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3. 통째로 삼키는
[그렇습니다. 이 던전에 있는 유일한 치료수입니다.]
"대변혁이후에는 이 던전에 오갈 수 있는 것도 맞지?"
[그렇습니다. 입구를 통해서가 아니고 이 던전은 워프 게이트를 통하셔야만 출입이 가능하실 겁니다.]
아마 직접적으로는 도저히 접근할 수 없는 곳에 입구가 있는 모양이었다.
"대출을 한다고 해서 내게 따로 피해가 오거나 페널티가 붙는 그런 것은 없겠지?"
지나치게 조심을 하는 것 같지만 시스템과의 거래이기 때문에 확인하고 또 확인해야 했다.
사기는 치지 않지만 그에 못지않은 수준으로 거래를 진행하기 때문이었다.
[걱정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좋아. 물통을 구매하겠어. 2만 마나 대출해서 물건 사줘."
[잘 생각하셨습니다. 2만 마나로 물통을 구매하여 대기실에 배치하였습니다. 첫 거래 기념으로 이곳의 치료수를 이미 채워드렸습니다.]
<이런 점은 마음에 드네. 언제 물을 다 채우나 고민했는데···.>
시스템의 설명과 함께 꼬물이 옆으로 치료수 물통이 생겼다.
가로, 세로, 높이 1미터여서 조금 비대해 보이면 어쩌나 했는데 막상 들여 놓으니 그렇지도 않았다.
시스템의 배려인지 마나를 지불하지도 않았는데 겉이 유리처럼 반질하고 투명해서 주위를 그대로 비추었다.
스텐을 거울처럼 연마해두었다고 보면 정확할 것이다.
꼬물이도 조작하기 쉽도록 되어 있어서 더 마음에 들었고, 대기실에 들어갈 수 없는 나도 물통의 호스를 조작할 수 있도록 되어 있어서 아주 편리하게 사용할 수 있을 것 같았다.
꼬물!
^치료수! 치료수다!^
꼬물이가 제 뿌리가 물통에 비추는 것을 유심히 보며 하는 말이었다.
뮤! 뮤!
^어! 친구가 저기도 있다! 그런데 저 분홍 털 뭉치는 뭐냐?^
꼬물!
뮤!
꼬물!
뮤!
꼬물이와 도뮤가 아주 난리가 났다.
물통에 비치는 자신들의 모습을 보고 장난을 치는데 우리가 보기에는 유치했지만 둘은 재미있어 했다.
<도뮤 저 녀석 은근 개그감 있어. 자신을 아무렇지도 않게 분홍 털 뭉치래. 하하하!>
둘이 노는 것을 잠시 지켜본 나호가 즐거워했다.
늘 외롭게만 지내던 꼬물이가 도뮤의 합류 이래로 외롭지 않게 되었다.
꼬물이의 냄새가 점점 심해지는데도 도뮤는 꼬물이의 옆을 떠나지 않았다.
아니 오히려 시간이 갈수록 더 사이가 좋아지고 있었다.
[띠링! 상태창을 확인하시면 마나 아래에 대출 기록이 추가되었습니다. 확인하시고 내년 2월 말일까지는 꼭 상환해주시기 바랍니다.]
<와아! 벌써 우리를 빚쟁이로 대하는 것 같다. 이래서 들어갈 때 다르고 나올 때 다르다고 하는구나. 심하다. 심해.>
나호가 듣기 싫다는 듯 앞발을 휘휘 저으며 말했다.
상태창을 확인하자 마나 바로 아래에 보이지 않던 문구가 삽입되어 있었다.
[대출 : 20,000마나(상환기일 2030년 2월 28일)
*특례조항: 생애 첫 대출로 상환기일까지 이자 면제. 상환기일까지 원금을 전액 상환하지 못하면 시스템 이자방식 적용. 첫 날 이자는 5마나임.]
<무섭네. 무서워. 보는 것만으로도 숨이 턱턱 막힌다. 전생에 집사 허덕허덕 사는 거 옆에서 보는 것만으로도 힘겨웠는데 이걸 보니까 그때 생각이 나.>
"너무 그렇게 생각하지 마. 그래도 2만 마나나 빌려준다는 게 어디야. 덕분에 애들 좋아하잖아."
