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9. 소환수들의 각성
[띠링! 마지막 소환 당시 강대한 님께서는 가장 안정된 모습을 보이셨습니다. 그때 백 점을 확보하셨죠. 그리고 놀라울 정도로 빨리 마지막 시험을 끝내셨습니다.]
[이에 저희는 미리 약속된 특별한 선물을 드리고자 합니다.]
이번에는 특별히 백 명에게 특별한 선물을 준다고 했었다.
마지막 시험이니 만큼 보상이 기대되었다.
사실 발현율을 12% 더 준 것으로 특별선물을 갈음한다고 해도 뭐라고 할 수 없었다.
그 어떤 선물보다 발현율이 더 가치 있기 때문이었다.
대변혁 이후가 되면 발현율과 무관한 삶을 살 수 없었다.
이것은 각성을 하든지 하지 않든지 동일했다.
발현율은 단 1%라도 엄청난 차이를 만들어냈다.
그래서 발현율을 12% 추가로 주었을 때 추가로 뭔가를 더 준다는 생각자체를 하지 않았다.
그런데 특별한 선물을 주겠단다.
주는 것은 감사하게 받는 것이 예의였다.
특히 시스템에게는 절대 사양하지 않아야 했다.
괜스레 겸양을 부리다 기회만 놓칠 수 있었다.
<특별한 선물이라고 했었어. 분명히 기억하고 있어. 이런 말을 잘하지 않는 시스템이 '특별한'이라는 말을 붙여서 의외라고 생각했거든.>
나호가 눈을 빛내며 보상을 기다렸다.
그 순간이었다.
[띠링! 1위인 강대한 님께 드리는 선물은 강대한 님께 맞춤으로 준비한 것입니다. 아마 만족하실 겁니다.]
<그러니까 그게 뭐냐고? 너 일부러 이러는 거지? 그렇지? 시스템이 언제부턴가 이런 거 은근히 즐기는 것 같아. 아주 나쁜 버릇이 들었어. 대체 얼마나 대단한 것을 주려고 이렇게 뜸을 들이는 거야?>
나호의 애간장이 다 녹을 정도로 뜸을 들인 시스템이 무거운 입을 열었다.
[강대한 님께 드리는 선물은···.]
<선물은?>
[···소환수들의 각성입니다.]
<와우!>
시스템의 말을 듣는 순간 만족 이상의 감정이 밀려들었다.
소환수들과 보낸 시간이 짧지 않았다.
현실 시간에서는 1년도 되지 않았지만 던전과 비세계에서 보낸 시간들까지 더하면 5년이 훌쩍 넘는 시간이었다.
이제 소환수는 애완동물이나 반려동물 같은 것이 아니었다.
처음부터도 그랬지만 가족이었다.
가족보다도 더 많은 시간을 함께 하는 존재들이 소환수들이었다.
"누구 하나에게만 해주는 것이 아니라 소환수 전부를 각성시켜주겠다는 거야?"
[그렇습니다. 강대한 님께 드리는 맞춤 보상입니다.]
"다른 사람이 1등을 했다면 무얼 받게 됐을지는 말해주지 않겠지?"
[이제는 말씀드릴 수 있습니다. 발현율을 소폭 상승시켜드리고, 상점이 오픈 되지 않은 사람의 경우에는 상점을 추가로 오픈시켜드렸을 겁니다.]
1등에게 저 정도를 해주었다면 2등부터는 조금씩 보상이 줄어들 것이다.
"그렇다면 백 등은 무슨 보상을 받는 거야?"
[강대한 님께서 보시기에는 소정의 선물일 것이고, 백 등인 사람이 봤을 때는 엄청난 선물을 받게 될 것입니다.]
우문현답(愚問賢答)이었다.
"소환수들의 각성은 어떻게 되는 거야? 지금 바로 되는 건가? 내년까지 기다리지 않고?"
[그렇습니다. 보상으로 각성을 시켜드리기 때문에 지금 바로 각성시켜드리겠습니다. 단 내년이 되기 전까지는 공격스킬을 사용할 수 없고, 타인이나 다른 소환수에게 위해를 가하면 안 됩니다.]
"공격을 하면 어떻게 되는데?"
[각성이 취소될 수도 있습니다.]
"각성이 취소되면 소환수들도 다시는 각성할 수 없는 거야?"
[그렇습니다. 그러니 각별히 주의하시기 바랍니다.]
<미우라 놈만 아니면 저거야 참을 수 있지.>
나호가 각성을 한다면 앞발을 조심해야 했다.
습관적으로 미우라 놈의 뒤통수를 후려치기 때문이었다.
"혹시 나호도 각성할 수 있어?"
이건 나호도 실체를 가질 수 있느냐는 질문이기도 했다.
