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6. 복수의 맛
ㄱㅈㅁ
ㄱㅈㅁ
ㄱㅈㅁ
꼬물이는 제 뿌리가 닿는 모든 곳에 똑같은 말을 써넣고 있었다.
아버지께서도 하셨던 말씀을 반복해서 잘 하시니 아버지께 소개를 하면 서로 잘 통할 것 같았다.
<꼬물이 녀석 사람 불안하게 하는 재주가 있네.>
꼬물이가 그것이 아니라고 뿌리를 가로젓고 있었다.
<알았어. 공부해.>
"직접 던전으로 이동하면 되는 거야?"
분명 던전으로 이동을 한다고 했는데 아무런 반응이 없어서 물은 것이었다.
[3분후 던전으로 이동하겠습니다. 준비하시기 바랍니다.]
다른 사람이면 모르지만 나는 언제든 옮겨질 준비가 되어있었다.
전생부터 몸에 밴 습관이었다.
오래 헌터 생활을 하면서 자연스럽게 익히게 된 것들이었다.
정확히 3분이 됐을 때 번쩍하더니 던전의 입구로 이동이 되어 있었다.
"여기는 어디지?"
일곱 번째 시험을 치르는 동안 본 던전들과는 완전히 다른 던전이었다.
이번 소환 중에 본 던전은 모두 던전 입구에 던전 덩굴이 없었다.
그런데 이곳에는 양쪽으로 던전 덩굴이 아주 제대로 자라고 있었다.
<집사! 이거 잠시 전생에 와 있는 것 같아. 추억 돋네.>
두 번째 소환에서 이렇게 제대로 자란 던전 덩굴이 뒤덮은 던전에 입장해본 적이 있기는 했다.
하지만 그 이후에 본 던전들은 하나같이 성장 단계에 있는 던전 같았다.
그런데 이 던전은 완성형에 가까웠다.
던전의 입구에 접근하자 전생에 항상 그랬듯이 덩굴손이 뻗어왔다.
그런데 그 순간 생각지도 못한 일이 일어났다.
꼬물!
뻗어오는 덩굴손을 꼬물이의 작은 뿌리가 쳐낸 것이다.
꼬물이의 작은 뿌리에 닿은 덩굴손은 깜짝 놀란 강아지나 고양이처럼 줄행랑을 놓았다.
하지만 입장하는 사람에게 다가오는 덩굴손은 한두 개가 아니었다.
하나의 덩굴손이 한 사람을 꼼꼼히 살피는 형식이 아니라 수십 개의 덩굴손이 동시에 살피는 형식이었던 것이다.
그런 형식의 검사이기 때문에 모든 덩굴손을 꼬물이가 쳐낼 수는 없었다.
ㅇㅈㅁ
가장 긴 뿌리로는 덩굴손을 쳐내면서 다른 뿌리로는 ㅇㅈㅁ을 반복해서 쓰는 꼬물이었다
그러더니 옆에 ㅁㅈㅈㅁ도 썼다.
오지마!
만지지마!
이런 말을 하고 싶은 것 같았다.
나를 다른 덩굴손이 만지는 것이 싫은 것 같기도 했다.
ㅁㅈㅈㅁ
ㅁㅈㅈㅁ
ㅁㅈㅈㅁ
ㄴㄲㅇ
ㄴㄲㅇ
ㄴㄲㅇ
<흥미롭네. 꼬물이 녀석 자음만 가르쳤는데 저 정도면 이미 한글의 이치를 어느 정도 깨달았다는 거잖아. 그런데 ㄴㄲㅇ은 뭐야?>
'글쎄?'
우리의 의문이 해소되기 전 덩굴손의 검사가 끝이 났다.
꼬물이 때문인지 아니면 빼앗을 만한 것이 발견되지 않았기 때문인지 아무것도 빼앗기지 않은 채 검사를 통과했다.
던전에 입장하자 그제야 꼬물이는 다시 히읗(ㅎ)을 연습하기 시작했다.
그런 꼬물이 옆에는 아무도 없었다.
꼬물이의 냄새가 여전했기 때문이었다.
비세계에서 가지고 온 치료수가 아직 넉넉했기 때문에 꼬물이에게 치료수를 부어주는 것에는 부담이 없었다.
