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당신의 마나통은 안녕하십니까?-166화 (166/350)

166. 고지전(高地戰)!

시스템의 말을 듣는 순간 맥이 딱 풀리는 것 같았다.

[강대한 님께서 바라시는 일은 절대로 일어나지 않습니다. 어떤 것으로도 이미 탈락자가 된 사람은 각성자가 될 수 없습니다.]

"확인사살까지 해줄 필요는 없었는데···. 그냥 기대라도 하게 두지 그랬어."

[헛된 꿈은 망상일 뿐입니다. 아무 보탬이 되지 않습니다.]

"아주 특별한 선물을 준다며? 각성이 아니면 도대체 뭐가 아주 특별한 선물이야?"

[선물은 많습니다. 상점을 개방해드릴 수도 있고, 추가로 인벤토리 하나를 더 드릴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선물의 내용까지 강대한 님께 알려드릴 수는 없습니다. 우리가 아무리 특별한 사이라고 해도 말입니다.]

<우에에엑! 특별한 사이래. 그렇게 표현하지 말라고 했잖아. 남들이 들으면 오해한다니까. 너는 역시 인간 세상을 잘 이해하지 못해. 너는 인간에 대해 한참 공부해야 해.>

나호가 오두방정을 떨며 말했다.

그간 시스템과 우리는 상당히 친밀한 사이가 되었다.

그럴 수밖에 없었다.

회귀한 이후 지금까지 시스템과 지속적인 관계를 맺으며 살아왔기 때문이었다.

의도치 않게 일대일 관계를 지속해 온 것이었다.

그러다 보니 서로를 알아가게 되고 이해하는 시간들이 되었던 것 같다.

그렇다고 해도 인간이 시스템을 이해하는 데는 확실한 한계가 있었지만 말이다.

특히 일곱 번째 소환이후 시스템을 돕기 시작하면서 시스템은 이전보다 우리를 친근하게 대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이런 관계를 지속하길 원했다.

우리로서는 손해날 것이 없었기 때문에 수락했고 그 이후 시스템은 우리에게 조금 더 많은 정보를 제공해주었다.

물론 조금 전처럼 남의 보상에 대해서는 절대 알려주지 않지만 말이다.

[이제 본격적으로 마지막 시험을 시작하겠습니다. 앞의 문으로 들어가십시오. 강대한 님의 수준에 맞춘 시험이 준비되어 있습니다.]

"잠깐! 수준에 맞췄다고? 지금 내 수준에?"

[그렇습니다. 다른 소환자들과 동일한 시험으로 강대한 님을 평가할 수는 없습니다. 그래서 저희가 맞춤 시험을 준비했습니다.]

<이런 친절은 필요 없는데···. 이상하게 필요하지도 않는 친절은 잘 베풀더라. 정작 필요할 때는 대답도 하지 않으면서···.>

서로 친밀해졌지만 나호의 투덜거림이 사라진 것은 아니었다.

그리고 나호가 불만을 가질 수밖에 없는 일들도 종종 있었기 때문에 시스템도 그러려니 했다.

[맞춤 시험을 준비한 만큼 보상도 강대한 님께 필요한 것으로 준비했습니다. 원하시지 않는다면 다른 소환자들과 동일한 시험을 보실 수 있습니다.]

"아니야. 수고롭게 준비했는데 응하는 것이 도리겠지."

<맞아. 이왕 준비했다는데 이용해줘야지. 그간의 정(情)을 생각해서라도.>

나호가 눈을 찡긋하며 말했다.

[그럼 입장하십시오. 5초 안에 입장······ 다른 사람들과 동일한 시험을 치르셔야 할 것입니다.]

<이런 씨이이이···!>

나호의 욕설 사이로 시스템의 웃음소리가 들리는 것 같았다.

시스템이 5초라는 말을 하는 순간부터 달려야했다.

시스템이 생성한 문은 도저히 5초 내에 도달할 수 없는 거리에 있었기 때문이었다.

나호의 욕설을 들으며 전력으로 질주해서 겨우 시스템이 말한 문을 통과했을 때였다.

시스템의 음성이 들렸고 다시 나호의 욕설이 터져 나왔다.

