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9. 쓸모없는 물건
다행히 초거대 바위 골렘은 다시 잠들지 않았다.
하지만 초거대 쉽사리 심장도 토해내지 않았다.
몇 번이나 토해 낼 것 같았지만 토해내지 않고 버티고 있었다.
<아우! 그만 가라!>
사냥조까지 나와서 심장이 나오기를 기다렸지만 심장은 나오지 않았다.
<집사! 이 녀석 고통을 즐기는 것 같은데? 이제는 피할 생각도 하지 않는 것 같아.>
말도 안 되는 이야기 같지만 지금 바위골렘이 보이는 태도는 정말 죽창이 제 몸에 박히는 것을 즐기는 것 같았다.
"꽂아둔 죽창에 불을 붙여봐야 하나?"
<집사! 그거 좋은 생각이다. 대나무가 터지면서 충격도 제법 줄 것 같고.>
바위 골렘의 저항은 많이 줄어든 상태였다.
그래서 움직이는 것이 어렵지 않았다.
이미 꽂아둔 죽창에 기름을 부었다.
혹시 몰라 가지고 다니던 것이었는데 이렇게 사용하게 될 것이라고는 생각하지 못했다.
꼬물!
^저도 잘 할 수 있는데.^
"아니야. 기름은 위험해."
<맞아. 너희 기름이 얼마나 위험한지 모르지? 지금 잘 봐.>
기름만 붓고 다닐 수 없었다.
계속해서 타격을 주지 않으면 다시 처음부터 시작해야 했다.
그래서 창을 박아 넣으며 기름을 붓는 것을 동시에 했다.
30여 개의 대나무창에 기름을 부었을 때 불을 붙이고는 옆으로 피했다.
<와우! 잘 타네. 집사! 성공이야. 잘 타!>
콰앙! 쾅!
대나무가 열이 받아 터지기에는 시간이 필요했다.
그래서 그동안에도 쉴 새 없이 대나무 창을 박으며 바위골렘에게 타격을 주었다.
그리고 일정 시간이 지났을 때 박혀 있던 대나무 창이 터지기 시작했다.
콰아아아앙! 콰아아앙! 코아아앙!
<집사! 대박이야. 장난 아니야!>
대나무 창이 터지면서 사방으로 뜨거운 기름이 튀었다.
불이 붙은 기름이 튀기면서 옆의 나무에 불을 붙이기도 했다.
한 번 터지기 시작한 대나무 창은 연달아 터지면서 바위골렘에게 타격을 주었고 그것으로 승리를 결정지을 수 있었다.
<집사 심장이야!>
나호가 바위골렘의 심장을 가리켰다.
바위골렘의 심장은 이제 막 얼굴을 내밀고 있었다.
저것을 제거해야 완전히 바위골렘을 잡을 수 있었다.
그래서 망설임 없이 심장을 향해 몸을 날렸다.
하지만 그 순간!
콰아아앙!
바로 옆에서 죽창이 하나 터졌다.
그리고 심장을 잡는 순간에도 바로 옆에서 다른 죽창 하나 더 터졌다.
콰아아앙! 콰아아앙!
하지만 나에게 기름이 튀거나 돌조각이 날아오는 일은 없었다.
아수라와 아수리가 나무 방패로 가려주었기 때문이었다.
투두두둑! 투툭!
나무 방패에 죽창이 터지면서 나온 조각들이 박히는 소리가 났다.
그 소리를 들으면서 심장을 잡아 당겼다.
쪼롱이는 분명 쉽게 심장을 제거한 것 같았는데 이게 쉽지 않았다.
심장이 꿈쩍도 하지 않은 것이었다.
나도 모르게 쪼롱이를 쳐다보았다.
쫑!
^잡아채지 말고 지그시!^
쪼롱이가 미소를 짓는 것 같았다.
힘껏 잡아당기려고만 했었지 쪼롱이처럼 지그시 당기지는 않았다.
힘을 조금 빼고 부드럽게 당겼다.
절대로 움직이지 않던 심장이 미끄러지듯 나오기 시작했다.
한 번 나오기 시작하자 떨어뜨리지 않도록 잡고 있기만 하면 그만이었다.
심장이 손에 완전히 놓이게 되자 바위골렘이 무너져 내리기 시작했다.