실체를 가지지도 않은 존재가 각성할리는 없기 때문이었다.
[우선 소환수들을 각성시킨 후에 말씀드리겠습니다.]
시스템이 저렇게 말을 한 순간 나호가 얼음이 되었다.
다른 때 같으면 왜 바로 말하지 않느냐고 따졌을 나호지만 지금은 얼음이 되어 눈만 데굴데굴 굴리고 있었다.
그 모습만 봐도 나호가 얼마나 각성을 하고 싶어 하는지 알 수 있었다.
[띠링! 쪼롱, 꾸루, 반반, 반야, 반크, 도뮤, 꼬물, 꼬마, 아수라, 아수리, 황이, 금이는 강대한 님 옆으로 서주시기 바랍니다.]
소환수들이 불리자 괜스레 어깨가 펴지며 기분이 좋아졌다.
소환수의 숫자가 적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소환 권능이나 스킬을 가진 사람 중에는 더 많은 소환수를 둔 경우도 봤지만 나보다 더 강한 소환수를 둔 사람은 없었을 것이다.
물론 내가 회귀할 때쯤을 기준으로 비교한다면 우리 소환수들이 더 약하지만 말이다
<아이고. 병아리 같네.>
소환수들이 잔뜩 긴장한 모습으로 쫄래쫄래 걸어 나오더니 내 옆으로 쪼르르 섰다.
그 모습이 정말 어미 닭을 따르는 병아리 같았다.
[소환수는 각성을 한다고 해서 상태창이나 인벤토리, 직업 등을 갖지 않습니다. 대신 자신들이 가지고 있는 특성이 강화됩니다. 특성 이외에 관심 있거나 좋아하는 것이 강화되기도 합니다.]
[스킬은 소환사가 구입하여 지급할 수 있고, 소환수의 정보는 소환사의 상태창에서 확인하실 수 있습니다.]
<소환수는 자신의 스킬 확인도 직접 하지 못한다는 말이야?>
[원칙적으로는 상태창이 없어서 확인이 불가능하지만 소환사의 상태창을 언제든 확인할 수 있으니 크게 불편한 점은 없을 겁니다.]
나호가 내 상태창을 자유롭게 보는 것과 비슷한 것 같았다.
"잠깐! 그럼 각성을 할 때 스킬이 생기지도 않는 거야?"
[아닙니다. 특성이 스킬로 등록되는 경우도 있고, 평상시에 관심 있는 것이 스킬로 등록되기도 합니다.]
<오오오. 이거 떨리겠다. 스킬 공짜로 얻으면 얼마나 좋아. 아니지? 이 많은 아이들 스킬 등급 올려주려면 등골 빠지려나?>
"얘들이 벌어오는 마나가 더 많아. 그런 거 아깝다고는 생각하지 않아. 애들아 저런 건 신경 쓰지 말고 마음 편하게 있어."
<갑자기 나만 나쁜 놈 되는 것 같은데?>
[그럼 집중해주시기 바랍니다.]
집중하라는 말이 나오고 2, 3초 정도 지나자 번쩍하는 것 같았다.
그리고는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이게 끝이야? 나는 각성할 때 엄청나게 아팠는데?"
[강대한 님께서는 마나홀이나 마나통의 성장 없이 일종의 깨달음만으로 각성한 것이었습니다. 그러니 통증이 심하셨던 겁니다.]
[다른 사람들은 마나통이 들어설 때 그리고 지속적으로 고통을 느끼며 각성을 준비했습니다.]
잠시 잊고 있었는데 전생의 나도 평범한 사람들처럼 각성을 했었다.
"애들아! 괜찮아?"
쫑!
쪼롱이가 앞으로 나오며 날갯짓을 했다.
평상시와 다름없는 날갯짓이었지만 각성을 했다고 생각해서 그런지 유난히 힘차게 보였다.
<집사 확인해봐. 누가 스킬을 얻었는지 궁금해.>
상태창의 소환수창으로 들어갔다.
가장 위에 쪼롱이가 나와 있었다.
기존에 있었던 정보가 쫘르르 나온 다음 스킬이 있었다.
지휘(F)!
"쪼롱이는 지휘(F)가 있어."
<오오오! 쪼롱아! 축하해.>
"잠깐 방금 하나가 더 떠올랐어. 사냥(F)!"
쫑!
쪼롱이가 두 개의 스킬을 얻자 기쁨의 날갯짓을 했다.
<인간에게는 공짜로 주는 것이 하나도 없어서 소환수들에게도 그럴 줄 알았더니 소환수들에게는 은근히 넉넉하네. 계속 두 개씩 나오면 좋겠다. 두 개! 두 개!>
나호가 앞발을 힘차게 흔들며 응원을 했다.
