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2. 철컹철컹
터어엉! 터어엉! 텅! 텅!
나흘 째 땅을 파고 있었다.
단단하기만 한 땅도 땅은 땅이었다.
무척이나 더뎠지만 점점 깊이 파고 들어갔다.
터어엉! 터어어어엉! 터엉! 텅!
<도대체 이놈의 던전 입구는 얼마나 파고 들어가야 나오는 건데? 우리 집사 어깨, 허리, 무릎 다 나가겠네.>
나호가 간간이 시스템에게 날리는 욕설이 점점 시원하게 들리는 것이 이 일이 은근히 스트레스가 되는 모양이었다.
나흘간 시스템이 원하는 모양대로 파고 들어왔는데 현재 깊이는 4미터 남짓이었다.
이걸 누군가가 봤다면 바로 잡혀갈 것이 분명했다.
그래도 나흘 간 이러고 있어도 아무도 오지 않는 것이 소리가 밖으로 나가지는 않는 것 같았다.
누군가가 나를 볼 수 있는 것도 아니고 말이다.
<이삼 일이라며! 우리 집사 치료수 먹어가면서 두 시간만 자고 판 것이 겨우 이 정도야! 숙면 스킬 없었으면 쓰러졌을 거라고!>
나호가 허공을 향해 삿대질을 하며 목소리를 높였다.
곡괭이질을 하고 있는 내가 안쓰러웠는지 지켜보고 있던 소환수들이 자기들도 던전을 간다며 대기실의 던전을 연거푸 들어가서 사냥을 해오고 있었다.
뭐라고 돕겠다는 마음이 느껴져서 고맙기 그지없었다.
터어엉! 터어어엉! 터어엉! 터어어!
푸드득! 푸드드득! 까아악! 까아아악!
뭐에 놀랐는지 까마귀가 날아올랐다.
<씨이! 이거 불안해. 시스템! 너 제대로 일하고 있는 거 맞지? 우리 집사에게 무슨 일이 생기면 너 용서하지 않을 거야!>
숲에 사는 동물들은 작은 소리에도 놀라 날아오르기도 하고 소리를 내며 달아나기도 했다.
그것이 피식자의 운명 같은 것인지도 모른다.
"곡괭이 소리를 들은 것은 아닐 거야. 그랬다면 더 많은 새들이 날아올라야 해."
<혹시 몰라! 지난번에 비세계에서도 그 신참 같은 시스템이 실수 했잖아. 시스템은 아무 일 아닌 것처럼 시치미를 뚝 뗐지만 그때 확실히 이상했어.>
"세상에 완벽한 것은 없다는 것을 보여준 좋은 사례이기는 하지."
그렇게 세 시간을 더 땅을 파고들어갔을 때였다.
후두두둑! 후두둑!
땅이 아래로 푹 꺼지면서 흙이 흘러내려갔다.
아무래도 아래에 빈 공간이 있는 것 같았다.
터어엉! 터어엉! 터어엉!
한 군데는 구멍이 뚫렸는데 다른 곳은 여전히 한참 곡괭이질을 해야 할 것 같았다.
<앞으로 두 시간은 더 곡괭이질을 해야겠다. 집사 체력이 14인데 꼬박 나흘이면 다른 사람들은 이거 보름을 해도 못하겠다.>
그냥 곡괭이질을 하는 것 같지만 가장 이상적인 자세로 곡괭이질을 하려고 노력했다.
이런 노력이 아무것도 아닌 것 같지만 다음에 귀한 것으로 돌아오기도 했다.
각성해서 능력치를 개방할 때 초기 능력치를 확인하면 평균 5였다.
5의 능력치도 건강해야 얻을 수 있는 능력치였다.
운동을 정말 많이 했다고 하는 사람들은 6이나 7을 받기도 했지만 그런 경우는 흔하지 않았다.
보통은 5만 받아도 잘 받았다고 했다.
그러니 체력 능력치 14는 결코 적다고 할 수 없었다.
각성자가 아닌 일반인이 이런 땅을 파내려고 했다면 보름이 아니라 한 달이 걸려도 불가능할지도 모른다.
곡괭이가 땅에 박혀들지 않기 때문이었다.
