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당신의 마나통은 안녕하십니까?-127화 (127/350)

127. 냄새 나!

'열람하겠어.'

[이름 이완구!]

여기까지 들었을 때 더 이상 듣지 않아도 될 것 같았다.

이 남자에 대해서는 모르래야 모를 수가 없었다.

이완구!

이 집안사람들에 대해서는 줄줄이 읊으라면 읊을 수 있었다.

움찔!

남자가 뒤로 물러섰다.

나도 모르게 살기를 내보였기 때문이었다.

<집사! 침착해.>

그렇게 말하면서 정작 나호는 앞발로 남자의 머리통을 후려갈기고 있었다.

나호의 폭행은 한 대로 그치지 않았다.

자신의 폭력이 아무 힘을 발휘하지 못한다는 것을 알면서도 쉽게 멈추지 못했다.

"저기 갑자기 왜···? 어디 불편하십니까?"

남자의 얼굴에 긴장한 기색이 역력했다.

<역사는 돌고 도는지···. 이름까지 비슷해서는 하는 짓까지 어찌 그리 똑같았는지···. 그놈 집구석 후손인지도 모르지.>

"······."

"그럼! 너무 늦지 않게 내려가십시오. 산에 혼자 계시는 거 좋은 거 아닙니다."

남자의 음성이 살짝 떨렸다.

애써 침착한 것처럼 보이려고 애쓰고 있었지만 남자는 분명 떨고 있었다.

그러더니 무엇에 쫓기기라도 하는 것처럼 멀어져갔다.

제법 멀어졌다고 생각했는지 남자가 어딘가로 전화를 걸었다.

그리고 하는 말이 가관이었다.

내 인상착의를 말하면서 지명수배를 받은 사람은 아닌지 확인을 하는 것이었다.

남자는 충분히 멀어져서 내가 듣지 못할 것이라고 생각해서 안심하고 말하고 있었지만 각성한 내 귀에는 남성의 음성은 물론이고 전화기를 통해 들려오는 목소리까지 바로 옆에서 말하는 것처럼 들리고 있었다.

<죽이는 것이 좋을까?>

나호가 멀어지는 놈을 보고 한 말이었다.

"공격해서 페널티 받으라고? 다른 방법을 써야지. 그리고 정말 찢어 죽여야 하는 놈은 저 놈의 동생 이완원이야. 현재 판사로 재직 중인 놈!"

<예전에도 판사새끼들이 나라 팔아먹었는데. 알아?>

"알고 있어."

일제 강점기의 매국노들의 직업도 대부분 판사였다고 한다.

그런데 대변혁 이후 매국노라 칭할 만한 놈들도 판검사가 많았다.

국민은 죽어나가든 말든 나만 잘 살면 그만이라는 논리가 목에까지 찬 놈들!

되지도 않은 논리를 끌어다 자신들의 행위가 구국을 위한 판단이었다고 떠들던 놈들!

대변혁 이후 미우라가 들어올 때까지 3년간은 어디에 있었는지 얼굴조차 내밀지 않았던 놈들이었다.

그러다 점차 사회가 안정되자 판사였네 감사였네 떠들며 법과 질서를 다시 확립해야 한다고 외치며 자신들의 밥그릇부터 챙기던 놈들이었다.

그런 놈들의 선봉장이자 대표격이 조금 전 마주했던 남자의 동생, 이완원이었다.

그리고 그런 형의 비호 아래 온갖 악행을 일삼던 남자가 이완구였다.

이완원도 나쁘지만 이완구도 그에 못지않았다.

일반인들의 입장에서는 이완원보다 이완구가 더 나쁜 놈이었다.

나라를 팔아버린 것과 다름없으니 이완원이 정말 나쁜 놈인 것은 틀림없는 사실이지만 일반인들이 이완원을 마주할 일은 없었다.

하지만 이완구는 아니었다.

어릴 적부터 동생과 비교당하면서 겪은 부정적인 감정을 풀어내기라도 하는 것처럼 이완구는 일반인에게 악독하게 굴었다.

그리고 그런 형에게 날개를 달아준 것은 그의 동생 이완원과 미우라였다.

