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당신의 마나통은 안녕하십니까?-173화 (173/350)

173. 히든 과제 보상

[띠링! 개별 보상 후 지구로 돌아갈 것입니다. 지금까지 수고 많으셨습니다.]

<유종의 미를 거두겠다는 건가? 유난히 친절하네.>

나호가 약간 툴툴거렸지만 싫지 않은 기색이었다.

사람들이 워낙 좋아하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나는 집에 돌아가면 욕조에서 세 시간 동안 나오지 않을 거야. 샴푸 한통을 다 써야 할 거야. 하하하!"

어떤 남자가 조금은 쑥스러운 듯 말했다.

"나는 밀가루 음식이 너무 그리워. 햄버거와 빵, 과자! 밥도 너무 먹고 싶다!"

또 다른 여자는 밀가루 음식과 밥을 그리워했다.

"나는 씻고 여자 친구를 만날 거야. 내 변한 몸을 보여줘야지."

"나도. 나도 친구들을 만나야겠어. 날씬해진 나를 보면 놀라자빠질 거야."

"다들 날씬해졌을 걸."

"그래도 상관없어."

1년간 변한 몸매에 만족스러워하는 사람도 있었다.

"이 사람들아. 지금 그것이 문제야? 직장이 잘렸을지 모를 판국에···."

"아! 출근! 실종됐다 돌아왔으니 정상참작을 해주지 않을까요?"

"공무원이야 걱정이 없지만 내 자리는 사라졌을 거야. 그렇다고 내 빈자리를 채웠던 사람을 내쫓자고 할 수도 없잖아."

한 사람의 말이 화근이었다.

조금 전까지 환호성을 지르던 사람들의 얼굴에 그늘이 드리워졌다.

즐거움은 온데간데없이 사라지고 그동안 잊고 있었던 현실의 무게를 느낀 것이었다.

그 순간 사람들의 표정에는 참으로 많은 감정이 스치고 지나갔다.

어떤 사람은 지구로 돌아가는 것을 원하지 않는 듯한 표정을 짓기도 했다.

"겨우 여기 생활에 적응했는데 또 다시···."

차마 뒷말은 하지 못하지만 무슨 말을 하고 싶은 것인지 알 것 같았다.

"우리, 우리는 어떻게 되는 거죠?"

"당연히 지구에 가서도 만나야지. 우리가 이렇게 끝낼 사이는 아니잖아. 걱정하지 마! 내가 꼭 당신 찾으러 갈 테니까."

어떤 사람은 이곳에서 미래를 약속하고 있었다.

비세계를 기억하지 못하는 결정적이 이유가 됐을지도 모를 일이 이런 부분이었다.

이곳에서 맺은 인연들!

이것을 기억한다면 생길 수 있는 일들은 너무도 많았다.

<사람들이 쓸데도 없는 것을 고민한다더니 정말 그렇구나. 저런 것을 보니 확연히 알겠어.>

'본인들에게는 심각한 일이야.'

<알아! 그래서 더 의미 있게 보이는지도 모르겠어. 사람들이 심각하다고 생각하는 일 중 얼마나 의미가 있을까? 사람에게까지 갈 필요도 없어. 실체를 갖는 거 말이야. 그것도 저런 것일 수 있잖아.>

'철학해? 노자?'

대수롭지 않게 반응했지만 나호가 뭘 말하고 싶은지 알고 있었다.

사람들이 주고받는 말을 들으며 비슷한 것을 느끼고 있던 참이었다.

"여기서 있었던 일들을 책으로 쓸 거야. 그리고 쓰레기 같았던 놈들이 버젓이 얼굴 들고 살지 못하도록 만들 거야."

"나도! 나도 지구로 돌아가면 그 놈들 절대로 가만두지 않을 거야."

각자가 말하는 나쁜 사람은 각기 다를지 모르지만 저런 것도 문제였다.

만약 비세계의 일들을 세세하게 기억했다면 차분하게 대변혁을 맞이하지 못했을 것이다.

복수의 칼부림으로 한동안 혼란을 겪었을 테니 말이다.

