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8. 이 거래를 하겠다고?
축제가 끝나고 시간이 빠르게 흘렀다.
그리고 약속한 3년의 마지막 날이 되었다.
<이제야 준비가 다 끝났네. 시작도 어려운 거지만 뭐든 마무리도 어려워. 그치?>
"3년은 짧은 시간이 결코 아니니까."
<이곳에서 나가면 단 1분도 지나지 않은 거라고 했잖아?>
"그렇지."
<25시에서 보낸 것치고는 너무 많은 변화가 있었던 것 같아서··.>
나호가 주위를 둘러보며 말했다.
정말 많은 변화가 있었던 3년이었다.
가장 고민이었던 꼬물이의 냄새도 해결했고, 혹시 모를 쓰레기버섯도 이제 날 염려가 없었다.
아수라던전과 황금 던전, 꼬물이의 던전에서 얻어지는 것들도 적지 않았다.
3년간 대기실과 던전에서 기른 농작물도 엄청나고, 이곳의 하천과 전령조의 쉼터에서 잡아온 생선의 양도 어마어마했다.
<이 많은 것을 어떻게 가지고 가게 해주겠다는 거지? 이런 것이 들어가는 아공간 주머니 하나 공짜로 주면 좋겠다.>
"시스템이?"
<혹시 모르잖아. 가지고 가게 해주겠다고 했으니 약속은 지키겠지.>
"약속은 지키겠지만 글쎄."
워낙 장사꾼 기질이 다분한 시스템이라 어떻게 나올지 심히 걱정이 되었다.
마침 그때 시스템의 메시지가 들렸다.
[띠링! 반갑··.]
<지금 뭐라고 했어?>
시스템이 반갑다고 하려다 급히 말을 멈추었다.
그러더니 잠시 후 다시 메시지가 울렸다.
[띠링! 약속한 3년이 몇 시간 남지 않았습니다. 정리를 하는데 시간이 걸릴 것 같아 조금 일찍 찾아왔습니다.]
그렇게 말하는데 시스템의 시선이 자꾸 대기실로 가 있는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시선이라는 것이 존재하지 않는 시스템인데 말이다.
"그래. 반가워. 이렇게는 오랜만이기는 하지."
부산물 거래로 이삼 일에 한번 씩 이야기를 했었다.
어디까지나 거래를 위한 대화에 그쳤지만··.
"이 많은 것들을 어떻게 가져가야하지?"
1회성 던전은 조금 특이한 곳이었다.
거름이 되라고 풀을 썰어 넣으면 잘 썩어서 거름이 되었다.
농사를 짓고 생기는 불필요한 것들은 모두 그렇게 처리했다.
하지만 같은 풀이라도 나중에 가지고 나간다고 생각하고 한쪽에 쌓으면 썩지 않았다.
보관하던 시점 그대로 보존이 되었다.
나무도 마찬가지였다.
나무를 베어서 그대로 보존하기를 원하면 베어낸 그대로 유지가 됐다.
하지만 말랐으면 좋겠다고 생각하면 땔감으로 적합한 정도로 잘 말랐다.
그 상태에서 보관하면 이슬을 맞아도 다시 젖지 않았다.
곡식이나 고기, 가죽 등도 마찬가지였다.
그래서 처음에는 곡식이나 생선, 고기 등만 수확을 했다가 점차 수확하는 종류를 늘려갔다.
1회성 던전을 거의 털어가듯이 챙긴 것이다.
주위에 보이는 모든 것을 챙겼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참 알뜰하게 챙기셨습니다.]
이미 보고 있었을 것이 분명한데 새삼스럽다는 듯이 말하는 시스템이었다.
"뭘 이 정도를 가지고··."
필요 없어 보이는 것들도 대변혁 시대에는 요긴하게 사용할 것들이었다.
[저 돌도 가지고 가실 겁니까?]
"당연하지. 우리 도뮤가 좋아하는 거야."
뮤!
^내 식량이다!^
사실 저 짱돌은 도깨비의 식량으로는 적합하지 않았다.
금 함량이 극히 작은 것들이기 때문이었다.
도깨비들은 금은 먹지 않지만 금 함량이 일정 이상의 돌을 좋아했다.
특별한 용도를 생각해서 챙겨놓은 것이 아니기 때문에 쓸데가 없으면 도깨비의 간식으로 주면 그만이었다.
[그러기에는 금이 너무 적게 들었습니다.]
뮤! 뮤! 뮤!
