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4. 마지막 소환
"이틀 전에 이상한 사람이 찾아 왔습니다."
"이상한 사람 요?"
"예. 그 사람이 사장님을 찾는 것 같은데 조금 이상했습니다. 약간 횡설수설하는 것도 같고. 말도 안 되는 이야기를 하더라고요."
"무슨 이야기를 했는데요?"
"사장님께서 신의 계시를 받았다고···. 말도 안 되는 이야기를 해서 경찰 불러서 내쫓았습니다."
<뭐야? 그냥 미친놈인가? 설마 예지 능력이 있는 각성자 같은 것은 아니겠지?>
'설마? 그건 정말 말도 안 되는 이야기야. 예지 능력은 공식적으로 인정이 되지 않았어.'
<그렇기는 한데. 일본에서 예지 능력자로 거의 인정받을 뻔했던 여자가 있었잖아. 관심종자라고 결론이 났지만 여자는 끝까지 자신은 예지능력자라고 했었지. 그래서 후에 정말 그런 재능이 있을지도 모른다는 말들이 많았잖아.>
그런 일이 있기는 했다.
하지만 그 여자는 거짓으로 밝혀졌었다.
여자는 끝까지 자신은 예지능력자라고 했지만 그녀는 상태창조차 띄우지 못했다.
모두가 가지고 있는 상태창을 띄우지 못하는 것을 두고 일반인이기 때문에 거짓이 들통 날까 띄우지 못하는 것이라는 말이 많았다.
여자는 자신은 특별해서 상태창이 항상 뜨지 않는다고 말했지만 그 말이 받아들여질 리는 없었다.
대변혁 이후 상태창은 누구에게나, 24시간 제공되는 것이었기 때문이었다.
간혹 그 여자처럼 자신들은 예외라는 주장을 하는 사람들이 있었지만 다 거짓으로 판명되었다.
"혹시 여자였습니까?"
"예. 여자였습니다. 그런데 그 여자가 다른 이상한 말도 하더라고요. 사장님께서 독도를 만든 사람이라고. 엄청난 부자일 거라고 했습니다. 독도를 만든 사람이 왜 여기서 고생을 하고 있겠습니까? 그렇지 않습니까?"
야마구치는 슬쩍 내 눈치를 보며 말했다.
젊은 사람이 자신의 회사를 인수했으니 혹시 정말 독도를 개발한 사람인가 싶은 모양이었다.
<어디서 정보가 샌 것 같은데? 한두 명 알기 시작하면 머리 아플 텐데.>
그렇지 않아도 개인방송을 하는 사람들이 나를 만나겠다고 화순에 진을 치고 있었다.
처음에는 한두 명이더니 이제는 하루에만도 수십 명이 찾아오고 있다고 했다.
그런데 그런 사람 중 일부가 여기까지 찾아온 것이 아닌가 싶었다.
"그래서 뭐라고 하셨습니까?"
"그런 사람 없다고 내쫓았습니다. 하는 말이 많았는데 너무 허무맹랑한 이야기만 하더라고요. 월평 주식회사가 종말을 준비한다는 말도 하고···. 거기로 들어가는 음식이나 물자의 양이 거주자의 몇 배는 된다느니 간혹 수많은 컨테이너가 사라진다느니···."
<제대로 취재를 한 사람이기는 하네. 사실이기는 하잖아.>
코드를 잘못 잡아서 그렇지 상당히 우리의 움직임을 잘 알고 있기는 했다.
"혹시 한국 사람이었습니까?"
"아닙니다. 국적은 정확하게 모르겠는데 영어를 썼습니다. 제가 영어를 유창하게 하니 놀라더라고요."
직원의 목에 힘이 들어갔다.
야마구치는 영어를 잘 하는 편이었다.
특히 쓰고 읽는 것은 문제가 없었고 발음도 일본인 치고는 좋은 편이었다.
그래서 해외로 영업을 확대하는데 큰 어려움이 없었다.
"그거 말고 다른 것은 없었습니까?"