거울처럼 비치는 물통에 서로의 모습을 비춰보며 놀던 꼬물이와 도뮤는 이제 치료수를 가지고 장난을 치고 있었다.
엄청나게 많은 치료수가 아니면 절대로 할 수 없는 일이었다.
<아이고! 저 철부지들을 어쩌면 좋아. 저게 어떤 건줄 알고···.>
"나둬. 물놀이 좋아할 나이잖아."
<도뮤는 아닌 것 같은데? 저 녀석에게서는 중년의 향기가 느껴져.>
"살아온 세월이 호락호락하지 않았다고 하잖아. 식구가 됐으니 그런 그늘을 지울 수 있으면 좋지."
호스가 여러 개이고 조작도 쉬워서 작은 덩치의 도뮤도 호스를 들고 대기실에 치료수를 뿌릴 수 있었다.
치료수가 꼬물이와 아수라 덩굴에 뿌려지는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그때였다.
그동안 아무런 반응이 없던 아수라 덩굴이 꿈틀거렸다.
<집사! 방금 봤어?>
"봤어. 아수라 움직였잖아."
<저 녀석도 소환 식물이 되는 건가?>
"이왕 대기실에 있으니 소환 식물이 되면 좋지. 던전도 형성이 되고 있다고 하잖아."
<치료수가 던전 덩굴에 효력이 있기는 하구나. 그런데 꼬물이의 짝은 여전히 반응이 없네. 아수라는 둘 다 꼼지락거리기 시작했는데.>
던전 덩굴은 늘 쌍으로 존재한다.
던전 입구를 양쪽에서 지키며 입장과 퇴장을 관리하는 것이 그들의 일이었다.
퇴장할 때는 빼앗았던 물건을 돌려주기만 하니 별 문제가 되지 않지만, 입장할 때는 검사를 통해 출입제한이 된 물품을 빼앗는 것은 물론이고 입장이 불가능한 사람을 가려내기도 했다.
건강이 좋지 않은 사람을 가려내는 것이었다.
일반인은 물론이고 헌터도 부상이 심하거나 건강이 좋지 못하면 입장할 수 없었다.
이런 모든 일을 입구 양쪽 기둥을 시작으로 자란 던전 덩굴이 하는 것이었다.
두 덩굴은 한 그루인 것처럼 서로 소통이 잘 되었고, 그걸 바탕으로 물 흐르듯 자연스럽게 자신들의 일을 해내었다.
지금도 아수라 덩굴 둘이 동시에 움직이기 시작했다.
그런데 아수라 덩굴은 꼬물이처럼 뿌리가 아니라 아직은 짧고 작은 줄기를 움직였다.
혹시 뿌리가 나오지 않을까 지켜보았지만 그렇지는 않았다.
작은 줄기가 움직이고 작은 줄기에 붙은 더 작은 덩굴손이 살아있음을 증명하려는 듯 꼼지락거리고 있었던 것이다.
꼬물이와 도뮤가 호기심어린 눈으로 아수라를 바라본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이거 얘들만 보고 있어도 심심하지 않겠다.>
나호가 아주 턱을 괴고 대기실을 바라보고 있었다.
꼬물꼬물! 꼼지락꼼지락! 뮤! 뮤!
아이들이 물놀이를 하느라 쓴 치료수를 보충할까 하다가 갑자기 좋은 생각이 났다.
그동안 반응이 없던 아수라를 깨울 정도라면 치료수는 우리가 생각하는 것 이상의 효과를 지녔을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든 것이다.
소환수들을 향해 쇼 타임을 외치려는 순간 나호가 선수를 쳤다.
<집사! 물장난 크게 해보자고 하려는 거지?>
"어떻게 알았어?"
<집사랑 지낸 시간이 얼만데 그걸 모르겠어? 그럼 잠깐 놀아도 좋다는 거지?>
"좋아. 여기서 치료수 다 써도 좋으니까 마음껏 놀라고 해."
<앗싸아아!>
자신은 대기실에 들어가지도 못하면서 누구보다 좋아하는 나호였다.
