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당신의 마나통은 안녕하십니까?-119화 (119/350)

119. 대기실 농사

던전에 항상 보스가 있는 것은 아니었다.

어떤 던전은 섬멸을 하면 클리어가 되는 던전도 있고, 섬멸을 해도 보스를 잡지 않으면 클리어가 되지 않는 던전도 있었다.

상시 던전 중에는 클리어를 하지 않아도 되는 던전도 상당했다.

그런 던전은 위험을 무릎 쓰고 보스를 잡지 않아도 되는 것은 좋지만 보상이 적다는 아쉬움이 있었다.

그런데 이 던전은 보스가 존재했다.

보스가 있다고 해서 항상 보상이 주어지는 것은 아니지만 적어도 마나라도 많이 줄 것이었다.

우리가 만난 보스는 돼지를 많이 닮은 몬스터였다.

대변혁 이후라면 E등급 던전보스 정도 되는 녀석이었고, 이런 녀석은 지금 나에게 그리 어려운 상대가 아니어서 어렵지 않게 처리를 했다.

보스가 한 마리가 아니라 차라리 떼로 나타났다면 조금 힘들었을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을 하며 도축했다.

쫑! 쫑! 쪼로로!

지구에서 맛본 돼지고기와 비슷해서 그런지 쪼롱이가 식욕을 드러냈다.

<쪼롱아! 밑에 애들 보잖아. 품위 좀 지켜.>

쫑?

품위란 단어를 알아듣지 못한 것인지 그것도 아니면 그런 것은 중요하지 않다는 것인지 고기만 뚫어져라 쳐다보았다.

"먹어도 돼."

쫑!

고기를 갈구했지만 막상 먹으라고 하면 제 무리에게 먼저 양보를 하는 쪼롱이었다.

쪼롱이는 항상 제 무리 중 가장 어린 새를 먼저 먹였다.

한 마리지만 고기양이 상당해서 사냥조들이 사이좋게 나누어 먹기 좋았다.

<맛나게도 먹는다. 이거 인터넷에 올리면 먹방으로 인기 좀 있을 텐데.>

"무섭다고 할 걸. 그나저나 왜 보상이 없지?"

던전을 클리어하면 특별한 보상을 주기로 했는데 아무런 반응이 없었다.

사냥조들의 식사가 끝나고 주변을 다 정리했는데도 시스템은 클리어를 알리지 않았다.

분명 던전 안에 더 이상 생명체는 없는데 말이다.

"다른 게 있나? 꼬물아 뭐 더 있어?"

모라

꼬물이가 바닥에 쓴 글이었다.

아직 받침에 약한 꼬물이었다.

<너 이 던전 들어오기 전에 가지 말라고 했잖아. 그건 왜 그랬어?>

모라

꼬물이는 자신이 하고 싶은 말을 쓸 때 뿌리 하나로만 쓰지 않았다.

여러 개의 뿌리가 서로 동시에 쓰기 때문에 자신의 의사를 표현하는 것이 무척 빨랐다.

"기억이 나지 않는 거야?"

ㅇㅇ

<집사! 간혹 꼬물이의 반말이 거슬릴 때가 있어. 저 작은 녀석이 응응이라니···.>

"금세 너보다 클걸. 대변혁의 날을 떠올려봐. 6개월 안에 던전을 뒤덮을 정도로 성장할 녀석이야."

<아! 그럼 잘 보여야겠다.>

나호가 웃으며 말했다.

나호와 이야기를 하면서도 뭔가가 있나하는 생각을 떨치지 못하고 있는데 시스템의 음성이 들려왔다.

[띠링! 축하합니다. 현존하는 최고의 던전을 클리어 하셨습니다. 이에 특별한 보상을 지급하겠습니다.]

<특별하대! 뭘 주려고 특별하다고까지 하는 걸까?>

나호의 기대는 다음 들려오는 메시지에 무참히 짓밟히고 말았다.

[클리어 보상으로 '숙면(F)'스킬을 지급하였습니다.]

