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당신의 마나통은 안녕하십니까?-183화 (183/350)

183. 은근슬쩍

촤르르르르르!

경쾌한 소리와 함께 구슬이 쏟아졌다.

등 뒤에서 구경하고 있던 사람들이 환호성을 지르는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그 순간 미우라의 주름이 늘어나는 소리가 들리는 것 같았다.

<이제 한 달도 채 남지 않았는데···. 이런 것들은 아무 소용이 없는데 말이야.>

나호가 쏟아지는 구슬을 보며 말했다.

'은근히 너 이거 좋아하잖아?'

<여기 오기 전까지만 해도 좋았는데 막상 오니 맥이 빠지네. 미우라가 없어서 그러나? 미우라의 얼굴 보는 재미가 쏠쏠하거든.>

다들 파친코에 흥미가 없는 것이 다른 애들도 나호와 마찬가지인 것 같았다.

'조금만 있다 가자.'

<오래 있다가도 돼.>

나호가 무료한 얼굴로 말을 한 순간 띠링! 하는 소리가 들렸다.

<또 협조 요청은 아니겠지?>

'그럼 좋지. 마나통 만 개는 적은 것이 아니니까.'

<물에라도 들어가라고 할까 싶어서 그렇지.>

[띠링! 강대한 님께서 이식한 던전 덩굴이 던전을 탄생시켰습니다. 확인하시겠습니까?]

시스템과 협조 계약을 맺은 후 좋은 것 중의 하나가 이것이었다.

이식한 던전 덩굴이 뿌리를 완전히 내리고 던전 입구가 형성이 되면 이렇게 연락을 해주었다.

이렇게 연락을 받지 않을 때는 심어두고 자꾸 확인을 하러 가야했는데 그런 수고가 사라진 것이었다.

'당장 가야지. 일본에 있는 것이겠지?'

[그렇습니다. 지옥에서 온 쌍둥이입니다.]

<와우! 드디어 탄생을 했네. 왜 이리 형성이 되지 않나 했는데.>

나호가 기쁨을 감추지 못했다.

<흐흐흐! 집사 나 정말 악당이 되려나봐. 너무 좋아! 전생대로 된다면 저 던전 정말 대박이었는데···. 흐흐흐! 아! 집사! 우리 귀마개랑 방독면 사가야 하는 거 아니야?>

지옥에서 온 쌍둥이는 똑같은 환경을 가진 두 개의 던전인데 유황냄새와 온갖 참을 수 없는 소리가 나오는 던전이었다.

거의 열려있다고 봐도 될 정도로 자주 유황 냄새와 소리가 흘러나왔던 곳으로 미국에서 옮겨 심어놓은 것이었다.

'대변혁 전이니까 전생과 같은 환경은 아닐 거야.'

<그래도 비슷한 경우도 많았으니까 준비해 가야 하지 않을까?>

'귀마개는 그동안 모아둔 가죽 중에서 적당한 것으로 대처하면 되고 냄새는 참아보자. 거기서 나는 유황냄새는 이상하게 방독면으로도 걸러지지 않았어.'

방독면으로 걸러지는 냄새면 전생에 최악의 던전 중 하나라는 말을 듣지 않았을 것이다.

<그랬나? 그럼 그때 냄새를 줄였던 것이···. 아! 시스템에게 샀던 방독면이었구나?>

'맞아! 시중에서 파는 것이 아니고 시스템이 팔았던 거야.'

<잊고 있었네. 지금은 없겠지?>

[띠링! 준비되어 있습니다. 처음으로 사시는 것이니 특별히 저렴하게 팔겠습니다. 한 번 사시면 필터만 교환해서 반영구적으로 쓰실 수 있으니 저렴할 때 구입해두시죠.]

시스템의 낚시질이 한동안 없더니 또 시작이었다.

어쩌면 저 물건을 준비하느라 던전이 늦게 생성될지도 모를 일이었다.

<너! 수상해. 벌써 방독면이 준비 됐다고?>

[던전에서 필요한 물건은 항상 구비해두는 편입니다. 고객을 맞이하는 기본자세 아니겠습니까?]

