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3. 무덤
쪼롱이가 발견한 던전 덩굴은 대물 던전 덩굴이 맞는 것처럼 보였다.
솔직히 확신은 할 수 없었다.
이 던전에는 장프나 워프가 있었던 것도 아니고, 황금을 많이 품고 있는 던전의 덩굴처럼 특별한 특색이 있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어느 정도 확신을 할 수 있는 것은 어린 덩굴의 줄기가 살짝 푸른빛을 띤다는 점이었다.
던전의 마나 함유량이 높거나 사냥을 하고 나면 마나를 많이 주는 던전이 주로 갖는 특징이었다.
아직은 너무 어려서 확신할 수 없지만 말이다.
조심스럽게 덩굴을 채취해서 대기실로 보냈다.
마음이 홀가분했다.
미국으로 올 때 얻으려고 했던 것을 모두 얻었기 때문이었다.
<이제 일본으로 갈 거지?>
"그래야지. 바로 비행기 표 알아보자."
<일본으로 가는 것이 이렇게 기대되기는 또 처음이네. 가자마자 심을 거지?>
"지옥에서 온 쌍둥이? 바로 심어야지."
<소환수들 모습이 보이지 않으니까 그런 일 맡길 때도 이제 걱정이 없겠다.>
"좋은 일이지."
우리는 바로 일본으로 돌아왔다.
그리고 집이 아닌 고쿄로 이동했다.
"잘 할 수 있지?"
쫑!
쪼롱이와 꾸루가 고쿄 안을 먼저 확인하고 돌아온 후 지난번처럼 나무에 난 구멍 속에 던전 덩굴을 심고 왔다.
꾸루의 커다란 부리가 던전 덩굴을 옮기는데 아주 유용하게 이용되었다.
쫑! 쪼로로롱!
^고쿄라고 하는 곳의 중심부에 있는 나무에 심어두고 왔어.^
"잘했어. 고생했어."
쫑!
칭찬을 하니 왼쪽 어깨로 내려앉더니 볼을 부비며 애교를 부렸다.
누구도 보지 못하는 반려조의 애교를 받는다고 생각하니 기분이 묘했다.
다음으로 야스쿠니 신사에도 들러서 지옥에서 온 쌍둥이를 선물해주었다.
<아우! 앓던 이가 빠지면 이런 기분일 거야. 너무 상큼해. 속도 다 시원하고. 오늘은 뭘 먹어도 다 소화시킬 수 있을 것 같아. 흐흐흐!>
영체 상태라 어느 것도 먹을 수 없는데 곧잘 먹는 것에 빗대는 나호였다.
기분이 좋기는 나도 마찬가지였다.
"사무실로 바로 가자. 아마 지금쯤 마나통이 제법 들어와 있을 거야."
<좋지.>
나호가 가볍게 허공답보를 하면서 앞장섰다.
사무실에 도착하니 미우라 놈이 와있었다.
<아니 저놈은 왜 와있는 거야? 집사가 오는 것을 알고 왔나?>
그런데 사무실 분위기가 심상치 않았다.
사장인 직원과 미우라가 아무래도 실랑이를 한 것 같았다.
"무슨 일입니까?"
직원에게 물었다.
"아니 미우라 씨가 자꾸 저희 회사의 영업 비밀을 공유하는 것이 어떠냐고···."
"아니 그렇게 말을 하면 안 되죠? 그저 영입 제안을 하는 것뿐인데···."
"그냥 영입 제안이 아니지 않습니까? 지금 받는 월급의 두 배를 주겠다는 것이 말이 된다고 생각하십니까? 꿍꿍이가 있지 않다면 나올 수 없는 말이죠."
<어쭈! 이거 의외네. 저 사장 의외야.>
그렇게 말을 하면서 나호의 앞발이 미우라 놈의 뒤통수를 후려쳤다.
나호가 영체여서 뒤통수를 쳐도 아무런 타격이 없을 텐데 이번에도 미우라는 뒤통수를 긁적였다.
마치 가렵다는 듯이···.
