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6. 찔러 넣었다.
'뭘 물어. 혼내줘야지.'
일부러 나를 따라 온 것 같지는 않지만 무척이나 거슬리는 여자였다.
"인터뷰 좀 하자고요. 그럼 여기에 찍힌 영상은 지워줄 수도 있어요. 어차피 사람들이 조작이라고 할 거니까 굳이 올리지 않아도 되죠. 물건이 허공으로 사라졌는데 누가 믿겠어요?"
여자는 자신이 확실히 봤다는 것을 강조하고 있었다.
"알아서 하십시오."
말을 하고는 등을 돌렸다.
<집사 혼내준다면서. 왜 그냥 가?>
'내가 직접 할 필요는 없잖아.'
<아! 그렇지. 집사가 직접 할 필요는 없지. 흐흐흐! 여자가 어떤 표정을 지을지 기대가 되네.>
"아니! 그냥 가시는 거예요? 강대한 씨! 강대한 씨! 야! 강대한! 나보다 어린놈의 새끼가 버릇이 없네."
제법 멀어져서 듣지 못할 것이라고 생각하는지 막말까지 쏟아내는 여자였다.
곱상하게 생긴 얼굴이 아깝다는 생각이 들었다.
<요즘은 성형들을 해서 그런지 관상과 성품이 다른 경우가 많더라. 예전에는 얼굴을 보면 어떻게 살아왔는지 알 수 있었는데···.>
나호가 혀를 끌끌 차며 말했다.
그냥 갈까 하다가 뒤를 돌아보았다.
순간 여자가 움찔하며 뒤로 물러났다.
<저렇게 무서워할 거면서 왜 저래? 개인 방송 좀 하면서 돈 좀 만지나 보네. 겁을 완전히 상실했어.>
더 이상 상대해주기 싫어서 몸을 돌려 걸음을 옮겼다.
그러자 다시 욕설이 들려왔다.
"야! 내가 그러면 겁이라도 먹을 줄 알았냐? 월평이면 단 줄 알아! 나도 한 가닥 하는 집안의 딸이라고! 이거 왜이래!"
<집사! 저 여자 집안 좀 알아봐야겠다. 대변혁 이후에 문제 일으킬 집안들은 미리 밟아놔야지.>
여자가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니 사람들의 시선이 몰려들었다.
나라 망신까지 시키는 여자였다.
하지만 여자는 다른 사람의 시선은 상관없다는 듯 다시 소리 질렀다.
"너! 가만두지 않을 거야. 월평도 마찬가지고. 한국에서 기업하면서 우리 집안 입김을 무시할 수 있는 기업이 흔한 줄 알아!"
여자는 생각보다 대단한 집안출신인 모양이었다.
하지만 그런 것에 쫄 내가 아니었다.
"도뮤야! 저거 가지고 와. 가지고 올 수 없으면 네가 다 먹어도 돼."
뮤! 뮤! 뮤!
^정말? 내게 시켜주는 거야? 고마워. 집사!^
도뮤가 감격에 겨워하더니 대기실을 나와서 여자에게 날아갔다.
던전 도깨비는 사람들 눈에 띄지 않았다.
이건 소환수들을 보이지 않게 해주는 것이 끝이 나도 마찬가지였다.
던전 도깨비는 나와 도뮤가 허락하지 않으면 아무도 볼 수 없었다.
여자는 내가 충분히 멀어졌다고 생각하는지 계속해서 툴툴거리고 있었다.
몇몇 사람들이 눈살을 찌푸리고 있는데도 그것을 느끼지 못하는 것 같았다.
"가만두지 않을 거야. 영상을 올려버릴 거라고! 너는 이제 죽었어!"
<저런 걸 찍어서 어쩌겠다는 건지···.>
"특종이라도 건졌다고 생각했겠지."
이내 비명소리가 들려왔다.
그리고 뒤이어 욕설이 들려왔다.
"아아악! 내 카메라! 내 카메라아아! 너지? 네가 그런 거지? 너 정말 외계인과 관계있는 거지? 야! 야아아! 야아아아! 거기 서어어!"
