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당신의 마나통은 안녕하십니까?-181화 (181/350)

181. 낯선 바다

<집사가 바다를 들어간다고 해서 엘리스의 불행을 막을 수 있는 것도 아닌데 왜? 엘리스의 불행을 막아주려면 차라리 지금 엘리스 가족을 한국으로 데리고 가는 것이 나을 것 같은데?>

"그건 싫다고 말했잖아. 접근할 명분이나 이유가 있는 것도 아니고."

<저런 웃음을 지을 수 있는 날이 며칠 남지 않았다고 하면 엘리스는 뭐라고 할까? 전생에 사람들이 엘리스에게 참 잔인했는데.>

지난번에도 그랬지만 나호는 내가 엘리스를 도와줬으면 하는 것 같았다.

하지만 지금의 나와 엘리스는 격차가 너무 컸다.

영국의 귀족 아가씨가 듣보잡인 내 말을 새겨들을 리도 없었다.

더구나 엘리스는 대변혁 전에는 전형적인 귀족 아가씨였다고 했다.

<헌터들은 비밀을 폭로했다고 왕따를 시키고, 일반인은 너도 마나통을 구매했지 않았냐고 구박하고···. 설 곳이 없었을 거야. 그래도 씩씩하게 다니려고 애썼던 것 같은데···.>

나호가 양심선언 이후에 엘리스가 겪었던 일들을 이야기를 했다.

이미 알고 있는 이야기였다.

엘리스가 최초였다.

그리고 최초가 당할 수 있는 모든 수모와 역경을 겪어야 했다.

아마 힘들었을 것이다.

그런데도 엘리스는 당당하려고 애를 쓰며 살아갔다.

"한국인이었다면 어떻게든 접근을 할 수 있었을 텐데. 아쉽기는 해."

<독도라면 관심을 가지지 않을까? 지금 한참 입 냄새 때문에 힘들 것 같은데···. 저기 봐. 서로 곤욕스러워 하잖아. 남편이 될 사람은 입 냄새가 나지 않은 것 같고.>

예비신랑이 인상을 찌푸리고 있었다.

엘리스의 얼굴이 다가올 때마다 반복되는 모습이었다.

나호의 말대로 엘리스의 신랑 될 사람은 입 냄새가 나지 않은 것 같았다.

이미 마나통을 잃었다는 말이었다.

<몸은 좋아 보이는데 수술로 제거 했을까? 아니면 탈락했나?>

나호가 예비신랑을 보고 하는 말이었다.

"왜 이리 관심이 많아?"

<전생에 엘리스 덕분에 알게 됐잖아. 입 냄새와 가슴 통증의 원인을 말이야. 그녀의 고백이 아니었으면 어떤 헌터도 입을 열지 않았을 거야. 집사도 말하지 않을 거잖아?>

"나는 미우라 놈처럼 하지 않을 거니까 괜찮아."

<그거 이중적인 거야. 일본 놈들이 생각할 때는 집사도 미우라처럼 보일 거야.>

"절대로 말하지 않지. 일본 놈들의 마나통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말이야."

<그걸 모르겠어? 시간문제일 뿐이야.>

전에 없이 나호가 까칠했다.

조금 전 꼬물이에게 받은 충격도 있지만 나호는 어떻게든 엘리스를 돕고 싶은 것 같았다.

"내가 모르는 일이 있는 거야? 우리와 엘리스는 전생에 접점이 전혀 없었는데···."

<그런 거 없어. 그저 남의 일 같지 않아서 그래. 양심고백을 하는 일이 쉬운 일이었겠어? 많이 고민했을 거야. 그런데도 고백을 했지.>

"현실이 바뀌지는 않았어."

엘리스가 양심고백을 한 후 두 번째, 세 번째 양심고백을 하는 사람이 나오기 까지는 상당한 시간이 걸렸다.

엘리스가 양심고백을 한 후 워낙 고생을 했기 때문이었다.

전처럼 가파르게 성장하지는 못하지만 당당하게 살아가는 그녀를 보고서야 마나통 거래가 실재한다고 고백하는 헌터들이 등장했었다.