[5초 안에 입장을 결정하시지 않으시면 다른 소환자들과 동일한 시험을 치르게 된다고 말씀드리려고 했는데 이미 입장하셨군요. 그럼 좋은 시간되시길 바랍니다.]

<이런 씨이이바아알! 우와아아아! 이젠 욕도 아까워. 시스템 심심해서 저러는 거 아니야? 분명해. 계속 우리하고만 놀았잖아. 그래서 저러는 거야. 살짝 맛이 간 것 같기도 하고.>

나호가 투덜거리면서도 매서운 눈으로 주위를 살폈다.

"전생과 비슷한 것 같은데?"

<그래? 이상하다. 맞춤 시험이라고 했는데 왜 전생과 똑같지?>

"들어가 보자. 들어가 보면 정확하게 알 수 있겠지."

전생에 비세계에서 보낸 시간 중 내가 기억하는 것은 후반기 여섯 번의 소환이었다.

그런데 그 여섯 번도 다 기억하는 것은 아니었다.

대부분 단편적으로 기억하는데 그중에서 제법 상세하게 기억하는 소환은 마지막 소환이었다.

다른 각성자들도 대부분 마지막 소환은 기억했다.

그 기억의 정도는 차이가 있었지만 말이다.

나는 마지막 소환을 다른 사람에 비해 상세하게 기억하는 편이었다.

그래서 이 시험에서 뭘 해야 하는지 알고 있었다.

고지전(高地戰)!

그것도 몬스터와의 고지전이었다.

<그러니까 우리가 있는 이 산의 정상을 지키면서 저 산의 정상을 탈환해야 한다는 거지?>

"그렇지."

<집사 혼자서 해야 한다는 말이야? 몬스터가 한 마리는 아닐 텐데?>

"소환수들을 생각했겠지."

<우와아. 정말 제대로 맞춤 시험이구나.>

전생에 이 산에 소환된 사람은 오천 명 정도였다.

그 사람들이 상대했던 몬스터의 수는 만 마리 정도 됐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그래도 시스템이 어떤 시험인지 정확하게 알려줬었던 것이 다행이라고 생각했었다.

그런데 지금은 아무런 말도 나오지 않고 있었다.

내가 이미 시험의 내용을 파악하고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인 것 같았다.

그때 시스템의 메시지가 들렸다.

[지금부터 전령조가 자신의 역할을 수행할 수 있습니다.]

꾸! 꾸! 꾸! 꾸룰루루! 꾸룰루!

꾸루와 전령조들이 대기실에서 일제히 기쁨의 노래를 불렀다.

<이건 다행이네. 대변혁이 한 달 남았으니 연습하라고 지금 금제를 풀어주는 것 같은데···. 그럼 나는? 나도 지금부터 실체를 가지게 해주면 안 되나? 안 돼?>

나호의 절박한 외침에도 대답하지 않는 시스템이었다.

<안 되는 모양이네. 안 되면 안 된다고 말이라도 해주면 얼마나 좋아. 언제 된다는 말만 들어도 이렇게 애가 타지는 않을 텐데. 집사 혹시 대변혁이 되도 실체를 갖지 못하는 것은 아니겠지?>

"그때는 꼭 될 거야. 전생에도 그때 됐었다며."

<그렇기는 한데···. 왠지 불안해. 모아둔 힘을 그때 다 써버려서 어쩌면 실체를 갖지 못할 것 같다는 생각도 들고.>

백호의 가호를 통해 회귀를 했었다.

시간을 되돌린 것이었으니 얼마나 많은 힘이 사용됐을지 상상도 되지 않았다.

<그런 표정들 지을 필요 없어. 어서 움직이자. 꾸루야! 나와서 움직여봐. 오늘이 너 데뷔하는 날이 되겠다. 축하해.>

모두의 표정이 어두워지는 것을 본 나호가 재빨리 제 감정을 지우고는 밝은 목소리로 말했다.

그 모습이 기특하면서도 짠했다.

꾸루가 큰 날개를 우아하면서도 당당하게 펴고 대기실에서 나왔다.

오늘따라 움직임이 전혀 다르게 느껴졌다.

