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5. 가지 마?
"으악!"
정확히 목에 물총을 맞은 사람이 쓰러졌다.
<어우! 역시 평범한 총이 아니네.>
어머니께서 가지고 계시는 총은 평범한 물총이 아니었다.
건틀렛 형식으로 된 총으로 휴대가 매우 편한 것이었다.
더 좋은 것은 한 번에 네 개의 총알이 나간다는 점이었다.
놀라운 점은 이 네 개의 총알이 나가는 것을 한 번 쏘는 것으로 인식해 준다는 것이었다.
그래서 조준이 정확하지 않아도 상대를 처리할 수 있는 장점이 있었다.
적에게 동시에 여러 명이 공격하는 것 같은 착각을 줄 수도 있었다.
픽!
"으어어억!"
"으아아악!"
픽!
"공격이다! 아아악!"
"숨어! 찾아!"
<총소리도 크지 않고 좋네. 그런데 밤에는 좋지 않겠다.>
나호가 어머니 총을 보고 한 평가였다.
어머니의 물총은 여러 장점이 있지만 큰 약점이 하나 있었다.
총알이 크고 은색을 띠고 있다는 점이었다.
햇살이 강한 낮에는 크게 문제가 되지 않는데 밤이라면 날아오는 총알이 너무 눈에 잘 띈다는 단점이 있을 것 같았다.
장소를 조금씩 옮겨가면서 총을 쏘시던 어머니는 잠시 총을 쏘지 않은 채 옆으로 계속 이동을 하셨다.
적에게 혼란을 주기 위한 것 같았다.
쫑!
그때 쪼롱이가 신호를 보냈다.
'알고 있었어. 어머니도 눈치를 챈 것 같고.'
처음 세 발까지는 쉽게 허용을 한 사람들이 몸을 낮추며 엄폐물을 이용해 몸을 감추었다.
그런 사람들 중 한 사람이 어머니가 계신 방향으로 총부리를 겨누고 있었다.
남자가 들고 있는 총은 엽총을 닮아있었다.
사냥에 사용되는 엽총처럼 총알이 사방으로 퍼지는 것이라면 위험할 수도 있었다.
다행히 어머니께서도 남자를 발견한 상태였다.
픽!
팡!
어머니의 총과 남자의 총이 거의 동시에 발사되었다.
순간 심장이 덜컥했다.
급하게 어머니를 먼저 확인했다.
어머니께서는 몸을 완전히 바닥에 붙이고 얼굴을 완전히 가린 상태였다.
다행히 단 하나의 총알도 어머니를 맞히지는 못했다.
하지만 어머니 바로 앞의 바위가 아니었으면 큰일 날 뻔했다.
픽!
파앙!
"으아악!"
남자가 다시 총을 쏘았지만 총알이 사방으로 퍼지기도 전에 뒤로 넘어지고 말았다.
내 총에서 발사된 총알이 남자의 미간에 꽂혔기 때문이었다.
다시 어머니께서 계시는 방향으로 조준을 하는 남자를 향해 방아쇠를 당겼기 때문이었다.
"고마워. 아들! 저 사람이 무서워서 그동안 접근하지 못했거든. 저런 총은 너무 사기 아니니?"
작은 목소리로 말씀하셨지만 생각보다 목소리에 여유가 느껴졌다.
<어머니는 괜찮으신 것 같네.>
'어머니께서는 이번 시험에 너무 많은 의미를 부여하지 않으시는 것 같아. 서바이벌 게임 정도로 생각하시는 것 같기도 하고.'
<차라리 그게 낫기는 하지. 아버지는 너무 무겁게 생각하셔. 뭐든.>
나 못지않게 아버지를 잘 아는 나호였다.
남자를 처리하고 나서는 어렵지 않았다.
이 공동체의 구심점은 남자였던 것 같았다.
남자가 사라지고 나자 당황하는 사람들을 처리하는 것은 어른과 아이의 싸움 같았다.
쉽게 정리를 끝내고 이들이 사용했던 총을 한 군데로 모았다.
총의 개수는 스물두 개였다.
"이거 남의 것은 사용할 수도 없던데 왜 모아두었지?"
"실험해보셨어요?"
"해봤지. 그럼."