<저들에게 기억하지 못할 거라고 말하면 믿을까?>

'미쳤다고 하겠지. 본인들이 지금 지구에서의 일을 전부 기억하지 못하고 있다는 것도 모르는 사람이 많은데···. 믿겠어?'

기억이라는 것은 참 묘했다.

교묘하게 편집이 돼서 그런지 지구에서의 일을 기억하지 못해도 잠시 혼란스러워했을 뿐 생활하는 데는 문제가 없었다.

스스로 가장 합리적이라고 생각하는 이유를 만들어내고 그걸 믿는 것 같기도 했다.

'개별 보상이라고 하더니 왜 아무런 말이 없지?'

혹시 뭔가 표정이 변한 사람이 있는지 살폈다.

누군가 개별 보상을 받는 듯한 표정을 짓고 있는 사람이 있는지 살핀 것이었다.

하지만 그런 사람은 보이지 않았다.

이 그룹에서 가장 높은 점수를 받았을 것으로 추정되는 하이큐도 동료들과 담소를 나누고 있을 뿐이었다.

"여기서 돌아가면 선수 생활을 할까해."

"그 정도로는 안 돼. 모두의 기준이 올라갔잖아."

지난 1년간 실전에서 쌓은 기술들로 미래를 꿈꾸는 사람도 있었다.

"그것보다 우리 모두 정신병원부터 가야할지도 몰라. 여기서 경험했던 일들은 너무···."

"나는 가지 않을 거야. 정신병원 이력은 좋을 것이 없어."

"우리 아들은 1년이나 학교를 쉬어서 어떻게 해야 할지···. 여기 일 때문에 적응도 힘들 텐데 친구들과 학년 차이까지 나면···."

자녀와 함께 불려온 가족은 이런 것을 걱정하기도 했다.

"우리도 네가 있지 않았다면 똑같았을 거다."

어머니께서 내 손을 잡으며 말씀하셨다.

"그동안 고생하셨어요. 어머니."

"내가 아니라 네가 고생했지. 남들 보다 두 배로 하느라 고생 많았다. 고맙고."

"그만큼 얻은 것도 많았어요. 그리고 지켜보는 것이 다였어요."

횟수가 거듭될수록 내가 도울 일은 많지 않았다.

세 분을 위해서도 내 움직임은 자제해야 했기 때문에 지켜보는 것이 대부분이었다.

"그게 더 어려운 일이잖니. 지켜보는 거. 널 키울 때도 은근히 그것이 어렵더라. 차라리 내가 하고 말지라고 생각되는 순간들이 많거든."

세 분 중 가장 참을성이 많지 않은 것은 늘 아버지셨다.

하지만 그것이 걱정과 사랑에서 비롯되는 것을 이제는 확실히 알고 있었다.

이것을 정확하게 알기 전까지는 아버지란 존재는 늘 어려웠다.

하지만 지금은 그렇지 않았다.

"고생했다. 대한아."

이렇게 손을 잡아오는 아버지가 계셔서 다행스러울 뿐이었다.

"아버지도 고생하셨어요."

막 그 이야기를 했을 때 시스템의 메시지가 다시 들렸다.

[지구로 돌아갑니다.]

이 말과 함께 사람들이 허공으로 떠오르며 사라졌다.

사천 명이 넘는 사람이 있었던 공간은 나를 제외하고는 아무도 남지 않았다.

<다 갔네. 이번에도···. 다른 그룹의 시험이 끝날 때까지 기다려야겠지?>

"그러겠지. 그래야 마나통도 사고 미우라의 마나통도 받지."

<미우라의 마나통! 으흐흐흐! 생각만 해도 너무 좋아. 집사! 나 이러다가 악당이 되는 것은 아니겠지?>

"미우라를 상대로라면 악당이 되는 것도 나쁘지 않지."

<역시! 그나저나 미우라 놈 보면 실체화하고 싶을 텐데 큰일이네.>

"그건 좀 신경 써야 해. 겨우 얻은 몸을 다시 잃을 수는 없잖아."

