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5. 아주 특별한 선물
"혹시 어디를 털지는 않을 거지?"
아버지의 목소리에는 걱정이 한 가득이었다.
"털어서 수많은 사람을 구할 수 있다면 아버지는 어떻게 하시겠어요?"
"수많은 사람을 구한다고?"
"예. 전생에 군대는 양날의 검이었어요. 지휘관에 따라 천차만별이었죠."
"그렇겠지. 군에 가면 이상하게 또라이들이 많았어. 군에서만 생활해서 그런지 생활감각도 떨어지고."
"그런 사람들에게 무기가 있으면 어떻게 되겠어요? 없는 것이 그 사람의 인생도 구하고 다른 사람의 인생도 구하는 거죠."
지난 6개월간 대변혁 초기에 문제를 일으킬 사람들을 정리하는데 힘을 쏟았다.
그렇다고 직접 그들을 해친 것은 아니었다.
그들의 비리를 폭로하는 방식으로 구치소나 감옥으로 보내는데 최선을 다했다.
하지만 아직도 부족했다.
비리를 폭로하는 것만으로는 요리조리 빠져나가는 법꾸라지들을 다 잡아들이는 데는 한계가 있었다.
그래서 마지막 소환이 끝나고 나면 추가적인 조치가 필요할 것 같았다.
"네가 다치기라고 할까 싶어서 그러지."
"에이. 여보! 걱정하지 말라니까요. 우리 대한이가 세계에서 가장 강하다고 하잖아요. 이제 대한이 걱정은 너무 하지 않아도 돼요."
어머니께서 들어오시며 말씀하셨다.
운동을 꾸준히 한 어머니는 퇴직 전보다 훨씬 몸이 좋아진 상태였다.
"그나저나 인벤토리라는 것은 내년이 돼야 가질 수 있다고 했지? 나 그거 가지고 싶던데."
"비세계에서도 인벤토리 가지고 싶다고 하셨는데···."
"내가 그랬어? 여기서나 거기서나 사람은 똑같구나. 인벤토리라는 거 있으면 잡동사니 보관이 얼마나 편하겠어."
어머니는 대변혁 이후를 은근히 기대하고 계셨다.
"이번 소환에서 사시면 될 거예요. 그때 사도 대변혁까지는 쓸 수 없지만요."
전생에 대변혁의 순간 각성을 하면서 스킬이나 인벤토리를 가지고 있는 사람들이 있었다.
아주 소수의 사람들이었는데 당시에는 운이 좋은 것이라고 생각했다.
이상하게 상태창이나 상점에 대한 기억은 없었기 때문이었다.
운 좋게 얻었다고 생각한 것은 실상은 자신이 비세계에서 구매한 것이었다.
그에 대한 기억이 없어서 몰랐던 것뿐이었다.
"그런데 저 사람들이 문제구나. 언제까지 저러려는지···."
월평리에는 여전히 개인방송을 하는 사람들이 몰려들고 있었다.
예전보다 오히려 더 많은 사람들이 카메라를 들이대고 있었다.
얼마 전에는 방송국에서까지 찾아오기도 했었다.
그럴 수밖에 없었다.
우리 회사로 들어오는 물자의 양이 상상을 초월을 했기 때문이었다.
그런데 지금도 매일 같이 물건이 들어오고 있었다.
거기다 계속해서 직원들을 이주시키고 4개월 전부터는 두터운 장벽을 세우기 시작했다.
이 모든 것은 사람들의 흥미를 자극할 수밖에 없었다.
"대변혁 직전까지 저러고 있겠죠. 앞으로는 더 이상하다고 생각할 거예요. 더 많은 물자가 들어올 테니까요."
"그것이 걱정이기는 하지. 직원들도 궁금해 하는 것도 같고."
직원들은 월평리 출신이거나 전생의 기억을 바탕으로 불러들인 경우가 절반 이상이었다.
이들에게 하루에 한 시간 이상의 운동을 권장하는데 하루에 두 시간까지는 근무시간에 포함시켜 주었다.
이 시간에는 각종 운동을 가르쳐주기도 했다.