콰르르르르르! 콰라르르르! 콰라르르르!
꼬물!
꼬물이가 줄기를 내려 보냈다.
꼬물이의 줄기를 잡고는 아래를 향해 달렸다.
바위가 무너지기 시작했기 때문에 늦장을 부리고 있을 수 없었다.
꼬물이의 줄기가 동아줄이라도 되는 것처럼 단단히 잡고는 내달리니 어느새 바닥에 내려올 수 있었다.
하지만 달리는 것을 멈출 수는 없었다.
허물어지기 시작한 바위골렘의 잔해가 파도처럼 밀려오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거대한 몸은 잔재물도 어마어마했다.
<집사! 됐어! 충분해.>
바위골렘을 주시하고 있던 나호가 말했다.
멈춰서 뒤를 돌아보자 주위가 온통 자갈밭이 되어 있었다.
마치 채석장에 와 있는 것 같았다.
"엄청나네. 원래 이렇게 강한 놈이 있었나? 아무리 생각해도 아닌데?"
[천사 던전에 대한 정보가 있습니다. 열람하시겠습니까?]
"대변혁의 날 어땠는지 말해줘."
[대변혁의 날 천사 던전에서는 바위 골렘 나왔습니다. 바위골렘이 나와서 박물관을 부수고 주변 건물의 유리창을 모두 부쉈다고 합니다.]
"그건 이미 알고 있는 거고 얼마나 큰 것이 나온 거지? 소문에는 엄청 컸다고 했던 것 같은데."
[5미터짜리 바위골렘이 나왔다는 말이 있었습니다만 그것은 놀란 사람들이 그렇게 기억을 한 것이고 정확하게는 가장 큰 바위 골렘이 1.5미터였다고 합니다.]
<1.5미터를 5미터로 기억하는 사람은 뭐야? 아무리 무서웠다고 해도 너무 과장이 심하다.>
"두려움은 기억을 왜곡시키기도 해. 처음 보는 바위괴물이었을 테니 그만한 공포로 다가왔겠지."
익숙해진 후의 5미터, 10미터 바위골렘보다도 더 무섭게 느껴졌을 것이다.
꼬물! 꼬물! 꼬물!
^서둘러야 해요. 어서! 어서!^
갑자기 꼬물이가 전에 없이 방정맞게 움직이며 재촉했다.
<꼬물아 왜 그래?>
꼬물!
^파야 해요. 사라져. 어서!^
꼬물이가 뿌리로 가리키는 곳은 바위골렘의 잔해가 있는 곳이었다.
뿌리가 가리키는 곳으로 이동하자 꼬물이가 잔해를 들추라고 했다.
잔해를 들추기 시작하자 덩굴 식물들이 모조리 나와서 잔해를 들추는 것을 도왔다.
혼자 잔해를 들추었다면 몇 시간이나 걸렸을 것이다.
하지만 수십 개의 뿌리와 줄기가 돌멩이들을 치워내자 빠르게 잔해를 치워나갈 수 있었다.
그렇게 1미터, 3미터, 5미터를 파헤쳐도 꼬물이는 멈추려고 하지 않았다.
<뭐가 있는데 이러는 거지?>
"괜히 이러지는 않을 거야. 전리품 같은 것이 있을지도 몰라."
꼬물!
^빙고! 있어요. 푸른 씨앗!^
"씨앗이 있다고?"
꼬물!
<씨앗이라고? 돌멩이가 아니고? 바위 골렘이 어떻게 씨앗을 토해내?>
꼬물! 꼬물!
^푸른 씨앗! 사랑스런 푸른 씨앗!^
꼬물! 꼬물!
^심으면 희망이 자라! 푸른 희망!^
춤을 추듯 뿌리를 움직이는 꼬물이는 시 같기도 하고 노래 가사 같기도 한 글을 썼다.
정확한 의미를 알 수 없는 말이었지만 은근히 기대가 되었다.
무언가의 씨앗인데 꼬물이가 저렇게 가지고 싶다고 하는 것을 보면 분명 나쁜 것은 아니었다.
그런 생각을 하는 순간 시스템의 메시지가 들렸다.
[띠링! 축하합니다. '천사' 던전을 클리어 하셨습니다. 미개방 던전이기 때문에 강대한 님께 소유권이 넘어갑니다.]