^티끌 모아 태산이다. 버리는 거 좋아하면 패가망신이다! 우리 집사 아주 알뜰하다. 맘에 든다!^
방방 뛰면서 말을 하는데 어딘가 나호를 많이 닮은 것 같았다.
[뭐. 좋습니다. 저 나뭇잎도 모두 가지고 가실 겁니까?]
"당연하지. 얼마나 귀한 건데. 불쏘시개로 저것만 한 것이 없어. 3년 동안 확인한 것이니 챙겨가야지."
약간은 시스템을 약 올리려는 것도 없지 않아 있었다.
하지만 의외로 대변혁이 일어나면 저런 아무렇지도 않은 것들이 귀해진다.
그러니 이렇게 기회 있을 때 챙겨놓는 것이 아주 중요했다.
[다 좋습니다만 저 흙은 뭡니까? 설마 이 던전을 통째로 가지고 가실 생각이십니까?]
"전부라니. 일부의 흙에 지나지 않는데. 이 흙으로 말할 것 같으면··."
[알겠습니다.]
시스템이 질렸다는 듯이 알겠다고 했다.
옆에 있던 나호가 소리를 내지 않으면서 아싸를 외치고 있었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다른 것은 몰라도 이곳의 흙은 가져갈 생각을 하지 않았다.
누가 흙을 가지고 갈 생각을 하겠는가.
나도 평범한 생각을 하는 사람이니 당연히 그런 생각은 하지 않았다.
그런데 우연히 반반이가 던전의 풀을 뜯어 먹는 것을 보았다.
반반이는 다른 곳의 풀을 먹을 때는 풀만 뜯어먹는다.
위로 자란 풀만 뜯어먹고 나면 또 자라고 다시 뜯어먹고를 반복하는 것이다.
그런데 며칠 전 이곳의 풀을 먹는 것을 보았는데 풀을 완전히 뽑아서 먹는 것이었다.
다른 곳에서는 이렇게 하지 않기 때문에 유심히 관찰을 했다.
새끼를 기르기 때문에 덩치와 달리 은근히 깔끔을 떠는 반반인데 흙을 털지도 않고 먹었다.
자기만 먹는 것이 아니고 던전의 풀을 뽑아서 대기실의 반야와 반크에게까지 가져다주었다.
그런데 둘의 반응이 재미있었다.
어디서나 먹을 수 있는 풀이 아니라 특식이라도 먹는 것처럼 먹은 것이었다.
흙이 묻은 그대로 먹으면서 말이다.
몬야크이니 흙이 묻은 풀을 먹는 것이 뭐 그리 대단하게 생각하냐고 하겠지만 그건 몬야크를 모르기 때문에 하는 말이었다.
몬야크들은 자존심이 강한 몬스터였다.
다른 몬스터들처럼 아무것이나 먹는 녀석들이 아니었다.
더구나 수장의 가족이다.
그런 녀석들이 흙이 잔뜩 묻은 풀을 맛있게 먹는다?
대기실에 저 많은 풀을 두고?
그때부터 흙에 관심을 가졌고 이곳의 흙이 조금은 특별하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이곳의 흙을 동물들이 먹으면 소화가 잘 된다고 한다.
그렇다고 해서 많이 먹는 것은 아니었다.
간혹 한 번씩 먹어서 자신들의 소화를 돕는 것이었다.
동물들이 소화를 돕기 위해 돌을 먹는 것과 비슷한 이치였다.
그런 사실을 알았는데 이곳의 흙을 두고 갈 수는 없었다.
그래서 챙기겠다고 했더니 반반이 가족이 나서서 흙을 모았다.
그리고 그렇게 쌓인 흙이 거의 작은 언덕을 만들었다.
아마 시스템이 질렸다고 고개를 절레절레 젓고 있을지도 모를 일이었다.
[약속을 한 것이니 여기에 저 물건들을 품목별로 넣으시기 바랍니다.]
시스템의 말과 함께 하늘에서 풍선 같은 것이 떨어졌다.
<뭐야! 이거 꼭 물풍선처럼 생겼다.>
나호가 하늘에서 떨어지는 것을 보며 말했다.
그렇게 떨어진 것의 모두 십여 개.
무엇이 됐든 많이 떨어지니 우선 기분이 좋았다.
하나를 집어 들어서 입구를 벌렸다.
작았던 입구가 짜악 벌어졌다.
"여기다 넣으면 된다고?"