터어어어엉! 터어엉! 터엉!
후드드득! 후드득! 후다다닥!
멀지 않은 곳에서 놀고 있던 다람쥐 한 마리가 다급하게 나무를 올랐다.
그러더니 이쪽을 살피는 것 같았다.
"내 착각이겠지? 잠깐 이곳을 본 것 같았는데?"
<뭐가?>
"저기 저 다람쥐 말이야."
손으로 가리킨 나뭇가지에는 여전히 다람쥐가 가지 뒤로 몸을 숨긴 채 앉아있었다.
그런데 지금은 이곳을 보지 않고 있었다.
<저 다람쥐가 여기를 봤어?>
"분명 놀라면서 본 것 같았는데···?"
<이거 시스템이 제대로 하고 있는지 모르겠네.>
꼬물! 꼬물!
^불안해! 불안해!^
다시 꼬물이가 불안하다고 말했다.
처음 곡괭이질을 시작할 때 불안하다고 하더니 땅을 파는 동안 간간이 불안하다며 뿌리로 사방을 살피던 꼬물이었다.
<뭐가 보이나?>
"내가 내려와 있어서 꼬물이도 멀리보지는 못할 것 같은데?"
<그러게. 신기해.>
지하 4미터에 내려와 있었기 때문에 대기실에서도 멀리 보는 것은 불가능했다.
다른 소환수들은 하늘 높이 날아올라 볼 수도 있지만 소환식물들은 그것도 되지 않았다.
날 수 없는 대신 소환식물은 줄기나 덩굴을 높이 뻗으면 되지만 이런 울창한 숲을 뚫고 멀리 볼 정도는 아니었다.
터어엉! 후두두둑! 후두두!
터어엉! 터어엉! 후두두!
한 번 구멍이 뚫리자 확실히 땅을 파기 쉬웠다.
그런데 그냥 착각이라고 말하기에는 동물들의 반응이 뭔가 이상했다.
지난 사흘간의 반응과 확연히 달랐던 것이다.
곡괭이질을 할 때마다 동물들이 반응을 보이는 것은 아니었다.
그런데 점점 빈도가 높아지고 있었다.
<집사! 곡괭이 소리가 너무 큰 것 같은데···? 계속 해야겠지?>
이제 제법 구멍이 커진 상태였다.
성인도 파고 들어갈 정도의 구멍이 뚫린 상태였다.
그 아래로 던전의 입구가 있는 것이 분명한 것 같았다.
<곡괭이질 하지 않으면 어떻게 하라고? 발로? 손으로? 어느 천 년에···. 그냥 후다닥 처리해야겠어.>
잠시 대화를 하는 사이 곡괭이를 내려놓았더니 다시 숲은 일상으로 돌아갔다.
콰아아앙! 콰아아앙! 콰아앙!
빨리 파버리기 위해 한층 힘을 실었다.
확실히 구멍이 빨리 뚫리는 것 같았다.
콰아아앙! 콰아아아앙! 콰아아아아앙!
후드득! 까아악! 까아아악!
<까마귀에 대한 편견은 가지고 있지 않은데 왜 이리 꺼림칙하지?>
나호가 자꾸 주위를 두리번거렸다.
밖을 볼 수 있었으면 나도 나호와 다르지 않았을 것이다.
"이거 문제없는 거 맞지?"
시스템에게 묻는 것이었다.
시스템이 걱정하지 말라고 했는데 지금 이건 걱정을 할 상황 같았다.
왠지 불안해서 어렵게 만들어놓은 계단을 밟고 올라와서 옆에 놓아둔 짐들을 챙겨 넣기 시작했다.
<집사! 하루 더 있어야 할지도 모르는데 왜 벌써 챙기는 거야? 뭐라도 느꼈어?>
"혹시 문제가 생길지도 모르니까. 여기는 캠핑 구역이 아닌 곳 이렇게 텐트를 치는 것도 다 불법이라고 하더라."
<그게 지금 문제야? 땅을 저렇게 파뒀는데?>
"여러 개가 문제가 되는 것보다는 낫겠지."
이곳에서 사흘을 잔 흔적을 거의 완벽하게 지웠다.
