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1. 지옥에서 온 쌍둥이
시스템의 말을 듣는 순간 섬뜩한 생각이 들었다.
원래 마음까지도 들여다본다는 것을 알고 있었지만 이런 식을 원하는 것은 아니었기 때문이었다.
이건 좀 진지하게 이야기를 할 필요가 있을 것 같았다.
나호도 심각하다는 것을 알았는지 조용히 옆을 지키고 있을 뿐이었다.
"이렇게 분명히 찍혀 있는 구덩이가 어떻게 사라지는지···. 도저히 이해할 수가 없어. 직접 경험하지 않았으면 조작 영상이라고 했을 거야."
"이거 올리면 대다수가 그렇게 생각하겠지."
"그래도 이러 거 좋아하는 사람들에게는 성지가 될 수도 있어."
"그런데 영상 폐기하라고 했는데 올려도 되나?"
둘은 영상을 인터넷에 올리는 걸 두고 아직 고민 중인 것 같았다.
"여기 다시 찍어서 살펴보자고. 비교 영상을 올려도 좋을 것 같고."
나를 심문했던 경찰관이 영상을 올리는 것에는 조금 더 적극적인 것 같았다.
'정말 어떻게 할 생각 없어? 이거 좋은 생각 아니야. 지울 수 있으면 당장 지우는 것이 좋아.'
시스템에게 하는 말이었다.
시스템은 잠시 말이 없었다.
'이런 식이면 널 돕는 것도 다시 생각해봐야 할 것 같아.'
협박이 통할 리 없지만 이렇게라도 해야 했다.
더 이상 괴담의 주인공이 될 생각은 없었다.
지금으로도 충분했다.
이런 영상까지 돌면 조용히 준비를 하는 것에 지장을 받을 수도 있었다.
[지워드리겠습니다. 하지만 강대한 님의 도움이 조금 필요합니다.]
그렇게 말한 시스템은 영상이 찍힌 핸드폰을 들고 있는 경찰관의 발을 걸어달라는 부탁을 했다.
<그냥 지우면 되지 왜 이런 위험을 자초하는 거야? 이거 기름을 붓는 것일 수도 있어.>
[그렇게만 해주시면 모든 영상은 물론이고 기억도 순식간에 지워질 겁니다.]
시스템이 저렇게 말하는데 하지 않을 수도 없었다.
그래서 핸드폰을 들고 있는 경찰관의 발을 살짝 걸었다.
밤 열 시가 넘는 시간에 숲에서 발에 뭔가가 걸려 넘어지는 일은 흔히 있을 수 있는 일이었다.
발이 걸린 경찰관은 넘어지지 않으려고 함께 걷던 경찰관을 붙들었고, 중심을 잃은 두 사람은 그대로 넘어지고 말았다.
이렇게 넘어진다고 해서 팔찌 형태의 핸드폰이 바닥을 구를 일은 없었다.
그런데 시스템이 다 되었다는 말을 했다.
<유난히 힘겨운 목소리네. 직접 개입은 역시 힘겨운 건가?>
나호가 고개를 갸웃했지만 당장은 넘어진 두 경찰관이 먼저였다.
다친 곳은 없는지···?
정말 핸드폰의 영상이 지워진 건지···?
"이런! 다친 데 없어?"
"괜찮아. 너는?"
"나도 괜찮지."
툴툴 털고 일어난 두 사람은 주위를 바닥을 보더니 툭 튀어나온 나무뿌리를 발견하고는 거기에 걸려 넘어졌다고 생각했는지 나무뿌리를 가볍게 찼다.
그리고 조금 전부터 찍고 있던 영상을 이어서 찍으려고 핸드폰을 켰는데 영상기능이 작동하지 않았다.
"아이씨! 며칠 전부터 문제더니 또 이러네. 우선 네 폰으로 찍어봐."
"그래. 빨리 찍고 가자. 넘어지고 네 폰까지 말썽이니 찜찜하다."
두 사람은 영상을 찍고는 시야에서 사라졌다.
그때까지 걸린 시간은 그리 길지 않았다.
