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2. 완벽한 승리
인간의 마지막 댐이 무너졌을 때 사람들의 시선은 두 곳으로 향했다.
한 곳은 몬스터들이 휩쓸려 간 곳!
다른 한 곳은 몬스터들이 만든 댐이었다.
몬스터들이 만든 댐은 단 한 개였지만 인간이 만든 댐보다 조금 컸다.
인간이 세 개의 댐을 쌓는 동안 몬스터는 단 하나의 댐에 집중했기 때문이었다.
어쩌면 인간의 준비가 끝나면 자신들은 의지와 상관없이 공격하게 될 것을 알았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자잘한 세 개보다 강력한 한 방으로 전세를 역전시키고 싶었는지도 모르고 말이다.
사람들의 눈은 바쁘게 두 곳을 오가며 가슴을 졸이고 있었다.
불안한 것은 어머니도 마찬가지인 모양이었다.
나호와 심상으로 대화를 나누고 있는데 어머니께서 조심스럽게 물었다.
"너는 어떻게 생각하니?"
"전쟁 요?"
"전쟁이야 네가 있으니 질 것 같지는 않고, 저 댐 말이다. 저 댐이 무너진다면 이쪽 피해도 적지 않을 거야. 누구도 안전을 장담할 수 없을 것 같고."
우리 쪽의 댐이 무너지는 모습을 보았으니 몬스터의 댐도 일시에 무너질 것을 아시는 것이었다.
다른 사람들도 어머니께서 걱정하는 것과 동일한 걱정을 하고 있었다.
"저 댐은 일시에 무너지지 않아요. 어머니."
"어떻게? 무서울 정도로 무너져버리던데?"
"조치를 해두었어요. 보시겠어요?"
"보지 않아도 돼. 뭐든 마력이 들잖아. 뭐라도 아껴야지."
"이건 마력이 많이 들지 않아요. 한 번 보세요."
소환수들이 각성하기 전에는 어머니께서는 꾸루를 보실 수 없었다.
내가 허락한 사람은 꾸루도 볼 수 있었지만 그건 상대가 각성을 한 경우나 아니면 대변혁 이후에나 가능한 일이었다.
하지만 꾸루가 각성을 하면서 달라졌다.
내가 허락하면 각성 유무와 상관없이 꾸루와 전령조들을 볼 수 있게 된 것이었다.
아마 전령조로서 활동하기 위해서는 꼭 필요한 사항이기 때문에 풀린 것 같았다.
어머니께서 다시 한 번 사양을 하려고 했지만 바로 보실 수 있도록 했다.
그 순간 어머니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저게 다 뭐니? 아니 그것보다 수가 더 는 것 같은데?"
"이번 시험이 끝나고 더 숫자가 늘었죠. 대변혁이 될 때는 더 많아질 거고요."
"장관이구나. 비둘기가 평화의 상징이라더니 저 새가 진정한 평화의 상징이네."
지금 꾸루와 전령조는 몬스터의 댐 앞에 띠를 이루고 앉아 있었다.
댐의 중간에는 반반이 가족이 포진하고 왼쪽은 전령조가 오른쪽은 사냥조 중 덩치가 큰 애들이 댐을 등지고 있었다.
혹시 댐이 무너지더라도 일시에 물이 인간을 덮치지 못하도록 최소한의 조치를 취한 것이었다.
대변혁 전까지는 사람들이 소환수를 볼 수 없기 때문에 할 수 있는 작전이었다.
일부의 사람만이 비세계를 기억한다고 하지만 이렇게 많은 소환수를 공개할 수는 없었다.
너무 강렬한 기억으로 남을 것이 분명하기 때문이었다.
"언제 배치를 한 거니?"
"첫 번째 댐을 부수기 전에요."
"선공을 할지도 모른다고 생각한 거니?"
"그건 아니었어요. 혹시나 해서 미리 배치한 거죠."
"잘했다. 걱정하지 않아도 되겠구나. 괜스레 아이들이 휩쓸리지는 않겠지?"
"소환수들은 위험하다고 생각하면 대기실로 바로 돌아올 수 있어요. 제가 해제를 하지 않아도요."
