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4. 시스템의 선물
"그럼 좋은 여행되시기 바랍니다."
예약한 숙소 앞에 내려준 경찰관이 겸연쩍은 표정을 지으며 인사를 했다.
"괜찮습니다."
경찰관은 다시 한 번 살짝 인사를 하더니 차를 타고 돌아갔다.
<얼마나 황당하겠어. 나도 어이가 없는데···. 집사 체크인 할 거야?>
"해야지. 괜한 오해 사지 않으려면···."
<자지도 않았는데···. 빠져나간 방값도 아깝다. 싸지도 않은 방인데···.>
"괜찮아. 방도 예약하지 않았으면 더 이상하게 생각했을 거야."
<월평에 껌뻑 죽던데 뭘. 정보들 빨라! 내 참!>
호텔에 들어서자 이제야 안심이 되는지 나호의 표정이 편안해졌다.
"이거 괴담으로 풀릴지도 모르겠어. 내년이 돼서 저기에 던전이 나오면 더 이상하게 이야기 될지도 몰라."
[그건 걱정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내년이 되기 전에 이 일에 관계된 모든 사람들의 기억에서 이 일은 지워질 테니까요.]
<기억을 지우기라도 하겠다는 거야?>
[망각이라는 좋은 방법이 있습니다. 그 망각을 조금 가속화시킬 뿐입니다.]
<너 인간 세상 잘 모르지? 그렇지? 지금 세상은 망각이라는 것이 존재하지 않는 세상이야. 이거 누군가가 이상하다고 올리잖아. 그럼 십 년 후에도 찾아볼 수 있어.>
[올리지 않을 겁니다.]
<확신하지 말라니까. 예전에는 클릭이라도 했지. 지금은 클릭 없이 말만으로 바로 올릴 수 있어. 그리고 아까 서류 보니까 들은 사람이 한두 사람도 아니더만.>
나호와 시스템과의 언쟁은 한동안 계속될 것 같았다.
그동안 나는 정부 관계자에게서 온 전화를 받았다.
신분증을 확인한 미국 경찰이 신원조회를 했다 알려졌는지 정부 관계자가 경찰서로 전화를 했었다.
말 하는 것이 내가 미국에 와 있는 것은 진작 알고 있는 것 같았다.
그리고 그것은 미국 내 정보를 담당하는 부처도 마찬가지인 것 같았다.
대외적으로는 독도를 개발한 사람일 뿐이니 지나친 관심이라고 생각하다가도 오션 28을 생각하면 납득이 되기도 했다.
아직 오션 28에 대한 대처는 수술을 제외하고는 독도만한 것이 없었다.
독도를 마셔서 입 냄새라도 제거를 하든지 아니면 수술을 해서 가슴 통증까지 없애든지···.
매 1일마다 1일의 기적이 일어나고 있지만 그래서 더 불안하다는 사람도 많았다.
이런저런 괴담들도 돌아다니고 있고···.
"괜찮습니다. 안전하게 있다 돌아갈 테니 걱정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세 분만 잘 살펴주십시오."
"걱정하지 마십시오. 그렇지 않아도 경호를 강화했습니다."
각종 개인 방송을 하는 사람들이 괴담을 쫓아 월평주식회사를 방문하는 일이 잦아졌다.
내가 산 땅에 울타리를 해둔 것도 이상하게 해석들을 하고 있었다.
대개는 독도의 배합 비율을 지키기 위해서라고 하지만 일부의 사람들은 외계인과의 소통이 밤마다 이루어지고 있다는 말도 되지 않는 이야기를 하는 경우도 있었다.
그러다보니 간혹은 외국인들까지 카메라를 들고 월평리를 찾고 있었다.
그래서 화순은 때 아닌 관광특수를 누리고 있었지만 말이다.
전화를 끊고 나자 나호가 미소를 지었다.
미소의 의미를 모르지 않기 때문에 실소가 터져 나왔다.
