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당신의 마나통은 안녕하십니까?-153화 (153/350)

153. 전화벨이 울렸다.

대기실을 재빨리 잠그지 않았다면 정말 난리가 났을 것이다.

멀쩡하게 서있을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을 것이다.

그것도 모르고 총을 겨눈 남자 중 한 사람이 제법 고압적인 목소리로 말했다.

"무기 버리고 손 머리로 올려!"

<야이! 와아! 정말 욕 나온다! 욕 나와! 시스템! 말 좀 해봐. 해보라고! 따박따박 잘도 말하더니 이럴 때는 조용하지! 뭐라고 말 좀 해보라고!>

뮤! 뮤! 뮤! 뮤!

^아이고! 우리 집사! 저거 시커먼 총인데···. 저거 어쩔 거야! 저거어어!^

나호와 도뮤는 방방 뛰고 있었지만 다른 소환수들은 의외로 침착했다.

울고불고 난리를 칠 줄 알았는데 의외의 모습을 보이는 소환수들이었다.

가장 의외의 모습을 보이고 있는 것은 뚜루와 전령조들이었다.

뚜루를 위시한 전령조들은 대기실 앞에 대기를 하고 있었다.

부리를 대기실 입구에 거의 대고 있었는데 허락만 떨어지면 당장 저 거대한 부리로 목을 물어버릴 기세였다.

다른 때 같으면 벌벌 떠는 녀석들이 지금은 전의(戰意)를 불태우고 있었다.

쪼롱이와 사냥조는 당연한 일이고 반반이 가족도 콧김을 뿜어대고 있었다.

언젠가 나호가 말했던 것처럼 죽는 것도 쉽지 않을 것 같았다.

"저 새끼! 약 한 거 아닙니까? 실실 쪼개는데요?"

총부리를 겨누고 있는 사람에게 그 옆 사람이 하는 이야기였다.

"무기 버리고 손 올리라는 말 안 들려?"

이런 취급을 정말 받고 싶지 않지만 지금은 어쩔 수 없었다.

망치를 버리고 손을 들어올렸다.

"천천히 올라와!"

<칫! 끌고 올라가기 싫으니 올라오라고 하지. 누가 하는 짓과 아주 비슷하구만.>

나호가 지금 터뜨리는 모든 불만은 시스템을 향한 것이었다.

경찰관으로 보이는 사람들이 시키는 대로 천천히 위로 올라갔다.

"신고 받고 출동했습니다. 여기서 뭐하시는 겁니까?"

<이럴 줄 알았어. 소리가 나간 거야. 시스템이 확실하게 막아주겠다고 하더니···. 아오오오!>

"그저 호기심에···."

다른 할 말이 없었기 때문에 이렇게 말할 수밖에 없었다.

"호기심에 저렇게 큰 구덩이를 파셨단 말입니까? 이곳의 숲을 해치면서요? 여기 보호구역이라는 거 아십니까? 캠핑도 금지된 곳에서···."

어이없다는 얼굴로 빤히 쳐다보는 남자였다.

"신분증 좀 봅시다. 아무래도 정신이 이상한 것 같으니···."

신분증을 비롯한 모든 짐은 인벤토리에 있었다.

자유롭게 인벤토리 안에 든 물건을 잡을 수 있지만 이렇게 손바닥을 짝 펼치고 있는 상태에서 신분증을 꺼낼 수는 없었다.

"신분증! 없습니까? 혹시 관광객입니까?"

<집사! 어떻게 해?>

'마술사라고 해야겠어. 미쳤다고 생각할지 모르겠지만.'

"신분증 있습니다. 그런데 저는 그냥 꺼내지 않습니다. 마법사거든요."

"수작 부리지 말고 신분증!"

손바닥을 접었다 펴자 여권이 있었다.

"오오오···."

두 명의 경찰관이 놀라 소리를 지르다 이내 입을 닫았다.

옆의 경찰관이 여권을 거칠게 가져가더니 이리저리 들추어보았다.

<무슨 폼을 저리 잡는 거야? 아니 그것보다 시스템은 도대체 뭘 하고 있는··· 아오오 정말! 이러다 우리 집사 잡혀가면 어쩌려고···.>

"한국인? 그런데 왜 여기서 폭발······."

