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9. 떨어뜨려
비세계에서 가지고온 치료수의 등급을 정확하게 따지자면 중하급정도는 되는 것이었다.
이 정도만 되어도 사실 엄청 좋은 축에 속했다.
대변혁 이후에 이만한 물건을 얻으려면 상당한 시간이 흐른 후에나 가능했다.
그야말로 행운이 크게 작용을 해줬기 때문에 얻을 수 있는 것이었다.
그런데 그것보다 더 나은 치료수가 나오는 던전을 알려주겠다고 했을 때 짐작을 했었다.
결코 쉬운 던전이 아닐 것이라는 것을 말이다.
그리고 그런 예상은 들어맞았다.
던전에 들어선 순간 몬스터가 나타났고 그것은 회귀한 이후 본 몬스터 중 가장 강력한 것이었다.
스걱! 스걱!
쁘아아아! 쁘아아악!
창을 휘두르자 겁 없이 달려들던 '몬날아귀'가 바닥으로 떨어졌다.
스걱! 스걱! 스걱!
크어어억! 쁘어어억!
물을 잔뜩 머금은 것 같은 신음 소리와 함께 떨어진 몬날아귀는 그대로 숨이 끊어졌다.
"쪼롱아! 다가가지마!"
죽은 몬날아귀에게 다가가려던 쪼롱이가 급하게 방향을 틀었다.
"죽은 후에도 저 촉수에서 전기를 일으키는 녀석들이야. 그러니 함부로 다가서면 큰일 나."
쫑!
몬날아귀의 머리위로 돋은 촉수를 가리키며 말했다.
몬날아귀의 정식 명칭은 '몬날초롱아귀'이다.
몸은 영락없이 초롱아귀처럼 생겼는데 날아다닌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다.
깊은 바다에서 사는 것이 어울릴 것처럼 보이지만 이렇게 날아다니는 몬스터이고 육식을 하는 녀석들이다.
식성이 워낙 좋아서 이 몬스터가 있는 던전은 다른 몬스터를 찾아보기 어렵다는 특징을 가지고 있었다.
<벌써 저 녀석을 보게 될 것이라고는 생각도 하지 못했는데 이 던전이 바다에 있을 확률이 높다고 봐도 되겠지?>
"그렇지."
스걱! 스걱! 스걱!
대답을 하면서도 잠시도 멈출 수 없었다.
몬날아귀가 계속 해서 몰려들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지금 꾸루는 새롭게 본 몬스터에 겁을 먹고 뒤로 물러난 상태이고, 쪼롱이는 몬날아귀와 나의 전투를 흥미롭게 바라보는 중이었다.
어떻게든 전투에 참여하고 싶은 것이었다.
하지만 몬날아귀는 정말 조심해야 했다.
스걱!
쁘아아악!
촉수를 먼저 잘라냈다.
이놈들을 어떻게 상대해야 편한지 보여주기 위해서였다.
머리 위의 촉수는 그냥 있는 것이 아니었다.
일종의 감각 기관이었다.
몬날아귀는 눈은 거의 퇴화된 녀석들이었다.
하지만 저 촉수 덕분에 눈이 보이는 몬스터보다도 더 넓은 시야를 가지고 있고, 정보를 얻을 수 있었다.
그래서 저 촉수는 잠시도 가만히 있지 않았다.
초롱처럼 불을 밝히고 있는데 그것으로 동료들과 소통을 하는 것 같다는 연구 결과도 발표된 적이 있었다.
물론 동료와의 소통보다는 공격 수단인 동시에 먹잇감을 유인하는 데 더 많이 사용되지만 말이다.
촉수가 잘린 몬날아귀가 휘청거렸다.
순간 줄이 끊어진 연 같다는 느낌이 들었다.
먹잇감을 노리고 날아오던 녀석이 튕기듯 하늘로 솟구쳤기 때문이었다.
바람이 빵빵하게 찬 것처럼 생긴 몸은 하늘로 솟구치기 용이했다.
쫑?
"촉수가 잘리면 저 녀석들은 다 잡은 것이나 다름없어. 하지만 잘린 촉수는 절대로 함부로 만지면 안 돼."