둘의 입장에서는 이완구라는 패는 나쁘지 않은 장기말이었다.

온갖 굳은 일을 하며 대신 욕을 먹으니 그 뒤에서 간접적인 수혜를 받는 것이었다.

안락한 생활만 보장해주면 무슨 일이든 하니 욕받이로 쓰기에 안성맞춤인 사람이었던 것이다.

미우라는 미리 만날 것을 알았기 때문인지 살심을 잘 갈무리 할 수 있었지만 뜻하지 않게 보게 된 이완구는 아니었다.

순간 공격했을 뻔했다!

감정 조절을 나름 잘 한다고 생각했는데 조심해야할 것 같았다.

"공격하지 말라는 것이 물리적인 것이지 다른 것까지 건들지 말라는 것은 아니잖아. 그치?"

<그렇겠지. 죽이지 말라는 거겠지. 그것도 아니면 평가에 방해되는 행동을 하지 말라는 것일 테고.>

지구에서의 상황이 비세계로 연결되는 것은 아니었다.

기억을 하지 못하기도 하고···.

하지만 전혀 영향이 없는 것도 아니었다.

이곳에서 운동을 하면 비세계에서 분명 조금 더 나아지는 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

이곳에서 전의를 다지자 비세계에서 조금 더 적극적으로 움직이던 세 분이었다.

지금 눈에 보이는 저 놈과 저 놈의 동생도 마찬가지일 것이 뻔했다.

"큰아버지께서 조사를 해두셨을 거야. 때를 보고 있었는데 더 미루면 안 될 것 같아. 터트려야겠어."

<그렇게 되면 이완원이 어디에서 기연을 얻었는지 영영 모르게 될지도 모르잖아.>

"상관없어. 이완구를 보기 전까지는 기연을 얻은 후에 처리할 생각이었는데 잘못 생각한 것 같아. 기연하나 포기한다고 생각하지 뭐."

<그거 생각보다 좋은 기연인데···.>

"놈을 감옥으로 보내면 적어도 놈은 그것을 얻지 못하겠지."

<더한 놈이 얻으면?>

"대변혁 이후일 테니까. 그때 처리하는 것은 어렵지 않지."

이완원은 전생에 각성까지 했었다.

솔직히 미우라를 만나지 못했으면 그렇게까지 빛을 볼 수 없는 직업과 스킬이었다.

이완원이 기연으로 얻은 직업은 대변혁 이전 자신의 직업과 동일한 '판사', 스킬은 '변론'이었다.

대변혁이후의 세상에서는 아무짝에도 쓸모없을 것 같은 직업인 판사는 우리가 아는 판사'判事'가 아니었다.

이 사람의 직업 판사는 판사(板捨)!

널빤지 '판'에 버릴 '사'자를 쓰는 판사라는 직업을 가진 것이었다.

본인마저도 이 직업이 의미하는 바를 처음에는 알지 못했단다.

차츰 자신의 직업에 대해 알아가던 중 미우라를 만났고 놈에 의해 판사라는 직업은 꽃을 피웠다.

<놈이 얻은 기연은 꼭 회수해야 하는데? 그래서 지금까지 미루고 있었잖아.>

놈의 스킬 변론은 그리 위험한 것이 아니었다.

말에 관한 스킬은 변론 이외에도 수없이 많았다.

물론 변론이 말에 관한 스킬 중에서는 상위 스킬에 속했지만 문제될 것은 없었다.

그런데 아무짝에도 쓸모없을 것 같아 보이는 판사(板捨)가 문제였다.

이 직업은 계속해서 편을 갈랐다.

그리고 판사가 선택하지 않은 편을 버릴 수 있었다.

물론 버린다고 해서 당장 무슨 일이 생기는 것은 아니었다.

그런데 판사가 선택한 쪽에 당위성이 실렸다.

각성한 사람들은 그래도 판사가 선택에 영향을 덜 받았지만 일반인은 생각보다 강하게 영향을 받았다.

자기도 모르게 집단 최면에 걸린 것과 비슷한 상황이 펼쳐진 것이었다.

