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1. 아이템 거래
애써 치른 시험을 무효로 한다?
재미있는 상상이지만 정말 그런 일이 발생한다면 시스템을 용서하지 못할 것 같았다.
"인생이 달린 시험인데 그렇게 허술하게 하지는 않겠지."
<아니야. 내가 오래 살아본 경험자로 말하는데 이거 이상해. 이거 뭔가 있어.>
나호가 허공에서 앞발을 툭툭 내리치며 말했다.
옛날 영화에서 할아버지들이 장죽을 화로에 툭툭 내리치며 고민에 빠져있는 모습과 아주 흡사했다.
"이상해도 뭘 어떻게 할 수가 없잖아. 확인할 길도 없고."
<집사가 좀 세게 나가봐. 왠지 초짜 같다니까.>
"알았어."
나호의 말대로 이번 소환에서 느껴지는 시스템은 초짜 느낌을 짙게 풍겼다.
힘이 들어갔다고 할까?
익숙하게 보이려고 애를 쓰고 있었지만 어색한 부분들이 느껴지고 정작 중요한 부분에서는 어리바리했다.
잠시만 기다리라고 하고도 한참을 기다리게 하는 것도 마찬가지였다.
다른 때 같으면 진작 대답이 돌아오고도 남을 시간이 지났지만 여전히 답변은 돌아오지 않고 있었다.
"매뉴얼 찾아보고 있는 모양이다."
<매뉴얼? 그래. 일리 있는 말이네. 하하하!>
나호가 웃음을 터뜨리고 있을 때 긴 기다림을 깨고 답변이 돌아왔다.
[띠링! 오래 기다리셨습니다. 부산물 거래를 하시면 사냥을 계속 할 수 있는지에 대한 답변을 드리겠습니다.]
<어? 담당자다!>
조금 전과는 확연히 다른 시스템의 음성이었다.
정말 잠시 자리를 비웠다 돌아온 것 같았다.
[부산물 거래를 하시면 사냥을 하실 수는 있습니다. 하지만 추천하지는 않습니다. 차라리 1등을 하시고 남은 시간을 이용하셔서 던전을 정리하시는 것을 추천 드립니다.]
<어랴? 시스템이 웬일이래? 이런 조언을 다하고?>
"일종의 사과일 수도 있지."
<그래? 좋은 게 좋은 거니까. 그럼 나가야겠네. 아쉽기는 하지만···. 간만에 마나를 벌 수 있는 좋은 기회였는데···.>
나호는 아쉬움이 남는 모양이었지만 나는 그렇지 않았다.
비세계에 온 이상 마나를 벌 수 있는 기회는 차고 넘쳤다.
마나통 저장고의 마나통들도 활동을 시작했고···.
수거와 구매를 통해 획득해서 저장고에 보관 중인 마나통들은 아직 대변혁 전이기 때문에 지구에서는 활동을 하지 않는다.
하지만 이곳, 비세계에서는 아니었다.
푸른빛을 내며 활동을 시작했다.
마나통을 잃은 사람들은 고통을 느끼겠지만 내가 가진 마나통에는 마나가 차오르는 것이었다.
그리고 이곳에 가득 마나가 차면 그 마나들은 그대로 내게 들어왔다.
물론 아직 마나홀과 마나통이 작아서 미량이 쌓일 뿐이지만 백만 개가 넘는 마나통을 보유중이다보니 적지 않는 마나가 모였다.
그리고 이렇게 모인 마나들은 다시 마나통을 구매하는데 사용되고 있다.
더구나 이곳에는 마나통 이외에도 마나를 획득할 만한 것이 있었다.
늑대의 사냥법을 발견하기 전까지는 생각지 못했던 물건, 물총!
그저 장난감 물총처럼 보이는 이것은 단 하나도 같은 것이 없었다.
나름 심혈을 기울여서 만들었다는 증거였다.
모양부터 기능까지 놀라울 정도로 다양한데다 늑대까지 잡을 수 있도록 설계가 되어 있었다.