꾸루 – 통솔(F), 전령(F)
반반 – 공격(F), 방어(F)
반야 – 공격(F), 방어(F)
반크 – 공격(F), 방어(F)
도뮤 – 채광(F), 제련(F)
꼬물 – 통역(F), 관리(F)
꼬마 – 공격(F), 조제(調劑)(F)
아수라 – 방어(F), 제작(F)
아수리 – 공격(F), 제작(F)
황이 – 방어(F), 농사(F)
금이 – 공격(F), 농사(F)
소환수들의 각성 결과였다.
모든 소환수들이 두 개씩의 스킬을 얻었다.
원래 가지고 있던 특성이 스킬이 된 경우도 있고, 관심이 있었던 것이 그대로 스킬이 된 경우도 있었다.
그런데 인간의 스킬과 조금 다른 점을 발견했다.
인간의 스킬은 공격이나 방어 같은 스킬은 존재하지 않았다.
이것보다는 좀 더 구체적이고 개별적인 스킬이 익히고 발전시키는데 소환수들은 통합적으로 스킬이 주어졌다.
그런데 생각해보니 이게 더 좋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스킬 등급이 올라가면 그만큼 공격력이 올라갈 것이기 때문이었다.
<소환수들은 무기를 사용할 수 없어서 스킬 이름이 저러나?>
"그럴 수도 있겠네. 애들아 어때? 뭔가 달라진 것이 느껴져?"
쭈루!
루루!
쪼롱이와 꾸루가 대표로 대답을 했는데 지금 현재로는 특별히 달라진 것을 느끼지 못한다고 했다.
"어? 잠깐 우리 소환수들 언어 특성 같은 것은 없는 거야? 아무도? 꼬물이만 통역이 있던데."
[쭉 1등을 하셨으니 특별히 알려드리겠습니다. 강대한 님의 소환수들 중 언어 능력이 가장 출중한 것은 꼬물입니다. 하지만 꼬물이는 입이 없죠.]
"지금 상태로도 나쁘지는 않은데 그래도 각성을 하면 애들이 말을 하게 될 것이라고 생각했는데···."
<나도. 쪼롱이나 도뮤는 꼭 말을 하게 될 것이라고 생각했는데 아쉽다.>
"특성이 없어도 특별한 인연을 만나면 재능을 얻기도 하니까 아직 실망하기에는 일러."
<과연 그럴까? 특성이 없으면 뭘 해도 어려워. 전생을 살아봐서 누구보다 잘 알잖아.>
누구보다 잘 알고 있기는 했다.
괜한 기대는 자칫 성장을 저해할 수 있었다.
"우선 고마워. 생각지도 못한 선물을 받았어. 그런데 나호는 각성할 수 있는 거야."
[원래 나호는 각성할 수 없었습니다. 힘을 너무 많이 소진해서 이번 생은 실체를 가지지 못할 예정이었습니다만···.]
나호가 기도하는 심정으로 시스템의 말을 기다렸다.
연이어 시스템의 음성이 들려왔다.
[강대한 님께서 단 한 번도 1등을 놓치지 않았고, 특히 마지막 소환에서 가장 안정적인 정서가 확인되었기 때문에 실체와 함께 각성을 선물하겠습니다.]
<어어어어···. 집사···. 이거 꿈 아니지? 이거 생시 맞지?>
나호의 목소리는 심하게 떨리고 있었다.
꿈에도 그리던 실체를 얻게 되는 순간이 코앞까지 와있었기 때문이었다.
[단,
'단'이라는 음성이 울리는 순간 나호의 눈에서 눈물이 떨어질 것만 같았다.
시스템이 '단'이나 '하지만'을 말해서 좋았던 적이 단 한 번도 없었기 때문이었다.
나호가 고개를 푹 수그렸다.
울지는 않았지만 우는 것 보다 더 슬퍼보였다.
[단, 현재는 하루에 단 10분만 실체를 가질 수 있습니다. 실체를 갖는 시간은 앞으로 강대한 님의 성장과 함께 늘어나게 될 것입니다.]
"10분? 단 10분만 가능하다고?"
나호가 그렇게 간절하게 갖기를 원한 실체를 하루에 단 10분만 가질 수 있단다.
너무 마음이 아파서 시스템에게 되물은 것이었다.
그런데 시스템이 대답하기도 전에 나호가 먼저 말했다.
<집사! 나 하루에 10분이라도 좋아. 단 1분이라도 만족했을 거야. 무수한 시간을 살아오다 실체를 가진 것은 단 3년이었어. 거기에 비하면 하루에 10분은 결코 짧지 않아. 무엇보다 집사가 강하지면 실체를 갖게 되는 시간도 늘어난다고 하잖아. 그 정도면 충분해.>
나호가 활짝 웃고 있었다.