경찰관이 쏟아내는 말은 상상도 하지 못한 말이었다.

타호 호수 부근에서 폭발 소리를 들었다는 신고가 계속 되고 있어서 왔다는 말이었다.

무슨 테러를 저지르려고 준비하는 사람 취급을 하면서 뭘 터트린 것이냐고 물었다.

"우선 경찰서로 가주셔야겠습니다. 그리고 이곳은 폭발물······."

"그것이···."

뭔가 말을 하려고 해도 들으려고도 하지 않았다.

바로 수갑을 채우지 않은 것이 다행이었는지도 모른다.

망치를 제외한 어떤 것도 없었기 때문에 그나마 이 정도의 대우를 받고 있는 것 같았다.

의심스러운 것이 단 하나라도 있었으면 체포를 면하지 못했을 것이다.

폭발 신고를 받고 왔더니 실제로 5미터가 넘는 거대한 구멍이 생긴 상태이고 외국인이 망치를 들고 구멍 안에 있다!

내 몰골이 엉망이었으면 더 험한 꼴을 당해도 뭐라고 하지 못했을 것이다.

주변을 말끔하게 치워두고 매무새까지 단정하게 해둔 것이 한 몫 한 것 같았다.

하지만 경찰서까지의 동행은 면치 못할 것 같았다.

경찰차를 타고 경찰서로 향하는데 별 생각이 다 들었다.

<집사! 이거 어떻게 해? 코에 걸면 코걸이 귀에 걸면 귀걸이 되는 거 아니야? 땅까지 저리 파두었으니···. 그런데 저 사람들은 던전 입구를 보지 못하는 것 같았지?>

'봤으면 당장 내려왔겠지.'

"폭발물은 다 어디에 감춘 겁니까? 아까 마법사라고 떠들더니 폭발물도 감출 수 있습니까?"

옆에 앉은 경찰관 중 한 명이 계속 떠들어댔다.

아까 여권을 봤을 때 가장 반응이 컸던 경찰관이었다.

폭발물 같은 거 없었다고 몇 번 대답을 했는데도 이런 식이었다.

"폭발물 감식반이 지금쯤 도착했을 겁니다. 금세 드러납니다. 어떤 폭발물을 사용했는지···. 그러니 안에서는 묻는 대로 대답하는 것이 좋을 겁니다."

빙글거리며 차에서 먼저 내린 경찰관이 하는 말이었다.

'하아! 경찰서를 다 와보네.'

한국에서도 갈 일이 없던 곳이었다.

그런데 미국에서 경찰서 문턱을 넘고 있었다.

<집사! 너무 많은 말은 하지 마. 묵비권이라고 하는 게 있어. 불리한 것은 진술을 거부할 수 있는 권리! 알지? 알고 있지?>

나호가 더 불안해하고 있었다.

'가만히 좀 있어. 정신없어.'

<적진을 살피는 거야. 뭐라도 알아야 대처를 하지.>

경찰차에 타는 순간부터 정신없이 움직이는 나호였다.

탐정은 저만 가라고 할 정도로 살피고 확인을 하는 나호 때문에 조금은 정신이 없었다.

<어? 집사! 신고가 많기는 했네. 첫 날은 한 번인 것 같고, 다음 날은 세 건! 그런데 이것은 호수에 물놀이를 하던 사람이 낸 소리로 생각했었나봐.>

타호 호수는 레저를 즐기러 오는 관광객이 많았다.

간혹 노를 가지고 호수 표면을 세게 내리치면 그 소리가 비슷하게 들리기도 한단다.

그런데 어제부터는 이상하게 생각한 것 같았다.

신고도 부쩍 늘었고···.

<오늘이 결정타였어. 오늘 신고가 아주 폭주를 했네.>

나호가 책상에 놓인 서류를 보며 말했다.

'너 영어도 하는 거야?'

나호가 하는 말을 대수롭지 않게 듣다가 가만 생각하니 여기는 미국이었다.

그런데 나호는 한국에 있는 것처럼 편하게 보고 듣는 것 같았다.