"그럼 다행이고."
그 말을 한 순간 세 번째 댐의 물이 빠지기 시작했다.
땅이 물을 흡수하는 것처럼 물은 빠르게 빠졌다.
물이 빠지기 시작하면서부터 사람들의 긴장은 최고에 이르렀다.
어느 정도의 몬스터가 살아남을지 걱정스러운 것이었다.
그러면서 동시에 몬스터의 댐을 바라보는 시선들이 늘어났다.
"헉!"
"왜에에에?"
물이 완전히 빠졌을 때 비명에 가까운 사람들의 탄식이 터져 나왔다.
생각보다 많은 수의 몬스터가 살아남았기 때문이었다.
그동안 댐을 무너뜨릴 때마다 2, 3천의 몬스터가 사라졌으니 이번에도 그럴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것은 상식에 가까운 것이기도 했다.
더구나 이번에는 몬스터를 800미터 밖으로 밀어냈다.
그런데 물이 빠지고 난 후 모습을 드러낸 몬스터의 수는 아무리 적게 봐도 사천은 되어 보였다.
마지막 댐으로 죽인 몬스터의 수는 고작 천여 마리밖에는 되지 않는다는 말이었다.
맥이 딱 풀리는 순간이었다.
몬스터가 많이 살아남았다는 것은 인간이 그만큼 모험을 해야 한다는 말이었고, 승리를 확신할 수 없다는 말이었다.
"걱정하시 마십시오. 우리도 4043명입니다. 한 사람이 몬스터 한 마리씩만 감당하면 승리하게 될 것입니다."
한 사람이 몬스터 한 마리!
쉬운 말처럼 들리지만 각성하지 못한 사람에게는 불가능에 가까운 말이었다.
이 사실을 모르는 사람은 이곳에 아무도 없었다.
하지만 누구도 틀리다고 말하지 않았다.
아니 하지 못했다.
인간이 쏟아 보낸 물이 완전히 빠지기도 전에 몬스터들이 쌓은 댐에 이상 징후가 포착되었기 때문이었다.
크르르르! 캬아아아아아!
댐에서 이상 징후가 시작되자 그것이 신호라도 되는 듯이 몬스터들이 길게 포효했다.
한두 마리가 아니라 사천에 육박하는 몬스터가 동시에 지르는 괴성은 인간을 얼어붙게 만들기 충분했다.
크르르르! 캬아아아아! 크르르르!
살아남은 몬스터의 대부분은 몬늑대였다.
그 중에서도 검은 늑대가 가장 많았다.
민첩하기 때문에 혼자서 상대했다가는 당하기 쉬운 것인 검은 몬늑대였다.
그런데 그 검은 몬늑대의 수가 이천을 넘어가는 것 같았다.
<소리로 유리잔을 깬다고 하더니 몬스터들이 소리로 댐을 무너뜨리려는 모양이네.>
'아니야. 저기 던전쥐가 부수려고 하잖아.'
<어디?>
'저기! 사냥조가 잡았네.'
<크크크! 몬스터들도 이것은 생각지도 못했을 거야. 누가 상상이나 했겠어?>
던전쥐 한 마리만 있어도 이곳의 댐은 무너뜨릴 수 있었다.
그래서 그런지 몬스터들은 십여 마리의 던전쥐만을 남기고 공격을 감행했었다.
하지만 방금 마지막 던전쥐가 사냥조에 의해 목숨을 잃었다.
몬스터들이 아무리 소리를 질러도 댐이 무너질 일은 없다는 말이었다.
혹여 설정으로 인해 무너지기 시작한다고 해도 인간이 만들었던 댐처럼 일시에 무너지는 일은 없을 것이다.
몬스터들이 당황하기 시작했다.
일시에 소리를 지르는 것이 댐을 무너뜨리라는 신호였던 모양이었다.
그런데 무너지지 않고 멀쩡히 있으니 미치고 팔짝 뛸 일이었던 것이다.
몬멧돼지 다섯 마리가 댐을 향해 달리는 것은 댐의 이상 징후가 멈춘 직후였다.