이제 파고 내려간 땅만 아니라면 혹여 누가 보더라도 아무 문제될 것은 없었다.
"어서 파서 입장해 버리자."
[입구는 완전하게 만드셔야 입장이 가능합니다.]
<허어어얼! 지금까지 뭐하다 이제 온 거야? 제대로 하고 있는 것 맞아?>
나호의 물음에 대답을 하지 않는 시스템이었다.
<뭐야? 왜 대답을 하지 않아? 불안해 죽겠는데?>
[입구는 완성을 해주시기 바랍니다.]
시스템은 자신이 하고 싶은 말만 뱉어내고는 다시 입을 닫아버렸다.
구멍이 넓어지자 아래로 던전의 입구가 보였다.
땅 아래에 있어서 그런지 입구가 상당히 그럴 듯하게 생성이 되어 있었다.
<보이지 않는 곳에 있는 것은 저렇게 빠른가? 저 던전도 난이도가 좀 있겠다.>
"그럴 것 같네. 조금 옆으로 비껴봐."
<괜찮아. 어차피 영체인데 곡괭이 좀 통과하면 어때. 그냥 해.>
구멍 속을 구경하느라 정신이 팔린 나호가 한 말이었다.
나호는 아무렇지 않게 한 말이었지만 듣는 나는 살짝 짜증이 났다
무기력함에서 오는 짜증이었다.
실체를 그토록 갖고 싶어 하는데 해줄 수 있는 것이 아무것도 없었다.
나호가 없는 곳부터 곡괭이질을 시작했다.
<괜찮다니까. 이쪽부터 해. 구멍이 나 있는 곳이 그래도 더 잘 파지잖아.>
콰아앙! 콰아아아아앙! 콰아앙!
푸드드드득! 삐이이이치! 삐이이이치!
이번에는 까마귀 소리가 아니었다.
핀치새의 소리 같기도 한데 정확한 것은 알 수 없었다.
쫑! 쫑!
^조용히 시킬까요?^
"저 새들에게도 통하는 거야?"
쫑!
^새니까.^
모든 새가 쪼롱이의 통솔을 따른다는 것은 아니겠지만 어느 정도는 통하는 것 같았다.
"그럼 부탁할게."
쫑!
중차대한 일이 자신에게 떨어진 것이 기쁜지 쪼롱이가 경쾌하게 대답하더니 독특한 소리로 노래하기 시작했다.
쪼롱이가 내는 소리 중에는 지금까지 한 번도 들어보지 못하는 소리도 있었다.
콰아아앙! 콰아아아! 콰아아앙!
쪼롱이의 노래가 완전히 끝날 때까지 기다려주면 좋겠지만 해가 지기 전에 마무리하는 것이 좋을 것 같았다.
이런 소리는 해가 지면 더 멀리 퍼지고 더 크게 들리기 때문이었다.
콰아아앙! 콰아아아앙! 콰아아앙!
쿠우웅! 후두두둑! 후두둑! 후두두두두둑!
어느 순간 바닥이 훅 꺼졌다.
재빨리 옆에 남은 바닥을 잡고 밑으로 꺼지지 않았다.
1미터 정도 빈 공간이 있었고, 흙은 그 밑으로 떨어진 것이었다.
무너져내린 흙까지 깔끔하게 치워줘야 시스템이 바라는 모습이 될 것 같았다.
마무리도 좀 해줘야 할 것 같고.
흙을 퍼내는 것은 인벤토리와 공간 주머니를 이용했다.
5미터 깊이의 구멍에서 직접 흙을 지고 올려야 했다면 이것만 해도 두세 시간은 걸렸을 것 같았다.
마무리는 망치를 꺼내서 정리를 했다.
흙으로 만든 계단인데도 돌 이상으로 단단해서 망치로 정리하지 않고서는 마무리를 할 수 없었다.
쿵! 쿵! 쿵! 쿵!
망치질 소리는 곡괭이질에 비하면 멀리 퍼지지도, 소리가 그리 크지도 않아서 한결 안심이 되었다.
