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7. 바위 골렘의 심장
[띠링! 바위 골렘이 잠이 듭니다.]
<이런 씨이이이이···.>
나호가 터져 나오려는 욕설을 삼켰다.
<또 시작 됐구만. 시작 됐어. 집사! 조심해!>
나호가 다급하게 외치며 실체를 불러오려고 했다.
"괜찮아. 아무렇지도 않아."
나호에게 말을 하며 중심을 잡고 바위 골렘 위에서 내려오고 있었다.
애써 올라온 바위 골렘의 정상에서 다시 내려가려는 이유가 있었다.
'바위 골렘이 잠이 듭니다.'
바로 이 말 때문이었다.
일정한 타격을 받기 전까지는 어떤 움직임도 보이지 않은 바위골렘을 공격했을 때 간혹 저런 메시지가 나올 때가 있었다.
바위 골렘을 상대하고 있을 때 이런 메시지가 나오면 헌터들은 누구나 욕설을 내뱉었다.
그리고 재주 옴 붙었다고 생각했다.
저 메시지가 나오면 처음부터 다시 시작해야 했기 때문이었다.
짜증나지 않을 수 없는 상황이었다.
메시지가 나오면 바위 골렘은 자신에게 붙은 생명체를 털어내기 위해 몸부림을 하는데 이것도 조심해야 했다.
자칫 추락이라도 하게 되면 죽을 수도 있기 때문이었다.
방금 잠이 든다고 했으니 정수리까지 올라가서 창을 찔러 넣은 것도 아무 의미 없는 행동이 되어 버렸다.
바위 골렘이 몸부림치기 전에 먼저 내려오려고 했다.
그런데 이번에는 바위 골렘이 조금 더 빨랐다.
자신 몸에 난 많은 나무를 이용해서 나를 친 것이었다.
순간 타격에 나가떨어질 뻔 했지만 다른 나무를 붙잡고 몸을 날렸다.
<집사! 조심해!>
몸을 띄운 순간 나호가 놀라 소리를 질렀지만 이런 순간 나는 놀랄 필요가 없었다.
소환식물들이 있기 때문이었다.
꼬물이의 거대한 뿌리가 다가오더니 나를 잡아서 바닥에 내려주었다.
소환 식물의 도움이 없이도 떨어지는 일은 없었겠지만 꼬물이의 도움을 받는 것도 나쁘지 않았다
"고마워!"
<와우! 이건 또 생각하지 못했네. 꼬물이가 참 영리해.>
나호가 새삼 놀랐다는 듯한 표정으로 꼬물이를 쳐다보았다.
꼬물이의 거대한 뿌리는 나를 내려놓더니 부끄럽다는 듯이 조심스럽게 대기실로 돌아갔다.
제 몸에 달라붙은 생명체가 없는 것이 확인 되자 바위골렘이 다시 잠잠해졌다.
일종의 냉각기를 갖는 것처럼 얌전해진 것이다.
<설마 이런 일을 우리가 경험하게 될 줄은 몰랐네. 집사 행운이 14지?>
"14지. 행운 능력치로는 우연히 긁은 즉석복권이 당첨이 돼도 이상하지 않을 수치지."
<그런데 잠이 든단 말이지? 다른 사람들이 들어왔다면 이런 일을 몇 번이나 겪어야 했을까?>
"모르지. 다시 해보자."
20미터 높이의 바위에 오르는 것은 어렵지 않았다.
그냥 한 번에 훌쩍 뛰어올라도 된다면 더 어렵지 않았을 것이다.
그런데 이렇게 큰 바위골렘은 꼭 밟아야하는 지점이 있었다.
바닥부터 직접 올라가야 바위골렘과 상대할 수 있는 자격을 주겠다는 설정이었다.
그래서 다시 바위골렘을 밟고 올라가려는데 바위 골렘이 살짝 부르르 떨었다.
<아주 제대로 골탕을 먹이려고 하네. 다 쓸모없다는 것을 알 텐데.>
바위 골렘이 잠이 든 후 저렇게 떨면 포인트가 변한다.
밟아야 하는 지점도, 만지지 않아야 하는 나무도 다 바뀌는 것이었다.
다시 갖은 시행착오를 거치라는 말과 같았다.