<집사! 당연한 말인 것 같은데 이 찝찝한 기분은 뭐지? 집사 살 거야?>

'필요하지 않을 수도 있어. 미리 살 필요는 없지. 필요하면 그때 가서 사도 늦지 않아.'

<맞아. 또 시스템에게 속아서 필요하지도 않은 것을 살 뻔했네.>

촤르르르르르!

'가자!'

구슬을 챙겨서 자리에서 일어났다.

"가십니까? 그럼 제가."

"아니 내가 바로 뒤에서 기다렸어."

자리에서 일어나자 서로 내가 앉았던 자리를 차지하려고 작은 실랑이가 일어났다.

내가 자리를 뜨고 나서도 내가 앉았던 자리에서는 유난히 구슬이 잘 나오기 때문이었다.

사실 이런 것은 나에게만 적용되는 것은 아니었다.

파친코에 오면 누구나 구슬이 잘 나오는 기계에서 하려고 했다.

그래서 눈치 싸움이 은근히 있는데 내가 등장하면 그 정도가 조금 더 심해졌다.

파친코 가게를 나오려고 하자 들어올 때보다 더 우렁차게 인사를 하는 직원이었다.

<좋단다. 집사가 빨리 나오니까 살겠는가봐. 저기 봐 입 꼬리 올라가는 거.>

"미우라가 은근히 스트레스를 줘서 그렇겠지 뭐. 가자."

파친코를 나와서 고쿄로 먼저 이동했다.

사실 고쿄는 이 시간에 들어갈 수 없었다.

하지만 미개방 던전 반경 500미터 안에서는 SSS급 은신 스킬을 사용할 수 있기 때문에 문제가 되지 않았다.

고쿄로 이동해서 먼저 E급 은신 스킬을 걸었다.

그리고 문이 닫힌 고쿄로 들어섰다.

던전 덩굴을 일왕의 사적인 공간과 가까이 심어두었기 때문에 조금 더 접근해야 SSS급 스킬을 발동할 수 있었다.

<흐흐흐! 여기 들렀다 바로 야스쿠니에 가면 되겠네.>

나호가 흥얼흥얼 노래를 불렀다.

쫑!

^이제는 SSS급 스킬 걸어도 될 것 같아요.^

쪼롱이와 꾸루가 심었기 때문에 위치를 정확하게 알고 있었다.

은신을 바꾸어 걸자 조금 전까지 걸리지 않던 SSS급 은신 스킬이 걸리며 감각이 확장되었다.

'이런 감각이 내 것이 되면 좋을 텐데.'

<집사는 곧 갖게 될 거야. 그러니 너무 아쉬워하지 마.>

나호의 위로를 들으며 걷자 일반인의 접근이 불가능한 곳에 도착했다.

일본의 왕실 가족만 출입이 가능한 곳이었는데 기분이 좋지 않았다.

<저기 있다. 어? 벌써 던전 기둥까지 형성이 되어 있네? 마지막 소환에 가기 직전에도 아무것도 없었는데.>

이전에 옮겨 심은 것들도 다 자리를 잡고 던전이 형성되었다.

그런데 이상하게 쌍둥이 던전은 감감 무소식이었다.

'늦게 크는 애들이 더 크게 큰다고 하잖아. 이 던전도 그런가 보지.'

[띠링! 미개방 던전입니다. 입장하시겠습니까?]

입구를 확인하자 언제나 그렇듯이 시스템의 음성이 들렸다.

입장하겠다고 하자 던전으로 바로 입장되었다.

<이건 뭐야? 이게 지옥에서 온 쌍둥이라고?>

전생의 지옥에서 온 쌍둥이라고는 믿을 수 없는 광경이 눈앞에 펼쳐져 있었다.

콸콸콸콰아아! 차르르!

던전의 입구가 다른 곳에 비해 시끄럽기는 했다.

하지만 듣기 싫은 소리는 아니었다.

던전의 입구로 물이 흘러오고 있었는데 물길을 따라 물레방아가 설치되어 있었고 쉼 없이 물레방아가 돌고 있었다.