한밤중에 영상을 찍는 것이기 때문에 구덩이가 있는 부근만 후다닥 찍고는 가버린 것이었다.
그들이 가고 난 후 황금 2 던전에 바로 입장했다.
[걱정하실 일은 없을 겁니다. 자고 나면 누구도 기억하지 못할 테니까요.]
"그래. 알았어. 이제 마음대로 이곳에 있어도 되는 거지?"
[당연합니다. 강대한 님의 소유이시니 재량껏 활용하시기 바랍니다.]
<실상 할 수 있는 것은 많지도 않으면서. 생색은···.>
그렇게 말을 하면서 나호의 시선은 자꾸 황금 항아리 던전이 있는 곳으로 향하고 있었다.
안전하다는 것을 알면서도 불안한 모양이었다.
불안을 오래 가지고 있을 필요는 없었다.
우리는 바로 항아리 던전에 입장했다.
<물소리가 나지 않는 것 같은데?>
"이곳에서는 물이 몬스터와 같은 역할이어서 그러나?"
뮤! 뮤! 뮤!
^황금이다! 그런데 이미 다 제련이 된 것이다. 집사! 집사가 좋아하는 황금이야.^
도뮤가 대기실에서 나오며 향한 곳은 항아리 던전의 입구 양쪽으로 세워진 벽이었다.
그 벽 밑으로 황금이 즐비하게 놓여있었다.
뮤! 뮤! 뮤!
^물이 가져다 둔 거다. 물이 제련을 했다! 물이 우리 밥 다 먹어버렸다.^
도뮤가 물을 강조하며 말을 했다.
금 주변에 붙은 불순물이 먹이인 도뮤에게는 허망하기 그지없는 일이지만 우리에게는 이보다 좋을 수가 없었다.
<그래. 이런 좋은 점이라도 있어야지.>
나호가 만족스러운 표정으로 금을 바라보았다.
"도뮤. 이것 좀 챙겨줘."
금조각의 양이 많아서 혼자 정리를 하려면 시간이 좀 걸릴 것 같아 부탁을 한 것이었다.
부탁을 받은 도뮤가 도깨비들을 불러냈다.
그리고 금 조각을 줍는 것을 시켰다.
손톱보다 작은 조각도 있었지만 주먹보다 더 큰 황금 덩어리도 있었다.
그렇게 모인 금은 20리터짜리 비닐 봉투를 채우고도 조금 남았다.
"이 정도면 적지 않네."
<목숨 값이라고 생각하면 부족해. 집사 죽을까봐 얼마나 놀랐는데!>
"죽지 않아. 걱정 마!"
<죽고 사는 것은 누구도 장담할 수 없는 거야. 조심하는 것이 최고야.>
황금을 인벤토리에 보관하고는 안쪽으로 들어가자 물소리만 들리지 않을 뿐 퇴장하기 전과 변함없는 풍경이 우리를 기다리고 있었다.
"저 언덕이 그래도 살려줬네."
멀리 보이는 언덕을 가리키며 말했다.
<그것보다 여기서 나가면 어디로 갈 거야? 여기서 일본에 선물할 던전이 있다고 했잖아.>
"여기서 나가서 조금 이동해야해."
<조금? 미국 기준으로 조금인 거지?>
나호의 말에 웃음을 터뜨리며 던전을 나왔다.
이상이 없는 것을 확인했으니 더 있을 필요가 없었다.
뮤! 뮤! 뮤!
^조금 더 있어도 좋은데···. 아쉽다. 하지만 황금 던전의 황금이 제일 맛이 좋기는 하다.^
아쉬움을 드러내던 도뮤는 도깨비들을 이끌고 대기실로 들어가 버렸다.
대기실로 들어가자마자 황금던전으로 입장한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우리는 호텔로 돌아와 잠깐 눈을 붙였다가 다시 새벽부터 움직였다.
그리고 캘리포니아 주로 이동했다.
이곳에서 일본에 선물할 던전이 있기 때문이었다.
<집사! 나 여기에 오니까 어떤 던전을 찾아서 온 건지 알겠어.>
"눈치 챌 거라고 생각하고 있었어."