<집사도 웃기지? 외계인과 소통한 느낌은 어때? 지금도 여전하다지?>
"그렇지 뭐. 미리 울타리를 쳐둔 것이 어쩌면 다행스러운 일이지."
대변혁 전에 외부인을 통제할 목적으로 울타리가 사용될 것이라고는 생각해본 적이 없었다.
그런데 최근 들어 괴이한 이야기들이 돌면서 울타리가 제 몫을 톡톡히 하고 있었다.
땅을 살 때마다 울타리를 치고 다시 땅을 사면 울타리를 쳤기 때문에 어떤 곳은 이중 삼중을 넘어 여러 겹의 울타리가 형성된 곳들이 있었다.
이상한 이야기를 좋아하는 사람들은 그 부근이 수상하다고 그런 곳에 사람이 더 몰리기도 했다.
지금도 인터넷에 월평이라는 키워드를 치면 독도에 앞서 각종 괴담이 뜨는 실정이었다.
그래서 최근에 각종 포털을 관리하는 회사들에서 연락이 오기까지 했단다.
월평을 치면 독도가 가장 상위에 검색하도록 해주겠다며 계약을 체결하자는 것이었다.
보통의 회사라면 이런 제의가 오기 전에 알아보고 처리했겠지만 우리는 그럴 필요가 없었다.
"불안을 느끼고 뭔가를 준비하는 사람이 단 몇 사람이라도 있다면 좋은 일이지."
<에이! 집사는 어쩔 때는 나보다 더 세상을 몰라! 준비하는 사람? 과연 한두 사람이라도 있을까? 그저 흥밋거리로 소비될 뿐이야.>
독도!
유일무이한 치료제!
아직 밝혀진 것이 어느 것도 없는 오션 28!
이런 몇 가지가 맞아떨어지면서 사람들의 흥미를 자극하는 것뿐이라는 말이었다.
"알고 있지. 하지만 항상 의외의 사람은 있기 마련이야. 그리고 막연하게라도 뭔가 변화가 있을까 하고 생각만 해도 큰 도움이 될 거야."
생각지도 못한 일을 맞닥뜨려야 하는 인류였다.
지금은 과한 상상이라고 생각하는 일들이 우스워지기까지 이제 5개월 남짓밖에 남지 않은 상황이었다.
<아! 그건 그렇고! 시스템이 할 말 있대. 입이 열 개라도 할 말이 없을 것 같은데 열 개가 아니고 수십, 수백 개는 되는 것 같아.>
나호는 시스템에게 단단히 화가 나있었다.
그리고 그 화는 좀처럼 풀리지 않을 것 같았다.
[띠링! 고초를 당하게······.]
시스템이 제법 길게 사과의 말을 쏟아냈다.
이런 말을 시스템에게 듣게 되는 것도 낯선 일이지만 이렇게 길게 사과를 할 것이라고도 생각해본 적이 없었다.
그래서 그런지 조금은 진심이 느껴졌다.
"마음은 충분히 알 것 같아."
<집사! 그렇게 쉽게 사과를 받아들이면 안 되지. 경찰서 문턱까지 넘었는데···.>
"수갑을 찬 것도 아니니까 괜찮아."
<그것도 집사가 미리 치워둬서 그런 거잖아. 시스템만 믿고 있었으면 정말 이상한 사람 될 뻔했어. 아니지. 어디 구치소에라도 갇혔을지 모를 일이야. 이건 절대로 그냥 넘어가면 안 돼!>
나호가 단호하게 말했다.
저런 때는 제법 강단 있어 보였다.
"저렇다는데? 아니 농담이고···. 정말 나는 이해해. 일을 하다보면 실수도 있고 그러는 거지. 어떻게 보면 나보다 너희가 더 당황했을 거잖아. 미리 대변혁 이후를 살짝 경험했다고 생각하면 그만이야."
사회가 어느 정도 안정이 될 때까지 세상은 말이 아니었다.
그래도 우리나라는 양호한 편이었다는 것을 나중에 알게 되었다.
