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3. 데뷔전
소환수들은 소환사와 함께가 아니면 원래 던전에 들어갈 수 없다.
그건 지극히 당연한 일이다.
그런데 대기실에 형성된 던전은 소환수들이 자유롭게 출입이 가능하다고 했다.
물론 내가 미리 허락을 했을 때 가능한 일이지만 말이다.
대기실이 원래 소환수들의 공간이기 때문에 그러는 것 같았다.
다른 소환수들이야 날아 들어가든지 걸어 들어가면 될 것 같은데 소환식물은 어떻게 들어가는지 상상이 되지 않았다.
그렇다고 입구부터 뿌리나 줄기가 들어갈 것 같지는 않고···.
"클리어 하고 난 후에 해보라고 하지 뭐."
꼬물! 꼬물!
^지금처럼 이렇게 들어올 수 있어요. 우리가 가고 싶은 곳에.^
우리의 궁금증을 바로 풀어주는 꼬물이었다.
"대기실에 형성된 던전만이잖아."
꼬물!
당연한 것이지만 다시 확인을 했더니 그렇단다.
꼬물이의 말대로라면 다른 소환수들보다 소환식물이 더 자유롭게 던전을 이용할 수 있을 것 같았다.
가고 싶은 곳이면 어디든 뿌리나 줄기만 드리우면 되니···.
소환식물들의 던전공략을 상상하고 있는데 나호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집사! 그런데 저 녀석들 지금 뭐하는 거야?>
나호가 가리킨 것은 던전 도깨비들이었다.
던전 도깨비들은 여기저기 부지런히 돌아다니고 있었다.
부지런하다고 하더니 잠시도 가만있지 않는 녀석들이었다.
꼬물!
^황금 사냥!^
던전 도깨비들은 지금 우리가 생활하는 던전에서도 잠시를 가만있지 않고 금을 찾아 다녔다.
마치 그것이 사명이라도 되는 듯···.
그것이 자신들의 일이자 먹거리라고 하는데 우리 눈에는 도저히 음식으로 보이지 않아서 그런지 아직도 완전히 이해가 되지는 않았다.
아무리 좋은 음식을 줘도 던전 도깨비들은 거들떠보지 않았다.
그건 자신들에게는 의미 없는 것이란다.
지금 와서 생각하니 던전 도깨비들의 축제에도 음식이라고는 아무것도 없었다.
돌멩이만 몇 개 놓여 있었는데 나뭇잎을 고정하기 위한 것이 아니고 자신들의 최고의 음식이었던 것이다.
그러면서도 정작 잘 손질된 금에는 큰 관심이 없었다.
관심이 있었다면 도깨비 마을에서 소환수들에게 금을 나누어줄 때 도깨비들이 모두 몰려들었을 것이다.
하지만 아무도 관심을 보이지 않았다.
목에 걸고 있는 목걸이도 먹이처럼 인식하는 것이 아니고 친구와의 징표 같은 것으로 인식하는 것 같았다.
그러면서 금이 함유된 돌멩이는 저렇게 열심히 찾아다니고 있다.
꼬물!
^도뮤가 준 거예요.^
꼬물이가 내보인 것은 손톱만한 금이었다.
"네게도 줬어?"
꼬물!
"내게도 어제 주던데."
<열심히 제련을 하더니 제법 모았네. 이거 광부는 물론이고 제련사라고 해도 될 것 같아.>
나호 말대로였다.
도깨비들은 돌멩이를 먹고 순금만 기가 막히게 뽑아냈다.
그리고 그렇게 모은 금에는 정작 욕심이 없었다.
도깨비들에게 양분이 되는 것은 금 주위로 몰려있는 이물질 같은 것인 모양이었다.
이물질은 깔끔하게 소화를 시켜버리고 금만을 손톱만한 크기로 모아서 꼬물이나 나에게 선물이라고 주는 것이었다.
황금 던전이 완전히 성장하고 클리어를 하고 나면 황금 던전에서 아주 살겠다고 할지도 모를 녀석들이었다.