파격적인 혜택이다 보니 좋아하면서도 이런 것까지도 이상하게 생각하는 사람들이 은근히 많았다.
"대변혁 이후에는 모두 고맙게 생각할 거예요."
"그렇겠지. 다녀오고 나면 보험도 해약하고 금융자산도 다 정리해야겠다."
아쉬움이라고는 하나도 없는 목소리로 말씀하시는 어머니였다.
어떻게 준비가 되어가고 물건이 어디로 사라지는지 모두 알고 계시기 때문이었다.
"직원들에게도 말씀하셨어요?"
"돌려서 말했는데 어떻게 하는지는 본인들 몫이지."
마지막 소환이 끝나고 나면 눈치 빠른 사람들은 우리의 준비를 따라 할 것이다.
아니면 어쩔 수 없지만 말이다.
"저는 던전에 다녀올게요."
"어디 던전 갈 건데?"
"과수 던전 갔다가 화순 던전까지 다녀올게요."
"그럼 이것 가지고 가."
어머니께서 각종 씨앗이 담긴 봉지를 건네셨다.
"그거 어렵게 구한 거야."
요즘 세 분은 틈나는 대로 각종 씨앗을 구하러 다니셨다.
내년에는 어디든 농사를 제대로 짓지 못한다는 것을 듣고 난 이후부터였다.
그렇게 모은 씨앗의 일부는 과수 던전에 심어놓은 상태였다.
대변혁 이후 던전이 변하면서 사라질지도 모르지만 사라지지 않는다면 내년에 큰 보탬이 될 것이 분명했다.
"그럼 다녀올게요."
"그래. 조심하고."
장벽을 치고 난 이후에는 간혹 개념 없이 날아오는 드론이 아니고는 카메라에 노출될 일이 없었다.
월평리에서는 카메라가 아니고는 위험할 것이 없는데도 부모님께서는 늘 조심하라는 말씀을 달고 사셨다.
집을 나와서 던전이 있는 산으로 향하려는데 만약고 어르신이 들판에 계시는 것이 보였다.
<어르신이 뭘 하시는 거지?>
"보리가 얼마나 올라왔나 보시는 건가? 가봐야겠다."
11월 말이라 제법 추운데 만약고 어르신은 외투도 걸치지 않은 상태로 논둑을 걷고 계셨다.
"관장님! 왜 춥지 않으세요?"
"관장은 무신···. 왔다는 말은 들었제. 또 언제 갈 것이여?"
"내일 오후에 갔다가 정리하고 돌아와야죠."
"그때 오먼 영영 돌아오는 것이여?"
"예. 이제 부모님 옆에서 살아야죠."
"그랴. 가족은 함께 사는 것이 최고여. 내도 새끼들이 옆에 사니께 좋구만. 고마워. 내가 우리 젊은 사장 만나지 못했으면···."
만약고 어르신의 눈가가 살짝 붉어지셨다.
시한부 인생을 사셨던 어르신은 병을 떨쳐버리셨다.
치료수를 날마다 마신 덕분이었다.
"옷이 너무 얇은 것 같아요."
"안 추워. 내가 은근히 추위를 많이 탔는디 그 물을 먹고 난 이후로는 추운 줄 모르것어. 나한테는 만병통치약이었제. 무릎도 아프지 않고 잇몸도 튼튼해지고. 다 좋아. 귀도 밝아진 것 같땅께."
"그래도 항상 따뜻하게 하셔야죠."
"알것어. 우리 젊은 사장이 시키는 대로 혀야제. 내가 다른 사람 말은 안 들어도 젊은 사장 말은 들을 것이여."
"그런데 왜 나와 계셨어요?"
"보리를 보고 잡아서 왔구만. 이뻐! 이리 심으먼 나는 것이 말이여."
그렇게 말씀을 하시면서 슬쩍 자식들이 사는 집을 바라보셨다.
<에고! 자식들 보고 싶어서 나오셨구나. 차마 찾아가지 못하니 우연을 가장해서 보고 싶으신 거야. 자식들은 어찌 그리 부모 맘을 모르나 몰라. 한 마을에 살고, 같은 회사에 다니면 뭐하냐고···.>
나호가 안타까워했다.
