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6. 처음 사귄 친구
던전을 나왔다.
나올 때는 시스템의 도움으로 쉽게 나올 수 있었다.
"다시 한 번 입장해서 확인하고 가자."
뮤!
^좋다.^
<이 녀석! 어디서 반말이야?>
뮤!
^좋아요!^
<그래야지.>
도뮤의 군기를 잡은 나호가 앞장을 서며 던전에 입장을 했다.
소유가 넘어온 던전의 특전 중의 하나였다.
나호는 소환수는 아니지만 나에게 묶여있으니 비슷하게 인식을 해주는 것 같았다.
그래서 그런지 내 소유로 넘어온 던전에 들어올 때는 나호가 앞장을 서도 아무 문제가 없었다.
"이곳은 엄밀히 말하면 던전이 아니고 너희 종족의 마을이라는 거지?"
뮤! 뮤! 뮤! 뮤!
^좋은 친구 만나서 잘 성장하면 마을이 도시가 되고, 도시가 나라가 되고, 나라가 제국이 될 수도 있어요.^
"새끼 도깨비들이 안정적으로 잘 태어나면?"
뮤! 뮤! 뮤!
^맞아요. 먹고 살만하면 종족은 자연 늘어납니다. 낳지 말라고 해도 낳아요. 하하하!^
도뮤가 활짝 웃었다.
커다란 입이 다시 나타날 것이라고 생각했는데 웃을 때는 그렇지 않았다.
입에서 뭔가를 꺼낼 때만 그런 엽기적인 모습을 드러내는 것 같았다.
"그래 이제 가자. 어디서든 대기실을 통해 이곳에 올 수 있지만 지금처럼 함께 자주 오지는 못할 거야. 그러니 인사해."
뮤! 뮤! 뮤!
^인사는 무슨. 제가 외출하면 물 만난 고기처럼 놀 거예요. 가요.^
<어째 볼수록 중년 아재 같아. 그것도 세상 풍파에 찌든.>
'마을 이끌고 먹여 살리는 것이 힘들었을 수도 있지.'
"그런데 너희는 뭘 먹고 사는 거야?"
뮤! 뮤! 뮤!
^친구가 주는 것이면 무엇이든! 아까 그것도 맛있었어요! 아! 또 먹고 싶다!^
"꼬물이가 줬던 금붙이를 말하는 거야?"
뮤! 뮤!
^친구가 준 거! 맛나!^
도뮤가 말을 하자 꼬물이가 냉큼 다른 금붙이를 꺼내더니 앞으로 내밀었다.
땅에서 주운 것이어서 색을 완전히 잃은 것이었다.
꼬물이의 다른 뿌리에는 도뮤가 반질반질하게 만들어준 금붙이가 들려있었다.
도뮤가 꼬물이에게서 금붙이를 건네받더니 냉큼 입안으로 넣어버렸다.
금붙이만 톡 던져 넣든 그것도 아니면 발가락으로 잡고 입에 넣으면 될 것 같은데 굳이 앞발을 전체를 입에 넣는 도뮤였다.
다시 얼굴 전체가 입이 되는 것 같은 엽기적인 모습을 보인 도뮤가 언제 그랬냐는 듯 발을 내리고 얌전히 서있었다.
뮤! 뮤!
^맛나! 맛나!^
도뮤가 어깨까지 들썩이며 맛있다는 표현을 했다.
저게 뭐가 맛있는지 알 수 없지만 던전 도깨비 도뮤는 금붙이가 맛있는 모양이었다.
그렇다고 입을 오물거리지도 않는 것이 참 신기한 생명체였다.
꼬물! 꼬물!
^ㅈㄹ^
^도뮤! ㅈㄹ 맛있어?^
꼬물이가 도뮤에게 묻고 있었다.
뮤!
^맛나! 흐!^
꼬물! 꼬물!
^나도 ㅈㄹ 좋아해. 이거!^
꼬물이가 좋아한다고 말하며 내민 것은 금붙이였다.
좋아하기는 했다.