미소가 그림 같았다.
나호의 미소가 그 무엇보다 아름답다고 느낀 순간 나호의 몸이 푸르게 빛났다.
<어? 어!>
푸른빛이 나호의 온몸을 감쌌다고 느끼는 순간 번쩍하면서 푸른빛이 사라졌다.
그리고 그곳에 하얀 백호 한 마리가 서있었다.
조금 전처럼 허공에 둥둥 뜬 채가 아닌 네 발을 바닥에 디딘 채였다.
<어? 집사! 이거 봐! 나! 나아아! 나 몸 생겼어어어! >
나호가 네 발로 바닥을 밟아보기도 하고 살짝 살짝 뛰어오르기도 하더니 데구르 몸을 한 바퀴 굴렸다.
<이 촉감! 얼마나 느껴보고 싶었던 건지···. 집사아아아!>
나호가 폴짝 뛰더니 품으로 그대로 뛰어들었다.
"어이쿠! 아무리 가벼워도 미리 말을 해야지. 못 받으려면 어쩌려고 그래?"
<집사! 나 호랑이야. 사뿐하게 내려설 수 있어.>
나호의 입이 귀에 걸려있었다.
"좋아?"
<좋아. 오늘을 생일로 삼고 싶을 만큼.>
"다행이네. 네가 만족하지 못하면 어쩌나 했는데."
<그것보다 집사! 나도 소환수로 등록되는 거지? 몸을 가졌으니.>
나호가 물었다.
"당연히 되겠지. 설마 안 되겠어?"
[띠링! 백호 '나호'가 소환수로 되기를 원합니다. 등록하시겠습니까?']
"당연히 등록해야지."
[백호 나호가 강대한 님의 소환수로 등록되었습니다. 나호에 대한 정보는 상태창을 통해 확인하시기 바랍니다.]
나비라고 불리던 호랑이 나호가 소환수가 되었다.
지금까지도 소환수 못지않았지만 정식으로 소환수가 되자 기분이 사뭇 달랐다.
"정보는 나중에 확인할게. 나호 각성부터 시켜줘."
나호는 당장 대기실도 들어가고 싶은 것 같았지만 그것은 조금 후에 들어가도 늦지 않았다.
[집중해주십시오.]
이전과 같은 메시지가 흘러나오더니 번쩍하고는 나호의 각성이 완료되었다고 했다.
바로 스킬부터 확인했다.
나호의 스킬은 영·실체화(F)와 거대화(F)였다.
"여기 영·실체화는 영체와 실체를 오갈 수 있다는 말이야?"
[그렇습니다.]
당장은 나호가 실체를 갖는 시간이 길지 않기 때문에 유용하지 않다고 생각할지 모르겠지만 하루 종일 실체가 가능하게 됐을 때는 이 기능이 아주 유용할 것 같았다.
"아! 나호가 소환수가 됐는데도 나에게서 10미터만 벗어날 수 있는 거야?"
[실체를 가질 때는 제한이 없어집니다. 하지만 영체 상태일 때는 여전히 10미터를 벗어날 수 없습니다.]
<그럼. 영체 상태일 때는 여전히 대기실에 들어갈 수 없는 거야?>
[강대한 님에게서 10미터까지는 들어갈 수 있겠죠.]
나호가 뒤로 발라당 누워버렸다.
대기실에서 소환수들과 자유롭게 어울리고 싶은 마음이 강했던 모양이었다.
"나호야. 괜찮아?"
<집사! 괜찮아. 실체를 가진데다 전생에는 하지도 못했던 각성까지 했어. 그것으로 만족해. 대기실이야 언제든 들어갈 수 있으니까.>
괜찮다고 하면서도 대기실을 바라보는 나호의 눈빛에는 아쉬움이 가득했다.
"우리 나호를 생각해서라도 내가 빨리 강해져야겠다. 실체를 가진 김에 대기실에 들어가 봐."
[지금까지는 각성하기 위한 실체였으니 오늘은 지금부터 10분을 계산하겠습니다.]
<치! 인심 쓰는 척 하고 있어.>
말은 그렇게 하면서도 나호의 입 꼬리는 귀를 향해 달리고 있었다.
그리고 골목대장마냥 큰 소리를 지르며 대기실로 달리는 나호였다.
<애들아! 각성 기념 달리기 대회다! 나 잡아봐아아라아아!>
유치하기 짝이 없는 말이었지만 아무도 웃지 않았다.
나호가 대기실을 향해 발을 내딛을 때마다 나호의 몸이 커지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내딛는 걸음마다 몸집을 키우더니 대기실의 입구를 통과하는 순간 성체가 되어 있었다.
<어흐으으으으응! 어흐으응!>
우렁찬 포효가 천지에 울려 퍼지고 있었다.
돌파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