만약고 어르신은 보리도 보리지만 자식과 손주가 보고 싶으신 모양이었다.
'찾아가시지.'
<다 집사 같은 줄 알아? 자식 겉 낳지 속 낳는 거 아니라더라. 어르신 덕에 여기에 취직까지 했으면서 여전한가봐.>
처음 자식들이 이곳에 취직을 하고 이사를 했을 때만 해도 어르신의 표정이 밝았었다.
그때는 병이 낫지도 않았는데 말이다.
그런데 지금은 어딘지 쓸쓸해 보이셨다.
'참 좋은 어르신인데···. 자식 사랑도 극진하신 것 같고. 자식들이 어르신의 마음을 잘 모르는 것 같아.'
<집사 혹시라도 만약고 드러내지 마. 어르신은 괜찮지만 자식들은 못 믿겠어.>
'대변혁 이후에 어떤 식으로든 더 값을 치를 생각이야.'
만약고 값이라고 생각하고 여러 가지를 해드렸지만 부족했다.
대변혁 이후 어르신께든 자신들에게든 뭔가 더 해드릴 생각이다.
<뭔가 해주고 싶으면 다른 핑계를 대고 해줘. 사람의 욕심은 끝도 없는 법이야.>
'알았어.'
우리는 만약고 어르신을 뒤로 하고 던전에 입장했다.
이미 내게 소유가 넘어 온 과수 던전이었다.
던전에 입장하니 상큼한 과일향이 코를 자극했다.
언제 들어와도 기분 좋은 곳이었다.
<여기는 대변혁이후에도 변화가 많지 않으면 좋겠다.>
"그럼 좋지. 하지만 장담할 수가 없잖아."
<치료수 부어준 것이 효과가 있으면 좋은데···.>
꼬물이가 냄새를 떨쳐버린 후 우리는 이식한 던전 덩굴에 치료수를 부어주었다.
물론 많은 양은 부어줄 수 없었지만 이렇게 부어주는 치료수가 던전 덩굴은 물론이고 던전에까지 영향을 미칠 것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지금까지는 어떤 변화도 없었다.
대변혁 이후에라도 긍정적으로 영향이 있었으면 하고 바랄 뿐이었다.
과수 던전에 만들어 둔 밭에 어머니께서 주신 씨앗을 조금씩 심고 나머지는 컨테이너에 보관했다.
과수 던전에서 나와 황금 던전에도 잠시 들렸다.
황금 던전에는 엄청난 수의 컨테이너가 보관 중이었다.
<언제 봐도 장관이네.>
"로또 당첨금과 독도 판매 수익대금이 거의 다 들어갔잖아."
<이것도 놀라운데 지리산 던전에도 이만큼 있잖아.>
"그렇지. 거긴 냉동음식이 주로 보관되어 있지. 그리고 이만큼 더 들어올 거야."
12월에 받기로 한 것들이 있었다.
대표적인 것이 라면이었다.
과자나 라면처럼 유통기한이 길지 않은 것은 모두 12월에 들어오기로 했다.
마지막 소환이 끝나고 나면 물건을 실은 컨테이너가 끝도 없이 들어오기로 되어 있었다.
아마 그 모습도 장관일 것이라고 생각한다.
"이제 가자. 저녁 먹고 준비하면 되겠다."
<준비는 다 되어 있잖아.>
"그렇기는 하지. 아무튼 가자."
던전을 나와서 가족들과 식사를 하고 난 후 거실에서 소소한 이야기를 나누었다.
하지만 그 안에 감도는 긴장감은 어쩔 수 없었다.
"걱정하지 마세요. 두 분 모두 각성하시게 될 거예요."
"그래야지. 여보! 당신이라도 꼭 각성해. 형이야 걱정할 것 없을 것 같고···. 형은 검에 정말 재능이 있더라. 어렸을 때부터 했으면 어땠을까 싶어."