물론 그녀의 고백으로 마나통 거래가 더 활발해지고 일반인이 더 고통스러워졌다는 평가도 있었지만 그녀가 대단한 일을 한 것을 부정할 수는 없었다.

<집사! 혹시 엘리스로 인해서 희망을 잃었다고 생각하는 거야?>

나호의 말에 나도 모르게 움찔했던 것 같다.

사실 나도 엘리스에게 박정한 내 자신을 백 프로 이해하지 못한다.

접점이 없고, 도울 이유가 없다는 핑계를 대고 있지만 다른 사람들에게는 어떻게든 접점을 만들어 접근하고 도움을 주고 있었다.

그런데 유독 엘리스에게는 냉정한 잣대를 들이대고 있었다.

그녀가 나쁘지 않은 사람이라는 것을 알고 있는데도 말이다.

<집사의 감정을 이해하지 못하는 것은 아니야. 그런데 냉정하게 자신을 들여다보는 것도 좋을 것 같아. 집사도 모르게 원망의 화살이 애먼 곳으로 향한 것 같거든.>

나호의 말을 듣고 나서야 내 상태가 정확하게 파악되었다.

온갖 핑계를 대고 있었지만 엘리스를 보거나 생각하면 당시에 내가 느꼈던 절망을 떠올리는 것 같았다.

대변혁 이후 8년!

엘리스가 양심고백을 했을 때는 대변혁 이후 8년이 지난 2038년이었다.

2029년 1월 1일에 가슴통증과 입 냄새가 나기 시작했으니 자그마치 9년의 세월동안 병마와 싸우고 있을 때였다.

아버지와 어머니께서 느끼시는 고통을 9년이나 바라봤지만 언젠가는 나을 수 있다는 희망을 놓지 않을 때이기도 했다.

언젠가 마나를 많이 모아 최고의 치료제를 사면 치료를 해드릴 수 있다는 희망을 가지고 있었다.

발현률 0%의 사람이 전세계 인류의 90%이상이었으니 언젠가 치료약이 나올 수도 있다고 생각하기도 했다.

그런데 엘리스의 양심고백으로 희망이 사라져버렸다.

엘리스 때문이 아니라는 것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는데도 때때로 몰랐을 때가 더 나았다는 생각을 했었다.

막연한 희망이라도 품을 수 있었을 때가 더 나았다는 생각을 한 것이었다.

부모님께서 처음으로 자살을 시도를 했을 때도 엘리스의 양심고백 이후였다.

부모님만이 아니었다.

발현율 0%의 사람들에게 이날은 어쩌면 희망이 사라진 날이었다.

"그녀는 각성예외자의 마나통만 가지고 있었을까?"

<그랬으니 발현율 0%만 이야기했겠지. 발현율이 0%가 아닌 사람의 마나통을 사는 것은 아직 집사도 불가능하잖아. 천만 개에 가까운 마나통을 소유하고 있는데도 말이야.>

현재 내가 소유하고 있는 마나통의 숫자는 천만 개를 바라보고 있었다.

그런데도 각성 예외자의 마나통만 구매할 수 있었다.

미우라는 대변혁 3년 후에 한국에 오자마자 내 마나통을 획득했다고 했는데 어떻게 그렇게 했는지 아직 알 수 없었다.

각성자의 마나통까지 얻을 수 있는 방법이 있는 것이 분명한데···.

<집사! 집사! 무슨 생각을 그렇게 해?>

"예비신부에게 선물을 하나 줘도 좋을 것 같아서."

<마음을 정한 거야? 돕기로?>

"그녀의 불행까지는 막을 수 없지만 입 냄새를 제거해 줄 수는 있겠지."

대답에 살짝 실망하는 것 같았지만 그래도 나호의 기분이 조금 풀리는 것 같았다.

인벤토리에서 독도를 꺼냈다.

그리고 화기애애한 모습으로 웨딩촬영을 하고 있는 커플에게 다가갔다.

하지만 엘리스에게 접근하는 것은 불가능했다.

