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당신의 마나통은 안녕하십니까?-108화 (108/350)

108. 강자

꾸!

꾸루의 목소리가 이렇게 맑고 경쾌하게 들렸던 적이 과연 있었을까?

지금 이 순간 들은 꾸루의 목소리는 영원히 잊지 못할 것 같았다.

<정말! 정말 알아?>

꾸!

꾸루는 자신 있게 왼쪽을 가리켰다.

<으하하! 집사 어서 가자! 드디어! 드디어어어!>

나호가 환호성을 질렀다.

그랬더니 꼬물이가 두 개의 뿌리를 하늘을 향한 채 저도 기쁘다는 표현을 했다.

<하하하! 그래. 좋아! 좋아!>

지금이라면 뭘 해도 이해한다는 표정을 짓는 나호였다.

<집사는 기쁘지 않아?>

벌써 왼쪽을 향해 걷고 있는 나에게 가볍게 허공답보를 하며 묻더니 대답은 듣지도 않고 앞장섰다.

굳이 대답을 듣지 않아도 알겠다는 것이었다.

꼬물?

꼬물이가 궁금한지 몸을 배배 꼬며 눈치를 보았다.

<그놈! 사업 같이 한 놈 알지? 그놈 잡으러 가는 거야. 아주 나쁜 놈이거든. 너도 잘 기억해둬.>

꼬물!

힘차게 대답하는 꼬물이었다.

그런데 그때 쪼롱이가 사냥조들을 불러들였다.

멀리 있는 사냥조는 제외하고 가까이 있는 애들만 불러들인 것 같았는데 모여든 사냥조 전부를 왼쪽으로 보내는 쪼롱이었다.

이것이 우리에게 어떤 의미인지 아는 것 같았다.

'놈이 각성하도록 그냥 둘까도 잠시 생각했었어.'

꾸루가 안내하는 곳을 이동하며 심상으로 말했다.

<전생에 놈이 했던 걸 그대로 돌려주려고?>

'잠시 그런 생각을 했지.'

픽! 픽!

빠르게 이동하고 있었지만 사람을 줄이는 것도 잊지 않았다.

최대한 빨리 이들을 정리해야 했다.

지금 이곳에는 세 개나 네 개의 그룹이 소환된 것 같았다.

이들을 빨리 떨어뜨려버리면 이곳으로 소환된 사람들 중 더 많은 사람이 각성 예외자가 될 것이다.

매번 평가는 이미 각성 예외자가 된 사람은 제외하고 등수를 내는 것으로 알고 있다.

이 등수에서 일정 이하는 각성예외자가 되는 것이니 부지런히 하면 일본 놈들을 한 놈이라도 더 떨어뜨릴 수 있었다.

편의상 그룹을 나누지만 각성 예외자를 가리는 것은 전체 소환자로 순위를 매기기 때문이었다.

픽! 픽! 픽!

<이번에 소환된 사람이 만삼천 명 정도로 보였는데 더 되겠어.>

'내가 보기에는 만오천 명 이상인 것 같더라. 거의 이만 명은 될 거야.'

<네 그룹이 모인 건가?>

자기가 이동된 곳에서 일정 이상을 벗어나기 위해서는 조건이 충족되어야 하면 어쩌나 했는데 다행히 그런 것은 존재하지 않았다.

생각하는 것보다 경계의 범위가 넓을 수도 있지만 말이다.

<사람의 취향이 참 제각각이구나. 물총의 모양이 이렇게 다양할 줄은 상상도 못했네.>

나호가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방금 전 본 물총 모양은 너무 징그러웠기 때문이었다.

픽! 픽!

'너는 어떤 총을 들고 싶은데?'

<나? 나는 검은색 총! 스나이퍼가 쓸 만한 총을 들고 싶어. 저격용으로 좋은 거 있잖아. 한 방을 써도 빵! 좋잖아.>

허공답보를 하다 낮은 포복자세를 취하더니 총을 쏘는 시늉을 하는 나호였다.

