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2. 미우라의 마나통
"으아아아악! 크어어억!"
쿠우우웅!
미우라가 이곳에서 생활한지 7개월!
놀라운 성과를 보여주고 있었지만 달라지지 않은 것이 하나 있었다.
그것은 바로 비대한 몸이었다.
물론 지구에서보다는 훨씬 날렵해진 것은 사실이었다.
그렇지만 몸집 자체의 변화는 거의 없었다.
첫 달에는 워낙 고생을 많이 해서 살이 쭉쭉 빠지더니 조금 시간이 지나자 원상으로 회복을 한 것이었다.
대신 근육량이 훨씬 늘어서 비만돼지에서 점점 근육돼지가 되고 있었다.
어느 쪽이든 좋아하는 모습은 아니었는데 발라당 넘어지는 것을 보니 앞으로는 더 싫어질 것 같았다.
"어어어! 노랑이! 노랑이이!"
쪽!
자신에게 노랑이라고 하자 부리를 놈의 눈을 향해 내리꽂는 쪼롱이었다.
망설임이라고는 찾아볼 수 없는 행동이었다.
"어어어!"
놈이 재빨리 눈을 가리지 않았으면 놈의 눈은 쪼롱이의 모이주머니로 들어갔을 것이다.
쪽! 쪽! 쪽!
놈의 수난이 시작되었다.
눈은 가려서 겨우 눈알은 지켜냈지만 손등에서는 피가 철철 넘치고 있었다.
쪼롱이의 날카로운 부리와 발톱이 놈의 손을 후벼 파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으아아아악! 으아아악! 노랑이 싫어! 노랑이는 싫다고!"
쪼오옥!
놈은 쪼롱이의 성질을 제대로 건들고 있었다.
쪼롱이가 가장 싫어하는 말을 아무렇지 않게 하면서 살아보겠다고 얼굴을 가리려고 애를 쓰고 있었다.
그렇지 않아도 미운 놈이 욕과 같은 말을 하자 제대로 성질이 난 쪼롱이가 발톱을 한층 세웠다.
<아이고 저놈 아무데나 들쑤시니 저러지···. 바보 같은 놈. 제법 영리하게 움직인다고 생각했는데 입은 여전하네.>
저 입은 지금도 그렇지만 전생에도 늘 문제가 됐었다.
대외적으로는 사람 좋은 한국인의 친구였지만 가까이 있는 사람에게는 그렇지 않았다.
대외적인 모습과 너무 달랐던 것이다.
많은 헌터들이 그랬기는 하지만 그 정도의 차가 유난히 컸던 놈이 미우라였다.
그래서 상처를 받은 사람이 한둘이 아니었다.
그런 생각을 하고 있는 사이 조금 전까지 쪼롱이가 하는 것을 지켜보기만 하던 반반이가 움직이기 시작했다.
반반이가 움직이기 시작하자 쪼롱이가 날아올랐다.
노란 머릿깃을 가진 새가 날아간다고 안심을 하던 놈은 몸을 일으킬 수 없었다.
반반이가 나섰기 때문이었다.
반반이의 공격은 쪼롱이처럼 부산스러울 필요가 없었다.
덩치로 툭 밀기만 해도 치명상이었다.
그런 거대한 덩치를 가진 반반이의 다리가 들렸다.
그리고 그대로 놈을 밟았다.
푸우욱!
있는 힘껏 밟은 것은 아니었다.
그저 장애물을 상관하지 않고 걸어가는 것처럼 밟은 것뿐이었다.
하지만 들려오는 소리는 장난이 아니었다.
<꼬물아! 너 눈 가리고 있지? 귀도 막아야 하는데? 너는 절대로 저런 거 배우면 안 된다! 안 되고말고.>
그런데 왜 일까?
이번에 꼬물이의 반응은 던전에서 보이던 반응과 조금 달랐다.
그때는 눈을 꼭 감은 채 손으로 눈을 가린 아이가 연상이 됐었는데, 이번에는 손가락을 벌린 채 호기심 가득한 눈으로 밖을 보고 있는 아이가 떠올랐다.
투두둑! 뚜둑!
"크어억! 커어억! 이거 뭐어어!"
미우라 놈은 소리도 제대로 지르지 못했다.