날마다 검을 수련하는 큰아버지를 보기 때문에 누구보다 잘 알고 계시는 아버지셨다.
그리고 그런 큰아버지를 은근 부러워하시기도 했다.
"아직은 부족해. 더 열심히 해야지. 우리 대한이에게 힘이 되려면. 그나저나 정부에서는 어떻게 할지 모르겠네."
"지난번에 귀띔해주신 거요?"
"우리의 행보가 일반적이지는 않잖아. 자꾸 물어서 살짝 흘렸는데 모르겠다. 새겨들으면 대비를 할 것이고 아니면 미쳤다고 생각하겠지."
"이상한 사이비 종교단체처럼 생각하는 사람도 있더라고요."
"장벽까지 세우니 자기들만의 세상을 구축한다고 이상하게 생각하는 사람도 있더구나. 안 좋은 시선으로 보는 사람도 많고."
"신경 쓰이세요?"
"전혀 신경 쓰이지 않는다면 거짓말이지. 하지만 이제 한 달 남았잖아. 남의 시선 생각할 때가 아니지. 미친 듯이 준비하기에도 바쁜 시간이야."
"그렇죠."
모든 것은 대변혁 이후가 되면 이해가 될 것이었다.
그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다 열두 시가 되었고 눈이 번쩍 하더니 소환이 이루어졌다.
소환이 되는 순간 주변을 빠르게 살폈다.
이곳이 어떤 곳인지 파악하기 위해서였다.
<왜 아무것도 없지? 불안하게?>
주변에는 어떤 것도 없었다.
온통 깜깜한 곳에 홀로 있었는데 내 감각수치로도 어떤 것도 잡히지 않았다.
<집사! 괜찮아?>
"괜찮아. 신선하기는 하네."
아무것도 보이지 않은 공간이지만 지금까지의 경험이 있어서 특별히 불안하지는 않았다.
몬스터의 냄새를 비롯한 이상한 냄새가 나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어떤 소리도 들리지 않는 것이 마치 허상의 공간에 와 있는 것 같았다.
소환이 되고 두 시간이 지나도록 어떤 변화도 일어나지 않았다.
그러다 세 시간쯤 되었을 때 시스템의 메시지가 들렸다.
[띠링! 축하합니다. 강대한 님께서는 소환된 인류 중 가장 안정된 정서를 가지셨습니다. 이에 백 점을 드리겠습니다.]
"이것도 시험이었나?"
[그렇습니다. 조금 전 잘 참던 소환자가 한 분이 평정심을 잃으면서 떨어지셨습니다. 그 결과 강대한 님께서 백 점을 확보하신 겁니다.]
"조금 전 떨어진 소환자는 90점을 받았고?"
[아닙니다. 이번에 떨어진 소환자는 99점을 받았습니다. 이번에는 특별히 상 위 백 분에게 특별한 선물을 드릴 것입니다.]
지금까지 소환에서 특별한 선물을 주는 것은 늘 열 명 이하였다.
최악의 경우에는 전 인류 중 단 한 명에게만 보상을 지급한 적도 있었다.
그런데 이번에는 백 명에게 보상을 지급한단다.
이 말을 듣자 괜한 기대가 생겼다.
상위 열 명에는 들지 못하더라도 백 명을 선발한다면 세 분도 포함될 수 있기 때문이었다.
"각성 예외자가 된 사람이 상위 백 명 안에 들면 어떻게 되는 거지?"
[그런 경우는 거의 없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만약 그런 놀라운 일이 현실이 된다면 아주 특별한 선물을 지급해 드릴 겁니다.]
"각성자와 같은 선물인 거야?"
<집사? 아버지를 생각하는 거야?>
나호가 귓속말로 물었다.
'혹시나 하는 거야. 아버지에게 좋은 일이 생길 수도 있으니까.'
이미 각성 예외자가 된 사람은 어떤 방법으로도 각성자가 될 수 없었다.
하지만 아직 대변혁이 되기 전이라면 혹시라도 방법이 있지 않을까 생각한 것이었다.
그 순간 시스템의 음성이 들렸다.
고지전(高地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