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1. 희망을 가지고
새로운 던전에 대한 기대는 항상 즐거운 것이었지만 이번에는 조금 다르게 다가왔다.
1회성 던전에 들어왔을 때 워낙 의외의 일이 많이 일어났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결과적으로 1회성은 던전은 대박이었다.
어떤 면에서는 실제 대박 던전보다 더 대박이었는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사이 소환수들은 넓어진 대기실을 만끽하고 있었다.
"이럴 때 먹지 않아도 배부르다고 하는 것 같아."
<잘 놀기는 하네. 식구가 많이 늘었어. 저 두 던전이 아니었으면 사냥조들 먹이 때문에 걱정 좀 했을 텐데.>
"오히려 쌓여가니 감사한 일이지."
<이제 그만 모아도 되는데 왜 계속 보관하는 거야? 저 중에는 인간은 먹을 수 없는 것도 제법 되는데?>
"혹시 모르니까. 마나가 세상에 깃들고 난 후에 절대라는 것은 존재하지 않았잖아. 그래서 대비를 하는 거야."
<알 수 없는 세상이기는 했지. 그래도 잘 준비되어 가는 것 같아. 일본에 던져줄 선물도 여기서 준비해가야 하는데···.>
"그래야지."
미국에서 가져가고 싶은 던전은 의외로 많았다.
특히 이 타호호수 주변에는 대박 던전 이외에 황금이 나오는 던전이 두 개나 더 있었다.
대박 던전의 황금 매장량이 워낙 많고 단거리 워프 게이트까지 있었기 때문에 다른 던전의 위상이 드러나지 않아서 그렇지 다른 곳에 있었다면 대박 던전 이상으로 사랑을 받았을 것이다.
꼭 황금이 아니라도 꼭 가지고 가고 싶은 던전도 한 곳 더 있었다.
그 생각을 했을 때 시스템이 퇴장까지 5분 남았다는 말을 했다.
"3년을 보낸 곳인데 사라진다니 아쉽네."
<지나간 시간은 늘 빠른 것 같아. 아쉽고···.>
"너도 그랬어?"
<나? 수많은 세월을 살아왔지만 내게 의미 있는 시간은 많지 않았어. 나는 늘 방관자였으니까. 처음에는 호기심에 인간의 삶을 유심히 보기도 했지만 이내 시들해졌지.>
나호의 깊은 눈이 아니라면 나호의 말이 거짓으로 들렸을 것이다.
외모는 철없는 아기 호랑이의 모습이기 때문이었다.
<아무것도 할 수 없다는 것은 생각보다 무기력하게 만들더라고. 그래서 어느 순간부터는 외면하고 살았어. 그 세월이 참으로 길었지. 간혹 내 눈을 잡아끄는 생명체들이 종종 있었지만 애써 외면했지.>
<그러다 너를 만났고 너에게 묶여서야 제대로 된 삶을 살았던 것 같아. 도뮤의 말처럼 너의 친구로 그날 태어난 것이나 다름없지.>
참으로 고마운 말이었다.
그런 생각을 하는 순간 번쩍 하면서 던전이 사라져버렸다.
우리가 던전 밖으로 나간 것이 아니고 조금 전까지 버젓이 눈앞에 존재했던 던전이 지우개로 지운 것처럼 없어져 버린 것이다.
뮤! 뮤!
^이거 새롭다. 이거 또 하고 싶다.^
던전 도깨비의 호기심을 제대로 자극한 것 같았다.
꼬물! 꼬물!
^도뮤! 이리와! 내가 설명해줄게.^
꼬물이가 설명을 해준다니 포르르 날아서 꼬물이 옆으로 가서 앉는 도뮤였다.
그런데 하필 그 자리가 꼬물이와 꼬마의 사이였다.
<왜 많은 자리 두고 저기 앉는 거야?>
뮤!
도뮤가 나호를 향해 뾰로통한 소리를 내더니 꼬물이의 뿌리 하나를 잡아서는 제 볼에 비볐다.
<저 녀석 왜 저래?>
"좋아서 그러지. 자기에게 처음으로 황금을 준 존재라잖아."