그런데 며칠 전부터 냄새 제거에 매일 2마나를 쓰고 있다.
처음 꼬물이가 대기실에 들어왔을 때는 문제가 되지 않았다.
아직 어렸고 힘이 빠진 상태였기 때문에 냄새를 많이 풍기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치료수를 부어주면 잠시 냄새가 줄어드는 것도 같아서 효과가 있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것은 착각이라고 생각해도 좋을 만큼 일시적인 효과일 뿐이었다.
꼬물이가 치료수를 먹으면서 조금씩 자랄수록 냄새도 스멀스멀 진해지기 시작했다.
나는 대기실에 들어갈 수 없기 때문에 문제가 되지 않는데 소환수들이 고생이었다.
쪼롱이와 사냥조들은 냄새가 나면 밖으로 나오기도 하고, 꾸루와 전령조들은 자신들의 쉼터로 잠시 피했다 오기도 하는데 반반이와 그의 가족이 문제였다.
큰 덩치로 갈 데라곤 대기실이 전부인데 그곳에 악취가 들어차기 시작한 것이다.
그렇게 냄새가 나도 대기실이 넓어서 처음에는 꼬물이 주변만 문제가 되었다.
하지만 냄새는 어디든 갈 수 있는 것이었다.
점점 대기실을 장악하더니 어느새 꽉 채워버린 것이다.
꼬물이는 그것도 모르고 여전히 하트를 흔들며 자음공부에 빠져있었지만 말이다.
그래서 매일 2마나를 들여서 대기실 공기 전체를 교환하고 있다.
하루에 2마나를 들이면 어디서 가지고 오는지 최상의 공기를 대기실에 넣어주는 시스템이었다.
그리고 그런 거래를 즐기는 것 같은 시스템이었다.
그래서 꼬물이가 대기실에 뿌리를 박은 것이 시스템의 농간이 아니냐는 말까지 나호가 했을 정도였다.
날마다 공기를 교환하고 있지만 가까이 가면 냄새가 나기 때문에 꼬물이 옆으로는 누구도 오지 않았다.
그래서 종종 외로워 보이기도 하는 꼬물이었다.
아무튼 던전에 입장하자 더운 기운이 확 밀려왔다.
<여름이네. 겨울보다는 나은가?>
"모기가 극성일 수 있지."
던전은 습지였다.
그런데 깨끗한 습지가 아니어서 모기를 떠올렸는데 모기보다 더한 것이 튀어나왔다.
스걱!
손에 들고 있던 창을 휘둘렀다.
<피개구리네. 저거 징글징글한 놈들인데···.>
피개구리!
던전에서 만나면 정말 싫은 몬스터 중의 하나였다.
개체수도 많고 귀찮고···.
스걱! 스걱! 스걱!
<쪼롱아! 도와. 저 놈들 다 잡아!>
피개구리는 긴 혀를 새총처럼 쏘아서 사람의 피부에 박아 넣는 무시무시한 놈들이다.
박아 넣는 순간 고통도 엄청나지만 순간 빨아들이는 피의 양이 장난이 아니어서 열댓 마리의 피개구리에게 빨리면 목숨을 잃기도 했다.
단 몇 초 만에 말이다.
이 녀석들이 피를 빠는 방식은 놀라울 정도였다.
피부와 닿는 순간부터 빨아들이기 시작해서 이미 제대로 피부에 혀를 박아 넣었을 때는 상당량의 피가 피개구리에게 넘어가버린 뒤였다.
재빨리 혀를 잘라내도 이미 상당량을 피를 빨린 상태가 되는 것이었다.
젊고 건강한 피를 가진 사람을 더 좋아하는 피쟁이들!
피개구리가 선호하는 사람은 그만큼 건강하다는 증거이기도 했지만 달가운 것은 결코 아니었다.
"조심해. 혀를 1미터 이상 뻗는 녀석들도 많으니까."
쫑!
루루루루!
던전 구경을 하겠다고 밖으로 나와 있던 꾸루와 전령조들이 뻗어오는 혀들을 보더니 기겁을 했다.
루루루루! 루루루!
꾸루와 전령조만 난리가 아니었다.
피개구리들도 난리였다.