<집사! 미우라 놈 말이야. 뭔가 특별한가? 이렇게 누군가를 진심을 다해 때려본 적이 없기는 하지만 이상하게 저놈은 반응을 하는 것 같아. 이래서 전생에 강자가 될 수 있었나?>
나호가 고개를 갸웃거렸다.
내가 봐도 미우라는 시간이 갈수록 나호의 타격에 반응을 보이는 것 같았다.
비세계를 다녀오며 점점 마나에 눈을 뜨는 건지···.
"그것이 아니고···. 이런 허름한 사무실에서 일을 하는 것 보다는···. 솔직히 여기보다야 우리 장례식장이 훨씬 낫지 않습니까? 환경도 그렇고, 전국적인···."
조금 더 말을 하려다 내 눈빛을 느끼고는 입을 닫는 미우라 놈이었다.
하지만 이내 다시 떠들기 시작했다.
"사실 여기 직원에게만 영입 제안을 하려던 것은 아니었어. 그냥 너도 우리 회사로 들어오는 것은 어때?"
<사람 아닌 것들은 늘 저래. 저기 봐. 직원 꼬드기려고 사온 것 같은데?>
직원 책상 위에는 꽤 이름난 가게의 이름이 써진 화과자 상자가 놓여있었다.
"너 이런 식으로 나오면 계약 파기할 수 있는 조항 있었던 거 잊었냐? 계약 파기할까? 이제 우리 직원이 다 알아서 할 수 있을 것 같은데···."
그렇게 말을 한 순간 직원의 눈이 반짝거렸다.
이 짧은 순간 자신이 받을 돈을 계산했을지도 모를 일이었다.
직원의 눈이 위험하게 빛나는 것을 미우라도 봤는지 재빨리 대답했다.
"아니야. 이대로 해. 이대로. 혹시라도 오해하지 말고. 이런 사무실에서 일하는 것이 불쌍해서 해본 말이니까. 우리 장례식장에 있다가 여기를 오면···. 알았어. 그만할게."
미우라 놈이 밉지만 틀린 말을 한 것은 아니었다.
놈의 장례식장에 비하면 이곳의 환경은 정말 열악했다.
<으이구. 좀비 던전을 저놈 장례식장에 심어줬어야 했는데···. 집사 우리 나중에 좀비 던전 하나 구해서 저놈 장례식장에 심자. 아주 제대로 된 놈으로.>
'좋지. 그렇지 않아도 영국 한 번 다녀올 거야.'
<영국? 영국 좋지. 그러고 보면 은근 대변혁 이후에 많이 돌아다녔네.>
워프 게이트가 활성화 되고 난 이후에는 오히려 외국을 다니기는 더 수월했다
게이트를 이용하면 몇 초 만에 가고 싶은 곳으로 안전하게 이동할 수 있으니 이동의 혁신이라고 할 수 있었다.
비용이 좀 비싸기는 했지만 공략대를 초청하는 곳에서 대부분 비용을 부담했기 때문에 문제될 것은 없었다.
물론 일반인들은 비싼 비용 때문에 외국에 나가는 것은 엄두도 내지 못했지만 말이다.
<영국에 갈 거면 한국에 들러서 지금 가지고 있는 덩굴들 다 심고 가자.>
'그럴 거야.'
영국에서 몇 개의 덩굴을 발견할지 모르니 다 심고 가긴 해야 했다.
"저기 사실 내가 온 이유가 영입 때문만은 아니야."
눈치를 보던 미우라가 조심스럽게 말을 꺼냈다.
"그럼?"
"조용히 이야기하면 안 될까?"
"됐어. 우리 직원이 들으면 안 되는 일이야? 나는 우리 야마구치 씨를 믿어. 그러니 꼭 개인적으로 이야기할 것이 아니라면 여기서 해."
그 순간 직원이 얼굴이 환해졌다.
감동을 한 것 같기도 했다.
미우라가 슬쩍 직원을 보더니 말을 꺼냈다.
"저어···. 그···."
<뭔데 저렇게 뜸을 들여? 저러다 실상은 별 거 없는 거 아니야?>
"할 말 없으면 가든지."