<특별 보상이라며? 날마다 자는 잠을 보상으로 지급하는 거야? 집사 이거 시스템이 해도 해도 너무 하는 거 아니야?>

나호는 길길이 날뛰었지만 나쁘지 않을 것 같았다.

그래서 바로 숙면 스킬을 확인했다.

다른 각성자들은 이런 식으로 자신의 스킬을 확인할 수는 없었다.

어디까지나 특별 서비스를 받고 있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었다.

[숙면(F)스킬은 상시스킬인 동시에 발동 스킬입니다. F급인 현재 수면의 질이 10% 향상됩니다. 수면의 질이 향상되기 때문에 자는 동안 피로가 10%이상 더 잘 풀립니다. 수면의 질을 방해하지 않으면서 위기 감지 능력이 5% 상승합니다.]

"나쁘지 않은데?"

<어디? 그러네. 나쁘지 않네.>

"숙면을 방해하지 않으면서 어떻게 위기를 동시에 감지할 수 있다는 건지···. 스킬이 아니면 불가능한 일이겠다."

<피로도 피로지만 위기 감지가 좋다. 자는 동안에만 발동하는 것 같지만 말이야. 나중에 위기 감지 스킬도 하나 얻으면 좋겠다.>

[던전이 클리어 되었기 때문에 3분후 던전 밖으로 이동합니다. 준비하시기 바랍니다.]

정확하게 3분이 지나자 던전 밖으로 이동이 됐다.

밖은 아직도 시간이 남은 상태였다.

하지만 시스템은 더 이상의 던전은 허락하지 않았다.

<집사 이거 심심하다. 회귀하고 이렇게 한가했던 적이 없었던 것 같아.>

다행히 우리가 있는 곳은 시험이 종료되었기 때문인지 더 이상 좁아지지는 않았다.

그래서 꼬물이를 제외한 모든 소환수들이 밖으로 나와서 놀고 있는 중이었다.

처음에는 제법 재미있어 하던 아이들이 사흘 째 되니 심심해했다.

"그럼 너희 대기실에 밭 하나 만들어볼래?"

<집사! 무슨 밭? 콩밭?>

"아니 고구마. 심기만 하면 잘 자라고 심는 것도 어렵지 않으니까."

<우와! 우리 집사는 계획이 다 있었구나. 그래서 고구마 심었던 거야.>

"꼭 대기실에 심을 생각은 없었어. 이곳에서 고구마는 어떤 성장을 하는지 보고 싶었을 뿐이야. 잘 자랐으니까 옮겨 심자는 거지."

<그게 더 무서워.>

던전에서 나온 후 아직도 시험이 끝나려면 한참 남았다는 말을 듣고 고구마를 심었다.

무엇이든 잘 먹는 아이들 간식으로 준비해둔 고구마의 일부였다.

대변혁 후 농사는 현실에서보다 던전에서 더 많이 지었다.

현실에서는 변이된 동물과 몬스터 등살에 농사짓기가 쉽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이것보다도 더 큰 이유는 던전에서 농사를 지으면 현실에서 짓는 것보다 수확도 많고, 병충해가 적어 농사짓기 수월할뿐더러 더 맛이 좋은 농산물을 얻을 수 있기 때문이었다.

모든 던전에서 농사가 가능한 것은 아니지만 국민들이 먹고 살 정도는 던전에서 수확할 수 있었다.

던전에서 농사가 더 잘 되고 농산물의 맛이 더 좋았던 이유는 마나 때문이었다.

그런 생각이 난 김에 고구마를 비세계에 심어본 것이었다.

그렇게 심은 고구마가 사흘 만에 이식을 할 수 있을 정도로 자랄 것이라고는 생각하지 못했다.

뿌리가 돋은 고구마 순을 채취해서 대기실에 옮겨심기만 하면 될 것 같았다.

물론 그것이 쉽지 않겠지만 말이다.

<애들아! 재미있는 거 하자!>

나호가 사냥조와 전령조 그리고 반반이 가족을 불러 모았다.