<집사도 줬잖아.>
"나야 세공까지 된 것을 줬고 나호는 밥이 될 것을 줬잖아. 쟤들에게는 나호가 준 것이 참된 금 아니겠어?"
<그렇긴 하지. 한국에 돌아가면 도깨비 마을 꼭 가보자. 어떻게 변했을지 궁금해. 도뮤가 하도 자랑해서 이미 본 것 같지만···.>
1회성 던전에 살면서 던전 도깨비들이 대기실로 많이 불려오기도 했지만 도깨비 마을에 새끼 도깨비들이 많이 태어났다고 했다.
베이비 붐이라나 뭐라나...
"얼마나 도깨비 늘어났는지 보고 싶기는 하네."
<마을도 넓어졌다고 하잖아. 그냥 불순물만 처리하는 것 같은데 도깨비들에겐 나름의 뭔가가 있는 것 같아.>
지금 우리는 시스템이 알려준 다른 던전을 향해 가고 있었다.
방금 사라진 던전에서 두 시간 쯤 걸어야 있는 곳이었다.
나호와 이야기를 하면서 걸어갈 때였다.
꼬물!
^덩굴이다!^
꼬물이가 깜짝 놀라며 왼쪽을 가리켰다.
꼬물!
^또! 또 있어요! 어어어!^
한꺼번에 여러 개의 덩굴이 발견된 적이 없어서 그런지 꼬물이가 무척이나 당황스러워했다.
<어디? 여기 칡넝쿨은 지천인데···. 칡을 두고 하는 말은 아니지?>
나호의 입이 귀에 걸리면서 하는 말이었다.
꼬물!
^던전 덩굴인데···.^
그렇게 말을 하면서 방금 가리켰던 방향과 비슷한 곳을 가리켰다.
<집사! 우리 대박 나는 거 아니야?>
"그럼 좋지."
발걸음이 저절로 빨라졌다.
쪼롱이가 꼬물이가 가리키는 방향을 향해 날아갔다.
그리고 이내 돌아왔다.
쫑! 쫑!
^황금 덩굴과 닮았어! 잎이 노래!^
쪼롱이가 조금은 부산스럽게 날개를 퍼덕이며 말했다.
늘 우아한 날갯짓을 하는 쪼롱이가 저러는 것은 많이 흥분했다는 뜻이었다.
<어디 있어? 멀어?>
쫑! 쫑!
쪼롱이가 앞장 서기 시작했다.
그리고 우리는 멀지 않은 곳에서 황금덩굴을 발견했다.
그런데 이건 대박 던전은 아니었다.
<집사! 너무 아쉽다. 대박 던전이었으면 정말 좋았을 텐데···.>
"타호 호수 부근의 황금 던전들은 괜찮은 편이었어. 대박 던전과는 비교할 수 없지만 그래도 이게 어디야."
<그렇긴 해!>
우리가 황금 덩굴을 보고 대박 던전이 아니라고 확신하는 이유는 단프 덩굴이 아니었기 때문이었다.
워프 게이트를 품은 던전에 자라는 덩굴들은 독특한 특징을 가져서 덩굴만 보고도 단프인지 장프인지 알 수 있었다.
물론 이것도 알려지는데 시간이 걸렸지만 말이다.
단프이면서 황금 광산을 품은 던전은 그 나름의 특징을 가졌는데 이 덩굴은 단순히 황금 덩굴일 뿐이었다.
하지만 이것 하나도 엄청난 것이었다.
조심해서 덩굴을 채취한 후 스텐 용기에 야무지게 넣어 대기실에 넣었다.
그리고 다음 덩굴이 있는 곳에 도착했을 때 덩굴을 보고는 인상을 찌푸리지 않을 수 없었다.
"이 덩굴은 시체나 좀비 등이 나오는 던전에서 많이 보이는 거야. 전생에 이쯤에 그런 던전이 있었던 것도 같고···."
[지금 보고 계신 덩굴이 던전이 됐을 때의 기억이 있습니다. 열람하시겠습니까?]
"아니 괜찮아. 그 정도로도 충분해."
