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1. 좋은 기회
전리품을 수거하자 일반적인 몬날아귀를 잡아서 얻을 수 있는 촉수 손전등보다 두 배나 큰 것이 인벤토리로 들어왔다.
수명도 두 배 이상일 것 같았다.
<집사! 이런 걸 보고 개꿀이라고 하지?>
"좋아?"
<좋다 뿐이겠어? 이것은 시스템이 얼마나 주려나? 몇 개 더 얻어서 마나 벌면 좋겠다.>
나호의 바람은 이루어질 것 같았다.
통로에 나타나는 몬날아귀는 처음 잡았던 녀석이 전부가 아니었기 때문이었다.
입을 쩍쩍 벌리면 통로가 온통 입으로 보이는 몬날아귀는 그 거대한 입을 이용해서 나를 집어 삼키려 했다.
하지만 뜻을 이룰 수 없었다.
그렇게 잡아먹히기에는 몬날아귀를 너무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전생에 이런 곳에서 몬날아귀를 만났다면 고전을 면치 못했겠지만 지금은 아니었다.
커다란 덩치 때문에 통로에 단 한 마리씩 나타났는데 그것이 오히려 몬날아귀를 쉽게 처리할 수 있게 해주었다.
<만약 촉수 손전등을 시스템에게 다 팔았으면 어떻게 됐을까?>
"그럼 아마 비싸게 다시 팔려고 했을지 모르지. 이런 곳은 불빛 없이 움직일 수 없으니까."
<집사가 판 가격보다 훨씬 비싸게 팔았겠지?>
"당연하지."
나호의 표정이 딱딱하게 굳어졌다.
통로는 이런 불빛이 없으면 통과하는 것이 어려울 정도로 어두웠기 때문이었다.
한 마리씩 몬날아귀를 처리하며 들어가자 어느 순간 몬날 아귀가 더 이상 나오지 않았다.
통로의 끝에 도착했다고 생각했지만 그건 아니었다.
통로는 계속 이어졌고 그렇게 한 시간 이상 지나갔을 때 드디어 통로의 끝에 도착했다.
하지만 분명 물 냄새가 느껴졌었던 곳이었는데 통로는 벽으로 막혀 있었다.
그 어디에도 물은 보이지 않았다.
그런데 여전히 물 냄새가 났다.
"이 벽 너머에서 나는 냄새인 것 같아. 쪼롱아 뒤로 나와 봐."
벽에 거의 달라붙어 벽을 살피고 있는 쪼롱이를 뒤로 빠지게 했다.
<집사! 부수려고?>
"부셔야지."
<그건 너무 위험하지 않을까? 뒤에 뭐가 있을지 알고?>
"이 던전에 분명 치유수가 있다고 했어. 뒤쪽은 막혔고."
<맞아. 이 통로에 들어섰을 때 닫혔었지. 그런데 어떻게···?>
콰아앙! 콰아아앙! 코아아앙
벽을 향해 곡괭이질을 시작했다.
이 던전을 들어오기 전에 혹시 몰라 준비해온 물건 중 하나였다.
가로, 세로, 높이 1미터의 공간 주머니에 각종 공구를 챙겨왔었다.
어떤 환경일지 모르니 전생의 경험을 미루어 웬만한 것은 다 가지고 온 것이었다.
그렇게 챙겨온 곡괭이가 빛을 발하고 있었다.
콰아아앙! 콰아아앙! 콰아앙!
닫힌 곳이기 때문에 소리가 크게도 울렸다.
각성으로 인해 예민해진 귀가 이럴 때는 불편했다.
콰아앙! 퍽! 우르르르!
그렇게 열댓 번 곡괭이질을 했을 때 갑자기 벽이 우르르르 무너지며 벽 너머가 보였다.
벽 너머가 보이는 순간 우리는 모두 눈살을 찌푸려야했다.
갑자기 너무도 환한 빛이 통로 안으로 들어왔기 때문이었다.
쫑!
꾸!
음머어어!
벽을 부수는 것을 흥미롭게 보고 있던 소환수들이 놀라 소리를 질렀다.
광원이 벽 너머이 있는 것은 아닌지 의심스러울 정도로 강렬한 빛이었기 때문이었다.