물이 오른 것처럼 보인 것이다.

꼬물!

^멋있다!^

뮤! 뮤! 뮤!

^나도 편지 보내고 싶은 곳 있다. 어쩌면 아직 내 소식을 기다리고 있을지 모르는데···.^

도뮤가 그리운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

"네 정보에 의하면 정찰을 할 수 있다고 했는데 어느 정도 할 수 있는 거야?"

꾸!

물음에 단 한 마디로 대답을 한 꾸루였다.

그런데 그 순간 지금까지의 꾸루와 달라진 것을 알 수 있었다.

꾸루가 대답을 하는 순간 꾸루가 하고 싶은 말이 그대로 느껴졌기 때문이었다.

이것은 귀나 머리로 듣는 것이 아니었다.

이심전심이 되듯 바로 이해가 되어버린 것이었다.

<집사! 왜 그래? 어? 이거 이상하다. 집사! 집사도 느꼈어? 나 방금 이상한 거 느꼈는데?>

나에게 묶여 있어서 그런지 나호는 나와 많은 것을 공유할 수 있었다.

그런데 이런 것까지도 공유가 되는 모양이었다.

"느꼈어."

<이거 정말 유용하다. 이러면 소환수들이 굳이 언어를 배울 필요가 없지. 언어의 한계를 뛰어넘는데 무슨 언어가 필요하겠어.>

정말 신기한 느낌이면서 단 한 번도 생각해본 적이 없는 감각이었다.

"지금부터는 너와 늘 이렇게 소통하면 되는 거야?"

루루!

그건 아니란다.

지금과 같은 소통은 전령이나 정찰, 정보의 전달에 한정된다고 했다.

<아쉽기는 하지만 이 정도도 대단한 거야. 그치?>

"그렇지. 혹시 다른 소환수와도 이제부터는 이런 소통이 가능하나?"

루루!

이번에도 꾸루가 대답했는데 전령조의 특성 때문에 가지게 된 것이라고 했다.

그동안 너무 강한 특성이라 묶여 있었단다.

"이것도 아쉽기는 하지만 지금도 충분히 소통이 되니까 문제될 것은 없지. 그럼 꾸루야. 이 산과 저 산, 그리고 혹시 모르니까 주변도 살펴줘. 이상한 거 있으면 바로 연락주고···."

꾸!

꾸루가 우렁차게 대답하더니 전령조에게 명령을 내리기 시작했다.

지금까지 보여주던 겁쟁이 모습은 어디로 가고 대군을 이끄는 장수가 된 것 같았다.

실제로 대군을 이끄는 장수이기도 했다.

현재 꾸루가 이끄는 전령조의 수는 150마리나 되었다.

그동안 비세계와 던전을 다니며 휘하의 새들도 늘어난 것이었다.

하얗고 거대한 새 150마리는 어느 사관생도가 부럽지 않았고, 그 앞에 선 꾸루도 어느 장군이 부럽지 않았다.

<멋지네. 나도 내 휘하에 호랑이들을 거느릴 수 있으면 좋겠다.>

"고양이가 아니고?"

<집사! 어떻게 그런 농담을 할 수 있어?>

"왜? 고양이 귀엽잖아. 그리고 대변혁 이후의 고양이들은 결코 약하지 않아. 무엇보다 영리하고, 친근하고···."

<집사가 얼마나 고양이를 예뻐하는지 아니까 용서해줄게. 저기 봐. 전령조 출발한다.>

꼬물!

^멋지다아아!^

뮤! 뮤! 뮤!

쫑쪼로롱! 쫑쫑!

음머어어!

꾸루의 데뷔를 축하하는 것도 있었지만 순수한 경탄에 가까웠다.

그만큼 150마리의 전령조를 지휘하는 꾸루의 모습이 멋있었던 것이다.

꾸루도 함께 움직일 것이라고 생각했는데 꾸루는 전령조들을 보낸 후 내 옆으로 왔다.

그러더니 꾸! 하고 소리를 냈다.

그 순간 전령조들이 전령으로 나간 범위가 내 머릿속으로 들어왔다.

"너도 내 말을 이렇게 이해하는 거야?"

루루!

"소통하기 위해 너는 여기에 있는 거야?"