<그런데 덩굴이 있어야할 텐데. 은근히 덩굴을 얻는 것이 어려운 것 같아. 조금만 늦으면 던전이 깃들어버리잖아.>
나호의 말대로 덩굴을 캐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었다.
지금까지 우리가 운이 좋았던 것이었음을 이번 여행을 통해 느끼고 있었다.
쫑!
꾸!
지금 쪼롱이와 꾸루는 제 휘하의 새들을 데리고 캘리포니아 캐스케이드 산맥을 자유롭게 날고 있었다.
우리가 찾아가고 있는 곳은 이 산맥에 있는 활화산이었다.
유황냄새가 코를 찌르는 이곳을 굳이 찾아가는 이유는 이곳에 생길 던전을 일본의 왕실인 고코의 정중앙에 심어줄 생각이기 때문이었다.
<흐흐흐흐! 집사! 나빴던 기분이 풀리려고 해. 아니 반쯤 이미 풀렸어. 생각만 해도 기분이 좋아. 이 던전 생각나지?>
"어떻게 잊어? 전생에 얼마나 힘겨웠는데."
<이 던전 쌍으로 있잖아. 그건 어떻게 할 거야?>
"그건 야스쿠니 신사에 심을 생각이야."
<이거지! 이거라고! 하하하!>
나호는 이미 두 개의 던전 덩굴을 얻은 것 마냥 좋아하고 있었다.
다른 소환수들은 무슨 일로 나호가 저리 좋아하나 하는 표정을 지었다.
<우리가 지금 특별한 던전 덩굴을 캐러갈 거야. 쌍둥이처럼 닮은 던전이어서 전생에 '지옥에서 온 쌍둥이'라고 불렸던 던전이지.>
나호가 신이 나서 소환수들에게 던전에 대해서 설명을 했다.
전생에 악명이 높은 던전 중의 하나로 이 던전이 도심에 있었다면 최악의 던전으로 손꼽혔을 것이라는 말이 있었던 곳이다.
이런 던전이 도심과 동떨어진데 생긴 것이 미국에는 크나큰 행운이기는 했다.
적당히 방치해도 큰 문제가 없었으니 말이다.
꼬물? 꼬물?
^터져도 피해가 많지 않은 던전을 왜 옮겨요?^
나호의 설명을 듣던 꼬물이가 질문했다.
"이곳에 있으면 이대로 방치할 수도 있지. 적당히는···. 하지만 일본에 가져다 놓으면 자주 클리어를 하지 않으면 견딜 수 없을 거야."
<하하하! 냄새와 소리 때문에 참을 수 없거든. 꼬물이 너는 전생에 냄새만 풍겼어. 버섯이 조금 흉물스럽기는 했지만 냄새 이외에는 큰 피해를 주지 않았어. 접근하지 않으면 그만이니까.>
전생에 쓰레기버섯 던전이 세계 최악의 던전을 꼽을 때 꼭 열 손가락 안에 들어갔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일본 놈들의 농간이 영향을 미친 것이었다.
냄새가 나고 미친 번식력을 가지고 있었지만 인명피해를 내지는 않았기 때문이었다.
한 번 맡으면 냄새가 머릿속에 박혀서 오랫동안 잊을 수 없었지만 그뿐이었다.
냄새가 나지 않을 정도로 거리를 두고 살면 그만이었던 것이다.
하지만 이 던전들은 아니었다.
활화산 지대에 형성된 던전답게 유황 냄새가 주기적으로 뿜어져 나왔다.
주기적으로 던전이 폭발한다고 생각하면 정확했다.
터진 던전에서 나오는 것이 몬스터가 아니고 유황냄새여서 어느 정도 방치를 해도 되는 것이었다.
하지만 이 유황 냄새가 도심에서 나도 방치할 수 있을까?
더구나 이 던전에서 주기적으로 나오는 것은 냄새뿐만이 아니었다.
이 던전에서는 공포를 유발하는 온갖 소리들이 흘러나왔다.
그런데 이것이 견딜 수 있는 수치를 넘어선 것이었다.