<집사! 이거 일본에 심어둘까? 고생 좀 하라고?>
"이 정도로는 안 되지. 일본 놈들 혼을 쏙 빼놓을 것을 가지고 갈 거야."
일왕의 거처인 고쿄와 야스쿠니 신사에 꼭 심어두고 싶은 던전이 있었다.
하나는 영국까지 가야하는데···.
<그럼 이건 이대로 두고 갈 거야? 던전 덩굴인데?>
현재 보관 중인 덩굴은 과수 덩굴과 방금 캔 황금 덩굴 이렇게 두 개가 있었다.
과수 덩굴은 일본 신주쿠 뒷골목의 공원에 있던 것으로 한국의 적당한 곳에 심을 예정이다.
앞으로 대기실에는 세 개의 덩굴을 더 보관할 수 있었다.
그래서 신중하게 생각해야 했다.
"글쎄. 고민이네. 내일 다시 생각해 볼까? 아니 우선은 캐서 넣어두고 생각하자. 다른 것을 발견하지 못할 수도 있으니까."
좀비형 몬스터가 나왔던 덩굴도 조심스럽게 채취를 해서 대기실로 넣었다.
이제 두 개의 덩굴만 더 보관할 수 있었다.
그리고 시스템이 말했던 힌트에 도착했다.
"던전이 형성되어버렸네."
<그런데 원래 대박 던전이 있던 곳과 너무 떨어진 곳이야. 이거 대박 던전 맞은 거야? 전생에 발견되지 않았던 던전 아니야?>
"황금단프가 자라고 있는 것으로 보면 대박 던전이 확실한 것 같은데···. 전생에 있던 자리와 너무 멀리 떨어져있어."
전생에 대박 던전이 있던 자리와 너무 거리가 있었다.
[띠링! 미개방던전입니다. 입장하시겠습니까?]
"당연히 입장해야지."
[이 던전은 직접 입장하셔야 합니다.]
"직접? 아직 입구가 형성되지 않았는데?"
던전은 형성되었지만 입구는 보이지 않는 던전이었다.
[없으면 만드셔야죠.]
"여기 국립공원 아닌가? 함부로 땅을 팔 수 없는 곳이라고 알고 있는데? 더구나 난 외국인이야."
[그건 걱정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아무도 강대한 님을 보지 못할 겁니다.]
<허어어어얼! 시스템 정말 대단하다! 지금 집사에게 여기 입구 만들라는 것 같은데?>
"지하로 내려가야 입구가 있던 던전이 몇 군데 있기는 했지만 이곳에는 없었던 것 같은데?"
[전생에 이곳에 던전은 없었습니다.]
권능 기억이 말했다.
"이곳도 전생에 발견되지 않은 던전이야?"
[그렇습니다. 강대한 님이니 그냥 말씀드리겠습니다. 저 황금단프덩굴은 시간이 지나면 땅속으로 자취를 감출 예정이었습니다.]
[벌써 슬슬 들어갈 준비를 하고 있었습니다. 자세히 보시면 줄기가 다시 땅으로 심겨진 상태입니다.]
자세히 보니 하늘로 자라야할 줄기의 끝이 땅으로 향하고 있었다.
줄기 하나는 이미 땅에 머리를 박고 있었다.
정말 이상한 덩굴도 많구나 싶었다.
"이런 던전은 폭발하지 않는 거야?"
[폭발합니다. 갑자기 어디서 나타났는지 모르는 몬스터는 이런 던전이 터지면서 나왔을 가능성이 높죠.]
어쩐지 친절하게 설명을 해주는 시스템이었다.
시스템은 계속 아무도 발견하지 못할 던전으로 우리를 인도하는 것 같기도 했다.
한 덩굴이라도 더 제 역할을 해주기를 원하는 것처럼 말이다.
"얼마나 파야 하는데?"
[2, 3일 파시면 입구를 완성하실 수 있을 겁니다. 그럼 이 던전과 던전 덩굴은 새 삶을 찾게 되겠죠.]