여자가 소리를 지르며 발광을 하는 것 같았다.
그리고 경관이 여자에게 접근을 하는 것 같았지만 나와는 상관없는 일이었다.
이미 500미터 이상 거리가 있었기 때문에 누구도 여자가 하는 말을 믿지 않을 것이 분명했다.
<정신 병원에 가게 될지도 모르겠네. 처음으로 집사가 외계인과 소통하네 마네 하는 영상을 올린 것도 저 여잔가?>
뮤! 뮤! 뮤!
^먹고 왔다. 맛없다. 그것도 많이.^
도뮤가 대기실로 돌아와서 입을 쩍 벌렸다.
입 안에는 여자의 망원경이 부러진 채 들어있었다.
"이미 영상을 다른 곳에 보냈을 수도 있는데···. 뭐 상관없지 뭐."
요즘 카메라는 영상을 찍으면 컴퓨터 폴더나 이메일로 자동으로 보내주는 기능이 있는 경우가 많았다.
<저건 빈티지 제품이라 그런 것까지는 안 될 것 같은데?>
"영상이 올라가도 상관없어. 여자 말처럼 대부분 조작이라고 할 거고 믿는 사람이 있다고 해도 이제는 신경 쓰지 않아. 가자."
도뮤는 맛이 없다면서도 망원경을 뱉지 않고 있었다.
그런데 심하게 인상을 찡그리고 있어서 살짝 걱정이 되었다.
<저 여자 저러다 연행되겠는데?>
나호는 여자에게서 시선을 떼지 않고 있었다.
<성질 머리 하고는···. 아주 지랄발광을 다하네. 저 여자 저래놓고 나중에 '영국에서 경찰서 가본 썰'이러면서 영상 올리는 것은 아니겠지?>
"그러든지 말든지···."
생각할 가치도 없는 여자였다.
일본으로까지 찾아왔다고 해서 정말 열심히 사는 사람이라고 생각했는데 아니었다.
우리는 바로 미리 예약해 둔 숙소에 들어왔다.
숙소에 들어오자 도뮤가 대기실에서 총알처럼 나오더니 화장실로 들어갔다.
화장실 문이 닫힌 직후 토하는 소리가 났다.
조금 후 물까지 내리는 도뮤였다.
뮤! 뮤! 뮤!
^맛이 없어 혼났어. 악취도 심하고···. 좋은 일에 사용된 물건이 아니야.^
"치유수 한 잔 줄까?"
뮤!
^나야 고맙지.^
꼬물이의 던전에서는 치유버섯이 계속 열렸다.
물론 많이 열리는 것은 아니었다.
성장도 빠른 편은 아니었지만 우리가 쓸 양은 충분히 생산되고 있었다.
물론 꾸준히 시스템에게 생산량의 30%를 팔고 있었다.
뮤! 뮤! 뮤!
^역시 친구 던전에서 나온 치유수가 최고다. 입이 다 개운해진다. 나 이거 먹을 때마다 강해지는 것 같다.^
이건 도뮤만 하는 이야기는 아니었다.
소환수들이 모두 공통적으로 하는 이야기였는데 다들 버섯 치유수를 먹고 실제로 공격력과 방어력이 상승했다.
이건 나에게도 해당되었다.
전투 전에 먹어도 좋은 약이었던 것이다.
<내일은 어디 갈 거야?>
"내일까지 기다릴 것은 없지. 조금 쉬었다가 바로 나가야지. 너도 좀 쉬어. 피곤하다고 했잖아."
<미친년 때문에 잠이 달아났어. 집사야 말로 좀 자. 피곤할 텐데.>
"나는 괜찮아."
서로 괜찮다고 사양하다 둘 다 잠시 침대에 누웠다.
쉼이 필요하기는 했다.
마지막 소환에서 돌아와서 쉴 시간이 많지 않았다.
쉴 시간이 주어졌다고 해도 쉬지 않았겠지만 말이다.