[그렇습니다. 하나에 여러 물품을 넣어도 좋지만 한 개에 한 품목을 넣으시는 것이 더 좋으실 겁니다.]
<어째 이리 친절해? 불안하게?>
[저희는 불친절한 적 없습니다.]
<그래. 불친절하지는 않지. 하지만 친절하지도 않잖아.>
나호의 말에 아무 대답도 하지 못하는 시스템이었다.
지극히 사실이었기 때문이었다.
물풍선 생긴 주머니에 3년 동안 생활하면서 모아둔 것들을 넣기 시작했다.
보기에는 손바닥만 한 것인데 넣는 대로 물건이 들어갔다.
원래 크기에서 열 배, 스무 배 정도 커질 때까지는 괜찮더니 한 없이 커지기 시작하니 슬슬 불안해졌다.
"이거 갑자기 팡하고 터지는 거 아니지?"
재질이 풍선 같아서 정말 터질 것만 같았다.
그런데 내 말에 시스템이 살짝 웃는 것 같더니 이내 터지지 않는단다.
다른 때 같으면 이 정도 물음엔 대답도 하지 않는 시스템인데 대답을 하니 슬슬 불안해지기 시작했다.
"우리에게 뭔가 바라는 거 있지?"
[그런 거 없습니다.]
또 재깍 대답을 하는 시스템이었다.
나호도 뭔가 이상한 것을 느꼈는지 눈이 가늘어졌다.
<집사! 정신 바짝 차려야겠다. 시스템이 아무래도 조금 이상해.>
나호에게 알았다고 눈짓을 보낸 후 주머니에 물건을 넣는 것에 집중했다.
반반이와 반야가 양쪽에서 벌려주고 소환수들까지 나서 물건을 넣으니 그 많은 물건들도 순식간에 정리가 되었다.
모두 정리되고 나자 주위에는 커다란 물풍선이 십여 개 놓였다.
<이게 터지지 않는 것이 신기하네. 야! 도뮤! 너 그러다 터지면 어쩌려고.>
뮤! 뮤!
^이거 신난다. 이렇게 타고 내려가면 너무 재미있다. 와아아!^
작업이 끝나고 나자 도뮤를 비롯한 던전 도깨비들이 아주 제대로 신이 났다.
도깨비 전용 미끄럼틀이 생긴 것이었다.
던전 도깨비들은 언덕만큼이나 큰 주머니 위로 올라가서는 쭉 미끄러져 내려왔다.
물건을 담은 주머니도 영락없이 물풍선인데 그 위를 미끄러져 내려오는 도깨비들은 색색의 털 뭉치들이어서 아침 어린이 프로를 보는 것 같았다.
쫑?
^재미있나?^
<야! 너는 안 돼! 너 타면 사냥조들 다 타려고 할 텐데. 저 녀석들 부리와 발톱을 봐. 한두 개 터지고 끝나지 않을 거야.>
나호가 쪼롱이를 말려보았지만 말릴 수 있을 리가 없었다.
쪼롱이는 도뮤 옆에 앉아서 경주하듯 미끄러져 내려왔다.
온갖 노래를 부르는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음머어어어!
반반이 가족은 보기만 해도 즐거운지 가벼운 미소 짓고 있었다.
<집사! 안 말려?>
"터지지 않는다고 했으니까 터지지 않겠지."
<집사는 안 그런 것 같은데 간혹은 너무 천하태평이야.>
"좋은 평가네. 내가 조금은 여유도 찾았다는 거잖아."
<어? 그러고 보니 또 그러네. 우리 집사 조금은 여유로워진 것 같아. 그런데 이 큰 것을 어디에 넣어서 가? 이건 EX급 인벤토리를 사도 다 들어가지 않겠다. 설마 또 이상한 거 강매하지는 않겠지?>
[저희는 절대로 강매를 하지 않습니다. 모든 소비자께 가장 적합한 물건을 판매합니다.]
<그래. 그런 생각을 하고 살면 정신 건강에는 좋을 거야.>
나호가 비꼬듯이 말했다.
"다 넣었는데 이제 어떻게 하면 돼?"
[이 물품은 일종의 대여물품입니다. 이 던전에서 얻을 것을 제외하면 저 주머니 안에는 어떤 것도 넣으실 수 없습니다.]
이때부터 시스템은 물풍선처럼 보이는 물건에 대해 설명하기 시작했다.
이미 던전에 있는 물건을 모두 넣었으니 이제 더 이상 물건을 넣을 수는 없다고 한다.