<아이고 깜짝이야! 그런데 꼬물이와 도뮤는 왜 이리 조용해?>
다들 놀라는데 꼬물이와 도뮤는 조용했던 것이다.
대기실을 슬쩍 쳐다보았더니 도뮤는 눈을 감고 있었고, 꼬물이는 뿌리로 눈을 가리고 있었다.
물론 꼬물이에게 눈이 있는 것은 아니지만 꼭 저런 식으로 눈을 가리는 시늉을 했다.
그리고 꼬물이의 뿌리 하나는 이런 글씨를 반복해서 쓰고 있었다.
^눈 감아!^
^도뮤! 눈 감아!^
<미리 알고 있었나? 정말 신기한 일이야. 여기는 던전 덩굴이 있었던 것도 아닌데 꼬물이는 어떻게 알았을까?>
꼬물이에게 묻는 것은 벽을 다 부수고 해도 늦지 않을 것 같았다.
혹시 위험한 것이 있었다면 단순히 눈만 감으라고는 하지 않았을 것이고···.
퍽어어억! 와르르르!
콰아앙! 와르르르!
한 번 부서지기 시작한 벽은 너무도 쉽게 부서졌다.
벽을 모두 부수자 통로 안으로 빛이 쏟아지듯 들어왔는데 빛이 들어오자 통로의 느낌이 조금 전과는 완전히 다르게 느껴졌다.
쫑!
꾸루!
쪼롱이가 통로를 날다 돌아오더니 어깨에 앉았다.
통로 밖은 숲이었다.
그리고 물 냄새가 한결 진해졌다.
우리는 통로를 넘어 숲으로 들어갔다.
햇살이 바닥까지 잘 닿을 정도의 숲이 이어지고 있었다.
<이런 곳이 좋더라. 지나치게 울창하면 음침해.>
호랑이들은 조금은 더 울창한 숲을 좋아할 것 같은데 영체 상태로만 살아서 그런지 나호는 이런 숲이 좋다고 했다.
쫑!
쪼롱이가 사냥조들에게 정찰을 명령했다.
사냥조 80마리가 동시에 정찰을 나가는 모습은 장관이었다.
조심성이 많은 꾸루는 내 주변을 떠나지 않았다.
이곳이 안전하다는 것을 알기 전까지는 이런 상태로 있을 것이다.
사냥조들이 정찰을 다녀올 때까지 기다릴 생각은 없었다.
우리는 물 냄새가 나는 곳으로 이동했다.
던전을 공략하는 것이 아니라 기분 좋게 숲을 산책하는 것 같았다.
아이들이 뛰어놀아도 좋을 만큼 안전해 보이기도 했다.
이곳을 걷다보니 몬스터가 접근하지 못하도록 벽으로 막아두었던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그렇게 물 냄새를 따라 이동하자 어느 순간 물소리가 났다.
쪼오롱! 쫑!
^안전해요. 치료수도 있대요.^
꼬물이가 쪼롱이의 말을 바닥에 받아썼다.
꼬물이의 글을 읽는 것을 확인한 쪼롱이가 앞장서기 시작했다.
사냥조들의 정보를 들으면서 안내를 하는 것이기 때문에 어렵지 않게 치료수가 흐른 곳에 도착할 수 있었다.
<와우! 이게 다 치료수인 거야? 엄청난데?>
치료수가 폭포처럼 흐르는 곳이었다.
이런 던전이 전생에 알려지지 않았다는 것이 안타까울 뿐이었다.
"이런 곳이 확보된다면 많은 사람을 구할 수 있겠어."
<집사! 어서 저기 들어가 봐. 나도 저기에 몸 좀 담가보게. 혹시 모르잖아. 저런 물에 몸을 담그면 더 빨리 실체를 갖게 될지.>
"그래."
엄청나게 큰 폭포는 아니었다.
하지만 혼자만 알기는 너무 아까운 곳이었다.
폭포를 타고 내려온 물에 발을 담갔다.
치료수가 주는 청량함이 기분을 좋게 했다.
<우와! 시원해. 이런 치료수가 이렇게 흘러가다니···. 너무 아까워. 집사! 가지고 온 통에 다 담아! 이게 다 얼마야?>
나호의 탄성은 쉽게 끝나지 않을 것 같았다.