마나통을 보유한 미우라와 있으면 시너지를 발휘해서 더 강력한 효과를 드러냈고, 그건 미우라에게도 큰 도움이 되었다.

물론 충분히 성장할 때까지는 제 빛을 볼 수 없는 직업이었지만 누군가가 작정하고 키우면 어떤 직업보다 무서운 직업이 판사였던 것이다.

그걸 누구보다 빨리 알아챈 것이 미우라였고 말이다.

더구나 이완원은 변론이라는 스킬까지 가지고 있어서 더 빨리 성장할 수 있었다.

"그래서 놔뒀는데 아무래도 이완원은 제거하는 것이 좋을 것 같아. 놈은 영악하게 숨어있었잖아. 나대지 않고."

그랬다.

이완원은 영악했다.

각성을 하고 기연을 만나 남들은 갖지 못한 직업과 스킬까지 얻게 되었지만 놈은 몸을 낮출 줄 알았다.

자신의 직업이 전투와는 상관없는 것이라는 것을 안 것이었다.

그리고 끊임없이 자신의 직업이 어떻게 작용하는지 일반인을 상대로 실험했다.

각성자가 아닌 일반인인 것처럼 살아가면서 말이다.

그러던 놈이 미우라를 제 발로 찾아간 것은 충분히 자신의 직업을 파악했을 때였다

이완원은 미우라가 자신과 같은 부류의 사람이라는 것을 알아챈 것이었다.

미우라가 전투와는 아무 관계없는 이완원을 중히 쓴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미우라는 대변혁 이후의 세상에서 놀라운 감각을 보였다.

그것이 스킬이나 권능 때문이었는지 아니면 타고난 감각 때문이었는지는 모르지만 기가 막힐 정도로 선택을 잘 했다.

놈이 마나통을 살 수 있는 마나통 수거라는 스킬을 가진 것만으로 세계 1위를 한 것이 아니었던 것이다.

<그러네. 분명 다른 사람이 저런 직업을 얻으면 떠벌리고 다닐 거라는 거지?>

"그렇지. 초기에 직업을 얻고 잠잠히 있기는 어려워. 알잖아."

<분위기에 휩쓸려서라도 떠들기 마련이기는 해. 그런 면에서 보면 완원이라는 놈도 무서운 놈이야. 각성 사실을 감쪽같이 숨기고 2년을 넘게 살았잖아.>

"그리 독하니 나라를 팔고도 멀쩡히 살아갈 수 있었던 거야."

이제 완구라는 남자는 더 이상 보이지 않았다.

그리고 드디어 꼬물이가 우리를 쳐다보고 있었다.

그런데 도뮤가 작은 앞발로 코를 막고 있었다.

엄청나게 지독한 꼬물이의 냄새에도 멀쩡하던 도뮤가 냄새에 반응을 한 것이었다.

<이제야 꼬물이의 냄새를 맡았나?>

"그건 아닌 것 같은데? 꼬물이가 전혀 신경 쓰지 않은 것을 보면 말이야."

<정말 그러네. 그럼 왜 저러지?>

뮤! 뮤!

^냄새 나!^

<당연히 나지. 이제야 알았어?>

뮤! 뮤!

^내 친구는 냄새 나지 않아!^

이런 말을 쓸 때 꼬물이의 뿌리가 조금 두툼해졌다.

도뮤의 말이 아주 마음에 드는 것 같았다.

<나는데 나지 않대. 무슨 말이야?>

"도깨비들이 맡는 냄새는 우리가 생각하는 것과 다른 가봐."

<영혼의 냄새를 맡는다거나 그런 건가?>

"그런 것 같아."

뮤!

^똑똑하네!^

소환수에게 칭찬을 받는 소환사라니···.

생각지도 못한 칭찬에 멍해있는 사이 도뮤의 뮤뮤는 쉽게 끝나지 않았다.

^남자 냄새 감추고 있다. 지독한 냄새. 더러운 냄새. 가까이 하지 마라.^

도뮤가 완구라는 남자에게 한 말이었다.

