는 약자일 수밖에 없었다.
"내가 어리석었어."
도와준 꼴이 된 것이 못내 아쉬운 모양이었다.
"마음에 들지 않으면 지금 그만 두어도 좋아."
미우라가 잠시 도끼눈을 뜨고 날 노려보았다.
하지만 이내 꼬리를 내렸다.
아버지로부터 독립할 좋은 기회를 놓치고 싶지 않은 것 같았다.
우선 미우라가 화장 장례식장의 인프라를 이용해 마나통을 수거해 내게 가져오는 것으로 가닥을 잡았고 비용만 결정하면 되는 문제였다.
"얼마라고? 내가 7이라는 거지?"
가만히 미우라를 쳐다보았더니 다시 미우라가 입을 열었다.
"그럼 네가 7이라는 거야? 아무리 네가 기술을 가지고 있다고 해도 7은 너무 많아."
"많기는 뭐가 많아? 어차피 내가 아니면 처리할 수도 없는데."
"그건 그렇지만. 난 인건비도 나가야 한다고."
"어차피 화장 인프라 이용할 거잖아."
"독립하면 나도···. 그리고 화장 이외의 업체에서도 모을 거라고."
"그럼 화장은 7대 3으로 하고, 그 이외의 업체에서 가지고 온 것은 6대 4는 어때? 너는 수거만 하면 그만이잖아."
사실 돈까지 받으며 마나통을 얻는 것이니 이렇게까지 할 필요는 없었다.
하지만 미우라에게는 뭐든 하나도 그냥 주기 싫었다.
"수거해서 넘기기만 하면 되지만 우리는······."
미우라가 나름의 비용 산출 근거까지 말하며 자신의 몫을 더 요구했다.
"나도 그거 처리하려면 나름의 비용이 들어. 나는 뭐 그냥 처리하겠냐?"
"그, 그래? 어떻게 처리···. 아니 알았다."
<저놈 자꾸 남의 영업 비밀을 가로채려고 하네.>
"7대3, 6대4는 아무리 잘 경영해도 손해가 될 수밖에 없는데···. 3년을 본다고 해도 흑자로 돌아서기 힘들어."
'어쭈! 나름 진지하고 체계적이네.'
오션 28의 자연 치유력은 주변 국가에 비해 일본이 높았다.
그만큼 아직 치유가 되지 않은 사람들의 수술도 늘어나고 있었다.
빠르게 치유가 되는 사람들이 늘어날수록 입 냄새에 부담을 느끼는 것이었다.
아직 수술을 받지 못한 사람 중에는 한국의 독도를 구해 마시는 사람까지 있었다.
치유와 수술로 오션 28에서 가장 빠른 호전을 보이는 나라이기도 했다.
"그럼 전체적으로 6대4로 해. 계산도 편하고 좋잖아. 더 이상의 양보는 없어."
"그럼 다른 곳과는 7대3으로 해."
"뭐?"
"그래야 가장 먼저 사업을 제의한 보람이 있을 거 아니야."
"좋아. 다른 곳과는 6대4로는 하지 않을게."
사실 손 안대고 코 푸는 격이어서 5대5로 나눈다고 해도 나로서는 나쁠 것이 없었다.
놈이 계속 우기면 인심 쓰는 척 5대5로 결정을 짓고 대신 최대한 많은 곳에서 마나통을 수거해올 것을 요구하려고 했는데 의외로 놈이 쉽게 수긍했다.
큰 가닥이 잡고 나자 나머지는 변호사들끼리의 세부 조율이었다.
이미 변호사에게 12월 초까지만 일을 한다고 했기 때문에 이를 감안해서 거래 계약서를 작성했다.
혹여 그때 가서 문제가 생긴다고 해도 대변혁 이후이니 문제는 없지만 뭐든 확실하게 해두는 것이 좋았다.
물론 미우라에게는 12월까지만 한다는 말은 하지 않았다.
이번 계약서에서 내가 가장 중요하게 생각한 것은 다른 것이 아니라 수거한 마나통의 소유문제였다.
