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2. 던전의 던전
미개방 던전을 클리어하면 소유권이 내게 넘어왔다.
소유권이 넘어왔다고 해서 던전의 모든 것을 내 마음대로 할 수 있는 것은 아니었다.
강원도 횡성의 치악산 던전만 난이도를 조절할 수 있다고 했을 뿐 다른 던전은 그런 것도 조절이 불가능했다.
아직까지는 소유했다고 해도 열고 닫는 것만 자유롭게 할 수 있었다.
그렇다고는 해도 자유롭게 출입하면서 던전을 활용하는 것은 내 자유였다.
던전에 농사를 지을 수도 있고 물건을 가져다 놓을 수도 있었다.
단지 자주 오갈 수 없으니 하지 않는 것뿐이었다.
그런데 밖에서 시간이 흐르지 않는 던전이라면 할 수 있는 일은 무궁무진했다.
<호오오! 집사! 이거 엄청난 기회가 될 수도 있겠다. 대박은 아니었지만 직접 대박을 만들어낼 수는 있을 것 같아!>
나호도 기대감을 드러내고 있었지만 시스템의 대답이 돌아오지 않았다.
<이거 또 빠져나갈 구멍 만드는 것 같은데?>
나호의 의심이 한 겹 쌓이려는 순간 시스템의 메시지가 들렸다.
[보상이기 때문에 이 던전이 소멸할 때까지는 무엇이든 하실 수 있습니다.]
"소멸할 때까지라는 말을 자꾸 강조하는데 설마 몇 시간만 보낼 수 있는 것은 아니겠지?"
[아닙니다. 강대한 님께서 이 던전을 빨리 클리어하신 덕분에 이곳에 머무실 수 있는 시간이 늘어났습니다. 이곳에 계실 수만 있으면 최장 3년간 머무실 수 있습니다.]
"3년? 나쁘지 않는데···. 그동안 내가 여기서 얻은 것은 어떻게 돼? 가지고 갈 수 없다면 보상이라고 할 수 없잖아."
[지금 눈앞에 있는 전리품은 3년 동안은 상하지 않을 겁니다. 늘 막 잡으신 것과 같은 신선도가 유지될 것입니다. 시냇물도······.]
보상은 확실한 모양이었다.
시스템이 전에 없이 친절하게 말했는데 그 내용은 정말 의외의 것이었다.
이 던전의 규모는 상당했다.
그런데 그 모든 것을 이용할 수 있는 것은 물론이고 이 던전에 들어와서 잡은 전리품의 신선도 유지까지 보장을 해주었다.
이것뿐만이 아니라 이곳에서 머물면서 수확하거나 채취한 것은 어떻게든 가지고 나갈 수 있는 방법을 알아보겠단다.
[단! 3년을 완전히 채우셨을 때만 가능한 이야기입니다.]
<3년이 되기 전에 나가겠다고 하면?>
[이곳에서 얻으신 것은 모두 두고 나가셔야 합니다.]
"이미 얻은 전리품도?"
[지금 당장 나가시겠다고 하면 가지고 나가실 수 있습니다. 인벤토리가 얼마나 넓은지 모르겠지만요···.]
당장 나가겠다고 하면 평상시대로 인벤토리나 공간 주머니에 담아갈 수 있는 정도가 한계라는 말이었다.
사실 저 말은 내가 이 던전에서 바로 나가겠다는 말을 하지 않을 것을 알기 때문에 하는 소리였다.
솔직히 3년을 이런 곳에 머무르게 해주겠다는데 나가겠다는 바보는 존재하지 않았다.
3년이라면 적지 않은 시간이었다.
혼자라면 견디기 힘든 시간일지는 모르겠지만 나에게는 소환수들이 있었다.
이곳에 머물면서 체력을 기르고 몸만 만든다고 해도 엄청난 것이었다.
"좋아! 이곳에 머물겠어."
[그럼 3년 후에 보겠습니다. 좋은 시간되시길 바랍니다.]
시스템은 약간 서두르는 듯한 느낌을 주며 메시지를 종료했다.