최하급이지만 치료수를 먹는 것과 같은 효과를 주는 던전이었다.
이 던전을 우리나라에 가지고 갈 수 있었으면 더 좋았겠지만 내 소유로 넘어왔으니 그것으로 만족하기로 했다.
장프까지 있는 던전이니 오가는 것도 문제가 없고 말이다.
"나갔다 와야 하나?"
미개방 던전을 클리어 하면 꼭 나갔다 들어오라고 말하기 때문에 물은 것이었다.
그런데 시스템이 뭔가 고민을 하는지 대답이 없었다.
바위골렘의 잔해를 치우고 있었기 때문에 우리 입장에서도 서두를 이유는 없었다.
<집사! 도축하지 않아? 이것도 몬스터여서 도축하면 전리품이 있었잖아?>
"왠지 꼬물이가 하자는 것부터 하고 도축을 해야 할 것 같아서."
<그런데 왜 나가라는 말이 없지?>
나호가 잠시 도끼눈을 뜨더니 뭔가 말을 하려다 말았다.
이제는 따지기도 지친 모양이었다.
꼬물!
^저기 있다.^
푸른 씨앗이라고 했는데 막상 가리킨 것은 푸른색이 아니었다.
그저 평범한 작은 돌이었다.
호두보다 조금 작은 크기의 돌로 전혀 특별해 보이지 않았다.
<저거라고?>
나호도 이해가 되지 않는지 꼬물이에게 질문을 했다.
그 사이 꼬물이가 말한 돌을 집어 들었다.
<집사! 뭔가 특별해?>
"전혀."
꼬물!
^푸른 씨앗! 희망이 자라요.^
꼬물이가 알 수 없는 이야기를 되풀이 했다.
"꼬물아! 뭘 말하는···."
꼬물이에게 질문을 하는 사이 시스템이 끼어들었다.
[띠링! 강대한 님! 저희와 거래를 하시는 것이 어떻겠습니까?]
"거래? 무슨 거래?"
[그 돌을 저희에게 파시죠.]
"뭐라고? 이걸 팔라고?"
[그렇습니다.]
<집사! 이거 이상해! 팔지 마!>
"그렇지 않아도 팔지 않을 거야. 꼬물이가 푸른 씨앗이라고 했잖아. 그런데 팔겠어?"
꼬물!
^팔지 마! 팔지 마!^
[부채를 상환해드리겠습니다.]
"2만 마나를 탕감해주겠다고?"
[그렇습니다. 어차피 강대한 님께는 당장 필요한 물건도 아닙니다.]
"이거 꼬물이가 푸른 씨앗이라고 했는데?"
<맞아! 시스템이 2만 마나를 주고 사겠다고 한 것을 보면 엄청난 물건이야.>
시스템이 그토록 사기 원했던 치유버섯과 황금도 이렇게 비싼 가격을 제시하지는 않았다.
더구나 뭔지도 모르는 물건을 시스템이 원하는 가격에 팔수는 없었다.
"꼬물아! 저거 뭔지 알아?"
^푸른 씨앗! 희망이 자라요.^
꼬물이는 같은 말만 되풀이 했다.
더 이상은 꼬물이도 알지 못하는 것 같았다.
꼬물!
^저 주면 안 돼요?^
[띠링! 저에게 파십시오.]
꼬물!
^ㄴㄲㅇ^
^내꺼야! 내꼬야!^
[저에게 파시면 빚을 탕감해 드리는 것은 물론이고 1만 마나를 더 드리겠습니다.]
꼬물!
^날 주면···. 나는···. 줄 게 없는데···?^
^날 주면 날마다 '꼬물송' 불러줄게요.^
<으하하하! 으하하! 꼬물송은 또 뭐야?>
꼬물!
^꼬물 꼬물 꼬꼬물! 꼬꼬꼬오오오!^
꼬물이가 바닥에 글씨를 쓰면서 뿌리로 춤을 추었다.
제법 앙증맞은 춤이었다.
일곱 개의 뿌리 중 하나는 부지런히 글을 쓰고 나머지 여섯 개의 뿌리가 춤을 추었는데 사력을 다해 뿌리를 움직였다.
그동안 쌓은 노하우를 오늘 모두 방출할 생각인지 하트도 만들었다가 별을 만들기도 했다.