나중에 문제가 생길 수도 있어서 내 입장에서는 철저히 하는 것이었는데 미우라는 별종 보듯 쳐다보았다.
<이놈아! 나중에라도 네가 쓸데없는 소리 하지 못하게 하려고 이러는 거잖아.>
나호가 미우라 놈의 뒤통수를 갈겼다.
<이놈 은근히 치는 맛이 있어.>
느껴지는 것도 아닐 텐데 미우라 놈이 마침 뒤통수를 긁적였다.
<아프지? 더 아파라 요놈!>
나호에게 미우라의 뒤통수는 동네북인 것 같았다.
작성된 계약서를 꼼꼼하게 읽고 서명하는 것으로 미우라와의 일은 마무리 되었다.
막상 계약이 체결되고 나자 동업을 하지 않는 것이 오히려 잘한 일이라고 생각하는지 미우라의 입이 귀에 걸렸다.
<저놈은 웃는 것도 보기 싫어. 이것이 놈을 바꾸는 계기가 되지는 않겠지.>
'이 일을 계기로 놈이 얼마나 성장할지는 모르겠지만 사업적으로 재미는 보지 못할 거야.'
나호에게 심상으로 이야기를 하는 동안 미우라는 가볍게 인사를 하고는 카페를 벗어났다.
미우라가 나간 후 변호사와의 일을 마무리한 후 회사로 출근했다.
명목상 사장에게 계약 내용을 알려주었다.
"그럼 기존의 일은?"
사장인 직원이 불안한 눈빛으로 물었다.
이제 자신이 필요 없어진 것으로 생각한 모양이었다.
"제가 직접 하는 것은 보름 정도만 더 하겠습니다. 오히려 사장님께서 기존대로 청소하시면서 이것만 모아주십시오."
마나통을 보여주며 말했다.
"아예! 알겠습니다."
<저 사장도 마나통이 비결인 걸 알았나봐.>
'화로를 가지고 있는 업체들은 대부분 알겠지. 지금까지 모른다면 둔하거나 사업에 관심이 없는 거겠지.'
마나통이 생겨난 지 벌써 1년 6개월이었다.
열심히 회사를 꾸리는 사람은 절대로 모를 리가 없었다.
처리 방법을 몰라서 그렇지 문제의 원인은 다들 알고 있는 것이었다.
이곳의 사장도 마찬가지고···.
<그런데도 아는 척을 한 번도 하지 않았다는 거네?>
'일본 사람들이 그런 면이 좀 있더라. 좋게 말하면 존중이고 나쁘게 말하면 음흉하다고 할까?'
우리 눈에는 응큼하게 보이기도 했다.
속으로 무슨 생각을 하는지 모르니 답답하기도 하고···.
앞으로 보름 정도는 지금처럼 직접 청소를 다니겠지만 앞으로는 각 업체에서 보내온 마나통을 전문으로 처리하는 회사로 거듭나볼 생각이다.
"이걸 모아서 사무실로 가지고 오면 됩니까?"
"그렇습니다."
"주변 사무실에서 말이 많을 텐데···?"
"조금 외곽이나 빈집이 많은 지역으로 옮기는 것도 생각해 보세요."
<사무실까지 옮기게?>
'여기 사장 말대로 여기로 마나통이 들어오기 시작하면 말이 많을 거야. 너도 알잖아. 냄새.'
나호는 마나통 냄새를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다.
모일수록 더 냄새가 진해지기 때문에 사무실 이전은 불가피했다.
어차피 사무실이 굳이 도심에 있을 필요도 없는 회사였다.
"직원을 더 고용해서 전문적으로 모아볼까요? 여기저기 처리하지 못해서 난리던데요."
"좋습니다. 재량껏 해보십시오. 많이 모을수록 성과급도 지급해드리겠습니다."
일본인들이 자발적으로 모아보겠다는데 막을 이유가 없었다.
각성자의 마나통을 빼앗는 방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