물론 시스템의 설정이겠지만 어쨌든 평범한 물건은 아니었다.
그리고 지금 이 던전 입구에는 그런 물총이 백 개도 넘게 버려져 있었다.
"부산물 이외에도 너희와 거래가 가능한 거지?"
[그렇습니다. 강대한 님께서 사시고 싶으신 물건은 저희 상정을 통해서 구매하실 수 있고, 팔고 싶으신 것이 있으시면 '아이템 거래'를 추가하시면 파실 수 있습니다.]
현재 나는 인간과는 거의 모든 물건을 거래할 수 있다.
아직 대변혁 이전이라 거래를 하지 못하고 있지만 말이다.
시스템과는 다양한 상점 개방을 통해 어지간한 물건은 다 구입할 수 있었다.
물론 아직 열지 못한 히든 상점도 많지만 지금으로는 과할 정도로 많은 상점을 오픈한 상태였다.
문제는 내가 가진 물건을 시스템에게 파는 것이었다.
전생에는 존재조차 몰랐던 시스템과의 거래창은 현재 '부산물 거래'만 열린 상태였다.
그러니 물총 같은 것을 팔고자 하면 이에 대한 거래창을 다시 열어야 한다는 말이었다.
당연히 공짜로는 열어주지 않을 것이 뻔했다.
<또 마나 달라고 하겠네. 하지만 열어두는 것이 좋겠지?>
"그렇지. 당장 마나가 들더라도 그게 낫지."
[띠링! '아이템 거래'를 개방하시겠습니까?]
마나가 들어올 것이라고 생각하는지 잔뜩 기대하는 것이 느껴졌다.
"개방해야지."
개방하겠다는 말을 끝나기가 바쁘게 마나부터 말하는 시스템이었다.
[띠링! 천 마나를 투자하여 저희와의 아이템 거래를 개방하시겠습니까?]
"잠깐! 천 마나라고?"
[그렇습니다. 천 마나입니다.]
"거래창 개방은 50마나 아니었나?"
[아이템 거래는 천 마나입니다. 천 마나를 투자하셔도 결코 후회하지 않으실 겁니다.]
<와아! 칼만 안 들었지. 강도네. 강도야! 천 마나가 뉘 집 개 이름이야? 천 마나를 모으려고 며칠을······.>
나호가 침까지 튀겨가며 고래고래 소리를 질렀다.
시스템과의 거래 때면 워낙 뒷목 잡을 일이 많기 때문이기도 하고, 일종의 바람잡이 역할을 성실히 수행하는 것이기도 했다.
그런데 지금은 정말 화가 난 것 같았다.
"아이템 거래를 여는 것은 내가 처음인 것 같은데 할인해주면···."
말을 마치기도 전에 시스템이 먼저 말을 했다.
[아이템 거래 개방은 할인해드릴 수 없습니다. 단 최초로 저희와 아이템 거래를 하신다면 이후 거래부터는 영구적으로 10% 상승된 가격으로 매입해드리겠습니다.]
<집사! 시스템을 보면 말이야. 간혹 이해되지 않을 때가 많아. 아이템을 얼마나 쳐줄지 모르겠지만 10% 상승된 가격으로 매입한다면 장기적으로는 시스템이 손해잖아. 그런데 왜 이런 조건을 내걸지? 서로 담당하는 곳이 다르나?>
나호의 말을 분명 들었을 텐데 시스템은 아무런 반응이 없었다.
이에 대해서는 말할 생각이 없다는 뜻이었다.
"좋아. 천 마나를 투자해서 아이템 거래를 개방하겠어."
[좋은 선택이십니다. 후회하지 않으실 겁니다. 띠링! 천 마나를 투자하여 '아이템 거래'가 개방되었습니다.]
<10%에 대한 말은 왜 없어?>
"첫 거래 이후라고 했잖아."
<아! 그렇지.>
"우선 이거부터 처리하고 가자."
군침을 삼키고 있는 먹성 좋은 쪼롱이를 생각해서라도 빨리 도축을 해야 할 것 같았다.
덩치가 큰 늑대를 도축했다.