물레방아가 돌면서 나는 소리가 제법 컸지만 정겹게 느껴지는 소리였다.

<이거 전생에 많이 사용했는데···. 기억나지?>

"나다 뿐이겠어? 방아 찧는 순서를 두고도 많이도 싸웠지."

<그러게. 워낙 먹고 살기 힘드니까 그런 일도 많았지.>

"몬스터는 없는 것 같고···. 이걸 다 찧어야 하나?"

물레방앗간에는 종류를 알 수 없는 곡물의 도정이 이루어지고 있었다.

<도정만 하면 되겠지? 제분까지 하라고 하면 시간이 너무 많이 걸릴 것 같은데···.>

"뭐 어때 힘들지도 않을 것 같고, 나름 재미도 있을 것 같은데···."

곡물을 뒤집으며 말했다.

<집사가 방아를 찧어보지 않아서 그런 말을 하는 거야. 이거 계속 하고 있으면 아프지 않은 데가 없어. 귀도 먹먹해지고. 이래서 이 던전이 나중에 그런 소리들을 냈나?>

물레방아 소리는 어찌 들으면 정겹게 들리지만 어찌 들으면 무척이나 날카롭게 들리는 소리이기도 했다.

방아 찧은 소리를 배경 삼아 우리는 곡물을 도정하기 시작했다.

방앗간에 있는 모든 곡물을 도정해서 정리를 하자 곡물이 사라져버렸다.

그리고 곡물이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 물레방아는 작동을 멈추었다.

"이게 맞는 것 같네. 그런데 이 많은 것을 언제 다 하지?"

조금 전 나호가 했던 이야기를 똑같이 할 수밖에 없었다.

물길을 따라 물레방아는 끝도 없이 이어져 있었기 때문이었다.

쫑!

^도울 수 있어요!^

뮤!

^우리도 도울 수 있다.^

"이게 만약 방아를 이용해서 찧어야 한다면 처음부터 다시 시작해야 할 수도 있어."

꼬물!

^까기만 하면 된대요.^

"까기만 하면 된다고? 누가 그래?"

꼬물!

^저기 덩굴이!^

꼬물이가 가리킨 것은 물레방아를 타고 올라간 덩굴이었다.

그런데 자세히 보니 던전 덩굴이었다.

<덩굴끼리는 이런 것도 알려주나? 이거 완전 대박이다. 소환식물들에게 잘 보여야겠어.>

나호가 어깨를 덩실거리며 말했다.

우리는 다음 물레방앗간에 도착했다.

방아를 이용해서 도정한 양은 많지 않았다.

새들은 의외로 도정에 능했다.

도정을 하다 그대로 먹어버리기도 했지만 시스템이 따로 제재를 하지는 않았다.

새 뿐만이 아니었다.

던전 도깨비들도 껍질을 아주 잘 벗겼다.

입에 곡물을 가득 넣고는 몇 번 오물거리다 뱉으면 껍질은 사라지고 곡물만 남아있었다.

침이 잔뜩 묻을 것 같지만 그렇지도 않았다.

덩굴 식물들도 도왔는데 덩굴손을 이용해서 곡물의 껍질을 하나하나 벗겨냈다.

시간이 엄청 오래 걸릴 것 같지만 덩굴손의 움직임은 빠르고 정확했다.

이렇게 하자 금세 방앗간에 있는 곡물을 도정할 수 있었다.

도정이 끝나 정리를 하면 어김없이 곡물은 사라지고 물레방아는 멈추었다.

나중에는 굳이 함께 다니지 않았다.

적당히 흩어져서 일을 한 것이었다.

그러자 던전에 들어온 지 24시간 되기 전에 모든 곡물을 도정할 수 있었다.

<다 끝난 것 같은데?>

나호의 말을 들은 것처럼 시스템이 던전의 클리어를 선언하더니 던전이 내 소유가 되었음을 알렸다.

[같은 이름의 던전이 두 개면 나중에는 헷갈릴 수 있습니다. 이름을 지어주시는 것이 어떻겠습니까?]

"좋지. 뭐가 좋을까?"