높지 않게 날고 있는 건강한 먹거리들이 즐비하게 등장한 것이다.
피개구리들이 일제히 꾸루와 전령조들을 향해 혀를 뻗는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루! 루! 루! 루!
꾸루가 정말 싫을 때 저런 소리를 냈다.
그런데 꾸루뿐만이 아니라 다른 전령조들까지 저런 소리를 내며 어찌할 바를 몰라 했다.
스걱! 스걱! 스걱! 스걱!
그런데 꾸루와 전령조들에게는 미안한 말이지만 꾸루와 전령조는 생각지도 못한 상황을 만들어냈다.
물속이나 습지의 물풀 사이에 숨어있다 먹잇감이 지나가면 긴 혀를 뻗어 공격하는 습성을 가진 피개구리를 너무도 손쉽게 잡아낼 수 있도록 만든 것이다.
일제히 하늘로 뻗은 혀들!
잘 익은 벼를 베어내듯 혀를 잘라내기만 하면 피개구리를 잡을 수 있었던 것이다.
<오오올! 이거 개꿀인데! 꾸루야! 너희 드디어 제대로 된 일감 찾은 거 같다!>
루루루루루! 파르르르르!
나호의 말에 벌벌 떠는 꾸루와 전령조들이었다.
하지만 겁이 난다고 달아나지는 않았다.
이것이라도 하겠다는 듯이 습지 위를 낮게 날며 피개구리를 유인했다.
"건강하기는 하나보다."
<건강하지. 매일 2마나짜리 공기를 마시며 사는데···.>
루루루! 파르르르!
커다란 덩치와 달리 겁이 많은 전령조들은 전투와는 담을 쌓은 녀석들이다.
무섭거나 잔인한 것을 맞닥뜨리면 어린 아이처럼 눈을 가리는 녀석들인데 무서움을 이기고 미끼 역할을 하고 있는 것이었다.
스걱! 스걱! 스걱!
한 마리씩 찾아다니며 잡으려면 정말 시간이 많이 걸리는 녀석들이었다.
귀찮은 녀석들만 아니면 미끼역할을 자청한다고 해도 말렸을 것이다.
스걱! 스걱! 스걱!
전령조들이 미끼가 되는 것은 생각 이상의 효과가 있었다.
<집사! 전령조들의 피가 맛있나? 아주 애들이 미치네! 미쳐!>
피개구리들이 이렇게 열광적으로 혀를 뽑아 올리는 것은 처음 보는 장면이었다.
단 1센티미터라도 더 높이 뻗기 위해 애를 쓰는 모습은 마치 높이뛰기 선수를 보는 것 같았다.
하지만 그런 피개구리의 혀는 결코 목표물에 닿지 못했다.
그런데도 줄기차게 혀를 뽑아 올렸다.
노력이 가상해 보일 지경이었다.
<전령조의 피에 특별한 성분이 있나?>
파르르르!
나호가 의문을 표하자 꾸루와 전령조들이 조금 전보다 더 날개를 떨어댔다.
"애들 힘들어 괜한 소리 하지 마."
<알았어. 꾸루와 전령조는 말이야 건드는 재미가 있어. 반응이 좋잖아.>
"당하는 꾸루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을걸. 너 나중에 후회하지 말고 지금 잘해."
꾸루와 전령조가 겁이 많아서 그렇지 덩치들은 장난이 아니었다.
지금은 전령이나 정찰 등을 하지 못하도록 제한이 걸려있어 미끼 역할을 하고 있지만 본격적으로 활동을 시작하게 되면 놀라운 모습을 보여줄 것이 분명한 아이들이었다.
덩치만으로도 충분히 놀랍고 위협적이니 존재만으로도 힘이 될 수 있었다.
<그때는 나도 실체를 갖겠지. 내 덩치가 그때도 지금 같겠어?>
나호의 덩치는 현재 고양이 정도다.
호랑이라고 하니 호랑이로 보는 거지 말해주지 않으면 누가 보나 고양이였다.
그런데 나호 말로는 원래 이렇게 덩치가 작지 않았단다.
전생에 내 옆에 붙어있을 때도 덩치는 산만했다고 했다.
"사람일은 모르는 거야. 잘해줘."
<알았어.>
대답은 하는데 장난기가 가득했다.