"아! 지난번 계약을 맺었던 곳에서 물량이 들어올 겁니다."
"잘됐네요."
"저어 그런데 사장님···. 저도 물량이 늘어나면 인센티브도 올려주십니까?"
야마구치의 눈이 기대감으로 빛나고 있었다.
"올려드리겠습니다. 많이만 가지고 오십시오."
"알겠습니다. 고맙습니다. 사장님."
야마구치의 얼굴이 환해졌다.
<좋아 죽네. 좋아 죽어. 그런데 의외야. 미우라 장례식장이라면 유혹이 됐을 텐데 말이야.>
'야마구치는 감각이 좋은 사람이야. 월급을 두 배가 아니라 열 배를 준다고 해도 지금은 이직하지 않을 거야. 그리고 일할 맛도 나잖아. 대금이 들어오면 바로바로 인센티브를 떼어주니 말이야.'
<그래도 은근히 야마구치 저 사람도 괜찮은 사람이야. 이곳에 모인 마나통과 금이 사라지고 또 사라져도 그러려니 하잖아. 나라면 신기하게 생각하고 파헤쳐 보려고 할 텐데 말이야.>
'거위의 배를 가를까 겁이 나기도 하겠지. 자기와 상관없는 일이라고 생각하는 것일 수도 있고.'
한국인과 일본인의 다른 점 중의 하나인지도 모른다.
우리는 정말 이해가 되지 않지만 일본 사람들은 주변 사람에 대해 관심이 없었다.
자신과 관계되는 일이 아니면 의식적으로 신경을 쓰지 않으려고 하는 경향이 있는 것 같았다.
그것은 비단 이웃에게만 해당되는 것이 아니고 가족 사이에도 그런 경향이 강했다.
실례가 된다. 폐가 될 수도 있다고 생각하는 의식에서 비롯되는 것 같기는 한데 간혹 지나치다는 느낌을 받을 때가 많았다.
그런데 지금 같은 상황에서는 일본인의 그런 특징이 참으로 편했다.
꼬치꼬치 묻고 파고들었다면 은근히 피곤했을 것이다.
<그나저나 어떤 여자인지 궁금하네.>
'한국을 소재로 하는 인터넷 방송을 주로 하는지도 모르지.'
<요즘 한국이 여러모로 인기가 많아서 돈이 되기는 하겠네.>
의약품도 아닌 음료가 오션 28은 물론이고 모든 입 냄새를 제거했다.
하지만 그 외에 대처는 낙후하다는 평가를 받고 있었다.
오션 28 수술을 의료보험에 포함시킨 것도 최근 일이었고, 자연 치유률도 세계적으로 가장 떨어졌다.
미래를 생각하면 정부가 정말 잘하고 있는 것이지만 그것을 알 수 없으니 연일 비판이 쏟아지고 있었다.
오션 28의 대처를 두고 정권을 심판해야 한다는 말까지 나오고 있었다.
정치권과 언론은 일본의 대처를 연일 대서특필하며 정권을 때리고 있었다.
아마 마나통을 완벽하게 처리하는 것이 일본의 국책 사업으로 추진되면 그것으로 또 정치권과 언론이 들고 일어날 것이 뻔했다.
명암이 극명하다보니 개인방송을 하는 사람들에게는 정말 좋은 방송소재였고 그래서 최근 한국을 대상으로 하는 인터넷 방송이 늘고 있었다.
<한국은 언제 갈 거야?>
'다음 소환 끝나고 갈까 싶어. 그때는 돼야 던전이든 던전 덩굴이든 나올 것 같으니까. 우선은 일본 좀 돌아다니면서 마나통이나 수거하지 뭐.'
<오오오! 우리 집사 많이 여유로워졌네. 아주 좋아. 소환수들이 부지런히 사냥하고 있으니까 마나도 쌓이고, 집사도 언제든 던전에도 갈 수 있고. 좋네.>
대기실에 던전이 생기고는 언제든 던전을 갈 수 있는 것도 좋은 점 중의 하나였다.