<집사! 시스템이 좋은 시간이라고 하면 괜스레 긴장이 되더라. 늘 무슨 일인가 생겼던 것 같아. 이번에는 그런 일이 일어지 않겠지?>
"클리어 된 던전이니 그런 일은 없겠지. 우선 이것부터 한쪽으로 치워야할 것 같은데?"
<그냥 이대로 두자! 여기에 두고 몇 마리씩만 그때그때 도축하면 되잖아. 이거 치우려면 너무 고생돼서 안 돼.>
산처럼 쌓인 몬스터 사체를 한쪽으로 치우려고 했더니 나호가 결사반대를 했다.
어차피 금세 먹을 거 괜히 고생하지 말란다.
쪼롱이와 사냥조의 식성을 생각하면 틀린 말도 아니었다.
3년 동안 이곳에 머물 생각을 하자 몬스터가 이렇게 많이 나왔던 것이 참 다행이다 싶었다.
이렇게 많은 몬스터의 사체도 3년 동안의 먹이로는 부족할 것 같지만 한동안은 먹이 걱정을 하지 않아도 될 것 같았다.
"그럼 시냇가로 가보자. 그 부근에 살 집을 한 채 지어야겠어."
쫑!
꾸!
음머어어!
뮤! 뮤! 뮤!
^집? 집을 짓는다고? 그런 것도 할 줄 아는 거야?^
던전 도깨비 도뮤가 호기심을 드러냈다.
그러더니 대기실에서 나와서 주변을 살피기 시작했다.
뮤! 뮤! 뮤! 뮤!
^집! 나도 좀 안다! 물가에 집 지으면 큰일 난다! 풍경 좋은 거 한 순간이다. 비 많이 오면 후회해도 늦다.^
집 이야기가 나오지 중년의 향기를 풍기는 도뮤의 말이 많아졌다.
하지만 집이라고 하면 쪼롱이와 꾸루도 빠지지 않았다.
자신들도 제 무리들을 이끌고 집을 짓고 살아봤던 것이다.
쫑!
^물가 큰일 나!^
꾸!
^높은 곳이 최고다.^
음머어어어!
^초지가 최고지.^
각자 자신들이 생각하는 집에 대한 의견을 말하기 시작했다.
나름 일리 있는 의견도 있고, 무시해야하는 것도 있었다.
조금 전까지 전투를 치르느라 피곤해하던 애들이 맞나 싶었다.
<집이 중요한 문제이기는 하지. 그런데 나는 단 한 번도 집을 가져본 적이 없어. 그래도 잘 살아왔어. 기후만 괜찮다면 집을 굳이 지을 필요는 없지.>
나호도 한 마디 거들었다.
"이곳이 어떤 곳인지 알 수 없으니 집은 있어야 해. 만약을 대비해야지."
<우리가 봤을 때 눈이 오거나 많은 비가 내리지는 않는 곳이긴 했는데···.>
나호가 말하는 것은 우리가 던전에 처음 들어왔을 때 시간이 빠르게 흐르는 것 같은 장면을 말하는 것이었다.
그때 봤을 때 분명 이 던전은 많은 비나 눈은 없었다.
아니 눈은 전혀 내리지 않는 곳이었다.
하지만 클리어 되고 나서도 그런다는 보장은 없었다.
항상 대비를 하는 것이 좋았다.
그래서 가장 적당하다고 생각한 곳에 집을 지었다.
시냇가는 아니었지만 물과 멀지 않고 집앞으로 넓게 초원이 펼쳐졌지만 지대가 살짝 높은 곳!
그곳에 나무와 흙, 돌을 이용해서 만든 집이었다.
반반이까지 들어올 수 있을 정도로 높고 넓게 지을 수는 없었지만 소환수들이 대기실과 집을 오가는 데는 불편하지 않을 정도는 되었다.
그 이후 이곳에서의 생활은 어찌 보면 농부의 삶이었다.
아침 일찍부터 일어나 땅을 파고 각종 씨앗을 심었다.
대기실에 밭을 만들려고 모아두었던 씨앗이 던전에 뿌려지는 순간이었다.
그렇게 시간이 흐르는 사이 대기실에 심었던 고구마를 처음 수확하기도 했다.
처음이라 큰 기대를 하지 않았는데 한동안 소환수들의 간식이 될 정도의 고구마를 얻었다.