저격 총을 든 호랑이!

언 듯 어울리지 않을 것 같았지만 나호가 들면 나름 멋있을 것 같았다.

<집사는 그 총이 맘에 들어?>

'맘에 안들 이유는 없지. 어차피 취향저격이라잖아. 내 취향이 이런가보지. 나도 처음 알았어.'

손에 들린 총은 어릴 적 사달라고 조르던 비비탄 총 모양이었다.

물이 들어가기에는 작은 탄창을 가진 총인데 총알은 계속 발사되고 있었다.

내가 가진 총의 장점은 물이 발사되는 것이 아니고 총알이 발사된다는 것이었다.

맞는 순간 물감이 터지지만 말이다.

모든 사람이 나와 같은 총알일 것이라고 생각했는데 아니었다.

각각의 취향에 따라 총알의 형태도 조금씩 달랐다.

조금 전에 잡은 사람의 총알은 화살모양이었다.

화살촉이 부드러운 고무로 된 것으로 맞으면 그 고무가 터지면서 물감이 나오는 형태였다.

그래도 이렇게 총알이라도 있는 사람은 목표물을 적중시키기가 용이했다.

처음 본 아주머니의 총은 물감이 그대로 발사되었고 사정거리도 길지 않았었다.

벚꽃잎이 발사되지 않은 것이 다행인 총이긴 했지만 ···.

타격점으로 잡아준 자리에 맞으면 사람은 사라지지만 총은 자리에 그대로 남았다.

마음에 드는 총이 있으면 챙길 생각이었지만 지금까지 마음에 드는 총은 없었다.

<꾸루야! 멀리 있는 거야?>

꾸!

<얼마나 멀어?>

세 시간 이상 이동하자 나호가 꾸루에게 물었다.

뀨?

꾸루가 이해하지 못하겠다는 표정을 지었다.

<몇 밤 자야 만날 수 있는 거야?>

뀨?

다시 고개를 갸웃하는 꾸루였다.

덩치는 산만한데 어리숙해서 세상에 내놓으면 사기꾼들이 딱 좋아할 상이었다.

<여기까지 세 시간이 걸렸지? 앞으로 그 이상 가야하는 거야?>

꾸!

<그렇게 몇 번이나 더 가야해?>

답답했는지 이렇게 묻자 꾸루가 자신 있게 대답하기 시작했다.

꾸! 꾸! 꾸! 꾸! 꾸! 꾸! 꾸! 꾸······!

처음에는 꾸루가 대답하는 소리를 세었다.

그럼 거리가 어느 정도 가늠이 될 것 같았기 때문이었다.

그런데 중간에 세는 것을 그만두었다.

꾸꾸거리는 것을 그칠 줄 몰랐기 때문이었다.

'꾸루야! 이렇게 뭔데 어떻게 정확하게 방향을 아는 거야?'

꾸루가 자신 있게 안내를 시작했기 때문에 우리와 멀지 않은 곳에 미우라가 있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지금 대답하는 것을 보니 최소 며칠은 떨어진 곳에 있는 것 같았다.

꾸루 자신이 직접 날아서 우리가 있는 곳으로 왔다면 방향을 정확하게 알 수도 있겠지만 꾸루는 내가 소환하자 대기실로 바로 이동이 되었다.

그런데도 지금 고민도 하지 않고 목표를 향해 이동하고 있는 것이었다.

그러니 궁금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런데 꾸루의 반응이 재미있었다.

당연한 것을 왜 묻냐는 표정을 지은 것이었다.

<전령조라서 그런가? 방향 감각이 떨어지면 전령을 전하기 어려울 거 아니야.>

'그럴지도 모르지.'

막 그런 이야기를 했을 때였다.

사냥조 한 마리가 우리가 가는 방향에서 급하게 날아왔다.

그리고 쪼롱이에게 뭔가를 말했다.