나호가 소환수들에게 파티타임을 말하는 순간 대기실은 그야말로 광란의 도가니가 되었다.
"내가 바라던 것은 이런 그림이 아니었는데···."
비말처럼 흩뿌려지는 치료수와 그 사이를 날아다니는 새와 도깨비!
조금은 환상적인 그림을 상상했는데 현실은 전혀 달랐다.
비말처럼 흩뿌려지는 치료수가 아니라 대포처럼 쏘아지는 치료수였고, 그 사이를 환상처럼 날아다니는 새와 도깨비가 아니라 전투보다 치열하게 물싸움을 하는 소환수들이었다.
정말 죽기 살기로 노는 것 같았다.
"스트레스가 많았나?"
<한 번씩 저럴 필요가 있지. 처음이잖아. 저런 거.>
"너만 놀지 못해서 어떻게 해?"
<나야 뭐 이제는 익숙해. 그리고 보고 있는 것만으로도 좋잖아. 아주 홀딱 젖었어. 아주 제대로 신이 난 것 같아.>
이제 막 꼼지락거리기 시작한 아수라도 한몫 거들고 있었다.
아직 호스를 들 정도는 되지 않지만 자신 쪽으로 날아오는 물을 줄기를 이용해서 사방으로 흩뿌리고 있었던 것이다.
<대기실이 치료수로 흠뻑 젖네. 나쁜 일은 일어나지 않겠지?>
"설마. 치료수잖아. 그것도 저 물통에 들어갔으니 A급 치료수야. 분명 좋은 일이 있을 거야."
<집사가 저 치료수 마시면 치유가 또 오르지 않을까?>
"그럼 좋지. 애들 다 놀고 나면 마셔봐야겠다. 녀석들 정말 잘 노네. 여기 올 때마다 저렇게 놀라고 해야겠어."
<그럼 더 좋아하겠지.>
나는 발을, 나호는 폭포에 온몸을 아예 담근 상태로 아이들이 노는 것을 지켜보았다.
소환수들은 지치지도 않는지 도무지 물장난을 끝낼 것 같지 않았다.
반반이와 반반이 가족까지 뛰어다니고 있어서 소환실 바닥이 엉망이 되고 있었지만 크게 신경 쓰지 않았다.
너무 엉망이 되면 마나로 바닥만 고쳐달라고 하면 그만이었다.
그렇게 놀던 소환수들이 대기실에서만 노는 것이 슬슬 답답하다고 생각한 모양이었다.
놀이영역을 대기실 밖까지 확대하기 시작했다.
대기실과 밖을 오가며 장난을 치자 내 몸도 완전히 젖고 말았다.
폭포 아래 물이 닿지 않은 곳에 앉아 관람을 하던 내게 뜻하지 않은 물벼락이 떨어진 것이었다.
"이 녀석들!"
치료수 호수를 하나 잡아서 물을 틀었다.
그리고 소환수들을 향해 물을 쏘기 시작했다.
<하하하하! 하하하! 하하하!>
던전에서 들을 것이라고는 생각해본 적 없는 웃음소리가 한참 동안 이어졌다.
그렇게 웃는 일만 있으면 참 좋았겠지만 물놀이 중이던 어느 순간 감각에 이상한 것이 잡혔다.
이것은 통로에서 보았던 몬날아귀의 기척이 아니었다.
재빨리 소환수들을 진정시키고 내 상태를 점검했다.
창을 꺼내들자 쪼롱이가 정찰을 보내려고 했다.
"보내지 마! 생각보다 큰 놈이야."
그래도 정찰을 보내려는 쪼롱이를 제지했다.
비세계의 제1숲에서 얼마든지 불러올 수 있는 새들이지만 그렇다고 함부로 대하고 싶지는 않았다.
"나는 놈 같아. 잘못하면 먹힐 수 있어."
쫑!
알았다며 사냥조를 내 옆과 뒤로 배치시키는 쪼롱이었다.
조금 전까지 광란의 물싸움을 하던 새로는 도저히 보이지 않는 모습이었다.
심각한 분위기를 읽었는지 반반이도 대기실 밖을 주시하고 있었다.