친구들과 경호원으로 보이는 사람들에게 가로막혔기 때문이었다.

사실 엘리스와 이야기를 나눌 필요까지는 없었다.

선물을 건네면 그만이었다.

"예비 신부인 것 같은데···. 행복한 모습이 보기 좋네요. 이거 결혼 선물입니다. 하루에 한 병씩 마시면 입 냄새를 제거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이 번호로 전화하면 추가 구매가 가능하도록 해드리죠."

경호원으로 보이는 사람에게 독도 두 박스와 명함을 두 장 건넸다.

한 장은 큰아버지 것이었고, 한 장은 내 명함이었다.

독도를 받아든 경호원의 눈이 커다래졌다.

상자 안에 든 것이 뭔지 알아본 것이었다.

상자와 나를 번갈아보더니 고맙다고 하고는 엘리스에게 상자를 가지고 갔다.

"가자!"

<왜? 엘리스가 직접 고맙다고 할 수도 있잖아.>

"됐어. 인연이 닿으면 또 보게 되겠지. 이것으로 충분해."

뒤에서 부르는 소리가 들렸지만 돌아보지 않은 채 손만 한 번 흔들어 보인 채 공원을 벗어났다.

<한 번 더 우연히 보게 된다면 인연이겠지?>

"이제 만족해?"

<30% 정도. 바로 바다로 갈 거야? 추워지는데?>

"날이 갈수록 더 추워질 거야. 이왕 가는 거 빨리 가야지. 그래도 한국보다는 덜 춥잖아."

런던의 12월은 한국에 비하면 포근했다.

해안 쪽으로 가면 바람이 많이 불어서 체감상으로는 더 추운 것 같기도 하지만 말이다.

시스템은 내가 바다로 들어간다고 했더니 무척이나 좋아하며 안내를 시작했다.

<아주 신났네. 신났어. 미워죽겠어.>

꼬물!

^시스템 ㅂㅂ.^

<시스템도 변비 걸렸어?>

나호가 꼬물이가 변비라고 했던 것이 충격적이었는지 시스템에게도 변비타령을 했다.

꼬물!

^시스템 박박!^

<집사! 저 말이 무슨 말인 것 같아? 박박이라니?>

"시스템이 우리를 박박 긁어댄다는 말이거나 우리가 시스템을 박박 긁어대야 한다는 말 아닐까?"

꼬물!

^빙고!^

^집사 ㅂㅂ!^

<집사는 뭔데?>

꼬물!

^집사는 반반해. 얼굴이 잘 생겼잖아.^

<헐! 참 다양하게도 사용되는구나. 꼬물이는 초성의 대가가 되겠네. 초꼬물!>

나호가 꼬물이가 유치한 말장난을 주고받는 사이 해변에 도착했다.

겨울바다가 낭만적이라고 하지만 들어갈 생각을 하니 전혀 낭만적으로 느껴지지 않았다.

뮤! 뮤! 뮤!

^집사 사는 것도 녹록하지 않다. 집사 힘내라!^

도뮤가 공깃돌만한 황금을 한 알 가져다주며 하는 말이었다.

<시스템보다 네가 백 배 낫다.>

도뮤가 건넨 동그란 황금에는 구멍이 뚫려 있었다.

"네가 뚫은 거야?"

뮤!

"고마워."

목에 걸기 쉽게 구멍을 뚫어둔 것 같아서 인벤토리에서 낚싯줄을 꺼내 걸려고 했더니 도뮤가 금으로 만든 줄도 건넸다.

뮤! 뮤! 뮤!

^이번에 만든 줄이다. 공 좀 들인 거다.^

가늘지만 튼튼해 보이는 줄이었다.

"그런데 이거 어떻게 고정해?"

뮤!

^목에 걸면 내가 해줄 수 있다.^

도뮤가 대답을 하더니 대기실에서 나와서 둥근 황금에 줄을 관통시키더니 내 목에 걸었다.

그리고는 양쪽 끝을 제 입에 넣고 잠시 오물거렸다 뱉어냈다.