마나와 경험치를 쌓는 것도 좋았지만 던전에서는 시스템 상점의 물건을 언제든 살 수 있었다.
그런 생각을 하며 마나통과 금을 각각 보관했다.
미우라와 야마구치가 마나통을 수거해오자 이전에 화로를 직접 수거하며 얻은 양과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많은 양을 한꺼번에 모을 수 있었다.
그리고 앞으로는 거의 매일 이 정도의 양은 들어올 것이다.
그렇게 준비는 착실히 이루어지고 있었다.
시간은 빠르게 흘러 이제 마지막 소환을 앞두고 있었다.
마지막 소환은 가족들이 있는 곳에서 소환되고 싶어서 화순으로 돌아와 있었다.
그렇다고 같은 그룹으로 소환이 되는 것은 아니지만 소환이 끝나고 비세계를 기억했을 때 옆에 있어드리고 싶었기 때문이었다.
"준비는 다 된 거니?"
"예. 다 됐어요."
"우리는 지금도 아무 것도 기억하지 못해. 비세계를 다녀온다는 것이 거짓이 아닌 것은 알지만···."
아버지께서 허망하신 듯 먼 산을 바라보셨다.
"아쉬우세요?"
"아쉽지. 하지만 어쩌겠니. 앞으로 잘 해야지. 요즘 비세계에서 내가 짐이 되지는 않지?"
각성예외자가 된 사람도 매번 비세계로 소환된다.
그리고 여전히 함께 시험을 치른다.
물론 대부분 조기에 탈락되지만 그런데도 시스템은 이런 방식을 고수하고 있었다.
일반인이기는 하지만 대변혁 이후를 살아가야 하는 사람들이니 마나에라도 적응하라는 나름의 배려인지도 모른다.
"잘하고 계세요. 탈락자라고 아무도 생각하지 못할 만큼 요."
"다행이구나. 너랑 네 엄마에게 짐이 될까 그것이 늘 걱정이었는데. 네 엄마에게 거기에서는 나 상관하지 말고 살아남는 것만 생각하라고 했는데 기억할 수 없으니 어떻게 하는지 걱정도 되고."
"엄마 걱정도 하지 않으셔도 돼요. 전사 다 되셨어요. 인천 쪽 그룹에서는 이제 엄마 모르는 사람 드물어요."
몇 번이나 아버지께 말씀을 드렸지만 아버지께서는 늘 걱정이 많았다.
탈락했기 때문에 더 그러시는 것 같았다.
하지만 걱정하시는 것에 비해 아버지는 비세계에서 잘하시고 계셨다.
떨어진 것이 나름 충격이었는지 그 이후 비세계에서의 태도도 많이 바뀌셨다.
그렇다고 해서 그곳에서 현실을 기억하는 것은 아니지만 말이다.
그래서 그 이후 시험에서 상위권은 아니지만 매번 중위권은 유지하고 계셨다.
"지난번까지도 내가 어떤 무기를 주무기로 삼을지 고민을 했다며?"
열한 번째 소환까지도 아버지께서는 주무기를 고르지 못하셨다.
이상하게 지구에서보다 더 신중하셨다.
물론 무기에 특별한 재능이 없는 것이 가장 큰 이유 중의 하나였지만 말이다.
<탈락자가 되지 않았으면 마법사가 되셨으면 딱 좋은데···.>
나호가 아쉬움을 드러냈다.
벌써 수십 번도 더한 이야기였다.
하지만 이미 탈락자가 되었기 때문에 마법사는 절대로 될 수 없고, 이제 무기는 선택이 아니라 필수였다.
그런데 무엇에도 재능을 보이지 못하자 고민에 빠지신 것이었다.
"제 생각에는 그나마 창이 나은 것 같았어요. 창이 아니라면 채찍도 괜찮고요."
채찍이라면 몬물소의 꼬리로 만들어드릴 수도 있었다.
몬물소의 꼬리로 만든 채찍이라면 대변혁 초기에는 최고의 채찍이 될 것이 분명했다.