주운 이후로 단 한 번도 뿌리에서 뗀 적이 없으니 꼬물이의 최애템이었다.
<꼬물이는 '정말'이라는 말을 꼭 'ㅈㄹ'이라고 쓰더라. 처음에 초성을 착각했나 했는데 그것이 아닌가?>
"네 반응이 재미있어서 계속 ㅈㄹ이라고 표현하는 것 같은데?"
<그래? 칭찬으로 들었나? 그때 너무 웃었나?>
처음 '정말'을 'ㅈㄹ'이라고 잘못 표기했을 때 나호가 과하게 반응을 보이기는 했다.
틀렸는데 절묘하게 맞아떨어진다고 꼬물이 천재라며 웃었는데 그 뒤로 다른 맞춤법은 거의 교정이 됐는데 'ㅈㄹ'만은 교정되지 않았다.
나호와 이야기를 나누는 사이에도 도뮤와 꼬물이의 대화는 계속되고 있었다.
도뮤의 뮤뮤를 꼬물이가 이해하는 것은 그렇다 치더라도 꼬물이의 꼬물거림을 도뮤가 이해하는 것은 신기할 따름이었다.
냄새에 민감하다더니 냄새로 꼬물이의 감정이나 하고자하는 말을 이해하는 것인지···.
그것보다 냄새에 민감하다고 했는데 꼬물이의 냄새는 신경조차 쓰지 않았다.
던전 도깨비들이 말하는 냄새는 다른 것인지···.
신기할 뿐이었다.
<왜 그런 표정을 지어? 행복해?>
"대변혁을 앞두고 이런 말을 하는 것이 적합하지 않겠지만 행복하네. 좋아. 세상은 내가 알던 것 보다 살만한 곳인 것 같아."
<집사의 그런 표정 참 좋다. 행복하다 말도 듣기 좋고. 아버지 일로 쉽게 헤어나지 못하면 어쩌나 걱정했는데···.>
"아버지께서 각성 예외자가 된 것은 안타깝지만 어쩔 수 없는 일이었어. 그래도 전생보다는 상황이 많이 나아졌잖아. 아버지의 마나통도 내게 있고. 이대로 잘 준비하면 각성자 못지않게 살게 해드릴 수 있을 거야."
전생에 미우라 놈의 아버지도 각성자가 아니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하지만 미우라 아버지는 각성자 못지않은 생활을 누렸다.
물론 가슴 통증은 벗어나지 못했겠지만 말이다.
아버지도 충분히 그렇게 사실 수 있었다.
미우라 놈 아버지는 수많은 나쁜 짓을 하며 그 시간을 보냈지만 아버지께서는 좋은 일을 하시면서 사실 것이다.
"일반인들의 희망으로 자리 잡으실 수 있도록 도울 거야."
<그거 멋지다. 대변혁 이후에는 각성하지 못하면 하등 인간처럼 생각했잖아. 자신들의 가족일 수도 있는데 말이야. 그런 고정관념들을 깨부술 수 있다면 의미 있겠어.>
나호의 표정도 덩달아 한결 밝아졌다.
뮤! 뮤! 뮤!
^그거 땅에서 캤다고? 어디? 그런 좋은 곳이 있단 말이야?^
꼬물!
뮤! 뮤! 뮤!
^친구! 알려줘. 우리 도깨비들 먹거리 늘 고민이다. 먹거리 있다면 아이도 많이 낳을 수 있다!^
꼬물?
뮤뮤거리는 것이 끝나지 않아서 돌아보니 저러고 있다.
정말 이해할 수 없는 생명체들이었다.
꼬물이가 금붙이를 땅에서 주웠다는 말을 한 것 같았다.
그랬더니 식량창고라도 발견한 듯한 반응을 보이는 도뮤였다.
"나만 이런 생각을 하는 거 아니지?"
둘의 대화를 보다 번뜩 좋은 생각이 났다.
순간 마주친 나호의 표정도 별반 다르지 않은 것이 같은 생각을 한 것 같았다.