반반이가 걸음을 옮기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이번에 반반이가 밟은 곳은 놈의 가슴!
조금 전과 다르지 않은 걸음이었지만 미우라 놈은 더 이상 정신을 차리지 못했다.
반반이의 체중에 눌렸으니 장기(臟器)가 남아난 것이 없었을 것이다.
<무섭네. 쪼롱아. 입맛 그만 다셔. 꼬물이 보고 배울라.>
쭈루!
쪼롱이는 맛있는 먹이를 두고도 주인의 허락이 없어 먹지 못하는 강아지 같았다.
허락만 떨어지면 바로 눈알을 입에 넣을 기세였다.
"더러워. 좋은 거 먹어. 그런 거 먹지 말고."
쫑!
<내 참! 내가 말할 때와 이렇게 반응이 달라도 되는 거야?>
내 말에 대답하며 바로 관심을 끄는 쪼롱이를 보고 하는 말이었다.
"네가 대안제시를 하지 않아서 그래. 그냥 포기하라고만 누구든 싫지."
<그런 거야?>
쫑?
쪼롱이가 고개를 갸웃했지만 꼬물이는 이 상황을 유심히 보고 있었다.
어쩌면 소환수 중에 가장 머리가 좋은 것은 꼬물이일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미우라는 정신을 잃고 쓰러져 있었다.
물총으로만 처리할 수 있다는 제한이 없었다면 진작 숨이 끊어져도 이상하지 않은 상태였다.
가슴이 완전히 내려앉았지만 미우라는 미약하게나마 숨을 쉬고 있었다.
<신기하지만 무서운 일이야.>
조금 전까지 소환수들과 장난스런 말을 주고받던 나호가 미우라의 몸뚱이를 내려다보며 하는 말이었다.
"시스템?"
<무섭잖아.>
"그렇지. 수수께끼고."
시체와 다름없는 미우라의 몸을 계속 내려다보고 있을 생각은 없었다.
물총으로 얼굴을 쏴서 놈을 사라지게 했다.
놈의 물총은 손도 대기 싫어서 바로 거래를 해버렸다.
조금 전까지 미우라 놈이 있었다는 흔적은 몇 방울의 피가 전부였다.
<집사! 미우라 놈, 이번에 떨어질까?>
"글쎄. 놈이 그간 얼마나 잡았는지에 따라 다르겠지."
<미우라를 떨어뜨리는 것은 왜 이리 어려운 거야? 현실에서 죽여 버려야 하나?>
"살인자가 되라고? 공격은 안 된다고 했잖아."
<청부 살인도 있잖아.>
"시스템이 허락하겠어? 그리고 우선 마나통 모으는데 써먹어야지."
<그런가? 불안할 때가 있어. 전생의 놈은 괴물이었으니까.>
세계 1위의 자리까지 올라선 놈이었다.
물론 20년 이상 걸렸지만 세계 1위는 아무에게나 허락된 자리는 아니었다.
재능과 노력, 행운···.
수많은 것이 받쳐줘야 가능한 자리였다.
<맥 풀리지?>
이동을 하려는데 나호가 물었다.
"목적이 미우라 하나였으면 잠깐 그럴 수도 있겠지. 하지만 내 목표는 미우라만이 아니야."
<그럼 뭔데? 대한민국의 무한한 발전?>
"뭐가 그리 거창해? 그런 거창한 꿈을 꾸기에는 너무 평범하다고 생각하지 않아?"
<에이. 평범한 사람들이 역사를 만들어가는 거야. 내가 보아온 세상은 그랬어.>
나호가 과거를 여행하는 듯한 표정을 지었다.
시간의 도도한 흐름을 목격했으니 할 수 있는 말일 것이다.
"그저 가족들과 마음 편하게 살고 싶어."
<거기서 방점은 '마음 편하게'잖아. 집사 성격에 한국이 편하지 않으면 편하지 않을 걸. 그래서 지금 착착 준비하고 있는 거고.>
이미 화순 던전에 보관해둔 것만 해도 장난이 아니긴 했다.
그리고 남은 육 개월 동안 준비될 것은 그것보다 더 많았다.
몇 번의 로또 당첨금 중 절반 이상은 대변혁 이후를 위해 사용될 것이었다.
나머지 금액 중 상당액은 금을 사들이는데 쓰이고 있다.