겁이 많은 꾸루도 상황주시는 잊지 않았다.
우리에게 위기감을 주었던 적은 오래지 않아 나타났다.
그런데 우리가 상상하지 못했던 곳에서 나타난 적이었다.
우리가 지나왔던 통로가 있는 방향이었다.
아마 우리가 가지 않았던 통로에 있던 몬스터인 것 같았다.
<아! 저거 좀 더 까다로운 녀석인데···.>
아직은 거리가 있었지만 시야에 들어오자마자 정체가 파악되었다.
'몬쌍아귀'
몬쌍아귀의 정확한 명칭은 '몬날암수아귀'이다.
아귀처럼 수컷이 암컷에 기생하고 있기 때문에 사람들이 붙인 이름인데 일반적으로는 몬쌍아귀라고 한다.
우리가 흔히 몬날아귀라 불렀던 몬날초롱아귀와 비슷하면서도 다른 녀석이었다.
빛을 내는 촉수가 없는 것은 물론이고 수컷이 기생을 한다는 것도 몬날초롱아귀와 달랐다.
"저 녀석은 등이나 배에 수컷이 붙어 있어. 암컷을 죽였다고 끝난 것이 아니야. 그러니 조심해야 해."
빠르게 거리를 좁히고 있는 몬쌍아귀를 보며 말했다.
쌍으로 같이 있다고 하니 꼬물이와 아수라가 반응을 보였지만 지금 얘들과 놀아줄 시간은 없었다.
"특히 몬쌍아귀는 빨아들이는 힘이 강하니까 정면으로 달려드는 것은 피해야해."
쫑!
쪼롱이가 설명에 귀를 기울이며 다가오고 있는 몬쌍아귀에게서 눈을 떼지 않았다.
몬쌍아귀가 다가오는 것을 보며 폭포로부터 멀어지기 시작했다.
치료수를 몬쌍아귀의 체액으로 더럽힐 수 없었기 때문이었다.
<수컷은 작아. 그것도 많이. 너희는 걱정이 없지만 반반이의 코나 귀로 파고 들 수도 있어.>
쫑?
음머어어?
<정말이야. 그러니 신경 바짝 써야 해. 수컷은 암컷이 죽기 전에는 움직이는 법이 없으니 우선은 걱정하지 않아도 돼.>
나호도 나서서 설명을 했다.
몬쌍아귀는 거대한 입으로 세상 모든 것을 빨아들일 것처럼 크게 벌린 상태로 다가오고 있었다.
<간혹 아귀를 잡으면 아주 귀한 몬스터 사체를 공짜로 얻는 행운이 있기도 해. 저 녀석들 통째로 삼키는 것을 좋아하거든. 재수가 없으면 그 몬스터가 살아있기도 하니까 신경 써야 하고.>
나호는 몬쌍아귀를 정말 잘 알고 있었다.
전생에 함께 전장을 굴렀다고 하더니 그때 얻은 지식이 상당한 것 같았다.
나호가 몬쌍아귀에 대해 설명하는 사이 꽤 가까이 다가온 몬쌍아귀가 다시 거대한 입을 벌리고는 흡입을 시작했다.
몬날아귀가 촉수를 이용한 공격을 주로 하는 것과 달리 몬쌍아귀는 흡입하는 것을 좋아했다.
그리고 그것은 몬쌍아귀의 약점이 되기도 했다.
특히 나처럼 창을 많이 준비하고 있을 때는 더 그랬다.
미리 준비하고 있었던 나무창을 던지기 시작했다.
몬쌍아귀의 흡입력을 이용하며 크게 힘을 쓰지 않고도 창을 던질 수 있었다.
지금 내가 던지고 있는 창은 화순에서 잘라온 대나무 창이었다.
몬쌍아귀를 상대할 때는 최고의 무기였다.
대기실에 혹시 몰라 준비하고 있던 것이 아주 요긴하게 사용될 일이 생긴 것이었다.
낭창낭창하지만 한 번 꽂히면 생각 이상의 고통을 선사하는 대나무 창이 날아갔다.
그리고···.
세계 최대 금 매장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