쫑!
조금 전 죽은 몬날아귀의 촉수에서 전기를 발생할 수도 있다고 말을 해주었더니 알고 있다는 반응을 보였다.
"그래. 생각보다 전기가 강력해. 작은 덩치를 가진 생명체는 바로 죽을 수도 있어."
쫑!
쪼롱이에게 이렇게 정보를 말해주는 것은 쪼롱이와 사냥조들의 사냥 솜씨가 생각했던 것보다 뛰어나기 때문이다.
작은 덩치의 쪼롱이도 맘만 먹으면 한 사람 정도는 처리할 수 있었다.
사냥조 중에 가장 덩치가 작은 축에 드는 쪼롱이가 이 정도이니 덩치가 큰 녀석들의 위력은 말해 무엇 하겠는가.
더구나 한 번 상대해 본 몬스터의 공략법은 잊지 않았다.
그 정도만 되도 놀라운데 쪼롱이와 사냥조들은 협업을 할 줄 알았다.
연기까지 할 수 있을 정도로 서로 의사소통이 원활하기 때문에 힘을 합쳐서 몬스터를 공략하는 모습은 놀라울 정도였다.
"우선은 내가 촉수를 자른 놈들만 밑으로 떨어뜨려줘."
<그거 하면서 몬날아귀의 몸도 파악하라는 소리야! 알지?>
나호가 한 마디 거들었다.
쫑!
쪼롱이가 사냥조 몇 마리를 데리고 날아올랐다.
촉수가 잘린 몬날아귀들은 붕 떠올랐다.
촉수가 잘렸기 때문에 위협적이지는 않는데 저렇게 떠다니다가 힘이 다 떨어질 때에야 바닥으로 떨어졌다.
그냥 바닥으로 떨어져도 덩치가 커서 위협적인데 힘이 떨어진 몬날아귀는 위액 같은 것을 내뿜는 경우가 있었다.
항상 내뿜는 것은 아니고 하늘에 떠 있는 시간이 긴 녀석들이 내뿜는데 그 위액의 독성은 정말 위험했다.
그래서 사실 몬날아귀는 이런 식으로 공략을 하지 않는다.
하늘로 떠올라버리면 처리하는데 골치가 아파지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우리 팀에게는 이 방식이 나쁘지 않았다.
<잘하네!>
스걱! 스걱! 스걱!
촉수를 앞으로 드밀고 다가오는 몬날아귀의 촉수만을 잘라버렸다.
조금 전처럼 바로 몬날아귀를 처리할 수 있었지만 일부러 이렇게 하는 것이었다.
사냥조들이 몬날아귀를 파악하는 시간을 주기 위해서였다.
쪼롱이와 사냥조들이 몬날아귀 위로 올라가 바닥으로 떨어뜨렸다.
툭 밀기만 하면 떨어질 것 같지만 그렇게 호락호락 움직여주지 않은 것이 몬날아귀였다.
실이 끊어지기는 했지만 덩치가 있기 때문에 툭 한두 번 민다고 해서 바닥을 향하지 않은 것이었다.
지금 쪼롱이와 사냥조들은 몬날아귀들에게 촉수와 비슷한 역할을 하고 있었다.
몬날아귀의 등에 올라타서 바닥으로 유도를 하고 있었던 것이었다.
<덩치가 커서 꾸루와 전령조가 한다면 정말 쉽게 할 수 있을 텐데···.>
루루루루!
나호의 말에 질겁하는 꾸루였다.
다른 전령조들은 나호의 말이 듣자마자 대기실의 입구에서 가장 먼 곳으로 물러나 버렸다.
날개로 눈을 가리고는 밖의 상황이라도 주시하는 것은 그나마 꾸루가 유일했다.
<하하하! 그래. 사냥 좀 못하면 어떠냐. 나중에 너희가 할 일만 잘 하면 되지.>
꾸!
혹시라도 쪼롱이가 하는 일을 시킬까 긴장을 하고 있던 꾸루가 냉큼 대답했다.
몬날아귀를 상대하라고는 하지 않을 것을 눈치 챈 것이었다.