<신기하네. 잘 됐다. 집사 앞으로 사람 많이 상대해야 하는데 저 정도면 괜찮지 않아?>

"괜찮은 정도가 아니지. 영혼이 맑다고 해서 다 좋은 사람은 아니지만 그래도 조금은 안심할 수 있겠네. 앞으로도 잘 부탁해!"

뮤!

^ㅇ^

대답을 하더니 도뮤는 꼬물이 옆으로 더 당겨 앉았다.

정말 이해할 수 없는 생명체이지만 사랑스럽기 그지없었다.

"꼬물아. 근처에 던전이나 던전 덩굴 없어?"

꼬물?

꼬물이의 뿌리가 다시 수맥을 찾듯 움직이기 시작했다.

그 모습이 신기한지 도뮤가 호기심어린 시선으로 꼬물이를 바라보았다.

꼬물!

^열렸어요! 던전! 아직 아기에요.^

던전을 아기라고 표현하다니···.

전생의 사람들이 들었으면 돌을 들었을지도 모를 일이었다.

이 던전도 대변혁의 날에는 적잖은 피해를 남긴 던전이었는데 아기란다.

<전생에 여기가 얼마나 무서운 곳이었는데···.>

"그렇지. 워프게이트만 아니었으면 일본으로 옮기고 싶었을 거야."

이미 던전이 자리를 잡았다니 어쩔 수 없지만 아직 자리 잡지 않았다면 고민했을 것이다.

그만큼 이 던전의 위험성은 대단했다.

<아기라면 어떤 녀석들이 나오려나?>

"들어가 봐야 알지."

꼬물이가 가리킨 곳은 우리가 찾았던 반대 방향이었다.

<저쪽 확실해?>

꼬물!

전생과 거리가 좀 있기는 했지만 장프가 자라고 있는 것으로 봐서 우리가 찾던 '치악산 던전'이 맞는 것 같았다.

던전의 입구에 도착했을 때 미개방 던전이라는 알림과 함께 입장하겠냐는 물음이 돌아왔다.

당연하게 우리는 입장을 했고 그것에서 우리는 우뚝 멈추어 설 수 밖에 없었다.

"이게 무슨!"

<하하하! 하하하! 그래 아무리 무서운 동물도 아기일 때는 귀여운 법이지. 저건 귀엽지는 않지만 말이야. 하하하!>

나호가 웃음을 멈추지 못했다.

그럴 만도 한 것이 우리 앞에 선 몬스터의 모습 때문이었다.

전생에 치악산에 나타난 몬스터는 흉포하기가 놀라울 정도였다.

구울과 비슷한 녀석이었는데 강화 구울 정도로 생각하면 될 것이다.

그런데 지금 눈앞의 녀석은 이제 막 태어난 구울 같았다.

어린 아이도 잡을 수 있을 것처럼 보이는 구울!

20평 남짓밖에 되어 보이지 않는 좁은 던전이라는 것도 웃음을 자아내게 했다.

하지만 나호가 웃음을 흘린 그때 생각지 못한 일이 일어났다.

끼아아아악! 끼아아악!

성인 머리통보다도 작은 구울이 입을 쩍 벌리며 소리를 지른 것이었다.

소리가 어찌나 큰지 귀가 다 먹먹할 정도였다.

<아우! 고막이야! 영체인 것이 다행이지 실체가 있었으면 고막 나갔겠네. 집사는 괜찮아? 집사!>

"괜찮아. 신기해서 관찰하느라."

흥미로웠다.

분명 덩치는 전생에 봤던 구울의 십분의 일도 되지 않는데 내뿜는 살기는 그에 못지않았던 것이다.

<저거 상당히 강한 것 같은데? 바로 처리하는 것이 좋지 않아?>

"조금만 더 살펴보고."

끼아아악! 까아아악!

잡담을 하는 것을 자신을 모독했다고 생각하는지 소리를 지르는 구울을 이리저리 피해가며 관찰했다.

작은 덩치답게 잽싼 구울이었지만 피하는 것은 어렵지 않았다.

그리고 충분히 파악을 했다고 생각하는 순간 스걱!

끼아아아아아···.

[띠링!

유일한 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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