그러자 줄이 이음새 없이 연결되어 있었다.

"고마운데 이거 남자가 걸기에는 조금 화려한 감이 없지 않다."

뮤! 뮤!

^그래서 옷에 가려질 길이로 맞췄다. 걸고 들어가라. 몸에 좋은 거다.^

셔츠에 메달이 가려지는 길이로 불편하지는 않았다.

줄도 가늘고 가볍기도 했다.

<너무 가늘어서 어디 걸리기라도 하면 집사 목 잘리는 거 아니야?>

무서운 말을 아무렇지도 않게 하는 나호였다.

뮤! 뮤! 뮤!

^절대 그럴 일 없다! 우리는 그런 제품 만들지 않는다!^

도뮤가 발끈했다.

"그런 일 없을 거야. 걱정하지 마. 너 요즘 아버지 닮아가는 것 같아. 부쩍 잔소리가 늘었어."

꼬물!

^못 싸서 그래요. 싸야 편한데 싸질 못하니···.^

꼬물이의 말에 나호가 철푸덕 엎드리고 말았다.

네 발을 사방으로 뻗은 모습이 웃음을 자아냈다.

"네 변비를 치료할 방법도 찾아봐야겠다."

<변비 아니야! 자꾸 변비로 갖다 붙이지 마! 쌀 필요가 없다고 했잖아.>

꼬물! 꼬물!

^아닌데에에. 나호 변비 맞는데. 병은 숨기는 것이 아니고 알리라고 했는데.^

꼬물이가 나호 여러 번 죽이고 있었다.

"병 숨겨서 좋을 일 없어. 너 실체 갖고 난 이후로 한 번도 못···."

<그만! 제발 그만해. 듣는 것이 더 괴로워. 돌을 먹어서라도 내려 볼 테니까.>

실체를 갖게 되면 먹고 싶은 것도 많다고 했던 나호는 식욕도 거의 채우지 못하고 있었다.

10분이라는 한정된 시간도 있었지만 원활하지 못한 생리현상 때문이었다.

정말 나호를 위해서라도 빨리 강해져야 할 것 같았다.

나호가 괴로워하는 사이 스킨스쿠버 장비를 꺼내며 시스템에게 말했다.

"지금 이 날씨에 들어가는 것을 누군가가 보면 제지를 당할 거야."

[보이지 않도록 조치를 취하겠습니다.]

근처에 미개방 던전이 있으면 문제가 되지 않았다.

SS급 은신 스킬을 사용할 수 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이 근처에는 미개방던전이 존재하지 않았다.

이럴 때는 시스템에게 그때그때 도움을 받았다.

시스템이 다른 사람의 눈에 보이지 않게 해주는 것이었다.

스킨스쿠버 장비를 갖추고 바다로 들어갔다.

<집사! 괜찮아?>

'괜찮아.'

[체온은 걱정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저체온증 오지 않도록 잠시도 한 눈 팔지 마!>

나호가 시스템에게 잔소리를 했다.

나호의 잔소리가 싫지 않았다.

바닷물이 조금 전보다 덜 차갑게 느껴졌다.

[저 물고기를 따라 가시면 됩니다.]

어떻게 하는지는 모르지만 물에 들어올 때면 시스템은 물고기를 안내자로 사용했다.

지금 안내를 맡은 물고기는 복어를 닮은 물고기였다.

바람을 불어넣은 것처럼 몸을 부풀린 물고기가 꼬리를 살랑거리며 앞장섰다.

꼬리를 보며 따라가자니 자꾸 웃음이 나왔다.

<왜 그래?>

'도뮤에게 꼬리를 달면 딱 저럴 것 같아서.'

<비슷하기는 하네.>

농담에도 나호는 웃지 않았다.

낯선 바다라 걱정이 되는 모양이었다.

'걱정하지 마! 아무 일도 없을 거야.'

<물속에서는 한 번도 쉬웠던 적이 없잖아. 더구나 낯선 바다인데···.>

나호가 사방을 경계하며 걱정을 놓지 못했다.

미치고 팔짝 뛸 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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