음머어어어!
쪼롱이와 사냥조들이 유인한 몬날아귀가 바닥에 떨어지자 반반이가 긴 울음을 울며 앞발을 굴렀다.
마치 바닥에 떨어진 몬날아귀는 자신에게 맡겨달라는 것 같았다.
"좋아!"
허락을 하는 순간 그대로 대기실을 나온 반반이가 몬날아귀의 머리통을 밟았다.
뾰족하게 뻗어 나온 가시들이 있었지만 반반이에게는 문제가 되지 않았다.
그냥 밟아도 부서져 버릴 것 같았지만 반반이는 영리하게 가시들은 피하면서 몬날아귀를 밟았다.
반반이가 서너 번 밟는 것만으로도 3미터가 넘던 몬날아귀의 숨은 끊어져버렸다.
뇌가 엉망이 됐는데 살아날 수 있는 생명체는 없었다.
이때부터 사냥은 너무 쉬웠다.
촉수만 잘라 놓으면 쪼롱이와 반반이가 알아서 처리했다.
스걱! 스걱! 스걱!
<많기도 하다! 집사가 아니면 이거 정말 어렵겠다.>
"도축!"
몬날아귀의 촉수는 특별했다.
죽은 지 세 시간이 지나도 전기를 내뿜는 경우도 있었다.
초롱을 밝힌 것 같은 불빛은 잘린 순간 빛을 잃지만 전기는 사라지지 않았다.
촉수 안에 전기를 보관하고 있는 것처럼 만지거나 밟으면 그대로 반응을 보이는 것이었다.
물론 단 한 번에 그치지만 그 위력은 생각보다 대단해서 죽은 몬스터의 촉수에 죽임을 당할 수도 있었다.
특히 몸에 물이 묻은 상태면 더 위험했다.
그러니 몬날아귀는 잡는 족족 도축을 하는 편이 좋았다.
설정을 해두었더니 다른 전리품은 바닥으로 떨어지고 촉수만 인벤토리로 들어왔다.
<몇 개나 얻었어?>
"현재 84개."
<그것도 팔면 마나 꽤나 받을 수 있을 텐데.>
전리품으로 들어온 촉수를 시스템에게 팔자는 것이었다.
"이건 팔지 않지. 나중에 사람들에게 팔면 더 비싸게 팔 수 있을 텐데 지금 시스템과 거래할 필요가 없지."
대변혁이후 몬날아귀의 촉수는 좋은 손전등이 되었다.
물론 도축을 마친 상태의 촉수여야 하지만 어두운 곳에서는 이만한 것이 없었다.
지구에서 만들어진 손전등을 던전에 가지고 들어가면 다 불을 밝힐 것 같지만 그렇지 않은 경우도 심심치 않게 있었다.
분명 건전지에는 이상이 없는데도 작동을 하지 않는 것이다.
던전 밖에 가지고 나오면 다시 되는 경우도 있고, 던전의 작용으로 건전지가 방전이 되어 버리는 경우도 있었다.
물론 입장 전에 덩굴손에게 빼앗기는 경우도 많았고···.
하지만 던전에서 나온 이 '촉수 손전등'은 덩굴손이 빼앗아가는 경우가 거의 없을뿐더러 수명이 남아 있으면 반드시 작동을 했다.
그래서 어두운 던전에서 도움을 많이 주는 전리품이었다.
문제는 쉽게 구할 수 없어서 가격이 비싸다는 점이었다.
그러니 시스템과 거래하기보다는 잘 가지고 있다가 헌터들에게 파는 것이 이로웠다.
헌터들이 이런 물건들을 살 수 있으려면 상당한 시간이 필요하겠지만 말이다.
스걱! 스걱! 스걱!
쫑! 쫑! 쫑!
이제 쪼롱이는 내가 촉수를 자르기를 기다렸다 바로 몬날아귀를 바닥으로 떨어뜨렸다.
그럼 옆에 대기 중이던 반반이가 바로 몬날아귀를 밟았다.
멀리 날아갈 시간 자체를 주지 않은 것이었다.