"아니 너는···! 아니···. 아무리 그래도 거래처···."
"됐어. 너 가라. 바쁘니까."
순간 짜증이 밀려왔다.
예쁘지도 않은 놈이 저러니 더 보기가 싫었던 것이다.
"알았어. 말하면 되잖아. 너는 꼭 우리 아버지 같아."
<저놈이 드디어 미쳤나?>
나호가 다시 놈의 뒤통수를 후려쳤다.
이번에도 미우라는 제 뒤통수를 긁적였다.
"네 아버지 같다고? 칭찬으로 들으마. 이제 더 이상 볼일 없지? 가라!"
미우라에게 아버지는 어렵고 무서운 존재였다.
벗어나고 싶은 만큼 인정받고 싶고 사람이기도 했다.
나에게 자신의 아버지 같다는 말은 은근히 대하기 껄끄럽다는 말이었다.
그리고 그것은 딱 내가 원하는 것이었다.
"아니···. 꼭 말해야 하는 것이 있어. 우리 영감이 꼭 네게 말하고 오라고 했어."
저렇게 말할 때는 약간 모자라 보이는데 실상은 절대 아니었다.
<제 아버지보고 영감이래. 으이구! 네 아버지나 너나 언제 사람 될래?>
나호는 미우라가 뻔히 듣지 못하는 것을 알면서도 혼잣말을 했다.
"뭔데. 빨리 말해."
"지난번에 혹시 뉴스 봤어?"
미우라가 살짝 눈치를 보며 물었다.
"독자기술 자랑했던 거? 일본이 최초다 어쩌다 방송까지 출연해서 떠드는 거 봤지. 그것도 아주 잘!"
잘 이라는 말에 놈이 순간 움찔했다.
놈도 양심에 찔리기는 하는 모양이었다.
"그것 때문에 그러는데···. 정부에서 연락이 왔어. 이거 국책사업으로 추진해보면 어떻겠냐고. 오션 28이 세계적으로 유행······."
<웃기지도 않아. 집사 어떻게 생각해?>
'개인적으로 나쁠 것은 없지. 마나통 수거도 쉬워질 것이고 말이야. 문제는 국책사업이네 뭐네 하면서 일본정부에서 귀찮게 할 거라는 거지.'
<정말 그럴 수도 있겠네.>
"국책사업으로 하면 어떤 것이 좋은데?"
"연구자금도 나오고, 대대적인 홍보도 해주겠대. 다른 나라도 어차피 이거 처리하는 것으로 골머리를 썩고 있으니 이 기회에 국가 위상을 높여보자는 것 같아."
<저놈들 한국인인 집사 이름은 쏙 빼고 하자고 할 거야.>
나호가 미우라를 째려보며 말했다.
"정부에서 나서서 활로를 개척이라도 해주겠다는 거야?"
"의료관광과 연계를 모색하는 것 같았어."
"정확하게 모르는 거야?"
"영감이 우선 네 의향을 물어오라고 했어. 얼마나 감당을 할 수 있는지. 사업 규모가 커지면 혹시 비용을 조금 깎아줄 수 있는지. 그래야 사업규모를 잡을 수 있대. 너만 처리할 수 있으니 네게 먼저 물어야 한다고···."
"기술을 공유해서 사업을 확대하면 더 좋고?"
"어떻게 알았어? 영감이 그것도 물어보라고 하더라. 정 안 되면 흡수 합병하는 방법도 있대. 대우는 최고로 해준다고."
<대우해주기는···. 단물 빼먹으면 버릴 거면서.>
나호가 콧방귀를 뀌었다.
"지난번에도 말했지만 기술공유나 합병은 없어. 이걸 받아들이기 싫으면 하지 않아도 돼. 야무구치 씨가 잘 해줄 거니까."
미우라가 직원을 다시 슬쩍 쳐다보았다.
그러더니 입을 열었다.
"알았어. 영감에게 그렇게 전할게. 그럼 가격과 양은?"