황금이 나오는 던전들을 열심히 모으겠지만 현재 시중에 나와 있는 금을 모으는 것도 중요했다.
대변혁의 날 몸에 지니지 않은 금은 모두 사라진다.
그건 금광에 묻힌 금도 마찬가지였다.
대변혁 이후 금은 오로지 시스템과의 거래나 던전에서만 얻을 수 있었다.
그러니 열심히 모아서 인벤토리에 보관할 생각이다.
화순 던전에 넣어두면 사라지지 않을 수도 있지만 그것마저 불안했다.
"도울 수 있으면 돕고 살아야지. 대변혁 이후 가장 살기 좋은 나라를 만들어보는 것도 좋잖아."
<정치하게?>
"미쳤어? 그런 건 말도 꺼내지 마! 지긋지긋하니까."
<그건 이상한 놈들이 날뛰니까 그런 거고. 정리하고 나면 정치도 할 만할걸.>
"싫어. 온갖 소리 듣기 싫거든. 거머리처럼 달라붙는 것들도 싫고."
전생을 떠올리면 정치는 곧 죽어도 싫었다.
<꼭 필요한 일이야. 누군가는 해야 하는 일이고. 그렇다면 차라리 집사가 하는 것이 낫지. 미래를 아니까 나아가야 할 방향도 제대로 잡을 수 있고.>
"그래서 안 된다고 하는 거야. 내가 하면 독재가 되기 쉬워."
<집사 성격에? 에이. 내가 사람들 사이의 미묘한 감정은 잘 모를지 모르지만 사람은 좀 보거든. 근데 집사는 절대 독재자는 못될 사람이야. 가시가 걸린 것 같을걸.>
"그러니까 정치는 하지 않겠다는 거야. 목에 가시박고 살 생각 없으니까."
<시끄러운 것들 정리 좀 하고 나면 할 만한데···.>
"그리 좋으면 네가 하든지."
<알았어. 그만할게.>
쫑?
쪼롱이가 어디로 갈 것인지 물었다.
"이쪽부터 정리하자."
쫑!
미우라를 정리하고 나니 마음이 홀가분했다.
놈이 이번 시험에서 탈락을 하게 될지는 아직 불분명하지만 내가 할 최선은 다한 상태였다.
이제 빨리 이곳의 시험을 마치고 세 분이 계시는 그룹으로 넘어가야 했다.
그곳의 물총들도 얻을 겸.
우리는 정말 더 빨리 움직였다.
사냥조들과 반반이까지 나서서 사냥을 도왔다.
그렇지만 소환된 사람들에게 미안한 마음은 들지 않았다.
이들도 소환수를 가지고 있었으면 나처럼 활용했을 것이 분명하니까.
딱 3일이 더 지나고 나자 나를 제외한 그룹안의 생존자는 더 이상 없었다.
사냥조들이 없었다면 숨은 일부의 사람들을 찾는데 시간이 걸렸겠지만 사냥조들의 정찰 덕에 쉽게 마무리할 수 있었다.
마지막 사람을 처리하고 나자 메시지가 들렸다.
[띠링! 축하합니다. '나 잡아봐라'의 1위가 되셨습니다.]
시스템이 '나 잡아봐라'를 말할 때 몹시 못마땅해 하는 것이 느껴졌다.
게임 이름이 무척이나 마음에 들지 않은 것 같았다.
확실히 소환 초반의 시스템과는 다른 것 같았다.
[강대한 님께서 속한 그룹의 시험이 종료되었음을 확인합니다.]
[강대한 님께서는 그룹 내의 1위임과 동시에 인류 전체에서 가장 빠르게 1위를 차지하셨습니다. 또한 가장 많은 사람을 정리하셨습니다. 이에 대한 보상을 산정 중입니다. 잠시만 기다려주십시오.]
지금까지의 소환에서 단 한 번도 1위를 놓친 적이 없었다.
비세계에서 처음 던전에 입장할 때 입장 순위에서 조금 밀리기는 했지만 그건 성적에는 큰 영향을 끼치지 않았다.
[띠링! 보상 산정이 완료되었습니다. 7회차 소환에서 1위를 하셨기 때문에 이번에도 발현율 5%를 추가로 지급하여 드렸습니다. 확인하시기 바랍니다.]