개인에게 총이 없으니 그 혼란 와중에도 외국처럼 민간인이 민간인을 쏴 죽이는 일은 없었고, 분단 국가여서 군대가 있던 곳은 던전에서 터져 나온 몬스터를 조기에 어느 정도 대응할 수 있었다.
가지고 있는 총알이 떨어지고는 군대도 무력했지만 그래도 이미 가지고 있는 무기가 바로 사라진 것은 아니었으니 그나마 다행이었다.
일부 지역에서는 군대나 군인들이 문제를 일으키기도 했지만 말이다.
"그나저나 그 던전을 들어가야겠는데···. 이래서는 영 움직이는 것이 눈치가 보여. 또 그 부근을 서성이는 것도 꺼림칙하고···."
내 얼굴을 슬쩍 본 나호가 바로 말을 이었다.
<맞아! 이제 정말 산책을 해도 이상한 사람이라고 생각할 거야. 나라도 이상하게 생각하겠어. 그런 일을 겪고 그 부근을 또 걷는다? 미친놈이거나 뭔가 노리 것이 있다고 생각하지 않겠어?>
나호는 눈치가 참 빨랐다.
그리고 눈치라고 하면 도뮤도 빠지지 않았다.
뮤! 뮤! 뮤!
^우리 집사! 두부는 아니라도 두부 못지않은 보상은 해줘야 한다! 나처럼 보이지 않게 해주든지.^
도뮤가 눈을 찡긋했다.
꼬물! 꼬물!
^보이지 않는 거 좋다! 꾸루도 세상에 나가면 보이지 않는다. 부럽다. 나도 보이지 않으면 늘 함께 다닐 텐데···.^
꼬물이의 하얀 뿌리가 내 볼을 간질이며 하는 말이었다.
참으로 오랜만에 나온 뿌리였다.
냄새가 사라지고 난 이후에는 언제든 나와도 된다고 했지만 꼭 필요한 일이 아니면 대기실에서 나오지 않았다.
조심하는 것이 배어버린 것 같기도 했다.
꾸룰루루! 꾸룰루!
^쪼롱이도 보이지 않으면 자유로울 수 있다. 쪼롱이도 자유롭게 날고 싶다!^
꾸루가 쪼롱이의 대변인처럼 목소리를 높였다.
한 쪽 날개를 높이 올리며 말하는 것이 민주투사 부럽지 않았다.
쫑! 쫑!
^우리 반반이는 또 어떻고···.^
음머어어어
^우리 주인만 괜찮다면 우리야 괜찮다. 우리야 보이지 않는다고 해도 덩치 때문에 나갈 수 있는 곳이 거의 없다.^
돌고 돌아 나에게 돌아오는 아름다운 동그라미였다.
[적절한 보상을 의논 중입니다. 잠시만 기다려주십시오. 보상이 결정되는 대로 말씀드리겠습니다. 그럼 잠시 쉬고 계십시오. 조금 시간이 걸릴 것 같습니다.]
시스템이 사라지고 나자 살짝 피곤이 몰려왔다.
치료수를 마시면 잠과 피곤을 함께 날려버릴 수 있지만 지금은 왠지 조금 자도 좋을 것 같았다.
"하아아암! 피곤하네. 긴 하루이기도 하고···."
<집사! 밥이라도 먹고 자. 대기실에 보관 중인 음식 있잖아.>
"먹고 나면 잠깐 앉아있어야 하잖아. 지금은 바로 누울래."
<그래 그럼. 어서 쉬어. 보초는 확실히 서줄 테니까 걱정하지 말고.>
"그래. 고마워."
눕자마자 잠이 든 것 같다.
대기실을 열어놓고 잠이 든 것 같기도 하고 그렇지 않고 잠이 든 것 같기도 했다.
그런데 어느 순간부터 살금살금 움직이는 기척이 자꾸 느껴졌다.
처음에는 도뮤가 나와서 돌아다닌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도뮤의 움직임이라고 말하기에는 동작이 너무 작았다.
"으음! 꼬물이니?"