<알아. 그런데 그놈 뒤통수는 늘 매를 부르더라고. 때리는 맛도 있어. 놈이 반응을 하니까 더 때리고 싶어지더라고.>

"움직이자. 저것부터 팔아치워야지."

이곳에 쌓여있는 몬스터의 사체는 엄청났다.

만여 마리의 몬스터 사체가 널브러져 있으니 재난 영화 속에 들어와 있는 것 같기도 했다.

대부분의 사람에게는 징그러운 사체로 보였겠지만 내게는 모두 마나로 보였다.

<따로 설정하지 않고 그냥 도축할 거야?>

"여기 있는 몬스터는 특별히 챙긴 만한 것이 없어. 그나마 괜찮은 것이 가죽과 고기야."

바로 도축부터 했다.

도축을 하자 사방에 흩어져 있던 몬스터의 사체가 도축이 되며 마트에 진열된 상품처럼 가지런하게 정돈되었다.

<아우! 이거지. 정신이 없어서 혼났네. 집사는 중간에 도축하고 싶은 거 어떻게 참아? 나는 답답해 미치겠더라.>

나호의 말에 그저 한 번 씨익 웃어주고는 시스템과 부산물 거래를 했다.

만여 마리의 몬스터에게서 따로 챙기는 것은 없었다.

고기와 가죽까지 모두 팔아치운 것이었다.

다른 때 같으면 쪼롱이가 고기를 남겨달라고 했겠지만 지금은 쪼롱이도 욕심을 부리지 않았다.

맞춤 시험에서 워낙 많은 고기를 확보해두었기 때문이었다.

<얼마 들어왔어? 에게···! 이게 다야?>

"맞춤 시험에서의 단가와 비교되기는 하네."

만여 마리의 몬스터, 그것도 가죽과 고기까지 모조리 팔았는데 내게 들어온 것은 2천 마나가 고작이었다.

던전쥐 같은 값이 거의 나가지 않는 몬스터가 많았던 것도 이유가 되겠지만 단가차이도 무시하지 못하는 것 같았다.

"마나통은 아직 구매할 수 없지?"

[그렇습니다. 모든 시험이 끝나야 합니다. 그때까지는 자유입니다.]

"알겠어."

대답을 하고 향한 곳은 몬스터들이 세운 댐이었다.

인간들이 세운 댐도 그렇지만 몬스터들이 세운 댐도 나름 물을 잘 가두어두었기 때문이었다.

<여긴 왜?>

"대변혁 이후 생각나지 않아?"

<뭘 말하고 싶은 건데? 혹시 수도?>

"응! 늘 말썽이었잖아."

<그런 생활도 오래되니까 다들 익숙해졌잖아.>

"물을 어떻게 이용하면 좋을지 힌트를 얻을지도 모르니까."

뮤! 뮤! 뮤!

^우리 집사 섬세하다. 좋은 지도자가 될 거다.^

도뮤가 만족스러운 표정을 지으며 쳐다보고 있었다.

<소환수에게 칭찬받으면 어떤 기분이 들어?>

"좋지. 그 누구에게 들은 칭찬보다도 더."

<그래? 그럼 나도 시시때때로 칭찬해줄까?>

"됐어!"

몬스터가 만든 댐은 의외로 견고했다.

"몬스터는 이런 것을 어떻게 알게 되는 거야? 너희가 생각을 심어주는 거야?"

시스템이 대답할 리 없다는 것을 알지만 혹시나 하고 물은 것이었다.

간혹 예상치 못하게 대답을 해줄 때도 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이번에는 어떤 대답도 돌아오지 않았다.

<전생에 몬스터들이 너무 영리하게 움직일 때가 몇 번 있기는 했지.>

"몇 번이 아니지."

몬스터는 시간이 갈수록 영리해졌다.

나중에는 몬스터 중 인간과 흡사한 소리를 내는 놈까지 등장했었다.

'흉내쟁이'라는 별명이 붙은 놈이었는데 이런 개체를 만나는 날에게 기분이 좋지 않았다.

분명 몬스터를 사냥했는데 왠지 인간을 죽인 것 같은 찝찝함을 선사했기 때문이었다.