사냥조의 말을 들은 쪼롱이가 내 앞을 가로막았다.

'왜?'

이곳에서는 단 한 방만 맞아도 탈락이기 때문에 아무리 나라도 안심할 수 없었다.

그래서 나무 뒤에 완전히 몸을 숨긴 채 앉았다.

호위를 맡는 새들이 주위로 쫙 펴지더니 경계에 들어갔다.

누군가가 다가오면 바로 알릴 것이었다.

'왜 무슨 일이야?'

소리를 내지 않기 위해 심상으로 물었다.

쪼롱이가 방금 연락을 가지고 온 새와 행위예술을 시작했다.

치열하게 치고 박는 싸움판을 재연한 것이었다.

'앞에 싸움이 났어?'

쫑!

'사람들끼리?'

쫑!

'그럼 그냥 가도 되는데?'

쪼로로로! 쪼로로!

사람들이 있다고 해서 내가 가지 못할 것은 없었다.

그런데 쪼롱이의 반응으로 보아 상당히 격렬한 싸움이 벌어진 모양이었다.

<무식한 것들! 개별 평가라고 분명히 말했는데 벌써 단체를 이룬 사람들이 있는 것 같아.>

몇 번 같이 다니더니 금세 눈치를 채는 나호였다.

사람들은 무리를 짓는 것을 좋아했다.

그리고 지금 사람들이 하는 방식도 나쁘지 않은 방식이었다.

뭉쳐 다니면서 사람들을 처리하고 나중에 자기들끼리 순위를 정해 1등을 만든다면 나쁘지 않은 방법이었다.

그런데 문제는 시스템은 이런 것을 그리 좋아하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일정선까지는 지켜보지만 지나치다싶으면 개입을 하는 것이 시스템이었다.

특히 지금처럼 직접 실적을 쌓아야 하는 시험에서는 개개인이 처리한 사람의 수도 평가 대상이 될 것이었다.

그런데 공동체에 들어가 아무것도 하지 않은 채 있으면 절대로 좋은 성적을 받을 수 없었다.

'무리가 얼마나 되는데? 백 명 이상이야?'

쭈루!

'그렇다면 그냥 가자. 그 정도는 처리할 수 있어.'

너무 많은 숫자의 사람은 한꺼번에 처리할 수 없지만 백 명 미만이라면 자신 있었다.

쪼롱이가 조금 걱정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공동체로 뭉친 사람 중에 제법 강한 사람이 있는 모양이었다.

강한 사람이 있을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을 하자 걱정보다는 기대가 되었다.

지금까지 비세계에서 만난 사람 중에 강하다는 느낌을 준 사람은 단 한 명도 없었다.

의외로 비세계에서 너무 잘 적응을 해서 놀라움을 안긴 것은 미우라가 유일했다.

미우라는 비세계에서는 잡초와 같은 근성을 보였다.

지구에서와는 전혀 다른 모습이었다.

이번에 사업을 제의하면서 조금 다른 모습을 보이기는 했지만 미우라는 지구에서는 늘 의욕 없는 사람이었다.

무기력한 것에서 한 발 더 나아가 모든 것에 관심이 없는 사람!

즐기는 것이라고는 애니와 약한 사람 괴롭히기였다.

그것도 직접 괴롭히기보다는 피곤하고 난처한 상황을 계속 만드는 것을 좋아했다.

그런 것 외에는 관심도 없던 놈이 비세계에 오면 완전히 달라졌다.

또 다른 자아를 숨겨두었던 것처럼 보여서 놈의 성장이 늘 신경이 쓰였다.

그런데 이번에는 놈을 처리할 수 있을 것 같았다.

미우라 이외에 강자라고 할 만한 사람을 또 보게 될지도 모른다는 기대감에 나도 모르게 걸음이 빨라졌다.

한참 그렇게 걸음을 걸었을 때 앞에서 강하게 나무가 부딪치는 소리가 났다.