댐을 향해 돌진해서 댐을 무너뜨리려는 것 같았다.
<몬스터들도 무섭네. 저렇게 무너뜨리면 휩쓸릴 텐데.>
댐은 무너뜨린다고 해도 몬멧돼지는 죽음을 피할 수 없을 것이었다.
그런데도 겁 없이 댐을 향해 돌진하고 있었다.
위에서 상황을 파악한 하이큐가 공격 명령을 내린 것은 그때였다.
가장 먼저 공격 대상이 된 것은 몬멧돼지였다.
화살비가 몬멧돼지를 향해 떨어졌다.
하지만 워낙 빨리 움직이고 있어서 치명상을 주지는 못했다.
죽음을 각오한 것인지 화살에 맞아도 댐을 향해 돌진을 멈추지 않기도 했다.
<파이팅 넘치네. 저런 것은 정말 보기 힘든데. 마지막 시험이라고 특별히 준비한 건가?>
나호가 조금은 장난스럽게 말했다.
몬멧돼지의 돌진이 하등에 쓸모없는 짓임을 알기 때문에 하는 농담이었다.
어머니를 제외한 누구도 보지 못하지만 몬스터들이 만든 댐은 우리 소환수들이 지키고 있었다.
그 말은 몬스터에 의해 댐이 무너질 일은 없다는 것이었다.
화살을 맞고도 돌진하는 몬멧돼지를 보고 일부 사람들이 절망에 가까운 탄식을 쏟아냈다.
다섯 마리가 한 번에 댐과 부딪히면 댐이 부서져 내릴 것이라고 생각하는 것이었다.
하지만 절망에 가까웠던 탄식이 놀라움으로 바뀌는 것은 순식간이었다.
댐을 향해 돌진하던 몬멧돼지가 갑자기 꼬꾸라지더니 데구르 아래로 굴러 떨어졌기 때문이었다.
한 마리 정도는 넘어지며 굴러 떨어질 수도 있었다.
그런데 한 마리에 그치지 않고 두 마리, 세 마리로 이어지자 놀라움을 넘어 확신 같은 것을 느끼는 것 같았다.
보이지 않는 손이 자신들을 돕는다고 생각하는 것 같기도 했다.
"댐은 무너지지 않는다! 공격하라!"
하이큐가 높고 우렁찬 목소리로 명령을 내렸다.
몬스터를 처리하는데 최적의 시간이었던 것이다.
몬스터들은 혼란에 휩싸였다.
무너져야할 댐이 제때 무너지지 않은 것도 이해할 수 없는데 댐을 향해 돌진을 하던 멧돼지들까지 모두 시체가 되어버렸기 때문이었다.
댐을 향해 돌진했던 몬멧돼지들은 멧돼지들 중에서도 가장 덩치가 좋은 녀석들이었다.
그런데 그런 몬스터가 종이 구겨지듯 처리가 되었다.
저렇게 맥없이 죽을 녀석들이 아니라는 것을 알기 때문에 더 당황스러워했고, 다섯 마리 모두 시체가 되었을 때는 당황을 너머 공포가 되었다.
그리고 제대로 정신을 차릴 사이도 없이 인간들이 몰려오기 시작했다.
무기를 앞세운 인간의 무리는 위풍당당하기만 했다.
몬스터의 우두머리는 다시 십여 마리의 몬멧돼지를 댐을 향해 보내고는 몰려오는 인간을 대비할 준비를 하려고 했다.
평상시에는 어렵지 않은 일이었다.
그런데 그 순간 그것이 뜻대로 되지 않았다.
무언가가 목을 물었기 때문이었다.
놀라 고개를 돌리니 인간이 아닌 몬스터의 눈이 자신을 내려다보고 있었다.
우두머리는 목숨이 끊어지는 순간까지도 이해할 수 없었다.
인간이 아닌 몬스터에 의해 죽을 것이라고는 단 한 번도 생각해본 적이 없었기 때문이었다.
<흐흐흐! 내가 쭉 지켜보고 있었거든.>
우두머리 몬스터의 목을 놓으며 나호가 한 말이었다.
하지만 누구도 나호가 우두머리 몬스터를 죽였다는 것을 눈치 채지 못했다.