안에 든 것을 꺼낼 수만 있는데 다 꺼내고 나면 사라질 것이라고 했다.
또한 이 물건의 사용기한은 2030년 12월 31일까지라고 했다.
"내년 말일이 되면 안에 든 것을 다 사용하지 않았어도 사라진다는 거지?"
[그렇습니다. 저희에게 돌아오게 되는 겁니다. 단 기한 안에는 강대한 님께 귀속이 걸려있어서 잃어버릴 염려는 없습니다.]
"그래도 저 부피는 부담스러운데··. 저 큰 것을 어떻게 들고 다녀?"
[그건 걱정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이렇게 해드릴 테니까요.]
시스템의 말과 함께 주머니에 푸른빛이 감돌았다.
그리고 잠시 후 번쩍하더니 손바닥만 하게 작아져버렸다.
쫑!
꾸!
음머어어어!
뮤! 뮤! 뮤!
소환수들이 놀라 소리를 지르는 사이 작아진 주머니는 인벤토리로 쏙 들어왔다.
그리고 인벤토리에는 이런 표시가 새로 나타났다.
['탄력공간주머니' 열세 개.]
탄력공간주머니라고 하는 것을 하나 꺼내보았다.
일일이 열어야 안의 뭐가 들었는지 확인이 가능할 것이라고 생각했는데 아니었다.
탄력공간주머니를 손에 잡고 내용물을 확인한다고 생각하면 안의 물건이 보였던 것이다.
<이거 상당히 비쌀 것 같다! 이런 거 하나 주면 정말 좋을 것 같은데··. 이거 끝도 없이 들어갈 것 같잖아.>
나호의 말대로 정말 탐이 나는 물건이지만 따로 대여비를 말하지 않은 것만도 다행이었다.
"이제 몇 시간 남았지?"
[정확하게 세 시간 23분 38초 남았습니다. 그럼 나가시기 전에 쇼핑을 좀 하시는 것이 어떻습니까? 현실에서는 인벤토리 이외에는 구매가 불가능하니 이곳에서 쇼핑을 하고 나가시는 것이 좋을 것 같습니다.]
<누가 들으면 엄청 생각해주는 줄 알겠네. 우리 집사 마나 뜯어가려는 수작질이면서!>
나호가 톡 쏘아붙였다.
꼬물이가 잘한다고 파이팅을 외치고 있었다.
물론 뿌리로 외치는 것이라 소리 없는 함성이었다.
[지금 강대한 님께서 이 던전에서 나가시면 당장 대기실이 너무 좁을 것 같습니다. 대기실의 확장이 필요해 보입니다.]
사실이었다.
9개월 사이 소환수들이 더 늘어서 이제 정말 대기실이 포화상태였다.
[사냥조가 131마리, 전령조가 71마리, 던전 도깨비가 51마리, 몬야크가 세 마리! 이 정도면 소환수들이 앉아있는 것도 힘듭니다.]
쪼롱이와 꾸루, 도뮤, 반반이가 포함된 숫자였다.
저기에 꼬물이와 꼬물이 짝, 아수라와 아수리, 황이와 금이까지 포함한다면 당장 넓혀야했다.
하지만 시스템이 하는 대로만 따라갔다가는 마나만 손해볼 수 있었다.
어차피 넓혀야 하는 대기실이지만 최대한 싼 가격에 최대한 넓게 협상을 해야 했다.
"얼마나 넓혀줄 건데?"
[얼마나 넓혀주시기를 원하십니까?]
시스템은 호락호락하지 않았다.
하지만 시스템과의 거래에는 이골이 난 나였다.
"말한다고 해서 다 들어줄 것은 아니잖아. 내가 원하는 것은 지금 상태의 최소 열 배, 마나는 만 마나 정도면 좋겠어."
사실 말도 되지 않은 말이었다.
축구장 여덟 개 넓이를 2500마나에 팔았던 시스템이었다.
그런데 지금 축구장 180개를 만 마나에 달라고 했으니 미치지 않고는 이렇게 팔지 않을 시스템이었다.
그리고 현재 대기실이 축구장 20개 넓이인데 갑자기 200개 넓이로 넓혀줄 리도 없었다.
그걸 누구보다 잘 알기 때문에 걱정스럽게 나를 쳐다보는 나호였다.
[더 원하시는 것은 없습니까?]
"뭐라고?"
[더 원하시는 것은 없냐고 물었습니다.]
"이 거래를 하겠다고?"
새로운 거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