하지만 나호가 있는 나에게는 아무 의미 없는 변화일 뿐이었다.
밟아야 하는 지점은 표시가 되니 그 표시대로 밟고 올라가기만 하면 크게 문제가 없었다.
이렇게 밟기 고약한 지점에 표시가 되어있지만 않다면 말이다.
<아오! 집사! 이거 시스템에게 따져야해. 분명 전생에는 이렇게 까다롭게 하지 않았을 거야.>
"나를 높게 평가한다고 생각하면 그만이야."
나무만 조심하면 됐기 때문에 쉽게 꼭대기에 오를 수 있었다.
그리고 다시 창을 찔러 넣었다.
정수리에 창이 찔리자 바위 골렘이 움직이기 시작했다.
이제 타격을 줘서 심장이 밖으로 튀어 나오게만 하면 바위 골렘을 잡을 수 있었다.
콰아앙! 콰아아앙!
인벤토리에 보관 중이던 가장 큰 망치를 가지고 바위골렘을 내리치기 시작했다.
바위 골렘 위에서 자라고 있는 나무들이 바위 골렘을 보호하기 위해 공격을 했다.
잘 자란 가지들이 무서운 속도로 다가왔다.
제대로 맞으면 어디든 한 방에 부서질 것 같았다.
두터운 가지를 가볍게 피하며 망치를 내리 찍었다.
콰아앙! 콰아앙!
몇 번 더 내리치고 싶었지만 다시 나무들이 무서울 정도의 속도로 공격을 감행했다.
뿐만 아니라 바위 골렘의 팔이 생겨나기 시작했다.
바위로 이루어진 팔이 나를 잡겠다고 자기 자신을 때렸다.
자신을 때리는 것도 바위골렘의 방어력을 깎아 먹는다면 계속해서 골렘이 자신을 때리도록 유도를 했을 것이다.
콰아아아앙! 콰앙! 콰아아앙!
하지만 바위골렘이 자기 자신을 때리는 것은 바위골렘에게는 어떤 데미지도 주지 않았다.
이해할 수 없는 일이지만 그렇게 설정이 되어 있는 것 같았다.
아무튼 바위로 이루어진 주먹과 나무 공격을 피하며 꾸준히 바위골렘에게 유효타를 먹였다.
그러자 바위 골렘이 주저앉았다.
서면 50미터이지만 앉으면 20미터인 바위골렘이었다.
<집사! 주저앉았어. 끝이 보여! 조금만 힘내!>
이제 정말 끝이 얼마 남지 않았다.
바위 골렘의 움직임도 둔화되고 있는 것이 곧 심장을 내놓을 것 같았다.
그런데 그 순간 다시 메시지가 흘러나왔다.
[띠링! 바위 골렘이 잠이 듭니다.]
<뭐? 뭐가 된다고?>
바위 골렘이 잠이 든다는 메시지와 함께 다시 탈탈 몸을 터는 바위 골렘이었다.
훌쩍 뛰어 바위에서 내려왔다.
바위 골렘의 움직임이 멈추었다.
잠이 들어버린 것이었다.
처음부터 다시 시작해야 한다는 말이기도 했다.
꼬물!
^짜증나는 바위!^
<이거 봐! 얼마나 심하면 꼬물이까지 저런 말을 하겠어? 이건 시스템의 농간이 분명해.>
나호의 말대로 시스템의 농간이라고 해도 인간인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없었다.
"짜증날수록 빨리 클리어를 해버리면 그만이야."
<조금 쉬었다 해. 공격 시작하면 쉴 새 없잖아.>
바위 골렘은 연속해서 공격을 해야 했다.
공격이 멈추면 금세 체력을 회복하기 때문이었다.
대형 망치를 연속해서 내리쳐야하는 것은 의외로 힘이 드는 일이었다.
"근력 능력치를 활성화시킬 때가 되기는 했어."
<맞아! 집사 이제 남은 일반 능력치는 모두 활성화 시켜. 지력도 정신력도. 정신력도 은근히 중요하잖아. 대변혁 이후의 세상을 살아가려면···.>
"무시하다가 미치기 딱 좋은 세상이기는 하지."