<어디에 갈 건데?>
"박물관에 가보려고."
<거기도 덩굴이 나왔으면 좋을 텐데. 한국에 꼭 옮겨 심고 싶은데···.>
영국에 올 때 마다 꼭 찾는 곳이 있는데 이곳도 그 중 한 곳이었다.
이 덩굴이 나왔다면 이건 반드시 한국으로 가지고 가야 할 것이었다.
특별하게 좋은 던전은 아니지만 전생에 지옥 던전과 비교되며 '천사'라고 불린 던전이었기 때문이었다.
우리는 낮잠을 한 시간 정도 잔 이후에 바로 천사 던전가 있었던 런던 박물관으로 향했다.
꼬물!
꼬물이가 런던 박물관으로 들어가기도 전에 먼저 반응했다.
<왜? 던전 덩굴이 있는 거야?>
나호가 기대어린 목소리로 물었다.
꼬물!
^던전이에요.^
<집사!>
"어쩔 수 없지. 내 소유로 하면 가져가지 못해도 괜찮아."
<그렇긴 하지. 영국에도 이미 장프가 자라고 있는 던전을 확보해 두었으니까.>
"저 던전도 장프가 있었던 것 같아."
[전생에 천사 던전에는 장거리 워프게이트가 있었습니다.]
권능 기억이 확인해주었다.
<잘됐네. 흐흐흐!>
전생에 우리는 천사 던전에 입장할 수 없었다.
지옥 던전을 클리어 해줘도 우리에게는 기회가 돌아오지 않았다.
영국 정부에서 입장객을 철저하게 통제했기 때문이었다.
자국민만을 입장시킨다며 헌터들을 영입할 때마다 협상카드로 사용했었다.
들어가 보지는 못했지만 워낙 많은 사람들이 들어갔다 나왔기 때문에 직접 들어가 본 것 이상으로 정보는 많았다.
그리고 드디어 금단의 땅과 다를 바 없었던 던전의 입구를 통과했다.
<이거 느낌 이상하다. 여기 올 줄 알았으면 자지 않고 버텨볼걸. 집사는 어때? 느껴져?>
"글쎄. 우리가 너무 잘 먹고 사나봐. 전혀 모르겠어."
이 던전이 천사 던전으로 불리고 영국이 자국민만을 들어가게 했던 이유가 있었다.
이 던전은 입장과 퇴장을 할 때 최하급 치료수를 한 잔 마신 것과 같은 효과를 느낄 수 있었다.
비록 F급 치료수 한 잔 정도의 효과였지만 이것은 결코 작은 것이라고 말할 수 없었다.
쇠락의 길을 걷고 있던 영국을 그나마 지탱해줬다고 평가를 받던 던전이었다.
하지만 나는 입장할 때 별다른 느낌을 받지 못했다.
대변혁 이후에나 느낄 수 있게 되는 건지···.
<이 던전 집사 소유로 넘어오면 어떻게 사용할 거야?>
"생각해봐야지. 우선은 클리어부터하자."
던전 입구에는 위험한 것이 없었다.
그런데 이 던전은 전생에 들었던 모습과 완전히 달랐다.
아직 대변혁 전이라서 그런지는 알 수 없지만 말이다.
위험한 몬스터가 없어서 이 던전에 들렀다가 다른 던전 공략을 간다고 했는데 눈앞에 거대한 몬스터가 나타난 것이었다.
<어? 벌써 저런 것이 나오나? 집사! 어떻게 생각해?>
"천사 던전이 클리어 전에는 천사가 아니었다고 하더니 저것 때문일 수도 있지."
<맞아. 그랬어. 클리어를 하고 나서 얌전해진 던전이라고 했었지. 그런데 저거 어떻게 처리해?>
"열심히. 가자."
우리 앞에 나타난 몬스터는 방어력으로는 최강이라는 말을 들은 녀석이었다.
몸집이 클수록 강하다고 알려진 몬스터로 이름은 '바위골렘'이었다.
바위 모양을 하는 것이 대부분이지만 바위 위로 나무가 자라는 경우도 있었다.