근접전에 부담을 느끼시는 아버지이니 최대한 거리를 벌릴 수 있는 무기가 맞을 것 같았다.
"총 같은 것은 없다고 했지?"
"대변혁 초기에는 총도 좋은 무기에요. 가지고만 있어도 든든하잖아요. 하지만 구하기가 너무 힘들고 매번 총알을 사야 해서 배보다 배꼽이 더 클 수 있어요."
저것보다 더 문제는 총알을 언제까지 구할 수 있느냐 였다.
대변혁 이후 현대식 무기가 일시에 사라지거나 효력이 떨어지는 일은 없었다.
하지만 지하자원이 던전에 의존해야하는 세상으로 바뀌면서 누구도 현대식 무기를 만들려고 하지 않았다.
자원을 구하는 것도 어려웠지만 경제논리로도 현대무기를 생산하는 것은 수지타산이 맞지 않았다.
그리고 현대무기보다 더 좋은 스킬과 무기가 있는데 누가 무기를 만들려고 하겠는가.
"그래도 내게는 차라리 총이 나은데···."
"총은 나중에 보조무기 정도로만 사용한다고 생각하세요. 대변혁 이후에는 현대식 무기의 효율이 여러모로 떨어져요."
"네가 말해줘서 충분히 알고 있지. 원거리여서 그나마 마음에 들어서 그렇지."
"그럼 석궁을 주무기로 삼으셔도 좋죠. 대변혁 이후에 인벤토리를 구입하시면 휴대는 문제가 되지 않으니까요."
"완전 게임세상 같아지겠구나."
"게임이면 리플레이할 수 있지만 현실이니 불가능하죠."
상태창이 나타나고 모든 것이 게임처럼 바뀌자 정말 세상이 게임으로 바뀌었다고 착각하는 사람들이 생겨났다.
그들은 사람마저도 게임의 일원이 됐다고 착각해서 여러 문제를 일으켰다.
그 모든 것이 핑계일 수도 있지만 말이다.
"여기서 활을 쏘면 익숙하지 않던데 거기서는 그런대로 한다며?"
"뭐든 적당해서 문제죠."
"하하하! 아버지께도 자주 듣던 이야기였는데···. 형은 어릴 때부터 똑똑하다는 말을 많이 듣고 자랐어. 하지만 나는 아니었지. 아버지께서는 비교하지 않으셨지만······."
수십 번도 더 들은 이야기였다.
집에서는 차별 없이 컸지만 그래도 상처가 되는 순간이 많았다고 한다.
동네 어른들이나 학교 선생님들이 아버지와 형을 비교하곤 했었던 것이다.
그때마다 할아버지께서 위로를 해주셨지만 간혹은 그 위로가 더 아팠단다.
일종의 자격지심이었을 것이다.
그래서 나에게 더 잔소리가 많으셨고···.
"아버지께서 살아계셨으면 어땠을까? 간혹 그런 생각이 들더구나."
"할아버지라면 나름 잘하셨을 수도 있죠."
"연세가 많아서 그렇지 아버지라면 잘하기는 하셨을 거야."
마지막 소환을 앞두고 계셔서 그런지 아버지의 얼굴이 참으로 복잡했다.
이 소환이 끝나고 다가올 혼란이 두려우신 건지도 모른다.
"소환에서 돌아와도 한 달의 유예가 있어요."
"전생에는 특별한 일은 없었다고 했지?"
"이상하다고 생각했지만 다들 꿈이라고만 생각했죠. 시스템이 대변혁을 예고해주지는 않았으니까요. 그저 비슷한 꿈을 꾸었다며 신기해했죠."
"일부는 발 빠르게 움직이기도 했을 거야."
"맞아요. 그런 사람들도 있었어요. 불안해서 그러기도 했을 거고요."
"그런데 총도 시스템 상점이라는 곳에서 파는 거야?"
"시스템에 총 같은 현대식 무기는 팔지 않죠."
"그럼 어디서 총을 구한다는 거야?"
아주 특별한 선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