치료수를 먹고 자란 고구마라 그런지 맛도 기가 막힐 정도로 좋았다.
고구마를 수확하고 난 이후에는 밭을 다시 갈아엎어서 수수를 뿌려놓았다.
심어만 놓으면 크게 신경 쓰지 않아도 되는 작물을 고른 것이었다.
<이렇게 쉬게 되네. 집사의 얼굴에 여유라는 것이 보여서 좋아.>
나호의 얼굴도 시간이 지날수록 편안해지고 있었다.
"여기에 너무 젖어들까 걱정이야."
<아침저녁으로 실전을 방불케 하는 훈련을 하는데 무슨!>
여기서 생활하는 시간이 길어지면서 놀라운 일이 벌어졌다.
사냥조와 전령조, 도깨비의 수가 늘어나기 시작한 것이었다.
생활이 안정되어서 그런지 특히 도깨비들의 숫자가 빠르게 늘고 있었다.
이 던전에 금이 포함된 돌멩이가 심심치 않게 발견되는 것도 이유가 되었을 것이다.
대기실에서만 생활을 했다면 좁아서 힘들었겠지만 지금은 던전에서 생활하는 시간이 더 많아서 좁다는 느낌을 받지 않고 있었다.
그러는 사이 던전 덩굴들도 빠르게 성장하고 있었다.
물론 밖의 시간으로 보면 빠르다고 할 수 없는 성장이었지만 말이다.
그렇게 '허상과 실체의 사이'라고 하는 거창한 이름의 던전에 들어온 지도 1년이 지났다.
<집사! 지금 들어가는 거지?>
"그래야지."
<이거 느낌 이상하다. 집사의 영혼에 묶여 있는 대기실에 깃든 던전에 입장한다? 이걸 뭐라고 해야 하는 거야?>
그동안 미루고 있던 아수라 던전에 들어가기로 했다.
대기실에 심겨진 순간부터 내 소유가 된 아수라 던전은 클리어를 하지 않았지만 열고 닫는 것을 마음대로 할 수 있었다.
던전이 생겼을 때 바로 입장할 수도 있었지만 1년 가까이 묵혔던 이유는 던전의 성장을 위해서였다.
던전이 충분히 성장한 뒤에 입장하는 것이 나을 것 같아서 내린 결정인데 그것이 효과가 있는지는 알 수 없는 일이었다.
꼬물!
^저는 못가는 거죠?^
이제 뿌리가 아닌 줄기나 덩굴손을 이용해서 의사표현을 할 수 있는데도 꼬물이는 중요한 의사표시를 할 때는 꼭 뿌리를 이용했다.
대기실 바닥으로 뻗은 줄기는 이제 10미터도 훨씬 넘지만 저렇게 의사표시를 하는 뿌리는 처음 만났을 때와 별반 다르지 않았다.
<왜 못 따라와? 네 뿌리로 따라 들어오면 되잖아.>
꼬물!
^ㅋㅋ!^
꼬물이가 웃더니 뿌리 하나를 꺼냈다.
그러더니 옆의 '황이'와 '금이'를 툭툭 건드렸다.
너희도 같이 가겠냐고 묻는 것 같았다.
수줍음이 많은 황이와 금이는 함께 가기 싫은지 별 내색을 하지 않았다.
하지만 꼬물이가 가면 뒤를 따라 올 아이들이기도 했다.
대기실에 형성된 던전으로 들어가는 것이니 이게 어떻게 적용이 되는지 알 수 없어서 우선 모든 소환수들이 내 뒤로 바짝 붙어 섰다.
그리고 함께 던전으로 입장했다.
내 소유의 던전이라 그런지 덩굴손의 검사 없이 입장할 수 있었다.
[띠링! 환영합니다. 던전 '아수라'입니다.]
이름이 붙은 던전의 경우 이런 식의 환영인사를 하는 경우가 있는데 회귀한 이후로는 처음 듣는 인사였다.
[이 던전은 강대한 님만 입장하실 수 있는 던전입니다. 좋은 시간되시기 바랍니다.]
우리가 입장했을 때 아수라 던전의 입구는 안전했다.
아수라 던전은 워낙 많은 몬스터를 품고 있던 던전이라 입구의 안전은 복불복이었다.