<역시! 어머니!>
나호가 놀랍다는 눈으로 어머니를 쳐다보았다.
쫑!
쪼롱이가 어머니의 어깨에 앉으며 애교를 부렸다.
"이런 녀석 한 마리 얻으면 좋은데···."
"나눠드릴 수 있으면 좋은데 죄송해요."
"죄송은 무슨. 이렇게 도움 받는 것만으로도 고맙지."
어머니께서 자신 옆에 붙은 다섯 마리의 호위조를 둘러보시며 말씀하셨다.
쪼롱이는 시키지 않아도 이런 것을 알아서 잘 챙겼다.
비세계에서 만나면 한 분 당 다섯 마리의 새를 붙여서 호위를 하게 하는 것이다.
새들의 호위여서 별 것 없을 것 같지만 이 새들은 사냥조들이었다.
사람 한 명 정도는 작정하면 가볍게 죽일 수도 있는 녀석들이어서 이들의 호위는 상당히 도움이 되었다.
"든든해. 특별히 골라서 붙여준 것도 고맙고."
쫑!
어머니께서 쪼롱이를 보고 말씀하시자 쪼롱이가 바로 대답을 하며 기쁨을 표현했다.
자신의 마음을 알아주는 것이 좋은 모양이었다.
어머니 옆에 붙는 아이들은 항상 같은 새들이 붙는데 세 마리는 쪼롱이보다 조금 더 큰 애들로 근접경호를 한다.
그리고 두 마리는 덩치가 큰 애들로 조금 떨어진 곳에서 경호를 하고 있었다.
다섯 마리의 호위조는 보기만 해도 든든했다.
이 애들은 잘 훈련이 되어 있어서 꼭 필요한 일이 아니면 함부로 나서지 않는 것도 큰 장점이었다.
하지만 호위대상인 어머니께서 위험하시면 과감하게 움직이기고 하는 녀석들이었다.
조금 전에도 어머니께서 맞을 것 같았으면 분명 나보다도 빨리 움직였을 것이다.
호위조들은 안전하다고 판단했는데 아들의 눈엔 위험하게 보여 먼저 움직였을 뿐이다.
어쨌든 사람 수 보다 많은 총을 시스템과 거래해서 마나를 얻었다.
이전 그룹에서 얻은 마나만 해도 이만이 넘었는데 이곳에서도 적지 않은 마나를 얻을 수 있을 것 같았다.
픽! 픽! 픽!
꼭 필요할 때만 도움을 주면서 어머니의 시험을 도왔다.
그러다 던전을 발견했다.
이 던전에는 늑대가 아닌 여우를 닮은 몬스터가 살고 있었다.
<이런 종은 처음이네.>
꼬물!
그런데 이 던전에 사는 여우를 보자 꼬물이가 반응을 보였다.
<왜? 공부 열심히 하고 있으라니까.>
나호가 꿀이 뚝뚝 떨어질 것 같은 목소리로 말했다.
요즘 나호는 꼬물이를 유독 예뻐했다.
그럴 만도 한 것이 꼬물이가 워낙 공부를 열심히 했다.
사람이라면 쉬엄쉬엄하라며 책을 빼앗을 만큼 공부에 열중하고 있었다.
그룹을 넘어온 지 사흘 꼬물이는 어느새 치읓(ㅊ)을 익히고 있었다.
날마다 한 글자씩만 가르치려고 했는데 학구열 때문에 조금씩 더 익혀서 이제 내일모레면 자음은 다 익힐 것 같았다.
꼬물!
다른 때는 그러지 않던 녀석이 자꾸 여우에게 관심을 보였다.
<왜 그래?>
ㄱㅈㅁ
나호의 물음에 꼬물이가 바닥에 쓴 자음이었다.
<집사! 이 녀석 좀 봐! 바닥에 글자를 썼어. 이거 우연의 일치일까?>
"글쎄. 하고 싶은 말을 쓴 거야?"
꼬물!
<'ㄱ','ㅈ','ㅁ' 이 뭘까? 가자미? 혹시 가지 마?>
꼬물!
<너 가지 말라고 한 거야?>
꼬물!
꼬물이는 대기실에서 나오지도 못하는 데도 신기하게 아는 것이 많았다.