일반 능력치 중 근력, 지력, 정신력은 아직 활성화를 시키지 않았다.
개방에서부터 활성화까지 모두 마나 덩어리이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그렇다고 계속 미룰 수도 없는 일이기는 했다.
"마나통이 갈수록 비싸져서 다른 것을 구매할 여력이 없었지."
<집사가 그런 말을 할 정도면 정말 대변혁 이후는 호락호락한 세상은 아니야. 그치?>
마나면 다 되는 세상!
이 말은 마나가 없으면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세상이라는 말과 같았다.
"'호락호락', '여유', '휴식' 이런 단어를 생각할 겨를도 없었던 것 같아."
<지켜보기만 하는 나도 그랬으니 집사야 오죽했겠어. 그런데 능력치 개방하지 않을 거야?>
"하고 싶기는 한데···. 아무래도 빚은 갚고 개방해야 할 것 같아."
뮤! 뮤! 뮤!
^2만 마나! 적지 않은 빚이다. 빚 갚는 거 쉽지 않다. 허리 휘기 딱 좋다.^
빚이라는 말에 도뮤의 얼굴이 어두워졌다.
<이제 세 달 남았지?>
"상환 기일까지 세 달 남았지. 내년 2월 말일까지는 갚아줘야 하니까."
<연체 이자를 생각하면 숨이 막히는 것 같아.>
시스템의 이자 방식이 생각났는지 나호가 고래를 가로저었다.
이제 다시 움직여야 할 것 같았다.
근력을 개방하면 한결 쉽게 바위골렘을 처리할 수 있을 것 같지만 대변혁 전까지는 마나를 아낄 생각이다.
그런 생각을 하며 바위에 발을 디뎠다.
그리고 빠르게 밟아야하는 지점을 밟고 올라가 정수리에 다다랐다.
다시 전투가 시작된 것이었다.
잠시 쉬었다고 새 힘이 돋았는지 공격하는 것이 한결 편안하게 느껴졌다.
<잘한다! 파이팅!>
나호가 옆에서 힘을 북돋았다.
콰아아앙! 콰아앙! 콱! 콱!
얼마나 내리쳤을까?
어느 순간부터 소리가 달라지기 시작했다.
심장을 토해낼 때가 가까이 왔다는 말이었다.
"애들아! 준비해!"
쫑!
사냥조들이 바위 골렘 주위로 포진했다.
어디로 심장이 튀어나오든 사냥조의 부리를 피할 수는 없을 것이었다.
쪼롱이와 사냥조가 있으니 마음 놓고 바위만 두드리면 그만이었다.
바위골렘은 마지막 발악을 하고 있었다.
바위의 반격도 장난이 아니었다.
콰아아악! 콱! 콰아아악!
하지만 내 공격이 한 수 위였다.
쫑!
콰르르르르르! 콰르르르르! 과르르르!
과르르르르! 와르르르르르!
앞으로도 수천 년은 변함없이 자리를 지킬 것만 같았던 바위가 무너지는 것은 순식간이었다.
바위가 무너지기 직전 바위 골렘 위로 자라던 나무들이 먼저 힘을 잃고 쓰러졌다.
생기가 다 빠져나간 것처럼 흐물흐물 늘어지더니 곧이어 바위가 무너져 버린 것이었다.
거대했던 바위는 그 위용을 완전히 잃은 상태였다.
절대 부서질 것 같지 않은 바위들이 부서지며 쏟아져 내렸기 때문이었다.
<자갈보다는 조금 더 크기는 하네. 이렇게 무너져 내릴 거면서! 까불고 있어!>
나호가 이제는 돌멩이가 되어버린 바위골렘을 힘껏 밟았다.
영체 상태라 아무 의미 없는 행동이라는 것을 알면서도 하는 행동이었다.
쭉! 쭉!
쪼롱이가 이상한 소리를 내며 날아왔다.
입에 뭔가를 물고 있어서 제대로 소리를 내지 못했던 것이다.
<쭉! 쭉! 그래 쭉쭉 자라라! 넌 더 커도 돼.>
나호가 쪼롱이 소리가 귀여운지 흉내를 내며 말했다.
꼬물!