지금 안전했다고 해서 항상 안전하다고 할 수는 없었다.
<벌써 보이네.>
나호가 가리키는 곳에는 검은 들개들이 무리지어 움직이고 있었다.
던전에 들어가면 가장 많이 보게 되는 몬스터 중 하나였다.
나호의 앞발은 한 무리의 검은 들개를 가리킨 이후에도 쉬지 못했다.
검은 들개는 한 무리가 아니었고, 이 던전에는 검은 들개만 존재하는 것이 아니었기 때문이었다.
<'몬들개'라고 불리던 몬스터야! 들개보다 민첩하고 강해. 이빨 힘도 세고 앞발도 의외로 잘 사용해. 개과인 것으로 보이는데 말이야.>
나호가 몬들개에 대한 정보를 풀어놓기 시작했다.
그 사이 몬들개들이 우리를 발견하고 접근하기 시작했다.
몬들개는 이제 내가 나서지 않아도 사냥조들이 다 처리할 수 있었다.
쫑!
쪼롱이가 허락을 구했다.
"좋아!"
쫑!
쪼롱이가 경쾌하게 대답을 하더니 사냥조들을 내보냈다.
<이제 사냥조들을 많이 내보내지도 않구나.>
몬들개 한 무리에게 내보낸 사냥조는 고작 열 마리였다.
하지만 열 마리의 사냥조가 몬들개를 처리하는 데는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꾸루루루!
이제는 적응이 될 만도 한데 꾸루와 전령조들은 여전히 전투를 두려워했다.
하지만 이제 전투를 외면하지 않고 바라볼 정도는 되었다.
이 정도만 되도 장족의 발전이었다.
몬들개와 몬들고양이 정도는 사냥조에게 맡기고 점점 던전의 안으로 들어갔다.
던전쥐들도 사냥조들이 알아서 처리했다.
<이거 날로 먹는 것 같다.>
던전에 들어온 지 두 시간이 지나도록 내가 나설 일은 없었다.
그래서 대기실은 이곳에서 어떻게 작용이 되는지 살폈다.
그런데 정말 이해할 수 없는 일이 펼쳐졌다.
대기실에 있는 던전에 들어왔으니 당연히 대기실이 보이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소환수들을 데리고 입장했었는데 멀쩡하게 대기실이 보였다.
보이는 것뿐만 아니라 소환수들까지 오갈 수 있었다.
한 가지 차이가 있다면 대기실 입구에 있는 아수라 던전의 입구만 까맣게 칠해져 있다는 것이었다.
<신기하네. 저기만 완전히 막혀있다는 거잖아?>
"우리가 저 던전에 들어와 있으니 당연한 거겠지."
<하긴 저기로 또 들어가게 된다면 말이 안 되기는 하지. 던전의 던전의 던전의······. 이런 상황이 펼쳐질 수도 있잖아. 하하하!>
"수라야!"
꼼지락!
아수라와 아수리도 문제없이 움직였다.
<신기하다. 너희 여기로 덩굴 뻗칠 수 있어?>
꼼지락!
아수라와 아수리가 덩굴을 우리 주위로 뻗어왔다.
"이것도 되는구나. 신기해."
아수라 아수리는 물론이고 꼬물이도 입구로 굳이 뻗을 필요 없이 내 주위로 뿌리를 뻗을 수 있었다.
덩굴마다 성격이 달라서 그런지 꼬물이는 급할 때 뿌리가 먼저 움직였다.
아수라와 아수리는 줄기가 먼저 반응를 보였고, 황이와 금이는 덩굴손을 고물거렸다.
꼬물이와 아수라, 아수리는 동작이 제법 큰 반면 황이, 금이는 덩굴손으로 고물고물할 뿐 동작이 크지 않았다.
대신 덩굴손은 가장 발달한 것 같았다.
<좋네. 대기실에 형성된 던전에서는 소환식물들의 활동이 제한되는 줄 알았더니 그것도 아니야.>
"잘된 일이지."
<그런데 대기실에 형성된 던전에는 집사 동행 없이 소환수들끼리 입장도 가능하다고 했잖아. 그때는 어떻게 되는 거야?>
데뷔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