자라는 나무가 많을수록 바위골렘의 공격력과 방어력이 높다고 하는데 눈앞의 바위 골렘은 온 몸 가득 나무를 가지고 있었다.
<집사! 이거 또 시스템이 장난하는 거 아니야? 너무 많은 던전 차지한다고?>
"그럴 수도 있지. 하지만 시스템이 장난을 해놨다면 그에 합당한 보상도 줄 거야."
쫑!
"바위 골렘은 너희가 할 일이 없을 거야."
쪼롱이가 바위 골렘에 관해 설명해주지 않자 먼저 물었다.
<맞아! 바위 골렘을 상대로 너희가 할 일은 지금 당장은 없어. 집사가 충분히 공격을 하면 바위 골렘의 심장이 밖으로 나오거든. 그때 공격해줘. 잘 보고 있다가.>
나호가 바위골렘에 대해 침착하게 설명했다.
"심장이 어디로 튀어나올지 몰라. 튀어나오는 시간도 얼마 되지 않으니까 잘 보고 있다가 깨부숴버려."
쫑!
이제야 만족스러운 소리를 내는 쪼롱이었다.
창을 들고 바위 골렘에게 다가갔다.
바위 골렘은 꿈쩍도 하지 않고 앉아있었다.
내가 자신을 바위로 인식한다고 생각하는 것 같았다.
모르는 사람이 봤으면 영락없는 거대한 바위이니 나를 속였다고 생각한 것 같았다.
무심한 척 다가가 바위를 밟고 올라갔다.
일정한 타격을 가하기 전까지는 움직이지 않는 녀석들이니 문제될 것은 없었다.
이제부터가 중요했다.
되도록 공격하는 일 없이 바위의 정상까지 올라가야했다.
정상에 심겨진 나무 아래를 공격했을 때 바위골렘에게 가장 큰 타격을 줄 수 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그 전에 바위에 충격을 가하면 바위 골렘이 움직이기 시작하고 그럼 놈을 처리하기 어려워졌다.
지금 눈앞에 나타난 바위 골렘의 크기는 최소 20미터!
앉아 있을 때의 크기였다.
이 녀석이 일어서면 최소 50미터 이상일 것이 분명했다.
정수리에 타격을 가하기 전까지는 일어나지 않도록 조심하는 것이 상책이었다.
바위에 충격이 가해지지 않도록 조심하면서도 빠른 속도로 바위를 올랐다.
<집사! 거의 다 왔어. 그 나무는 피하는 것이 좋을 것 같아.>
바위 골렘을 오를 때 건드리면 안 되는 나무들이 있었다.
그 나무들을 건드리면 나무가 움직이는데 사람을 공격하기도 하지만 바위를 두드렸다.
바위에 충격을 가해 골렘을 깨우는 것이었다.
정수리에 충격을 가하기 전 골렘이 일어서게 되면 바위에서 내려와 다시 골렘을 올라야했다.
그럼 바위 골렘을 잡는데 고생을 할 수 밖에 없었다.
그래서 나호의 도움을 받아 나무들을 구분하며 올라갔다.
땅속까지 살필 수 있는 나호가 있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었다.
<그 나무도 피해야 해.>
'고마워.'
<움직이는 나무는 뿌리가 확실히 다르네. 전생의 소문이 사실이었어.>
'새까매?'
<어! 새까매. 마치 죽은 뿌리처럼. 마치 뿌리에 좀비가 생길 것처럼 생겼어. 좀비나 뼈다귀에게 힘을 다 빼앗기고 좀비 식물이 된 것처럼 보이기 해.>
나호의 도움을 받아 정수리에 도착해 공격해야 하는 나무를 찾았다.
나무는 어렵지 않게 찾을 수 있었다
찾은 이상 망설일 이유는 없었다.
과감하게 창을 찔러 넣었다.
거의 창 하나가 사라질 정도로 깊이 찔러 넣었을 때 들려오는 메시지가 있었다.
[띠링!
바위 골렘의 심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