^바위심장^
쪼롱이나 사냥조가 심장을 부쉈기 때문에 바위골렘이 힘을 잃고 무너져 내린 것이었다.
"네가 뽑은 거야?"
쭉!
손을 내밀어 쪼롱이가 물고 있는 것을 받았다.
쫑! 쪼로로옹!
^뽑았어요. 심장! 나오지 않으려고 해서 꽉 물었어요.^
"잘했어. 고생했어."
<대단하다! 저걸 뽑다니···. 쪼롱이 너 어딘가 힘을 숨겨두는 장소가 있는 거지?>
쫑?
<분명해. 저거 뽑기가 얼마나 힘든데···. 잘했어. 정말로.>
쫑!
바위골렘의 심장은 이름난 약재였다.
하지만 이렇게 온전히 뽑아내기가 쉽지 않았다.
그래서 아까워도 터트리거나 깨부수는 것이 일반적인데 쪼롱이는 거의 손상 없이 뽑아온 것이었다.
꼬물! 꼬물!
^꼬마가 그걸로 약 만들어보고 싶대요.^
"좋지. 전생에 바위골렘의 심장이 들어가면 근력을 강화하기 쉽다고 했어."
<근력 능력치가 잘 안 오를 때 사람들이 저거 많이 찾았지.>
마나가 있어야 능력치를 살 수 있지만 준비되어 있지 않으면 마나만 버렸다.
해도 해도 근력 능력치가 늘지 않을 때 바위골렘의 심장이 특효약이었다.
그냥 먹을 수는 없었고, 약제사가 흡수할 수 있는 상태로 만들어줘야 했지만 말이다.
"다른 재료도 필요하다고 알고 있는데···."
바위 골렘의 심장은 워낙 유명했던 것이라 알고 있지만 다른 것이 얼마만큼 들어가는지는 알지 못한다.
<그건 꼬마가 알 수 있지 않을까? '조제'라는 스킬을 가지고 있으니까.>
그럴 수도 있을 것 같았다.
꼬마도 알 수 없으면 상점에서 조제법 사도 좋을 것이다.
[바위골렘의 심장이 들어간 근력강화제에 대한 정보가 있습니다. 열람하시겠습니까?]
"좋아. 열람할게."
[근력강화제를 만드는 방법은 여러 가지가 있습니다. 그 중 가장 보편적이고 일반적인 방법은 먼저 바위골렘의 심장을 치료수에 담가서······.]
권능 기억의 설명은 신문 기사 같았다.
대변혁 초기에 저런 방법이 노출 됐을 리는 없고 .최소한 대변혁 15년 이후에나 공개되지 않았나 싶었다.
<저런 거 알아내려면 수백, 수천 번의 시행착오를 거쳐야 했을 텐데.>
"날로 먹는 것 같은 느낌이 드는 거지?"
<집사는 그렇지 않아?>
"그렇기는 한데 좋잖아. 이제 정말 대변혁이 얼마 남지 않았으니까. 어서 만약고에 마나가 깃들면 좋겠다."
<아! 만약고! 만약고도 개시해야 하는데. 만약고는 언제 쯤 마나가 깃들려나?>
"알 수 없지."
전생에는 미우라 것이었다.
처음 왔을 때부터 가지고 있었는지 아니면 중간에 얻은 것인지는 알 수 없다.
미우라가 대변혁 3년 후에 우리나라에 들어왔으니 만약고도 대변혁이 한참 지나고 나서야 마나가 깃들 수도 있었다.
<빨리 깃들면 좋은데.>
"꼬마에게 맡겨볼까?"
<만약고를?>
"조제 스킬이 있으니까 꼬마에게 맡기는 것이 가장 좋을 것 같아서."
현재 만약고는 화순 던전에 있었다.
언제 마나가 깃들지 모르기 때문에 함부로 가지고 다닐 수 없었다.
만약고는 특정 지역을 벗어날 수 없는 아이템 같기 때문이었다.
괜스레 외국에 있을 때 마나가 깃들고 그 지역을 벗어날 수 없다면 손해가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그래서 아예 화순 던전에 두고 다녔다.
그러다 문득 클리어 메시지가 들리지 않았던 것이 생각났다.
"그런데 왜 클리어 메시지가 뜨지 않는 거지?"
설마 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