<저 녀석들 의미 없이 돌아다니는 것 같지만 의외로 많은 돌을 주워오더라고.>
"알고 있어. 어젯밤에도 밤새 돌 깨는 소리가 이어지더라."
<하하하! 재미있는 녀석들이야.>
던전 안으로 좀 더 들어가자 몬거루들이 돌아다니고 있었다.
하지만 반반이를 보더니 기가 죽어서 달아나려고 했다.
그런 몬거루를 사냥한 것도 사냥조들이었다.
전생에는 제법 골치를 앓게 만들었던 던전이 이번 생에서는 산책 나온 것 보다 쉽게 정리되고 있었다.
<집사! 그런데 이게 다 자란 건가?>
"글쎄? 알 수 없지. 수라에게 물어보면 정확하게 알겠지."
꼬물!
^조금 더 자랄 거래요.^
아수라에게 물었는데 정작 대답을 한 것은 꼬물이었다.
여전히 아수라와 아수리는 말이 많지 않았다.
호기심은 많지만 신중하다는 성격이 이런 식으로 발현되는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여전히 반응이 없는 것은 꼬물이의 짝도 마찬가지였다.
간혹 살짝 움직이기는 하지만 자세히 봐야 알 수 있을 정도로 움직임이 없었다.
여전히 건강이 좋지 않는 것 같았다.
그런 꼬물이의 짝 주위로는 금붙이가 가득했다.
도뮤가 주는 금을 꼬물이가 자꾸 제 짝 주위에 뒀기 때문이었다.
다행스러운 일이라면 꼬물이의 짝도 성장에는 문제가 없다는 것이었다.
겉으로 보면 완연히 자란 던전 덩굴이었다.
"왔다!"
아수라 던전이 골칫거리라고 정평이 나게 만들었던 몬스터가 등장했다.
몬늑대!
몬늑대는 몬들개 다음으로 던전에서 많이 보게 되는 몬스터였다.
몬스터 등급도 천차만별인 녀석들이 저 몬늑대였다.
그런데 이 아수라 던전에는 유난히 강한 몬늑대가 많았고 똑똑한 녀석들이 많이 살았다.
몬스터들이 똑똑하면 얼마나 똑똑하겠냐고 생각할지 모르지만 간혹은 인간 이상으로 영리한 녀석들도 있었다.
이 던전에 사는 몬스터들은 그 정도로 영리한 것은 아니었지만 몬스터 중에서는 눈에 띄게 영리했고 전략적으로 움직였다.
<몬늑대들은 무리 사냥을 해. 늑대가 앞에 한 마리가 보이면 자기 주위로 대여섯 마리 이상은 있다고 생각해야 해.>
나호가 쪼롱이에게 설명했다.
이미 던전에 들어오기 전에 이야기했던 것이지만 다시 상기시키는 것이었다.
쫑!
쪼롱이가 알겠다고 대답을 하더니 사냥조들에게 다시 한 번 집중하라는 지시를 내렸다.
<무리에 대한 애착도 강하니까 한 마리를 잡으면 그 무리를 다 잡는 것이 좋아.>
쫑!
늑대나 들개, 들고양이라는 이름이 붙었다고 해서 몬스터인 이상 우리 주변의 동물들을 생각해서는 안 된다.
'몬'이라는 이름이 붙는 순간 상식의 범주를 벗어난 몬스터였다.
강함은 물론이고 지능도 마찬가지였다.
동물들이 생존본능이 강하다고 하지만 몬스터만큼 강하지는 않았다.
그런 강한 생존본능에 지능까지 더했으니 잠시만 부주의해도 목숨을 잃을 수 있었다.
하지만 지금 나는 그런 몬스터들이 득실거리는 던전에 들어와 있는 것 같지 않았다.
소환수들이 너무 잘 해주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지난 1년간 1회성 던전에서 보낸 시간은 소환수을 착실히 성장시킨 시간이기도 했다.
이제 110마리로 늘어난 사냥조는 단순한 소환수로 보기 어려웠다.
잘 훈련된 부대나 다름없었다.