<집사! 복이 제 발로 걸어 들어온다고 하더니···. 아니지! 선물 받은 것과 똑같은 것을 주는 것을 좋아한다고 했으니 우리 꼬물이가 큰 일한 것 같은데?>
"그런 것 같다. 도뮤야! 대기실로 들어가자. 들어가서 이야기해."
뮤!
^ㅇㅇ^
대답을 하더니 다른 두 마리의 던전 도깨비를 데리고 냉큼 대기실로 들어가 버렸다.
언제든 올 수 있다고는 하지만 너무 망설임 없이 들어가 버리자 보는 우리가 다 멋쩍어졌다.
괜스레 다른 도깨비들이 의식이 돼서 돌아보았는데 어떤 도깨비도 신경 쓰지 않고 있었다.
그저 자신들이 할 일을 부지런히 하고 있을 뿐이었다.
바닥에 깔았던 나뭇잎을 정리하고 지저분해진 것을 치우고 있었다.
처음 이곳에 왔을 때 마치 동화 속에 들어온 것처럼 느낀 것은 모두 저런 수고 덕분인 것 같았다.
우리는 던전 입구를 통해 도깨비 마을을 벗어났다.
클리어 했기 때문에 힘겹게 나오지 않아도 되었다.
"이곳은 공개하지 않을 거야."
<어차피 전생에도 발견되지 않았잖아.>
"그때는 다른 곳으로 떠났던 것 같아. 어디선가 친구를 만났을 수도 있고 그렇지 않았을 수도 있겠지. 하지만 이번에는 이곳에 자리를 잡았잖아. 열어두면 누군가가 발견하게 될 거야."
물론 대변혁이후의 일이 될 것이었다.
열어둔다면 말이다.
하지만 이곳은 세 분이 아니면 공개하지 않을 생각이다.
<이런 신비로운 종족을 우리만 알고 있다는 것이 죄를 짓는 것 같기는 하지만 도깨비들도 원하지 않을 수도 있으니까···. 집사! 쟤들 좀 봐.>
나호가 가리킨 것은 대기실의 꼬물이와 도뮤였다.
함께 들어온 두 마리의 도깨비들은 대기실 구경이 한창인데 둘은 딱 달라붙어서 이야기 중이었다.
꼬물이의 뿌리가 부지런히 움직이며 둘의 대화를 기록하고 있었다.
글을 쓰지 않은 뿌리는 하트를 만들거나 어젯밤에 받아쓰기에서 틀렸던 것을 연습하고 있었다.
"보기 좋네."
<꼬물이 움직임이 한결 부드러워진 것 같아.>
관심과 사랑을 받으면 냄새가 줄어든다고 했으니 분명 그렇게 될 것이었다.
"좋은 일이지. 그럼 정상을 향해 달려볼까?"
<좋지. 이번에는 내가 이길 거야.>
어차피 5미터를 벗어나지 못하지만 나호는 그걸 전혀 신경 쓰지 않고 달려 나갔다.
금세 내가 따라 붙을 것을 알기 때문이었다.
쫑!
꾸!
쪼롱이와 꾸루도 경기에 동참했다.
반반이는 경주를 호기심 어린 눈으로 바라보고 있었다.
다른 때 같으면 대기실 입구로 뿌리 하나를 두고 있었을 꼬물이는 지금은 도뮤와 이야기 삼매경에 빠져있었다.
7월의 바람이 상쾌하게 느껴지는 것은 참으로 오랜만의 일이었다.
치악산 정상에 도착하자 속이 뻥 뚫리는 것 같았다.
<여기서 던전이나 던전 덩굴을 발견하면 대박인데···. 꼬물아!>
나호가 꼬물이를 불렀지만 꼬물이는 듣지 못했다.
<꼬물아! 이해는 하는데···. 여기도 좀 봐주지···.>
처음 사귄 친구에게 쏙 빠진 꼬물이었다.
도뮤도 마찬가지였다.
그새 조금 전에 준 금붙이를 반질반질 만들어주고는 다른 금붙이를 입에 넣은 상태였다.
꼬물이의 뿌리 하나가 자신에게 닿아있는 것도 기꺼워하는 것 같았다.