던전 덩굴도 잘 발견하고 살기도 잘 느꼈다.
지금도 살기를 느낀 것 같았다.
하얗고 여린 뿌리를 내놓고 있어서 위기를 잘 감지하는 것인지···?
"나가야 하는 거니?"
"아니에요. 어머니. 안쪽에 좀 더 큰 여우가 있는 모양이에요."
"지난번 던전보다 위험하려나?"
비세계에서 이미 세 분과 던전을 돈 적이 있었다.
그래서 어머니께서도 던전에 대해 일반적인 것은 잘 알고 계셨다.
"아무리 높아도 E급은 넘지 않을 거예요."
"그런데 우리 여기 있어도 되는 거니?"
"어머니 정도면 절대로 떨어지지 않을 거예요. 차고 넘치죠. 그룹 1등에게도 특별한 상이 있다면 더 잡겠는데 그게 아니니까 차라리 마나를 버시는 것이 나아요."
"네가 그렇다면 네 말을 들어야지. 우리 아들 말이니."
그룹별 상위 성적에게도 뭔가를 준다면 시험이 끝나는 순간까지 최선을 다했을 것이다.
하지만 그런 일은 없었다.
그래서 마나를 벌려고 하는 것이다.
나만 생각한다면 이 그룹의 시험도 빠르게 종료를 했을 것이다.
이 그룹의 시험이 종료가 되도 이번 시험은 한 달이라는 시한이 있기 때문에 나는 바로 소환이 해제되지 않는다.
이곳에 남아서 남은 시간동안 예전처럼 던전을 돌 수도 있는 것이었다.
솔직히 그렇게 홀가분하게 혼자 움직이는 것이 더 많은 것을 얻을 수 있다.
하지만 그렇게 하지 않을 생각이다.
던전 하나 정도는 어머니와 함께 클리어를 함으로써 어머니의 마나통 성장을 돕고 마나도 모으기 위해서였다.
대변혁 이후에 거래창을 통해 내가 얻은 마나를 어머니께 나눠드릴 수도 있지만 조금 더 빠른 성장을 위해서는 어머니께서도 비세계에서 각성을 하실 수 있도록 도와야 했다.
픽! 픽! 픽!
어머니께서 세 발로 여우 다섯 마리를 잡으셨다.
날아간 총알이 열두 개였기 때문이었다.
"정말 탄력적이네. 고무 같아."
어머니께서 겁도 없이 잡힌 여우를 만지셨다.
"징그럽지 않으세요?"
"징그럽기는. 예쁘기만 하네. 상처가 하나도 없어서 그러나?"
물총으로 쏴서 몬스터를 잡으면 피를 흘리지 않았다.
그래서 죽었다는 것을 확실히 알기 어려웠다.
축 늘어지면 죽었다고 봐야 하는데 이곳의 몬스터는 총알이 어디에 맞든 맞기만 하면 쓰러지고 그대로 숨이 끊어졌다.
"도축을 하면 가죽이 완전히 달라져요."
"정말?"
이곳의 여우도 가죽이 고무처럼 탄력이 있고 몸 전체가 까맸다.
하지만 늑대가 그랬던 것처럼 도축을 하면 달라질 것이 뻔했다.
"도축!"
다섯 마리 여우의 몸에 푸른빛이 감돌더니 순식간에 도축이 이루어졌다.
살은 살대로, 가죽은 가죽대로, 이빨과 발톱 등의 부산물은 부산물대로 정리가 되어 바닥에 놓여 있었다.
"언제 봐도 신기해. 세상이 변하면 정육점들은 어떻게 하니? 이렇게 말끔하게 정리하지는 못할 텐데."
"직접 해체가 필요한 경우도 있으니까 괜찮아요."
"그게 몇 번이나 되겠니? 다들 도축 스킬을 살 텐데."
"금액 부담이 있어서 쉽지 않아요."
"그래? 그 세상도 만만치 않겠구나. 그런데 정말 가죽이 변했네. 이 가죽 지금 가져다 팔면 최고가격으로 사려고 하는 데가 많겠는데?"
"멸종 위기종을 잡았다고 오해받을 것 같은데요?"