재미난 장난감을 보는 눈빛이어서 영 불안했다.
스걱! 스걱! 스걱!
꾸루와 전령조가 가는 곳에는 어김없이 혀가 솟구쳤다.
자동 반응에 가까워서 던전이 너무 심심하다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대변혁 후에 피개구리 사냥에도 이런 방법을 써야겠다. 이렇게 쉽게 피개구리를 공략한 것은 처음인 것 같아. 그 어떤 미끼보다 효과가 확실하네.>
루루루! 파르르르!
이런 일이 이번 한 번으로 끝날 것 같지 않자 다시 꾸루가 구슬피 울었다.
지금 꾸루가 얼마나 용기를 내고 있는지 보여주는 장면이었다.
다행히 피개구리가 서식하는 곳은 그리 넓지 않았다.
마지막 피개구리까지 정리를 하고 나자 꾸루와 전령조들은 바닥에 철퍼덕 드러누웠다.
물론 대기실 안에서였다.
던전은 어떤 위험이 도사리고 있을지 모르는 곳이기 때문에 저런 자세로 쉬는 것은 금물이었다.
쫑! 쪼로로로! 쪼로로!
열심히 잡은 피개구리들을 그냥 지나치자 쪼롱이가 왜 먹게 해주지 않느냐고 불만을 제기했다.
"먹는 거 아니야. 독이 있거든. 한두 마리 먹을 때는 맛도 있어. 하지만 독이 배출되지 않고 쌓이는 성질이 있어서 어느 날 갑자기 훅 가는 수가 있어."
쫑!
알겠다고 대답을 하더니 바로 미련을 버리는 쪼롱이였다.
전리품이라도 나오는 녀석들이면 좋은데 저 피개구리는 전리품도 없었다.
그래서 그대로 지나치려 할 때였다.
뜻밖의 메시지가 들려왔다.
[마나가 깃든 물건이 주위에 있습니다.]
권능 '마나의 눈'이 반응을 보인 것이었다.
눈이라는 이름을 단 것 중 최고의 권능을 자랑하는 마나의 눈이 가리키는 물건은 놀랍게도 피개구리의 사체였다.
사체 중에서도 혀를 뽑아 올리는 기관에 마나가 깃들어 있다고 했다.
그냥 도축을 하면 저런 기관까지 얻을 수는 없었다.
현재 도축 스킬은 C급!
그간 수많은 도축과 마나까지 투자하여 상승시킨 것이었다.
도축 스킬을 살폈다.
C급에서는 일반적인 도축에서는 나오지 않는 전리품을 추가로 얻을 수 있는 기능이 있었다.
아직은 하나만 추가로 지정을 할 수 있는데 월등한 성능을 발휘하지는 못하는 것 같았다.
"그래도 해봐야겠지?"
<그렇지. 뭐에 써먹을지 모르니까.>
도축하기 전 얻고 싶은 것을 설정했다.
그리고 도축을 했다.
도축의 범위가 넓어져서 사냥한 것은 모두 도축이 되어 내 앞으로 이동이 되었다.
마치 마트의 매장을 보는 것 마냥 종류별로 구분이 되어 쌓인 채였다.
그중 가장 눈에 띄는 것은 개구리의 뒷다리였다.
맛깔스럽게 보이는 개구리 뒷다리가 어서 먹으라고 유혹하고 있었다.
'복수의 맛'이라고 불리던 피개구리의 뒷다리!
어떤 식으로 먹어도 맛이 있는 고기이기는 했다.
소리 없이 죽이는 살인마지만 말이다.
죽은 피개구리가 복수하는 것이라고 해서 복수의 맛이라고 불리기도 했던 고기인데 한두 번 먹으면 독이 쌓이는 것을 알면서도 먹고 싶어진다고 한다.
다행히 우리나라 던전 중에는 피개구리가 나오는 던전이 많지 않았다.
많았다면 분명 많은 사람이 배고픔에 잡아먹고 죽어갔을 것이다.
어쨌든 특별히 지정해서 얻은 전리품은 보기에는 흉물스럽게 보이는 것이었다.
그런데 그것을 하나 집어 들자 마나의 눈이 다시 정보를 풀어놓았다.
그래서 얼마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