<집사! 어떻게 해?>
"우리끼리 찾아보자. 처음이잖아. 꼬물이에게는 지금 도뮤밖에는 보이지 않을 거야."
<제 짝이 서운해 하겠네.>
"짝과는 또 다른 감정일 테니까."
꼬물이의 도움이 있으면 던전이든 던전 덩굴이든 쉽게 발견하지만 그렇지 않다고 해서 못하는 것은 아니었다.
전생에 던전이 있던 곳부터 시작해서 주위를 살피기 시작했다.
혹시라도 옆에 두고도 지나치지 않도록 집중을 해서 꼼꼼히 살폈다.
사냥조들도 흩어져서 찾고 있었다.
그때였다.
"거기는 들어가시면 안 됩니다."
제법 멀리서 들리는 소리였다.
소리가 난 곳으로 고개를 돌리자 한참 떨어진 곳에서 손을 흔들고 있는 남자가 있었다.
<산불 감시원 같은데?>
"나오세요? 등산로 벗어나시면 위험합니다."
알겠다고 손을 흔들었는데 남자는 내가 있는 곳을 계속 쳐다보고 있었다.
아무래도 남자가 간 이후에 다시 찾아봐야 할 것 같았다.
남자가 있는 쪽이 아니라 정상에 가까운 쪽 등산로로 나왔다.
괜히 마주쳐서 이런저런 소리를 듣기 싫었기 때문이었다.
이렇게 산을 다니다보면 말도 안 되는 오해를 받을 때가 있는데 가장 많은 것이 약초채취였다.
국립공원에서는 원칙적으로 약초채취가 금지되어있었다.
허가를 받은 지역주민들만 채취할 수 있는데 그것도 금지된 약초는 채취할 수 없었다.
그래서 가장 껄끄러울 때가 허가받은 약초꾼들과 마주칠 때였다.
아무것도 캐지 않았다고 해도 가방까지 보자고 하는 경우가 많아서 등산로를 벗어난 길에서 사람을 마주치는 것이 불편했다.
그런데 등산로에 던전있거나 던전 덩굴이 자라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이런 일은 앞으로도 피할 수 없을 것이 뻔했다.
그래도 오늘은 산불 감시원이라 다행이라고 생각하고 있는데 남자가 내가 있는 곳으로 오고 있었다.
<이거 또 머리 아파지는 거 아니야? 단속이네 뭐네 하면서?>
쫑!
"괜찮아."
나호의 반응을 보더니 쪼롱이가 예민하게 굴었다.
허락이 떨어지면 당장이라도 공격을 할 기세였다.
만약 공격을 허락하면 저 남자는 이 산에서 내려가지 못할 것이었다.
쪼롱이의 허락만 기다리고 있는 사냥조들이 90마리였다.
남자는 느끼지 못하고 있지만 남자주변으로 따라붙은 사냥조만도 열 마리가 넘었다.
산을 자주 타서 그런지 남자의 걸음은 무척이나 빨랐다.
그동안 보아온 어떤 약초꾼보다도 빨리 내 앞에 도착했다.
그런데 숨도 가쁘지 않는 것이 체력이 좋은 것 같았다.
"아이고. 죄송합니다. 얼마 전 저기서 낙상 사고가 있었습니다. 몰랐습니까?"
<사고가 있어서 그런 거였어?>
"예."
"조심하셔야 합니다. 이렇게 습기가 높은 날은 특히 조심해야 하죠. 등산로는 사람들이 다니니까 그래도 괜찮은데 저런 곳은 잘못 밟으면 미끄러지기 쉽습니다. 그런데 혼자 오셨습니까?"
"예."
"이런 산은 되도록 혼자 다니지 마십시오. 위험합니다. 특히 혼자 왔을 때는 등산로를 벗어나지 않는 것이 좋고요."
남자는 친절했다.
그런데 어딘가 낯이 익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 순간 권능 기억이 반응을 보였다.
[남자에 대한 기억이 있습니다. 열람하시겠습니까?]
냄새 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