그런데 발에 닿는 감각이 걸을 때마다 조금씩 다른 것 같았다.
"위로 올라가봐야겠어."
<왜? 좋은데?>
"위에 샘 같은 것이 있는 것 같아."
<역시! 물 색깔이 조금씩 다르네. 집사 말대로야. 위에 치료수가 나오는 샘 같은 곳이 있나봐. 어쩐지 마나의 눈이 조용하다고 했어.>
이런 좋은 것을 발견했으니 마나의 눈이 반응을 보일만도 한데 조용하기는 했다.
물에서 나와 상류로 향하려는 순간 마나의 눈이 반응을 보였다.
<한 박자 늦었지만 나쁘지 않아. 하하하!>
지금 나호는 여전히 물속에 몸을 담근 채였다.
5미터만 벗어나지 않으면 어디에 있어도 상관이 없으니 가능한 행동이었다.
치료수가 나오는 곳은 의외로 가까이에 있었다.
폭포 바로 아래에서 퐁퐁 솟아오르고 있었던 것이다.
<양이 많지는 않네. 그런데 저런 물색을 만들어 낸 거야? 집사! 먹어봐.>
마나의 눈이 치료수라고 했기 때문에 안심하고 먹을 수 있는 물이었다.
치료수를 받아 마시니 속까지 시원해지는 것이 기존에 가지고 있는 치료수보다 더 좋은 것이 분명했다.
그때 메시지가 들렸다.
[띠링! 치료수를 발견했습니다. 치료수의 등급은 B등급입니다.]
[B등급의 치료수를 인류 최초로 마셨습니다. 이에 치유력이 영구적으로 1% 상승합니다.]
<와우! 잘됐다. 치료수 발견한 것보다 나는 이것이 더 반가워.>
나호가 치유력 상승을 반겼다.
현재까지는 치유력 상승은 마나로도 구매할 수 없기 때문에 귀한 것이기는 했다.
이로써 치유력은 ??+13%가 되었다.
꼬물!
^치료수 좋아! 좋아!^
자신이 먹을 것이라고 생각하는지 꼬물이가 유난히 좋아했다.
"B급만 되도 사실 엄청난 거잖아."
<그렇기는 한데···.>
아이템의 등급은 F, E, D, C, B, A, S, SS, SSS, EX로 열 개의 등급이 존재한다.
EX급은 거의 존재하지 않는 것으로 취급했고, S급 이상도 마나를 주고도 얻기 어려웠다.
그래서 실질적으로는 A급이 끝이라고 생각했다.
그만큼 S급 이상은 사기 어렵고, 발견하거나 우연히 얻기는 더 어려웠던 것이다.
전생에 우리가 최상급 물건이라고 생각했던 것은 A급이었으니 B급만 되어도 사실 엄청난 것이었다.
전생에는 대변혁 이후 5년 이상이 지났을 때야 종종 볼 수 있었던 것이 B급이었으니 우리는 시간을 5년 이상 단축한 것이기도 했다.
<집사! 꼬물이 좀 봐.>
나호의 발을 따라 시선을 이동하니 꼬물이가 꼬물 댄스를 추고 있었다.
좌우로는 하트를 흔들고, 가장 긴 뿌리로는 바닥에 글을 쓰면서 추는 춤이었다.
^주세요! 주세요! 치료수 주세요!^
제법 리듬감 있게 꼬물거리면서 새로 얻은 치료수를 갈구하고 있었다.
"이게 효과가 있어야 할 텐데."
<있어야지. 이제 하루에 한 번 공기를 교환한 것으로는 안 될 것 같던데. 지난번 신주쿠 거리에 나돌던 괴담 들었지?>
지난번 꼬물이가 잠시 가출을 감행했던 신주쿠의 공원 근방에 신고가 속출했었다.
정체를 알 수 없는 냄새가 난다며 혹시 지진의 전조가 아니냐는 것이었다.
당시 우리는 한국에 와 있어서 모르고 있었지만 도쿄 사람들은 상당히 불안해했다고 한다.
그만큼 꼬물이의 냄새가 심해진 것이다.