<사람이든 동물이든 마음이 편안해야 사는 거야. 조금 전까지 죽겠더니 살 것 같네.>
모두들 안심을 하고 있는데 꼬물이가 꼬물거리면서 다시 불안하다는 글을 썼다.
괜한 소리를 할 아이는 아니어서 걱정이었다.
"꼬물아! 뭐가 불안해?"
꼬물!
^처음이에요 이런 종류의 불안은···.^
<막연한 불안이 아니라는 말이지?>
꼬물!
꼬물이가 저렇게 불안해하는 것은 처음이었다.
꼬물!
^불안해요!^
꼬물!
^불안해요.^
"이제 거의 됐어. 던전에 입장해 버리면 차라리 괜찮을 거야. 조금만 참아! 이제 새들은 조용한 것 같으니까."
망치를 드는 순간부터는 정말 빨리 움직이고 있었다.
울퉁불퉁한 곳을 쳐서 반듯하게 만들고 거기서 나온 흙은 모조리 인벤토리에 넣었다.
질이 좋은 흙이었다면 대기실에 넣었겠지만 주변의 흙과 달리 시스템이 말하는 곳의 흙은 돌처럼 단단해서 아무짝에도 쓸모가 없을 것 같아서 버릴 생각이다.
그렇게 거의 마무리를 했을 때였다.
멀리 사이렌 소리가 들리는 것 같았다.
<설마 경찰이나 단속반이 오는 것은 아니겠지?>
쫑!
새들을 조용히 시키겠다고 나갔던 쪼롱이가 급하게 돌아와서는 시끄럽게 재잘거렸다.
쫑! 쪼로로록! 쪼로!
^사람! 경찰 모자 쓴 것 같다. 집사! 어떻게 하냐?^
쪼롱이가 내 주변을 정신없이 날아다니며 경고를 했다.
즉각 내 주변으로 호위조까지 배치시켰다.
"사람을 공격하면 안 돼! 페널티를 먹게 돼. 문제가 생길 것 같으면 던전으로 들어가 버리면 그만이니까 걱정하지 마."
쫑! 쫑!
^지금 바로 들어가자.^
말과 함께 쪼롱이와 호위조가 대기실로 쏙 들어갔다.
어서 대피를 하자는 말이었다.
"어디 쯤 왔어?"
쫑! 쫑!
^500미터 앞에까지 왔어요. 총도 가지고 있는 것 같았는데···.^
소환수들은 현대 세상을 TV를 통해서도 배우고 있기 때문에 총에 대해 생각보다 잘 알고 있었다.
뮤! 뮤! 뮤!
^미국 경찰 무섭다. 총 막 쏜다. 우리 집사 아무리 빨라도 총은 못 피한다.^
소환수들이 걱정을 했지만 던전이 있으니 전혀 걱정할 필요가 없었다.
던전에 들어가 버리면 누구도 쫓아올 수 없었다.
소환수들도 모두 대기실에 있으니 이제 던전으로 입장하면 그만이었다.
그런데 입장하려고 던전의 입구에 들어서려는 순간 메시지가 들렸다.
[띠링! 아직 완벽하지 않습니다. 맡은 일은 완벽하게 처리하셔야 합니다.]
<우와아아! 지금 무슨 상황인지 알면서 이러기야? 여기서 문제 생기면 집사도 집사지만 너희에게도 좋을 일 없어. 드러나지 말아야 할 던전이 노출되잖아.>
내년까지는 드러내지 않을 던전이 드러나면 시스템도 좋을 일이 없을 것이 뻔했다.
꼬물!
^철컹철컹^
^ㅠㅠ^
꼬물이의 말이 내 미래를 말해주는 것 같았다.
다시 한 번 던전에 입장하려고 했지만 입장할 수 없었다.
그리고 그 순간 머리위에서 소리가 들렸다.
"신분 조회 좀 하겠습니다. 올라오시죠."
5미터 위에서 아래를 내려다보고 있는 사람은 자그마치 여섯 명이었다.
하나 같이 총을 들고 있었다.
망치를 들고 있는 것이 무기를 들고 있다고 판단을 한 것인지 경찰로 보이는 사람들의 표정은 딱딱하게 굳어 있었다.
전화벨이 울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