<집사! 저기 봐! '반크' 오늘 데뷔하는 날이야.>
나호가 반반이와 '반야' 사이에 서서 이동 중인 반크를 가리켰다.
반크는 반반이 새끼의 이름이다.
오랫동안 이름이 없이 그저 반반이 새끼라고만 부르다 데뷔를 맞이해서 이름을 지어주었다.
반반이처럼 반은 하얗고 반은 까만 몸을 가진 반반이의 새끼는 후에 몬야크의 수장이 될 몸이었다.
그래서 결정된 이름이 반크였다.
반반이와 반반이의 짝인 반야도 여러 후보군 중에 가장 마음에 들어 한 이름이었다.
현재 반크의 어깨 높이는 3미터!
5미터의 반반이와 4.5미터인 반야에 비하면 작지만 놀라운 성장 속도를 보이고 있어 1회성 던전에서 나갈 때쯤이면 반반이와 어깨를 나란히 할 것으로 생각하고 있다.
"귀엽네. 처음은 늘 두려운 법이지."
<저게 귀여워? 몬늑대들 오줌 지리는 거 안 보여?>
"부모가 옆에 있어서 그런지 귀염성이 있잖아. 저건 어쩔 수 없는 것 같더라 아무리 나이가 먹고 몸이 자라도 부모 앞에 서면 자식은 귀엽기 나름이야."
<그건 어디서 나온 논리야?>
"우리 할아버지 앞에서 아버지가 딱 저랬거든. 상상이 안 가지? 하지만 정말이야."
잔소리 많고 원리원칙만을 따지시는 아버지께서 할아버지 앞에만 서면 어리숙해 보였다.
숨 막힐 정도로 빈틈이 없어 보이는 아버지도 할아버지 앞에서는 그저 한 명의 아들이었던 것이다.
부모 눈에는 아무리 잘난 아들도 걱정할 거리가 있다고 하는 딱 그런 모습의 아들 말이다.
<상상이 안가긴 하네. 그런데···.>
나호가 뭔가를 이야기하려다 말았다.
표정을 보니 괜히 말해서 분위기를 망치고 싶지 않은 모양이었다.
대충 뭘 말하려고 했는지 알 것 같았다.
아버지는 솔직히 조금 피곤한 유형의 사람이다.
다른 사람도 조금은 그렇게 느끼겠지만 특히 아들인 나는 더더욱 그런 느낌을 많이 받는다.
바르고 성실하지만 융통성이 부족해서 피곤하게 하는 스타일!
여기에 남의 시선까지 생각하시기 때문에 더 피곤했다.
그런 만큼 자존심도 강하시고 그 자존심을 유지하고 싶어 하시는 분이다.
그런 분이 대변혁이후 차츰 어깨가 내려갔다.
잔소리도 점점 줄어들더니 급기야 자식 눈치를 보기 시작하셨다.
차라리 대놓고 그러셨으면 마음이라도 아프지 않았을 것이다.
내색하지 않으려고 하셔서 더 마음이 아팠었다.
짐이 될 수 없다고 몇 번이나 스스로 목숨을 끊어보려고 했던 것도 알고 있었다.
하지만 마나통이 남의 수중에 넘어간 사람은 그것도 마음대로 할 수 없었다.
그래서 더 절망을 하시던 모습을 어찌 잊겠는가!
으드득! 으득!
돌아가실 때까지 고통을 당하시던 모습을 생각하니 이가 부득부득 갈렸다.
지금 이 순간 미우라 놈이 앞에 있었다면 페널티를 감수하고라도 찢어 죽였을 것이다.
<집사! 이제는 다를 수 있어. 고통은 빗겨갈 수 없지만 전생에 비하면 십분의 일도 되지 않을 거야.>
"그 고통마저 없었다면 좋았을 텐데."
<이번에 한국에 돌아가면 저기 담긴 치료수 많이 내려놓고 오면 되잖아. 몸이 건강한 사람은 통증도 덜 느껴. 알지?>
"알지."
마나통을 잃은 이상 통증은 평생 달고 사셔야하는 천형이 되었다.