소환수들은 호기심을 잔뜩 가진 채 모여들었다.

<집사가 고구마를 심을 거래. 너희들이 모두 좋아하는 간식이지?>

쫑!

꾸루!

음머어어!

꼬물!

<꼬물이 너는 못 먹잖아. 아무튼 지금부터 고구마를 심을 거야. 이걸 어떻게 심을 거냐면······.>

나호가 소환수들에게 설명을 하면 나는 성실한 조교가 되어 시범을 보였다.

그렇게 몇 번 시범을 보이고 나자 소환수들이 알겠다는 대답을 자신 있게 했다.

<집사! 너무 자신 있게 대답하는 것이 불안하다.>

"어쩌겠어. 너나 나나 들어갈 수 없으니 애들을 믿어보는 수밖에."

<애들아! 너희 간식이니까 잘 해야 한다!>

쫑!

쪼롱이가 대표로 대답을 하더니 소환수들을 데리고 대기실로 들어갔다.

그리고는 대기실의 왼편, 컨테이너 밑으로 밭을 만들기 시작했다.

"애들에게 방해되지 않게 저기다 만들기는 하는데 그늘이 져서 잘 자랄지 모르겠네."

<집사! 무슨 걱정이야. 햇 볕이 비칠 때가 더 많은데.>

땅을 가는 것은 반반이와 반반이의 짝이 했다.

반반이 새끼도 돕겠다고 했지만 반반이 부부는 그것을 허락하지 않았다.

그래서 새끼는 고구마 순을 대기실로 옮기는 일을 했다

반반이 부부가 땅을 갈면 꾸루와 전령조가 큰 흙덩이를 부수고 두둑과 고랑을 만들었다.

그렇게 이랑이 완성되면 쪼롱이와 사냥조들이 고구마를 심기 좋게 적당한 간격으로 구멍을 뚫었다.

"생각보다 잘하네."

<저 녀석들 안하려고 해서 그렇지 영리한 애들이라니까.>

설명한 대로 밭을 만드는데 망설임이 없는 것은 물론이고 한 치의 오치도 없이 배운 대로 밭을 만들어가는 소환수들이었다.

그렇게 만든 밭의 크기는 상당했다.

준비가 끝나자 뿌리가 난 고구마 순을 구멍에 넣고 덮는 것도 쪼롱이와 사냥조들이 했다.

현재 조롱이가 거느린 사냥조는 총 80마리, 꾸루가 거느린 전령조는 총 30마리였다.

쪼롱이와 꾸루까지 총 112마리의 새가 움직이자 어느새 고구마 밭이 완성되었다.

"잘했어. 이제 심은 곳에 종이컵으로 한 컵씩 물을 줄 거야. 치료수를 조금 섞어서 만들었으니까 성장에 도움이 될 거야."

아무리 희석을 시켰다고 해도 치료수를 고구마에 부어주는 것을 전생의 사람들이 봤으면 미쳤다고 했을 것이다.

당장 정신병원을 알아본다고 설치는 사람도 있었을 것이다.

그만큼 치료수는 귀한 것이었다.

운 좋게 비세계에서 엄청나게 많은 치료수를 가지고 오지 않았다면 꿈도 꾸지 못할 일이었다.

<집사! 저기 봐. 물을 먹은 고구마 순이 바로 반응했어.>

축 늘어져 있어야 정상인 고구마 순들이 벌써 뿌리를 내린 것 마냥 꼿꼿이 섰다.

그리고는 대기실의 공기를 만끽하고 있었다.

"잘 자랄 것 같다."

<쪼롱아! 하루에 한 번씩 물 줘야 해. 그렇지 않으면 말라 죽어. 너 저녁 먹기 전에 한 번씩 줘.>

막연히 하루에 한번이라고 하면 잊어먹을 것 같아서 저렇게 말하는 것 같았다.

저녁에 물을 주는 것이 좋은지 아침에 주는 것이 좋은지는 소환이 해제되면 알아볼 생각이다.

쫑!