"양은 얼마든지 처리할 수 있으니까 그건 걱정할 것 없고, 거래규모가 커져도 금으로 대금을 결재한다면 거래량에 따라 조금 더 할인해줄게."
"금 가격은 언제를 기준으로 할 건지도···."
금 가격이 일정하지 않으니 묻는 것이었다.
"어렵게 생각할 필요 없이 너희가 대금을 받는 날의 금 가격으로 내가 받으면 되잖아. 왜? 금에서도 시세차익을 남겨먹고 싶어서?"
"그런 거 아니야. 영감이 확실히 하자고 해서."
<욕심만 창창해서···. 쯧쯧! 대변혁이 6개월도 남지 않았는데···.>
"네가 많은 양도 처리할 수 있다고 했으니까 그럼 국책사업으로 추진한다."
"알아서 해."
"네 회사는 공식적으로는 드러나지 않을 거야. 대신 연구자금 등 공적자금이 들어오면 처리비용을 나누는 비율로 나누자고 하시더라."
"어차피 연구도 하지 않잖아?"
"밖에는 그렇게 말할 수 없지. 그럴 듯한 연구실은 우리가 만들 테니까 그건 걱정하지 말고."
"괜히 나중에 내게 불똥 튀게 하지 마."
"어떤 서류에도 네 이름이나 회사는 올라가지 않을 거래. 이건 전적으로 우리 장례식장이 전담하는 것으로 한다더라. 이 말도 꼭 하고 오라고 했어."
"괜찮아. 그런 거 신경 쓰지 않아."
"괜찮다고? 나는 네가 길길이 날뛸 줄 알았는데?"
"내가 너냐? 다른 것은?"
"그게 다야. 혹시라도 공식적으로 네가 배제된 것에 대해 나중에라도 뭐라고 하면 안 되니까 정리하고 오라고 하셨어. 그거에 대한 계약서도 쓰자고 하시더라."
<지들 무덤 파는지는 모르고 참 열심히도 삽질하는구나.>
'고마울 뿐이지.'
<나중에 감당을 어떻게 하려고 저러지?>
'모르니까. 나중에는 다 한국인 때문이었다고 우기려고 해도 뭐가 남은 게 있어야지. 이 회사도 겉으로는 야마구치 회사이고.'
가장 쉽게 회사를 설립하기 위해서 기존의 회사를 구입했는데 지금 생각하니 이것이 신의 한수였던 것 같다.
일본 놈들이 좋지 않은 일만 생기면 한국인을 핑계 삼는데 이번 일은 그럴 수도 없을 것이었다.
그것만으로도 속이 다 시원했다.
"언제든 가지고 와. 계약서 써줄 테니."
"너 혹시 인류애 같은 그런 거야? 그거 처리하는 것에 특별한 사명감 같은 거 느끼고 그래?"
미우라가 묘한 눈빛을 한 채 물었다.
<저건 또 무슨 헛소리야? 하여튼 애니만 보니 생각하는 것이 딱 저렇지.>
"할 이야기 끝났지. 나 바쁘다."
"아니···. 알았어. 가면 되잖아. 조만간 변호사랑 올게."
"오기 전에 사무실로 연락하고 와. 우리도 변호사 불러야 하니까."
"너에게 바로 하면···. 알았어."
미우라는 약간 기가 죽은 얼굴로 사무실을 나갔다.
하지만 저 모습만을 보고 미우라를 판단해서는 절대로 안 된다.
조금만 약한 모습을 보이면 포식자로 돌변해 물어뜯을 수 있는 것이 미우라와 그의 아버지였다.
미우라가 나가고 그동안 들어온 마나통과 대금을 정리했다.
그 중에서 야마구치의 영업으로 들어온 것에 대해서는 그 자리에서 바로 인센티브를 제공했다.
야마구치의 입은 한동안 멍하니 벌린 채였다.
며칠 사이에 월급보다 더 많은 돈을 버니 좋은 모양이었다.
"제가 자리를 비운 사이 특별한 일은 없었죠?"
"예. 없었···. 아니 이틀 전에······."
마지막 소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