<가장 단순하게 하려면 지옥 1, 지옥 2로 하는 것이 좋은데 영국에서 가지고 온 것도 지옥이잖아.>

"그럼 여기는 소리지옥이라고 할까?"

<그것도 나쁘지는 않네. 직관적이고.>

꼬물!

^ㅅㄹㅈㅇ!^

<그건 또 뭐야? 소리지옥?>

꼬물!

^생리작용!^

^소리쟁이!^

<으하하! 맞는 말이네. 집사는 뭐가 좋아?>

"소리지옥1이라고 하자. 그게 가장 기억하기 좋겠다."

[강대한 님의 뜻에 따라 이 던전의 이름은 '소리지옥1'으로 명명됩니다.]

[클리어 하셨기 때문에 퇴장을 하셔야 합니다.]

"알겠어. 그런데 마나가 고작 저거 들어온 거야?"

던전에 들어오기 전보다 겨우 백 마나가 늘어있었다.

백 마나만 생각하면 적은 마나는 아니었지만 도정한 곡물을 생각하면 심하다 싶었다.

<열 가마니를 도정하는데 1마나도 쳐주지 않은 거지?>

뮤!

^정확하게 15.42가마니에 1마나!^

계산은 도뮤를 따라갈 수 없었다.

그것을 다 세고 있었던 모양이었다.

<열다섯 가마니에 1마나라고?>

뮤!

^15.42가마니!^

[이 던전은 클리어 보상이 있어서 그렇습니다.]

"클리어 보상?"

[그렇습니다.]

<우리가 말하지 않았으면 은근슬쩍 넘어가려고 했지?>

[그렇지 않습니다. 이미 지급이 됐습니다. 말씀을 드리는 것만 깜빡했을 뿐입니다. 지금 막바지 준비로 너무 바빠서···.]

왜 그런지 직장인의 애환이 느껴졌다.

<대변혁을 일으키지 않으면 되잖아. 너희도 힘들고 우리는 더 힘들고 이게 뭐야?>

[인간에게도 나쁜 일 만은 아닙니다.]

<나쁜 일이 아니라고? 대변혁의 날 얼마나 많은 사람이 죽는 줄 몰라서 하는 말이야?>

나호가 열을 냈다.

"나호야! 보상은 확인하고 화를 내도 내자."

<맞다! 보상! 이렇게 깜빡거리는 건가?>

나호가 멋쩍어하는 사이 시스템이 보상을 지급했다.

보상으로 지급된 것은 정말 의외의 것이었다.

<집사! 시스템이 미쳤나봐? 정말 저걸 주겠다는 거야? 아니 이미 지급이 되었네. 흐흐흐!>

조금 전까지 화를 내던 나호는 이제는 좋아서 어쩔 줄을 몰라 했다.

시스템이 우리가 도정했던 곡물을 보상으로 지급했기 때문이었다.

1542가마니나 되는 곡물이 대기실의 컨테이너 앞에 쌓여 있었다.

"밥처럼 지어 먹으면 되는 건가?"

[떡을 만들어 먹으면 아주 맛이 좋을 겁니다.]

<시스템이 떡도 아는 거야?>

[맛이 좋은 음식이라고 알고 있습니다.]

"그렇게 맛이 좋은 음식이면 도정하지 않은 씨앗을 주지."

[수확량이 적기로 유명한 작물입니다.]

그만큼 비싼 곡물이라는 말이었다.

대변혁을 대비해서 곡물도 계속 사들이고는 있지만 큰 보탬이 될 것 같았다.

"고마워. 잘 먹을게. 나호야! 나가자. 야스쿠니 가야지."

<가야지! 야수쿠니! 내가 다 쓸어버릴 거야!>

나호가 큰 목소리로 말했다.

쌓인 곡물을 보자 힘이 솟는 모양이었다.

우리는 기분 좋게 야스쿠니로 향해 바로 던전으로 입장했다.

"어? 여기는 저걸 이용해서 도정을 해야 하는 건가?"

<이거 보통 사람들이 봤다면 다 달아나겠다.>

꼴불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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