<영리하다니까. 그런데 도뮤는 지금 무슨 생각을 하고 있을까?>
전투의 위험성이 사라지자 도뮤가 신경이 쓰이는 모양이었다.
도뮤는 대기실과 던전을 오가고 있었다.
꼬물이와 이야기를 했다가 어느 틈에 보면 내 옆으로 와서 사냥을 관찰하고 있었다.
그러다가 다시 보면 이미 죽은 몬날아귀를 살피는 도뮤였다.
지금 우리 중에서 가장 바쁘게 움직이고 있는 것이 도뮤였던 것이다.
무얼 그리 열심히 살피는 것인지 알 수 없지만 나름 이런 전투가 흥미로운 모양이었다.
"그래도 겁은 내지 않잖아."
<다행이지. 소환수들이 하나같이 겁이 많으면 큰일이지.>
루루!
꾸루가 풀이 죽은 모습을 보였다.
지금 꾸루가 감당하기에는 던전에서 펼쳐지는 상황은 너무 잔혹했다.
소식을 전하는 일을 하는 녀석 답게 전투에는 담을 쌓은 것이었다.
<나중에 꾸루 정찰은 잘 하겠지?>
"잘 할 거야. 걱정하지 마."
전령조의 정보에는 분명 소식을 전하는 것뿐만 아니라 정보를 알아올 수 있다고도 되어 있었다.
시스템의 정보는 늘 정확했다.
그러니 분명 꾸루는 정찰은 물론이고 정보를 알아오는 일도 잘 할 수 있을 것이 분명했다.
스걱! 스걱!
그렇게 몬날아귀를 처리하고 있는데 갑자기 쪼롱이가 특이한 소리를 냈다.
그러자 사냥조 중 덩치가 큰 세 마리가 앞으로 날아갔다.
<뭘 시킨 거지? 설마 몬날아귀를 공격하라고 시킨 건가? 촉수에 맞으면 즉사할 수도 있는데?>
몬날아귀의 촉수는 잘린 상태에서도 어지간한 덩치를 눕힐 수 있는 전기를 방출한다.
그러니 몬날아귀의 머리에 붙어있을 때는 오죽하겠는가.
몬날아귀의 움직임을 미리 파악하고 잘 피하며 촉수만 잘라내고 있어서 언 듯 보면 쉬워 보이지만 결코 그렇지 않았다.
단 한 번의 실수만으로도 치명상을 입을 수 있는데 겁도 없이 사냥조 세 마리가 출격하고 있었다.
덩치가 큰 녀석들이라 세 마리가 날개를 활짝 펴고 날아가는 모습은 위풍당당해 보였다.
자세히 보니 초반부터 쪼롱이를 따라다니면 전투경험을 쌓은 녀석들이었다.
그렇다면 걱정할 것이 없었다.
쪼로로로! 쪼로록!
쪼롱이는 전장의 지휘자가 되었다.
앞으로 나간 세 마리의 사냥조를 포함한 90마리의 사냥조를 지휘하며 적절한 위치에 배치하는 것은 물론이고 공격 타이밍을 조절했다.
호위조 열 마리를 제외한 80마리의 사냥조들은 쪼롱이의 지휘를 받는 군사가 되어 지휘하는 대로 작전을 잘 수행하고 있었다.
그리고 그 결과의 결정체가 드러나려고 하는 순간이었다.
세 마리의 사냥조는 몬날아귀에게 달려들더니 방향을 급격하게 틀었다.
한 마리는 몬날아귀의 아래로, 다른 두 마리는 양 쪽으로 퍼졌다.
몬날아귀 머리에 붙은 촉수가 세 마리를 주시하는 가운데 아래로 내려갔던 사냥조가 위로 치받았다.
퍼어억!
큰 덩치들이 부딪치니 제법 큰 소리가 났다.
쁘에에엑! 쁘에에엑!
비틀거리며 잠시 중심을 잃은 그 짧은 사이에 몬날아귀는 촉수를 잃어버리고 말았다.
촉수를 물어뜯은 것은 위풍당당하게 날아갔던 세 마리의 사냥조가 아니었다.
기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