꾸!

"너와 멀어지면 이런 소통은 불가능한 거야?"

루루!

나와 어느 정도 떨어져도 소통은 된다고 했다.

하지만 그 거리를 아직 확신할 수 없다고 했다.

고지전이 끝나고 나서 확인해보잖다.

꾸루와 이런 소통이 가능하니 너무 편했다.

"애들을 각성시키고 언어스킬을 사주면 이런 느낌이려나?"

<애들 각성은 대변혁 이후에나 가능하다고 했잖아. 그런데 여기 계속 있을 거야? 고지로 올라가야 하지 않아?>

"가야지. 그 전에 가야할 곳이 있어. 그리고 아직 본격적으로 고지전이 시작되지는 않았을 거야. 본격적인 고지전이 시작되면 싸움의 시작을 알리는 종소리가 들리거든."

<별 걸 다하네. 그런데 전생에 집사 그룹은 고지전에서 승리했어?>

"우리 그룹은 졌어. 배신자들이 있었거든. 일부 사람들이 마나를 조금 더 벌려고 빌런 짓거리를 했거든. 그런 거 생각하면 차라리 혼자 하는 것이 나은 것도 같아."

어디에나 악당은 있기 마련이다.

평범한 세상에서도 악당과 미친놈들이 넘쳐나는데 비세계에서는 오죽했겠는가.

그런 사람이 섞인 오천 명은 차라리 잘 꾸려진 수십, 수백의 팀만도 못했다.

고지전이 치러지는 동안 지도부는 몬스터보다 악당과 미친놈들을 더 자주 상대해야했다.

그러다보니 제대로 된 고지전이 될 수 없었다.

그래도 어떻게든 승리하기 위해 애를 썼는데 자리를 지키지 않은 사람들 때문에 결국 실패하고 말았다.

고지전을 실패한 이후의 기억은 없지만 아마 아무 보상도 받지 못했던 것 같다.

각성했을 때 아무것도 얻지 못했기 때문이었다.

물론 뭔가를 얻은 각성자가 소수였지만 말이다.

그런 생각을 하며 고지전의 1차 격전지를 향해 걷기 시작했다.

작은 토성!

고지를 향해 가는 길목에 있는 세 개의 토성 중 가장 아래에 있는 토성이었다.

<여기는 왜?>

"이 토성부터 복구를 해야 해. 그것도 최대한 빨리."

<혼자? 전생에 5천 명이 했던 일을 혼자 해야 한다고?>

토성의 규모는 작지 않았다.

산이 큰 만큼 토성은 길고 두터웠다.

"혼자라도 해야지. 미친놈들이 있는 것보다 혼자 하는 것이 나을 수도 있다니까."

<이걸? 이건 아닌 것 같은데? 이건 혼자해서 좋은 일이 절대로 아니야.>

산성의 두께를 보고 나호가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설마'와 '나 하나쯤'이라는 생각이 모든 일을 그르치기도 해."

몬스터를 막는 토성이었다.

그런 토성을 복구하는 일인데도 대충하는 놈들이 있었다.

'나 하나쯤이야.'

'설마 내가 복구한 곳으로 오겠어?'

이런 생각이 토성을 무너뜨리고 수많은 사람이 죽게 만들었다.

그러니 차라리 혼자 쌓는 것이 나았다.

<그렇다고 해도 이건 너무 많은데? 이걸 혼자 언제 다 쌓아?>

음머어어!

쫑!

꼬물! 꼬물!

^나도 도울 수 있다. 우리 소환식물들 일 잘한다.^

소환수들이 서로 돕겠다고 나섰다.

소환수들도 소환수지만 소환식물들의 활약이 돋보이는 요즘이었다.

소환식물들만 잘 도와줘도 토성을 쌓는 일은 어렵지 않게 끝날 것이었다.

<어휴우. 바로 시작할 거야?>

"당장 시작해야지. 애들아 시작하자!"

쫑!

음머어어!

꼬물!

소환수들과 한 인간의 토성 쌓기가 시작되었다.

그리고 놀라울 정도로 빠르게 토성은 제 모습을 갖추어갔다.

너무 쉽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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