"그래 잘했어. 모두들 수고했어. 간식 먹어."

<오늘은 뭘 먹어도 예쁠 것 같아. 집사도 그렇지?>

"당연하지. 저렇게 예쁜 행동을 했으니 뭘 먹어도 예쁘지."

쫑!

뭘 먹어도 좋다는 허락이 떨어지자 쪼롱이가 아주 기뻐했다.

그러더니 컨테이너 중 하나의 문을 열었다.

<집사 저것 봐. 몬게가 담긴 문을 열었어.>

열린 문으로 사냥조들과 들어가더니 한동안 밖으로 나오지 않았다.

그 사이 꾸루와 전령조들은 모아둔 생선을 먹었다.

반반이 가족은 대기실의 풀을 만끽했다.

오로지 꼬물이만 무료한 시간을 이어나가고 있었다.

고구마! 고구마! 맛있어?

고구마 맛이 궁금한지 꼬물이가 물었다.

요즘 꼬물이는 물음표나 느낌표 넣는 것을 좋아했다.

<틀린 글씨 하나도 없이 잘 썼네.>

꼬물!

"고구마 하나 먹어볼래?"

꼬물?

<집사! 꼬물이에게 고구마 먹여보려고?>

"궁금하면 먹어보는 것이 가장 빠르지."

<그동안 치료수만 먹였는데···.>

나호가 조금 불안해했지만 고구마를 먹이는 것은 나쁘지 않을 것 같았다.

고구마를 한 개 잘라서 대기실에 넣어주었다.

꼬물이의 하얀 뿌리가 조심스레 고구마의 하얀 진액에 닿았다.

꼬물이의 다른 뿌리가 바닥에 느낌표를 커다랗게 그렸다.

"맛있어?"

ㅇㅇ!

<신기하네. 잘 먹네.>

맛이 있는지 다른 뿌리들까지 고구마를 흡수하기 시작했다.

치료수를 빨아먹듯이 고구마의 수분을 빨아먹는 것이었다.

쫑?

꾸루?

쪼롱이와 꾸루가 그런 꼬물이를 신기한 듯 쳐다보았다.

자신들과 같은 것을 먹는 것이 신기한 모양이었다.

<잘해줘. 너희 통역사잖아!>

쫑!

꾸루!

지금 이 순간이 쪼롱이와 꾸루가 꼬물이를 가장 편견 없는 눈으로 보는 시간인 것 같았다.

자신들과 다르지 않다는 것이 가져다 준 작은 변화였다.

그리고 그 작은 변화는 조금의 관심으로 자라날 것 같았다.

<녀석들 보기 좋네. 그런데···. 아니야.>

나호가 무슨 말을 하려다 말았는지 잘 알고 있었다.

모든 것이 잘 돌아가고 있는 현재 걱정이 하나 있다면 꼬물이의 냄새였다.

던전에서 보낸 시간들도 있기 때문에 한 달 이상 치료수를 맘껏 먹었지만 꼬물이의 냄새는 사라질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오히려 날로 심해지고 있었다.

다른 소환수들이 꼬물이 옆으로 올 엄두도 내지 못할 정도였다.

어제는 시스템에게 비용 상승에 대한 통보까지 받은 상태였다.

꼬물이로 인해 냄새가 가득한 공기를 처리하는데 이제 2마나로는 어림도 없다는 것이었다.

일주일 후부터는 매일 3마나를 지급해야한다고 했다.

이런 식이면 나중에는 얼마의 비용이 들지 모를 일이었다.

하는 짓마다 예쁘지 않은 것이 없는 녀석이 어쩌다가 저런 냄새를 가지게 됐는지 모를 일이었다.

고구마! 맛있어! 좋아!

얼마나 맛이 좋은지 뿌리로 고구마 모양을 만들어 보이기까지 했다.

"또 줄까?"

꼬물!

"그래 많이 먹어. 많이 먹고 건강하기만 해."

꼬물!

꼬물이가 하트를 만들어 흔들었다.

힌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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