미국이야 도심과 뚝 떨어진 국립공원에 있었으니 어느 정도 무시할 수 있었지만 인구가 밀집한 일본의 도쿄에서는 도저히 그럴 수 없을 것이 불을 보듯 뻔한 일이었다.
음머어어!
^좋은 것이 나올 수도 있잖아.^
오랜만에 반반이가 질문을 했다.
이곳의 아름다운 경치를 보니 던전에 아름다운 초원이 있을 것이라고 생각을 하는 것 같았다.
"던전 안이 이런 환경이면 일본에 가져다주지 않지. 소리와 냄새가 최악이라도 말이야."
이 던전은 냄새도 냄새지만 소리가 최악이었다.
인구 밀도가 높지 않은 지역에 위치한 던전임에도 주기적으로 공략팀을 보낼 수밖에 없게 만들었던 것도 소리였다.
인간이 견딜 수 있는 범주를 넘어선 소리들이 시도 때도 없이 흘러나왔는데 주로 공포감을 주는 소리들이었다.
전생에 사람들은 그 소리가 활화산의 진흙을 밟았던 사람들의 비명이 모인 것이라고도 말했다.
물론 사람의 비명소리와 비슷한 소리도 있었지만 더 많았던 것은 정체를 알 수 없는 소리들이었다.
하나같이 공포감을 불러일으키는 것이어서 이 던전을 공략할 때는 마음의 준비를 단단히 해야 했다.
<이 던전은 전생의 쓰레기 버섯 던전보다도 얻을 것이 없었어. 주기적으로 모든 것이 타버렸거든. 검은 재도 보기 힘들었던 던전이야. 그런데도 주기적으로 터지는 이해할 수 없는 던전이었지.>
"공략의 시기를 정하기도 쉽지 않은 던전이고."
공략의 시기를 잘 정하면 큰 인명 피해 없이 클리어를 할 수 있지만 그렇지 못하면 큰 인명 피해를 내는 던전이기도 했다.
공략을 해도 아무것도 주지 않는 짠돌이 던전이었는데 공략조건은 무척이나 단순했다.
던전 입구의 돌을 특정 지점에 옮겨놓기만 하면 그만이었던 것이다.
매우 단순한 클리어 조건이지만 처음에는 이 클리어 조건을 알지 못해서 클리어를 하지 못했고, 나중에 알았을 때도 시기를 맞추기 어려웠다.
이 던전은 바닥에서 불이 올라오는데 한 번 불이 올라오면 던전 내의 모든 것을 태웠다.
겨우 남는 것은 입구의 돌 몇 개가 전부였다.
꼬물!
^무서워요.^
"무섭지. 하지만 그것이 아니면 별다를 것 없는 던전이었어."
<별다를 것 없기는 했지. 모든 던전은 목숨을 걸어야 하는 곳이니까. 그런데 여기 두 개를 다 가지고 가면 어떻게 되는 거야?>
미국에서 대박 던전이외에 꼭 가지고 가고 싶은 던전이 있다고 했던 말을 기억하는 모양이었다.
"그 던전까지 발견하면 좀비 던전 덩굴을 적당한 곳에 심어야지."
<적당한 곳? 어디? 설마 미국에도 폭탄을 투하하려고?>
"미국이 곱지는 않지만 그렇게까지 할 수는 없지. 심는다면 이런 외곽에 심어서 피해를 최소화해야지."
<우리 집사는 너무 착해서 탈이야. 한국에 주둔했던 미군들이 저질렀던 일은 잊은 거야?>
"잊을 리가 있어. 평택이 난리가 났는데. 대변혁 직전에 처리해둘 거야."
<어떻게? 미군들 다 죽이기라도 하게?>
"대변혁 전에 공격할 수 없잖아. 공격 스킬은 듣지도 않아."
<그럼? 어떻게 할 건데? 그 무서운 미군새끼들을 어떻게 할 거냐고?>
빨리 대답을 하지 않으니 애가 타는지 나호의 목소리가 점점 높아졌다.
전생의 일이 생각나면서 자기도 모르게 날카로워지는 것 같았다.
"이곳의 덩굴을 발견하면 말해줄게."
가장 유명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