<이거 왜 이래? 내가 살아온 세월이 얼마야? 내게도 관심을 가는 생명체들이 있었다니까! 처음으로 들어온 외국인이 얼마나 신기했겠어? 그래서 한국을 다녀간 외국인들의 언어는 거의 다 해.>

'다 한다고?'

<어! 다 할 수 있어. 아주 예전부터 그랬어. 외국인이 한국에 온 것이 근대이기만 하겠어? 예전에도 한국에 외국인들 많이 왔어. 우리나라에서 벼슬을 한 외국인도 제법 있었고. 아랍에서 온 사람도 벼슬을 한 경우가 있었지.>

인간사에는 도통 관심이 없었다고 하는 나호이지만 살아온 세월이 길기 때문인지 은근히 아는 것이 많았다.

그런데 그 많은 언어를 다 한다니 놀랍기만 했다.

'자유롭기는 하겠다.'

핸드폰으로 통역까지 되는 세상이지만 외국어를 잘하는 사람을 보면 부럽기만 했는데 그런 존재가 바로 옆에 있었다.

<집사를 만나기 전에는 한국을 벗어날 수 없었다니까. 자유로움과는 거리가 있는 삶을 살았어. 외국인들이 말하는 그들이 살던 세상을 보고 싶을 때가 많았지.>

나름의 고초가 있었던 나호였다.

그 사이 내 앞으로 경찰관이 와서 앉더니 이런저런 질문을 했다.

그런데 그 순간 시스템의 메시지가 들렸다.

[띠링! 강대한 님! 먼저 죄송합니다.]

대뜸 사과부터 하는 시스템이었다.

<야이! 어디 갔다 이제 오는 거야? 너희 이거 어떻게 처리할 거야? 이거 어떻게 할 거냐고? 미국 경찰이 얼마나 머리 아픈데···. 이거 잘못하면 대변혁 전까지······.>

나호가 시스템의 음성이 들리자마자 퍼붓기 시작했다.

그동안의 꾹꾹 눌러두었던 불안이 화산처럼 폭발해버린 것이었다.

[죄송하게 생각합니다. 하지만 먼저 이 상황을 처리하는 것이 우선이라고 생각합니다.]

지극히 합리적인 사고(思考)였다.

따지고 화를 내는 것도 중요하지만 우선은 이 일을 원활히 처리하는 것이 우선이었다.

나호의 말대로 괜히 이상한 식으로 처리되면 대변혁 전까지 미국에 다시 입국하지 못할 수도 있었다.

지금 당장 출국을 당할 수도 있고···.

그렇게 되면 미국에서 얻어야 할 것이 많은 나에게는 손해가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그리고 지금 보는 손해는 단순히 나 하나의 손해로 끝나지 않고 우리나라의 손해로 이어질 것이었다.

이걸 누구보다도 잘 아는 나호였다.

하고 싶은 말이 많은 나호였지만 그래서 입을 다물었다.

그리고는 시스템에게 어서 말을 해보라는 몸짓을 했다.

[띠링! 지금 묻는 경찰관의 말에 무조건 모르는 일이라고 하십시오.]

<뭐라고? 이게 대책이야? 와아아! 땅을 그렇게 파두었고 뻔히 다 와서 봤는데 잡아떼라고? 괜히 더 의심받게 돼. 너! 인간들 법에 대해서는 잘 모르지?>

나호가 의심의 눈초리를 했다.

'잡아떼는 것이 능사가 아니야. 나호 말대로 현장이 버젓이 있는데 그런 말을 하면 약물검사까지 하자고 할 거야.'

심상으로 재빨리 말을 했다.

[다 처리를 해두었습니다. '뭔가 오해가 있는 것 같다. 나는 그저 타호호수를 산책했을 뿐이다.'라고 하십시오. 그럼 다 해결됩니다. 사과까지 받고 나오게 해드리겠습니다.]

<네 말의 신뢰도가 지금 어느 정도인지는 알고 있지?>

[완벽하게 처리가 됐으니 그렇게 말씀하십시오. 경찰관의 눈초리가 이상합니다.]