꼬물!
^들켰다!^
"뭐하는 거야?"
꼬물!
^숨바꼭질!^
"꼬마랑 숨바꼭질 했어?"
꼬물!
^집사랑 했는데?^
"나하고 했다고? 왜? 꼬마는 뭐하고? 아니 왜 이리 조용해?"
^꼬마는 자. 다른 애들은 다 놀러 갔어. 일부는 던전에 가고.^
"나호는? 나호가 보초서주기로 했는데?"
^보초는 전령조에게 맡기고, 나호는 밑에 잠깐 내려간다고 했어.^
"무슨 일 있는 거야?"
^여기 밑에서 무슨 대회가 있나봐. 거기에서 누굴 봤다고 하는데···. 잘 모르겠어.^
"그래서 혼자 있었던 거야?"
^혼자 있어도 괜찮다. 집사랑 숨바꼭질 했다.^
이불 주위에서 뭔가가 자꾸 꼬물거리더니 혼자 숨바꼭질을 한 모양이었다.
"혼자해서는 재미가 없지. 어디 한 번 제대로 해볼까?"
몸을 벌떡 일으키며 말했다.
"자! 먼저 숨어봐. 내가 찾아볼게."
^정말? 정말 내가 숨어?^
"그래. 네가 숨어 봐. 내가 찾아줄게."
^와아아! 듣기만 해도 재미있어. 그럼 나 정말 숨는다아아아.^
꼬물꼬물하던 꼬물이가 숨었다.
꼬물!
^찾아봐!^
항상 글을 쓰는 뿌리가 아닌 다른 뿌리로 이렇게 바닥에 적는 꼬물이었다.
가장 긴 뿌리가 숨었다고 찾아보라는 것이었다.
금세 찾을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뿌리가 숨어봐야 어디에 숨겠는가.
다른 뿌리 뒤라든가 제 짝의 뒤에 숨는 것이 다일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숨는다 하는 순간 사라져 버린 꼬물이었다.
"어? 혹시 이래서 대기실에 아무도 보이지 않는 거야?"
꼬물!
^금세 알아챈 거야? 너무 똑똑하니 재미없다. 그래도 나 찾아봐!^
꼬물이의 다른 뿌리가 바닥에 적은 글씨였다.
"시스템이 선물을 준 거야?"
이 정도라면 이건 보상을 넘어 선물이라고 해도 좋을 것 같았다.
꼬물!
^빙고! 못 찾겠지? 각성자의 눈에도 안 보이지? 안심할 수 있대.^
그러고는 모습을 드러내는데 내 볼 바로 옆이었다.
"여기 있었는데 내가 못 찾은 거였어?"
^대단하지. 시스템이 기다리다가 집사가 너무 곤히 자니까 우리에게 먼저 알려줬어. 그래서 신나서 다 놀러간 거야. 나호는 누군가를 발견한 것 같고.^
"멀리 가지 못할 텐데?"
^가장 놀란 것이 나호 아니겠어? 늘 가장 가까이에 있으니까. 미안했는지 나호가 마음대로 움직일 수 있는 범위도 늘려줬어. 두 배로!^
"두 배? 그럼 10미터나 벗어날 수 있게 된 거야?"
^아마 1층이나 2층에 있을 거야.^
10미터라면 나호의 움직임이 상당히 자유로울 것 같았다.
영체이니 가지 못할 곳도 없고.
창밖을 봐도 우리 애들이 보이지 않는 것이 우선 내 눈에도 보이지 않게 해둔 것 같았다.
"내 눈에도 우리 애들이 보이지 않는데 그것은 따로 말 없었어?"
^시스템이 안전을 위해 모두의 눈에 보이지 않게 해둔다고 했었어. 시스템 불러봐. 그럼 알게 될 거야.^
"그래. 고마워."
모두에게 은신을 선물한 건지 아니면 대변혁 전까지만 한시적으로 보이지 않게 해주는 것인지 들어봐야 할 것 같았다.
SSS급 스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