뿌리를 이용해서 이렇게 다양한 모양을 만들 수 있다는 것이 놀라울 따름이었다.
<으하하! 이렇다는데 넌 어떻게 할 거야? 우리 꼬물이는 날마다 이런 춤을 보여준다고 하잖아. 하하하!>
나호가 배를 잡고 뒤로 발라당 넘어갔다.
다른 소환수들도 웃음을 참지 못하는 것은 마찬가지였다.
"애들이 많으면 웃을 일도 많다고 하더니 지금 상황이 딱 그러는 것 같은데."
꼬물이가 너무 열심히 하니 도와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는지 꼬마를 비롯한 다른 소환식물들도 줄기와 덩굴손을 흔들며 장단을 맞추었다.
그러자 쪼롱이와 사냥조들도 가세해서 분위기를 띄웠다.
뒤에서는 꾸루와 전령조도 날갯짓을 했고 도뮤와 도깨비들은 아예 재주를 부렸다.
반반이의 가족들은 저음을 담당하겠다는 듯이 음머어하는 소리를 냈다.
<잔치하는 것 같네. 나는 뭘 해야 잘했다고 하려나?>
아이들의 재롱에 나호의 입 꼬리가 귀에 걸렸다.
나호 자신은 알지 못하는 것 같았지만 나호도 재롱에 참여하고 있었다.
꼬리를 기분 좋게 흔들고 있었던 것이다.
시스템이 말이 없었다.
"이게 뭐야? 뭔데 3만 마나나 주겠다는 거야?"
[지금 당장은 아무 필요도 없는 물건입니다.]
"그러니까 뭐냐고?"
[그건 일종의 씨···. 말씀 드릴 수 없습니다.]
무의식중에 말을 하려다 제지를 당한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그러더니 다시 말을 잇는 시스템이었다.
[지금은 알려드릴 수 없습니다. 원하시면 마나로 정보를 구입하실 수 있습니다.]
"얼만데?"
[처음 정보를 사시는 것이니 특별히 50% 할인해서 1만 마나에 드리겠습니다.]
"그만한 가치가 있는 정보라는 거네?"
[그렇습니다.]
<집사! 지금 집사가 가지고 있는 마나가 1만 조금 넘는 거 알지?>
"알고 있어. 사지 않을 거야. 정보를 당장 알아야 하는 것은 아니니까."
당장 1만 마나나 주고 정보를 살 수는 없었다.
꼬물!
^당장 몰라도 아무 문제없어요.^
꼬물!
^주세요오오.^
꼬물이가 폭풍애교를 부렸다.
3만 마나가 아니라 천만 마나라고 해도 꼬물이에게 줄 수밖에 없을 것 같았다.
꼬물이에게 '푸른 씨앗'이라고 하는 돌을 건네려고 하니 시스템이 애가 타는 듯이 다시 다급하게 말했다.
[당장 빚 탕감이 필요하지 않으시면 3만 마나를 바로 드리겠습니다. 그럼 마나통을 그만큼 사실 수 있습니다. 아시겠지만 마나통의 값은 이제 가파르게 상승할 것입니다.]
마나 나가는 것을 피를 빼앗기는 것만큼이나 싫어하는 시스템이 3만 마나를 지급하겠단다.
이건 절대로 팔아서는 안 되는 물건이라는 의미였다.
"대변혁이 다가오니 마나통의 성장이 그만큼 빨라졌겠지."
마지막 소환을 다녀오고 큰아버지와 어머니의 입 냄새가 심해졌던 이유도 같은 이유에서 였다.
이제 그만큼 끝이 얼마 남지 않았다는 의미이기도 했다.
이어달리기를 할 때 바통을 서로 주고받듯이 대변혁의 순간 마나통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의 입냄새와 가슴 통증은 사라지고, 각성 예외자가 되어 마나통을 잃은 사람들의 통증은 시작될 것이었다.
운명의 시간이 얼마 남지 않은 것이었다.
[파십시오. 언제 효용이 있을지도 모를 물건을 가지고 있는 것보다 당장의 이득을 확보하시는 것이 현명한 소비입니다. 앞으로 10년 이상 아무짝에도 쓸모없는 물건일 수도 있습니다.]
행복한 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