하지만 어떻게 해서든 통증을 무시하고 사실 정도로는 만들어 드릴 것이다.
꼭!
<집사! 저기 봐! 반크 달렸어.>
반크가 몬늑대 무리를 보고 달려 나갔다.
그동안 1회성 던전에서 훈련한 것이 어디 가지 않는다고 용맹스럽게 달려 나가고 있었다.
반반이와 반야가 그런 반크에게서 눈을 떼지 않고 있었다.
저리 거대한 덩치를 가진 반크도 반반이와 반야의 눈에는 어린 자식에 불과했던 것이다.
<와아아! 빠르다. 쟤들도 참 이해하기 힘들어 저 큰 덩치가 어떻게 저렇게 빠르게 움직이지? 저기 봐! 저 방향전환! 소름 돋을 정도야!>
나호의 말을 들으면서 반크의 동작을 보면 훨씬 실감이 났다.
나호는 스포츠 중계를 했어도 맛깔스럽게 잘 했을 것 같았다.
꼬물!
^화이팅! 반크!^
꼬물이가 여전히 작은 뿌리로 글씨를 쓰며 반크를 응원했다.
다른 뿌리는 무서울 정도로 자랐는데 일곱 개의 뿌리만 저 상태였다.
처음 들어올 때 겉으로 드러내어 하트도 만들고 꼬물거리기도 한 뿌리들이었다.
일곱 개의 뿌리만 시간을 빗겨간 것처럼 보였다.
줄기과 덩굴손도 아수라덩굴이나 황금덩굴 부럽지 않을 정도로 자랐는데 저 뿌리들만 저 상태를 유지한다는 것이 신기한 일이었다.
그런데 더 놀라운 것은 저 여리고 하얀 뿌리를 이용해서 황금을 먹는다는 것이었다.
다른 뿌리는 보통의 나무뿌리로 자랐지만 일곱 개의 뿌리만은 저 상태를 유지했는데 아마 무언가를 흡수하기에는 저 상태가 적합한 모양이었다.
꼬물이 짝의 뿌리 하나도 저런 상태였다.
상식적으로는 이해되지 않지만 굳이 이해하려고 하지 않았다.
그저 꼬물이의 특성으로 받아들이면 그만이었다.
지금까지 꼬물이가 먹은 황금의 양도 적지 않았다.
날마다 먹는 양은 눈에 보이지 않을 정도로 적지만 이것이 쌓이니 제법 되었다.
줄기와 뿌리가 자라날수록 먹는 양도 점점 늘어나기도 했고···.
하지만 문제될 것은 없었다.
자신이 먹는 정도는 스스로 조달하고 있기 때문이었다.
물론 도뮤의 도움을 많이 받고 있지만 말이다.
<집사! 봤어! 몬늑대 잡는 거? 아주 제대로야. 제 부모를 빼다 박았네. 박았어. 피는 속일 수 없다는 건가?>
나호가 반크의 사냥 솜씨를 보고 감탄하고 있었다.
정말 전광석화처럼 몬늑대 한 무리의 사냥을 마친 반크였다.
사냥을 끝내고는 제 부모를 보며 칭찬을 바라고 있었다.
조금 전 무섭게 몬늑대를 사냥하던 몬야크라고는 도저히 보이지 않는 모습이었다.
사냥이 마무리 된 것을 확인한 반반이와 반야가 반크에게 달려가고 있었다.
그 발걸음이 무척이나 가벼워 보였다.
이 던전의 클리어도 그리 어려울 것 같지 않았다.
예상대로 전생에 천안을 쑥대밭으로 만들었던 아수라 던전은 어렵지 않게 클리어 되었다.
아수라 던전을 클리어 한 우리는 그대로 황금 던전까지 클리어 했다.
황금 던전은 전생처럼 쉬운 편에 속한 던전이어서 반반이 가족이 나설 것도 없이 던전이 클리어 되었다.
이제 대기실에 있는 던전은 꼬물이의 던전만을 제외하고 모두 클리어가 된 것이었다.
꼬물이의 던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