격렬하게 싸우는 소리였다.

<염병지랄 하는 거 아니여? 총으로 싸우라는데 목검 들고 설치는 것 같아.>

나호의 입에서 구성진 욕이 터져 나왔다.

나호가 저러는 데는 이유가 있었다.

일본인들은 개나 소나 검을 들고 설쳤었다.

마법사로 각성을 한 각성자까지 쓰지도 않을 검을 옆구리에 차고 다녔다.

그것이 도움이 되면 개인의 선택이니 존중하고 넘어가겠지만 도움이 되기는커녕 함께 공략을 하는 동료들에게 폐가 되는 경우가 더 많았다.

그런데도 끝까지 검을 고수했다.

자신들의 피에는 사무라이 정신이 흐른다나 뭐라나.

미우라와 함께 들어온 일본의 헌터들뿐만 아니라 시간이 갈수록 우리나라에서 활동하는 일본인 헌터들이 늘어나면서 이것은 늘 문제가 됐었다.

그래서 나호가 저리 싫어하는 것이었다.

그런데 목검이 부딪치는 소리가 제법 그럴싸했다.

<어랴? 집사 한 가닥씩은 하는 놈들인 것 같은데?>

나호의 귀에도 범상치 않게 들리는 모양이었다.

'그러니 공동체를 이루었겠지.'

소리가 가까워지자 조용히 접근을 했다.

언제부터 공동체를 이루기 시작했는지 모르겠지만 보초까지 세워두고 있었다.

'제법 구색을 갖추었네.'

보초를 서고 있는 사람 뒤로 돌아가 입을 막는 것과 동시에 목에 총을 쏘았다.

권총 모양의 작은 비비탄 물총이어서 참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실제로 사람을 죽이는 것도 아니고 겨우 물총을 쏘는 것인데 몸부림을 치다가 축 쳐지는 느낌은 그리 달갑지 않았다.

그 상태로 잠시 있자 1분 정도 지났는지 그대로 사라져버렸다.

<찝찝하지?>

나호가 내 표정을 읽고는 하는 말이었다.

'어쩔 수 없지.'

할 수만 있다면 당장 손을 씻고 싶었다.

뭔지 모르지만 상당히 불쾌했다.

생명이 꺼져가는 것을 양 팔과 가슴으로 느꼈기 때문일 것이다.

쪼로롱!

쪼롱이가 누군가의 접근을 알렸다.

교대하기 위해서 오는 청년 같았다.

그런데 손에 꽤 큰 고기를 들고 있었다.

<어? 저놈들 어디서 사냥을 했지? 이곳에서는 몬스터를 아직 보지 못했는데?>

'몬스터뿐만 아니라 동물도 없었어.'

작은 풀벌레와 작은 새들은 상당히 보았지만 토끼조차 보이지 않는 숲이었다.

그런데 남자가 들고 오는 고기는 상당히 큰 짐승을 잡았을 때만 얻을 수 있는 것이었다.

'설마 이전 소환에서 가지고 온 건가? 벌써 인벤토리를 산 사람이 있나?'

<에이 그래봤자 가장 작은 크기일 거야. F급! 가로, 세로, 높이 10센티미터! 그것도 가져봤자 몇 개나 가졌겠어. 안 그래?>

'그렇긴 한데 확인은 해봐야겠다.'

인벤토리가 아니라면 어딘가 몬스터나 동물이 있다는 말이었다.

'설마 이곳에 던전이 있는 것은 아니겠지?'

<설마?>

다가오는 남자도 처리했다.

남자의 손에 들린 고기는 늑대고기 같았다.

<집사! 정말 늑대고기 같은데?>

'잡은 지 얼마 되지 않은 것 같은데···. 어디서 잡았을까?'

그렇게 빙 돌면서 보초를 서는 사람들을 처리하며 안으로 들어갈 때였다.

생존방법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