"멸종 위기종이라? 재미있는 발상이기는 하네. 멸종을 시켜야 하는데 멸종 위기종이라니···."
어머니께서 웃음을 감추지 않으시며 말씀하셨다.
도축이 된 가죽은 조금 전과는 완전히 달랐다.
털이 촘촘하고 고운 것이 최상품 여우가죽보다도 좋아보였다.
여우 사냥은 쉬웠다.
곧 바로 다섯 마리를 더 잡아 도축을 했을 때 시스템의 메시지가 들렸다.
[띠링! 열 마리의 몬스터를 잡으셨습니다. 더 이상 몬스터를 잡으실 수 없습니다.]
이전 던전에서 들었던 말이었다.
그래서 다시 물었다.
"잡은 몬스터를 시스템과 거래한다고 하면?"
[강대한 님께서 무얼 노리고 하시는 말씀이신지는 알겠지만 지금도 같은 말씀을 드릴 수밖에 없습니다. 이 그룹의 시험을 끝나고 난 후 던전을 클리어하시는 것이 강대한 님께 유리합니다.]
"그래?"
"대한아. 네게 좋다면 여기서 그만 하자. 엄마 잘 성장하고 있으니 걱정하지 말고."
"잠시만요. 내게는 유리하지만 어머니께는 여기서 더 사냥을 하는 것이 낫지 않나?"
[이곳은 이번 소환에서 먹거리를 제공하는 곳이어서 마나를 거의 지급하지 않습니다.]
<그럼 진작 말을 할 것이지···.>
어머니의 성장을 위해 던전에 더 머무르려고 했는데 마나를 지급하지 않는다면 나가는 것이 좋았다.
사냥에서 마나 지급이 거의 없다면 마나통을 자극하는 것도 거의 없기 때문이었다.
던전을 나와 계속 정리를 했다.
우리가 있는 숲은 점점 좁아지고 있었다.
<던전 다 사라져버리는 것은 아니겠지? 시험이 끝나고 난 이후에도 찔끔 마나를 주는 것은 아니겠지?>
"시스템이 거짓을 말하지는 않으니까."
쪼로로롱!
그렇게 사냥을 하는데 쪼롱이가 신호를 보냈다.
큰아버지와 거리가 가까워지고 있는 것 같았다.
이곳에 오고 난 후 새 몇 마리를 보내 큰아버지를 찾게 했다.
그리고 큰아버지와 최대한 멀리 이동하며 정리를 했다.
아직까지 큰아버지께서도 잘 하고 계시는 것 같았다.
"이쪽으로 움직이면 되겠네."
어머니께서도 쪼롱이의 신호를 보시고 큰아버지와 멀어지는 쪽으로 방향을 잡으셨다.
그렇게 움직이자 도울 일은 많지 않았다.
하지만 옆에 있는 것만으로도 어머니께서 많이 든든해 하셨다.
그룹을 이동해 어머니를 도운지 일주일이 되었을 때 이 그룹의 시험도 끝이 났다.
이 시험의 1등은 어머니나 큰아버지는 아니었다.
큰아버지께서는 그룹 내에서 10위 안에는 드신 것 같고, 어머니는 4위를 하셨다.
10명 만 남았을 때 더 이상 개입을 하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이곳이 일본이었다면 악착 같이 어머니를 1위로 만들었겠지만 한국에서는 그럴 필요가 없었다.
이 그룹의 1위가 결정되자 다시 메시지가 들렸다.
[띠링! 강대한 님께서 계신 그룹의 시험이 종료되었습니다. 하지만 다른 그룹의 종료까지는 아직 남은 시간이 있습니다. 남은 시간 동안 던전을 클리어하시겠습니까?]
"좋아."
늘 남은 시간동안 사냥을 해서 마나를 모았더니 이번에는 바로 던전행을 물어왔다.
나쁘지 않은 제안이어서 흔쾌히 동의했다.
[던전으로 이동합니다. 던전을 클리어하시면 특별한 선물을 받으실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위험이 도사리고 있으니 각별히 주의하시기 바랍니다.]
시스템이 이렇게 말을 하는 순간 꼬물이가 다시 바닥에 글을 썼다.
ㄱㅈㅁ
복수의 맛