상태창을 확인하니 발현율이 5% 상승해서 '마나통 25 (발현율 35%+100%)'라고 기록이 되어 있었다.
발현율 100%도 어마어마한데 추가로 35%를 더 가지게 된 것이었다.
지금 상태로 대변혁이 일어난다고 해도 무서울 것이 없었다.
전생에 60%만 되도 결코 적지 않은 발현율이었고, 70%가 넘으면 월등하게 높은 것이었다.
80% 넘은 사람은 세계적으로도 몇 되지 않았다.
그런데 내 발현율은 자그마치 135%였다.
이대로 마지막 소환까지 끝내게 되면 160%의 발현율을 가질 수도 있었다.
물론 행운이 따라줘야겠지만 말이다.
시스템의 보상은 발현율 하나로 끝나지 않았다.
[이번 시험에는 1위를 하면 특별한 보상을 지급하기로 약속이 되어 있었습니다.]
이 말을 할 때도 '나 잡아봐라'를 언급할 때처럼 떨떠름한 표정을 짓고 있을 것만 같은 목소리였다.
마치 신입이 저지른 실수들을 처리하는 직장상사 같은 느낌을 풍겼다.
[약속한 것이니 지급하여드리겠습니다.]
시스템의 말과 함께 갑자기 내 손에 종이 한 장이 쥐어져있었다.
<마술인가? 신기하네. 뭐라고 쓰여 있어?>
"소원권이야."
소원권이라고 주어진 것은 평상시 시스템이 주는 것들과는 너무 달랐다.
이건 누군가가 종이 귀퉁이를 잘라 성의 없이 끄적거린 것으로 보였다.
여러 가지를 고려해 만든 것이 아닌 장난으로 만든 물건!
아무리 봐도 그 이상은 아닌 것 같았다.
<소원권? 대변혁이 일어나지 않게 해달라고 하면 그것도 되나?>
"제약이 붙어있어. '당장 사용할 것. 한 번 뱉으면 주워 담을 수 없음. 소원이라고 꺼낸 것이 불가능한 것이면 소원권 사라짐. 그룹 내에 속한 것이면 소원 성취 가능성 향상.' 이렇게 쓰여 있어. 그것도 삐뚤빼뚤한 글자로."
소원권을 나호가 보기 좋게 보여주었다.
<뭐야? 이게 시스템이 준 거라고? 우리 꼬물이가 써도 이것보다는 낫겠다. 이거 우리 집사를 드문드문 보는 거 아니야? 소원이라고 꺼낸 것이 불가능하면 사라진다니···. 그럼 이게 무슨 소원권이야?>
이런 보상은 처음이었다.
앞뒤 논리가 어긋나 있지만 여기에 적힌 대로가 아니면 사라질 것이 분명했다.
잘 생각해서 소원을 말해야 했다.
<집사! 뭐 달라고 할 거야?>
"지금 말하면 소원을 말한 것이 될 수도 있어."
<아! 그럼 심상으로 말해야겠네?>
"잠깐만 생각 좀 할게."
<알았어. 조용히 있을게.>
나호와 소환수들이 조용히 앉아 나만 쳐다보고 있었다.
움직이는 것은 꼬물이 밖에 없었다.
응원을 하고 싶었는지 하트를 만들어서 사정없이 흔들고 있었다.
평범한 뿌리였다면 몇 번 부러지고도 남았겠지만 꼬물이는 그럴 일이 없었다.
종이에 적힌 것을 읽으며 소원으로 뭘 선택하는 것이 가장 좋을지 생각했다.
'당장' 선택해야 하고 '그룹' 내에 있는 것!
늑대가 나오는 던전도 얻으면 좋지만 그곳에 사는 늑대는 물총으로만 사냥할 수 있었다.
이곳에서는 세 마리를 잡을 때마다 총알이 자동으로 채워졌지만 소환이 끝나면 어떻게 될지 알 수가 없었다.
더구나 던전을 가지고 가려면 대기실에 넣을 수밖에 없는데 대기실에는 세 개의 던전만 심을 수 있었다.
사냥이 불확실한 던전을 옮길 수는 없었다.
그렇다면 얻을 것은 이것이었다.
"미우라의 마나통을 줄 수 있나?"
아버지의 마나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