<어이가 없네. 너 미국 경찰 무섭냐?>

나호가 시스템을 비꼬고 있었지만 정말 날 보고 있는 경찰관의 눈초리가 이상했다.

묻는 말에 대답을 하지 않고 있으니 슬슬 이상하게 생각하는 것 같았다.

"4일 전에 입국하셨는데, 입국 목적은 관광! 그런데 왜 땅을 파셨습니까? 그것도 5미터도 넘는 구덩이를···. 자꾸 대답을 하지 않으···."

"뭔가 오해가 있는 것 같습니다. 맞습니다. 저는 관광 목적으로 왔고 타호호 주변을 관광했습니다."

"숙소도 잡지 않고요?"

"거기서 잤습니다."

"입국할 때 기재해둔 숙소에는 아예 체크인도 하지 않고 땅을 팠다···. 이거 선생님이 생각해도 이상하죠?"

경찰관은 약간 조롱하는 듯한 목소리로 말했다.

[띠링! '산책했을 뿐이다. 경찰서에 와야 하는 이유를 모르겠다.'고만 하시면 일은 다 처리될 것입니다.]

'어떻게 처리되는데? 무조건 잡아떼기만 하라니···.'

내가 경찰관이라고 해도 이상할 것 같은데 아니라고만 하란다.

하지만 내 질문에는 대답을 하지 않는 시스템이었다.

<나! 시스템 못 믿어. 쟤들 이상해. 그것도 많이. 이거 일꾼으로 부리고 사고 나니까 나 몰라라 하는 거하고 뭐가 달라?>

하지만 달리 어찌할 방법도 없어서 시스템이 대답하라는 대로 대답했다.

"엄청난 크기의 구덩이를 방금 보고 왔는데 지금 산책만 했다는 겁니까? 구덩이를 판 적이 없다는 말씀이십니까? 숲을 훼손한 적도 없고?"

"그렇습니다."

"약했어···?"

경찰관의 말이 슬슬 예의(禮儀)와 멀어지는 것 같았다.

그때 전화벨이 울렸다.

"잠깐만···."

약간은 무례한 손짓으로 기다리라고 하고는 전화를 받는 경찰관이었다.

그런데 전화를 받는 경찰관의 표정이 묘하게 바뀌었다.

아마 내 얼굴도 비슷할 것 같았다.

상대방의 목소리가 생생하게 들렸기 때문이었다.

"정말 없습니다. 구덩이가 있다고 하는 곳에 왔는데 어떤 흔적도 보이지 않습니다."

"무슨 소리를 하는 거야? 내가 직접 보고 온 건데. 좌표 확실해?"

"확실합니다."

"잘못 찾아갔을 수도 있으니까 근방 다시 한 번 찾아봐."

"알겠습니다. 그때도 없으면 어떻게 합니까?"

"존 보낼 테니까 찾아보고 있어."

전화를 끊고 나를 보는 경찰관의 표정이 가관이었다.

당신 정말 마법사야 하고 묻는 것 같았다.

"저는 산책만 했을 뿐입니다."

<이게 도대체 어떻게 된 거야? 혹시 구덩이를 다시 메웠어? 집사가 하루에 두 시간만 자고 판 구덩이를?>

[메운 것이 아니고 가린 것입니다. 각성자가 아닌 이상 어떤 흔적도 발견할 수 없을 겁니다.]

'구덩이 위에 올라서도?'

가린다고 해도 정확한 위치를 아는 사람이 올라서면 바로 들통이 날 것 같아서 묻는 것이었다.

[저희의 일처리는 그렇게 허술하지 않습니다.]

<허술하지 않기는! 허술하지 않는데 우리 집사가 경찰서까지 오게 해! 남의 귀한 집 자식을 경찰서나 드나들게 하고··· !이거 어떻게 보상할 거야! 이거 배상이라고 해야 하나? 몰라! 책임져!>

나호가 앞발을 휘저으며 강력하게 몰아붙였다.

[이번에는 확실합니다. 곧 경찰서에서 나가실 수 있을 겁니다.]

전화를 끊은 경찰관은 황당한지 책상만 두드리며 나를 쳐다보고 있었다.

그리고 그때 전화벨이 다시 울렸다.

시스템의 선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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