늑대의 고기와 가죽은 대기실로 보내고 이빨과 발톱도 챙겼다.
워낙 큰 녀석들이어서 이빨과 발톱도 유용하게 사용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전리품을 챙기고 난 후 남은 부산물은 바로 거래를 했다.
이미 챙길 것은 챙긴 이후이기 때문에 열 마리를 팔아서 받은 마나는 고작 1마나였다.
<좀 더 챙겨주지. 짠돌이 시스템!>
1마나에 서운해 하는 나호였지만 1마나가 어디인가.
시스템과의 거래창을 오픈하지 못했다면 얻을 수 없는 마나였다.
"들어가서 먹어도 돼."
쭈루!
먹성이 좋기는 하지만 때와 장소는 다행히 가릴 줄 아는 사냥조들이었다.
침을 좀 흘리고는 있었지만 여전히 자신들이 할 일에 열중하고 있었다.
그런 사냥조들의 호위를 받으며 던전의 입구로 이동했다.
던전 입구에는 각양각색의 물총이 가득 쌓여 있었다.
<이거 아까 본 사람들 수보다 많은 것 같아.>
"주워서 가져다뒀을 수도 있고, 아까 나를 공격했던 것처럼 일부 사람을 처리했을 수도 있지."
<그런가? 그나저나 이거 판다고 생각하니까 여기까지 오면서 잡은 사람들 총 생각이 나네. 마나를 버려두고 온 것이나 마찬가지잖아.>
"괜찮아. 누가 집어가지 않았으면 이따 챙기면 돼."
어차피 시험 장소는 점점 줄어든다고 했다.
사라지는 것이 아니었으니 다시 보게 될 것이었다.
먼저 물총 하나를 집어서 거래를 한다고 생각했다.
그러자 바로 메시지가 들려왔다.
[띠링! 아이템 거래를 하시겠습니까?]
"그래. 이걸 거래할게."
[단 하나만 거래하신다는 말씀이십니까?]
"그래. 두 번째 거래부터 10%추가금을 받을 수 있다고 했으니 처음에는 하나만 팔아야지."
[알겠습니다.]
시스템의 목소리가 밝지 않았지만 상관하지 않았다.
어떻게든 많은 마나를 얻으려는 시스템이지만 적어도 사기는 치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푸른빛이 살짝 감돌더니 이내 물총이 사라져버렸다.
그리고 메시지가 들려왔다.
[띠링! E등급 아이템 거래로 1마나를 지급하였습니다. 상태창을 통해 확인하시기 바랍니다.]
시스템과의 거래에서는 마나나 금으로 받을 수 있는데, 지난 부산물 거래에서 마나로 설정을 해두었더니 아이템 거래에서도 마나로 들어온 것 같았다.
상태창을 확인하니 마나가 7에서 8이 되어 있었다.
물총을 바로 팔 생각이 없었다면 미친 짓을 한 것이나 다름이 없었다.
현재 내 마나홀과 마나통의 크기는 25!
그러니 적어도 40이상의 마나는 늘 유지해야 했다.
그렇지 않으면 자칫 마나고갈로 고생을 할 수도 있었다.
그런데 7마나만을 남기고 거래를 했으니···.
[추가로 거래를 하시겠습니까?]
상념을 깨고 시스템이 물었다.
"여기 있는 모든 물총을 판매할게."
<헤헤. 남의 것도 이렇게 팔 수 있어서 좋다. 집사 그치?>
나호가 공돈을 얻은 것 같은 표정을 지었다.
"남의 것이 아니지. 아까 그 사람들 처리하고 얻은 것이나 다름없지."
<아무튼 좋아.>
[띠링! 208개의 물총을 거래하셨습니다. 평균 E등급의 물총입니다. 물총 가격은 230마나입니다. 230마나에 대한 10%, 23마나가 추가되어 총 253마나를 지급하여드렸습니다. 상태창을 통해 확인하시기 바랍니다.]
"208개면 208마나 아닌가?"