나도 나호를 계속해서 지켜보지 않았다면 몰랐을 만큼 나호의 공격은 빨랐다.
<집사 덕이야!>
'내가 뭘. 네가 워낙 빠른 거지.'
우리가 이들을 돕는 것은 딱 여기까지였다.
나머지는 이들이 충분히 해낼 수 있었다.
사실 몬스터의 우두머리를 처리하지 않았다고 해도 모두 처리할 수 있었을 것이다.
사망자나 부상자가 조금 더 나오기는 했을 테지만 말이다.
우두머리가 사라지자 몬스터들이 우왕좌왕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것은 인간에게는 절호의 기회가 되었다.
그동안 닦은 전투기술을 바탕으로 차근히 몬스터를 줄이는 사람들이었다.
우두머리가 죽기 전 댐을 향해 보냈던 몬멧돼지도 큰아버지께서 이끄는 팀에 의해 죽음을 당했다.
이제 기다리만 하면 될 것 같았다.
그렇게 얼마의 시간이 흐르자 숨이 붙어있는 몬스터는 단 한 마리도 존재하지 않았다.
완벽한 승리였다.
"우와아아아!"
"이겼다아아! 이겼어어어어!"
환호성에 의해 몬스터의 댐이 부서지는 것은 아닌지 걱정스러울 정도로 큰소리로 기쁨을 표현하는 사람들이었다.
그들의 심정이 충분히 이해되는 순간이었다.
<모두 끝났네. 이제 더 이상의 소환은 없겠네. 조금 아쉽기도 해. 이곳도 나쁜 곳은 아니었잖아.>
'우리에게는 특히 더 그랬지.'
지금 우리가 하는 대화를 누군가가 듣는다면 돌 맞기 딱 좋은 말이었다.
갑자기 불려온 비세계가 좋았을 사람은 그리 많지 않기 때문이었다.
먹고 싸고 자는 가장 기본적인 것이 기본이 되지 않는 세상이었다.
현대 문명에 익숙한 사람들에게는 지옥과 다름없는 곳이 비세계였다.
이제는 많이 적응이 됐지만 여전히 어렵고 힘겨운 곳이었다.
그런 곳이 나쁘지 않다니···.
하지만 분명 우리에게는 나쁘지 않은 곳이었다.
아니 이번 생의 비세계는 우리에게는 기회의 땅이었다.
그리고 어쩌면 시스템의 말대로 비세계는 우리에게 기회를 주기 위해 마련된 곳인지도 모를 일이었다.
마지막 몬스터가 쓰러지고 나자 끝을 알리는 시스템의 메시지가 들려왔다.
이제는 누구도 시스템의 메시지에 놀라지 않았다.
당연히 또 어딘가로 이동될 것이라고 생각하는 것이었다.
지구로 다녀오는 것을 기억하지 못하니 당연한 일이었다.
하지만 이번에 들려온 메시지에는 모두가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띠링! 그동안 수고하셨습니다. 열두 번의 시험이 모두 끝났습니다. 여러분은 잠시 후 지구로 돌아가게 될 것입니다.]
"지구? 지구로 돌아간다는 거야?"
"아아아! 엄마아아!"
"와아아아아! 아아앙!"
"지구로 간다고? 정말로오오오?"
반응은 제각각이었지만 모두 기뻐하고 있었다.
이곳의 생활이 너무도 힘겨웠기 때문이었다.
<다 기뻐하는 것은 아니야.>
'알고 있어.'
나호에게 심상으로 대답했다.
지구에서의 생활보다 이곳의 생활을 더 마음에 들어 하는 사람도 종종 있었다.
미우라도 그 중 한 명이었다.
이상하게 비세계에 적응을 잘하는 사람들.
끊임없는 시험과 죽고 죽이는 것이 반복되는 것을 은근히 좋아하는 사람도 있었던 것이다.
모두가 끝이라고 생각하고 있지만 사실은 새로운 시작이 기다리고 있었다.
현실에 닥친 대변혁은 어쩌면 비세계보다 잔인할지도 모를 일이었다.
히든 과제 보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