전생에는 대변혁 전에는 이렇게까지 냄새가 나지 않았는데 이상한 일이었다.
분명 전생에는 대변혁이전엔 아무도 느낄 수 없었던 냄새였는데 이번 생에는 벌써 견디기 힘든 냄새가 된 것이었다.
꼬물!
^치료수! 치료수!^
<이게 얼마나 비싼 건지 꼬물이에게 말하면 안 되겠지?>
꼬물 댄스를 추던 꼬물이의 동작이 멈추었다.
그리고는 나호의 입이 있는 방향으로 뿌리가 따라왔다.
비싸다는 말에 반응한 것이었다.
"꼬물아 괜찮아. 여기 물처럼 흐르잖아. 너도 봤지?"
꼬물!
^ㅇ^
꼬물!
^비싸요?^
"많이 비싸지 않아. 괜찮아. 여기서 넉넉하게 가지고 가면 돼. 대변혁 전까지 쓰고 남을 정도로 가지고 갈 거야."
꼬물!
^비싸구나!^
꼬물이의 뿌리가 축졌다.
뮤! 뮤!
^기죽지 말라고. 친구.^
뮤! 뮤! 뮤!
^통로를 지나니 빛이 있었잖아. 네 삶도 그럴 거야. 친구!^
도깨비 도뮤가 꼬물이의 뿌리를 잡고는 하는 말이었다.
인생을 제법 살아본 사람이나 할 말을 아무렇지도 않게 하는 털뭉치였다.
둘의 이야기를 잠시 바라보다 대기실에 넣어온 물병을 꺼냈다.
물이 없을 때는 접어두는 물병은 던전이나 비세계에 가지고 다니기 좋은 것이었다.
물병에 물을 담으려 하는데 시스템의 음성이 들려왔다.
[지금 강대한 님께 꼭 필요한 상품이 있습니다. 치료수를 보관할 수 있는 전용 물통입니다.]
"안 산다니까. 열심히 모아놔야 다음 소환에 대비하지."
[지금 사시면 기능을 상향해드리겠습니다. 이런 제품은 다시는 출시되지 않습니다.]
유일 제품이라는 말에 혹 하려고 했다.
정말 사람 마음 끄는 것은 시스템만한 것이 없었다.
<멀쩡한 세상에서 홈쇼핑 사업을 했어도 성공했을 거야. 시스템은.>
유일 제품이나 유일 스킬이라고 해서 너무 신경 쓸 것은 없었다.
전생에 유일 스킬이라는 말에 구매를 하고 후회를 한 헌터는 셀 수 없을 정도로 많았다.
자신에게 딱 맞는 것이 아니면 유일이라는 말은 의미가 없는 것이었다.
"디자인이나 기능을 조금 달리해서 또 나올 거잖아."
<맞아. 그런 일이 한두 번이라야 속지. 할인해 주지도 않을 거잖아.>
[할인은 해드릴 수 없습니다. 워낙 심혈을 기울인 제품이고 이것은 특별히 강대한 님을 위해 만든 제품입니다. 그러니···.]
<아! 집사의 마나를 털어먹기 위해 만든 거구나. 다른데 팔 수 없는 거지? 그런 거지?>
시스템의 음성이 잠시 들려오지 않았다.
우리의 대화에 귀를 기울이고 있는 소환수들의 표정이 제각각이어서 보는 재미가 있었다.
그중 가장 심각한 것은 꼬물이었다.
자신으로 인해 마나가 소비되지 않는지 온 감각을 곤두세우고 있는 것이었다.
[강대한 님의 상황을 배려해서 만든 것입니다. 이것은 특별히 강대한 님의 소환 대기실에 넣을 수 있도록 만든 것으로···.]
<맞네. 대기실을 가진 사람은 집사가 유일하고, 앞으로도 이런 대기실을 가진 사람은 거의 없을 테니 집사가 아니면 팔 수 없는 거잖아?>
[······.]
<집사! 사지 마! 웃기는 애들이야. 얼렁뚱땅 넘어가려고 하고 있어!>
나호는 화를 내고 있었지만 이런 좋은 기회를 놓칠 수는 없었다.
가장 좋은 치료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