[모든 물총이 1마나는 아닙니다. 1미만인 것도 있고 1을 약간 넘는 것도 있습니다.]
시스템은 1미만의 숫자는 따로 표기하지 않았다.
상태창에 다시 마나가 254가 되었다.
<좋네. 집사 가자!>
볼장 다 봤다는 듯이 앞서 가는 나호였다.
5미터를 벗어나지 못하면서도 주춤거림은 전혀 찾아볼 수 없었다.
"빠진 거 없지?"
쫑!
이미 살폈지만 다시 확인을 하고 던전을 나왔다.
<상시 던전이네. 재미있어.>
던전에서 나온 우리는 정말 빠르게 움직였다.
거의 달리다시피 던전을 누비며 정리를 해나갔다.
물론 미우라가 있을 방향으로 움직이는 것을 잊지 않았다.
현재 미우라는 우리와 3일 거리에 있었다.
사냥조를 미리 보내 알아본 정보이니 확실한 것이었다.
사냥조들에 의하면 미우라는 착실히 사냥을 하고 있는 것 같았다.
미우라도 우리가 있는 방향으로 움직이고 있었는지 이틀이 더 지났을 때 미우라를 만날 수 있었다.
미우라의 몰골은 더 엉망이 되어 있었다.
팔이나 다리에 물감을 묻히고 있는 것으로 봐서 몇 번 공격을 허용하기도 했던 모양이었다.
다행히 시스템이 말한 목, 얼굴, 가슴이 아니어서 살아남은 것이었다.
<집사! 소환수들도 물총에 맞으면 탈날까?>
"그건 왜? 설마 애들에게 공격하라고 하려고?"
<반반이를 보면 놈이 질겁할 것 같아서. 재밌잖아. 곱게 잡으면 재미없지. 확실하게 잡아야지.>
이번 시험은 실력도 실력이지만 운도 많이 작용한 것 같았다.
미우라와 가까운 곳으로 이동됐다면 미우라는 바로 탈락했을 것이다.
하지만 멀리 떨어진 바람에 미우라는 지금까지 생존할 수 있었다.
"소환수들 힘 빌리지 않아도 충분히 힘들게 할 거야."
<그래? 저놈 쪼롱이 무서워했는데 쪼롱이에게 가지고 놀라고 하면 좋은데···. 거기다 반반이까지 따악! 나타나면 지구에서처럼 오줌을 줄줄 쌀지도 모르잖아.>
상상만으로도 즐거운지 나호의 입 꼬리가 승천하고 있었다.
쫑!
음머어어어!
쪼롱이와 반반이까지 나호의 말에 힘을 실었다.
"좋아. 대신 대기실 입구를 저놈 바로 앞으로 할게. 혹시 모르니까."
쫑!
음머어어어!
꼬물!
쪼롱이와 반반이가 대답을 하는데 꼬물이까지 한 수 거들었다.
저도 뭔가 하고 싶은 모양이었다.
<너는 아직 안 돼. 부지런히 커. 그래야 뭐라도 하지. 심심하면 공부하고.>
꼬물이가 지금 바닥에 쓰고 있는 것을 미음(ㅁ)이었다.
서두를 필요가 없기 때문에 나호가 하루에 한자씩 차근히 가르치고 있는 중이었다.
주로 사용하는 뿌리로는 미음(ㅁ)을 쓰고 있지만 다른 뿌리로는 각각 기역(ㄱ)과 니은(ㄴ), 디귿(ㄷ), 리을(ㄹ)을 동시에 쓰고 있는 꼬물이었다.
남은 두 개의 뿌리로는 하트를 만들어 흔들고 있는데 정말 반복 행동을 좋아하지 않고는 할 수 없는 행동들이었다.
더 많은 글자를 배우게 되면 어떻게 할지 기대가 되기도 했다.
그런 생각을 하며 미우라에게 접근을 했다.
그리고 대기실 입구를 미우라 바로 앞에 열었다.
그 순간 쪼롱이가 미우라의 눈앞으로 돌진했다.
연이어 반반이도 육중한 몸을 날렸다.
미우라의 마나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