인간과 흡사할수록 더 오래 살아남을 수 있다는 것을 알게 된 몬스터들이 그렇게 진화를 했는지도 모를 일이었다.

"한 번 무너뜨려봐야겠어. 이걸 막지 못했다면 어떻게 됐었는지도 볼 겸."

<나쁘지 않지. 어차피 할 일도 없잖아.>

아무리 짧아도 일주일 이상을 기다려야 했다.

그러니 이런 소소한 재미는 누려도 좋을 것 같았다.

댐을 무너뜨렸다.

쌓는 데는 시간이 걸리지만 무너뜨리는 것은 순식간이었다.

한쪽이 무너진 댐은 와르르 전체가 무너지며 물이 쏟아져 내려가기 시작했다.

콰르르르르! 콰콰콰아아아아! 콰르르르르!

인간이 쌓은 댐이 무너질 때도 위력이 엄청났지만 몬스터가 쌓은 댐에는 비교가 되지 않는 것 같았다.

<와우! 무섭네. 이 댐이 무너졌다면 살아남는 인간은 소수였겠다.>

나호가 말을 하는 사이 물은 어느새 인간이 쌓았던 첫 번째 댐이 있던 자리를 지나 위로 향하고 있었다.

물의 기세는 무서울 정도였다.

금세 두 번째 댐이 있던 자리까지 넘더니 이내 세 번째 댐이 있던 자리도 가볍게 넘었다.

그리고 기세 좋게 고지를 향해 치닫기 시작했다.

<이거 은근히 응원을 하게 되네.>

"인간이 있었으면 중간에 속도가 조금 줄었을 거야. 그럼 고지까지는 닿지 못했겠지."

댐에서 흘러간 물은 가볍게 고지까지 닿더니 다시 돌아오기 시작했다.

물론 다시 댐 쪽으로 돌아오지는 않았다.

몬스터를 쓸고 흘러갔던 곳을 향해 시원스럽게 달려갔다.

장애물이 없어서인지 물은 1킬로미터 이상 흘러가더니 멈추었다.

찰랑!

물이 이번에는 빠지지 않았다.

저곳까지 물이 닿으면 욕조의 마개를 뺀 것처럼 빠지던 물이 지금은 전투의 현장에 그대로 고여있었던 것이다.

<호수가 되어버렸네. 고지도 그렇겠지?>

"물이 들어갔으니 욕조 같겠지."

고지는 크지 않았는데 혹시 모를 일을 대비해서 빙 둘러서 담을 쌓았었다.

물이 덮쳤으니 분명 둥근 욕조나 수영장처럼 보일 것이 분명했다.

그런데 그 순간이었다.

[띠링! 축하합니다. 히든 과제를 달성하셨습니다. 그것도 완벽하게요.]

"갑자기 무슨 소리야? 혹시 몬스터의 댐을 무너뜨린 것이 숨겨진 과제였어?"

[몇 가지 조건이 더 달성 되어야 합니다. 첫 째 인명 피해 없이 모든 댐이 무너질 것! 둘째 어느 쪽이든 고지에 물이 가득 담길 것! 세 번째 이곳을 호수로 만들 것!]

"그래서 잠시 기다렸던 거야? 인간들이 댐을 무너뜨리는지 보기 위해?"

[그렇습니다. 모두 이야기하느라 바빴지만요.]

<그냥 말을 해주지. 그럼 모두 해냈을 텐데.>

"말을 해도 해낼 수 있는 그룹은 많지 않았을 거야. 저런 기세의 물인데 인명 피해가 없었겠어?"

[띠링! 히든 과제를 달성하셨으니 그에 합당한 보상을 지급하겠습니다.]

<보상이라면 언제나 환영이지.>

나호의 입 꼬리가 올라가고 있었다.

열두 번의 소환과 열두 번의 시험을 모두 마치고 난 후 히든 과제를 달성하게 될 것이라고는 생각지도 못했다.

생각지도 못한 것이니 적당한 마나만 줘도 고마울 것 같았다.

그런데 기대치를 한참 상회하는 보상이 지급되었다.

[띠링! 히든 과제를 달성한 강대한 님께는···.]

거한 선물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