<두, 세 시간이 아니고 이삼 일이라고? 자는 시간은 제외한 거지?>
[강대한 님께서는 좋은 약을 많이 가지고 계시니 이삼 일쯤은 주무시지 않아도 별 문제가 없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우와아아! 세상만 무서운 줄 알았더니 시스템은 더 무섭구나. 악덕 업주가 따로 없네.>
[황금단프 던전입니다. 이런 대박던전을 얻는 것인데 이삼 일 땅 파기는 아무것도 아닙니다.]
틀린 말은 아니었다.
전생의 사람들에게 황금 던전을 준다고 하면 이삼 일이 아니라 석 달 열흘도 땅을 파겠다고 할 것이다.
거기다 단프까지 있다고 하면 여기에 다시 석 달 열흘을 더 파겠다고 할 것이 뻔했다.
"좋아. 땅을 파는 것쯤인데. 쉽게 할 수 있지 않겠어?"
[희망을 가지고 열심히 파시면 머지않아 입장하실 수 있으실 겁니다.]
분명 격려의 말인데 전혀 격려의 말로 느껴지지 않았다.
이건 누가 보나 너 고생 좀 해보라는 것이었다.
대기실 한쪽에 있는 삽과 곡괭이를 꺼냈다.
그러자 쪼롱이가 냉큼 자기도 돕겠단다.
몸통은 겨우 테니스공 정도 밖에 되지 않는 녀석이 열정은 황소 저리 가라고 할 정도다.
반반이까지 앞발로 대기실 바닥을 긁으며 돕고 싶다는 의사를 표시했다.
"쪼롱이는 위험하니까 나와 있고, 반반이는 여기 나오면 안 돼."
반반이가 누구 눈에라도 띈다면 타호호수의 괴물이라고 인터넷을 달구게 될지도 모를 일이었다.
그리고 어차피 이 일은 시스템이 나에게 내린 일종의 과제 같은 것이기도 했다.
시스템은 친절하게 땅을 파야하는 곳의 위치를 정확하게 표시까지 해주었다.
던전이 아닌 곳에서 시스템이 힘을 쓰는 것은 처음이 아닌가 싶기도 했다.
터어엉!
곡괭이질을 했는데 이런 소리가 났다.
땅을 팠으니 푹푹 소리가 나야하는데 무슨 쇠를 내릴 칠 때 나는 소리가 난 것이었다.
<허얼! 이럴 줄 알았어. 이러니 던전 덩굴이 제대로 자라지 못한 거야. 위로 자랄 수 없으니 부드러운 흙을 찾아 아래로, 아래로 내려간 거지.>
분명 만지면 보드라운 흙인데 파려고 하면 단단했다.
"희한하네."
<정말 이상하기는 하다. 그렇다고 계속 손으로 파낼 수는 없어. 손으로 파내면 정말 석 달 열흘은 파내야 해.>
다시 곡괭이를 내리찍었다.
터어어어엉!
이번에는 소리가 더 커지는 것 같았다.
"소리도 차단해주는 거 맞지? 타호 호수 전체가 울리는 것 같은데···."
[걱정하지 마십시오. 강대한 님께 피해가 가는 일은 없을 겁니다.]
시스템은 거짓을 말하는 존재는 아니니 믿고 곡괭이질을 계속했다.
터엉 터엉 하는 소리가 신경 쓰였지만 곡괭이질을 멈출 수는 없었다.
꼬물!
^불안해!^
꼬물이의 뿌리가 전에 없이 불안하게 흔들렸다.
<집사! 나도 왠지 불안해. 이거 소리가 너무 큰데···. 이거 정말 다른 사람은 듣지 못하는 거 맞아?>
"주위의 동물들이 반응하지 않잖아. 이런 소리를 들었다면 놀라서 날아오르거나 달아났을 거야. 그것도 아니면 뭔가 하고 구경을 왔을 거고 말이야."
<동물들은 반응이 없기는 한데···. 곡괭이질의 여파로 나무들이 흔들리는 것처럼 보여. 이거 내 착각인가?>
쫑!
^흔들려!^
쪼롱이도 주위의 나무가 흔들린단다.
이해할 수 없는 일이었다.
만약 곡괭이질이 영향을 주었다면 나무가 아니라 동물이 먼저 반응을 보여야 했다.
터어어엉! 터어어엉!
철컹철컹