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당신의 마나통은 안녕하십니까?-184화 (184/350)

184. 꼴불견

이번에도 곡물과 관계되는 일이었다.

그런데 이번에는 도정이 아니라 제분을 하고 있었다.

음머어어어! 음머어어어!

반반이가 호기심 어린 소리를 냈다.

<집사! 몬야크에게 멍에를 둘러놓은 거 처음 보지?>

"네가 처음이면 나도 처음이지."

우리가 던전에 들어와서 놀랐던 이유가 이것이었다.

거대한 몬야크가 뱅글뱅글 돌면서 곡물을 갈고 있었던 것이다.

몬야크가 돌면 거대한 돌이 돌면서 곡물이 갈아지는 방식이었다.

그런데 우리가 던전의 입구에서 10미터 정도 들어가자 잘 돌던 몬야크가 멈추었다.

<어랴? 저 녀석 왜 멈추는 거야? 잘 돌다가?>

"우리에게 저 몬야크를 돌려서 곡물을 갈라는 거겠지."

<저 고집쟁이 몬야크를? 시스템은 간혹 환상에 사로잡혀 있는 것 같아. 이러니 전생의 사람들이 그렇게 고생을 한 거야.>

음머어어어!

"반반이와 반야에게 맡겨두면 문제없을 것 같은데? 우리에게는 오히려 잘 된 일일 수도 있어."

음머어어!

대기실에서 나온 반반이가 소리를 질렀다.

<끝났네. 으하하하하!>

나호의 웃음소리가 던전에 시원하게 울렸다.

반반이 가족에 비하면 앙증맞은 덩치를 가진 블랙 몬야크가 멍에를 진 채 다시 빙빙 돌았다.

정말 그것으로 끝이었다.

우리가 한 일은 잘 갈린 곡물을 자루에 담는 것뿐이었다.

이 던전에 있었던 몬야크의 수는 총 열 마리!

가루를 낸 곡물은 500자루였다.

"여기서 우리가 이전 던전에서 얻은 곡물도 갈아서 갈까?"

<시간이 많이 걸릴 텐데?>

"크게 상관없잖아. 약속이 있는 것도 아니니까."

직원인 사장에게 회사를 넘겨야 하지만 급한 것은 아니었다.

꼬물!

^그냥 가지고 가요. 잘 불리면 싹이 날 것도 같대요.^

"싹이 날 것 같다고?"

꼬물!

^황이, 금이가 싹이 날 것 같대요.^

<현미도 겉껍질을 벗겨도 싹이 나잖아. 속껍질까지 벗긴 것은 아니니까. 저것도 그럴 수 있겠다.>

"수확량이 많지 않다고 했는데?"

<과수 던전에서는 잘 자랄 수도 있어. 과수 던전에서는 뭐든 잘 자랐잖아.>

"그렇다고 들었지. 일본이 어찌나 자랑을 했는지 줄줄 외울 정도야. 신의 축복이 자신들에게 내린 것이라고 떠들었잖아."

<맞아. 이제 그것은 화순에 있지. 흐흐흐! 이번에는 뭐라고 하려나? 도쿄는 버려야 할 거야. 하하하!>

선량한 사람도 있었지 않았냐고 할지 모르겠지만 선량한 일본인은 없었다.

그저 일본이 있었을 뿐이었다.

이번 생에도 그들이 말했듯 일본과 한국이 있을 뿐이다.

<야스쿠니는 대변혁의 날 볼만하겠다. 그치?>

"다 열지 않을 수도 있어."

내 소유로 넘어온 던전은 열고 닫는 것을 내가 마음대로 할 수 있었다.

<바로 열지 않겠다니? 그게 무슨 말이야? 왜? 이렇게 준비를 했는데 그냥 두겠다고?>

나호의 목소리가 점점 높아졌다.

"감상은 해야 하잖아. 대변혁의 날은 정신없어서 구경할 사이도 없어."

<아! 으하하하! 우리 집사도 악당이 다 됐네. 악당이 다 됐어!>

"내 소유의 던전이 아니라도 열릴 던전은 차고 넘치기도 하고···."

내가 소유한 던전만 열지 않아도 일본, 특히 도쿄는 대변혁의 날 축복 받았다고 생각할 것이다.

어쩌면 단단히 착각할지도 모른다.

신의 축복을 받았다고 말이다.

물론 한두 개의 던전만으로도 초유의 사태이니 그런 생각을 할 정도로 정신이 있지는 않겠지만 말이다.

<도쿄에 우리가 소유한 던전이 총 몇 개지?>

"열다섯 개!"

<그럼 거의 절반 정도는 터지지 않는다고 봐야겠네? 이거 너무 많이 봐주는 거 아니야?>

"전생에 대변혁의 날 도쿄에 몇 개의 던전이 존재했는지는 알 수 없어."

<어쨌든 봐주는 거잖아?>

"봐주는 것이 아니야. 제대로 복수를 하려는 거지. 조금 더 생각해봐야겠지만 대변혁 1주일 후쯤 터뜨리는 것도 나쁘지 않을 것 같아."

우리나라의 던전들을 정리하고 안정을 유도하는데 1주일에서 보름 정도의 시간이 필요할 것이다.

<보고 싶어서 그러는 거지?>

"그렇지. 꾸루를 보내도 좋지만 직접 보고 싶어."

잔인하다고 할지 모르겠지만 보고 싶었다.

그들은 어떤 표정을 짓고, 어떤 말을 하는지···.

우리에게 그토록 잔인했던 그들은 과연 고난에 어떻게 대처하는지 보고 싶었다.

나약한 한국인!

근성이라고는 찾아볼 수 없는 족속이라고 떠들던 그들은 얼마나 강하고 얼마나 근성 있는지 확인할 것이다.

"그리고 그때 전생의 쓰레기들을 일본으로 데려다 놓을까 싶기도 해."

<이번에는 다를 수도 있잖아. 사람은 변하기도 해.>

"그래서 1주일 정도 시간을 주겠다는 거야."

<아! 그렇지 대변혁 이후 1주일이면 앞으로 어떻게 살아갈지 대강 보이지.>

차라리 없는 것이 나은 놈들이 있었다.

나라를 팔아먹고도 입 바른 소리를 떠들던 놈들!

온갖 되지도 않는 법리를 내세우던 찢어 죽여도 시원찮을 놈들!

그런 놈들만 사라져도 우리나라는 완전히 달라질 수 있었다.

<거머리들은 한 놈도 빼놓지 않아야 해.>

"박쥐새끼들이 더 위험했어. 그런 놈들도 빼놓지 않을 거야."

<맞아. 낮엔 애국자! 밤엔 매국노! 이런 새끼들이 더 어려웠지. 국론을 갈라놓기나 하고···. 말쟁이들도 빼놓지 않아야 해.>

"명단 작성은 이미 끝났어. 큰아버지께서 예의주시하시고 계시고."

<세 분께 말씀 드린 것은 참 잘한 일인 것 같아. 우리끼리는 이렇게 철저하게 준비하지 못했을 거야.>

"미우라 한 놈 감당하는 것도 버거웠겠지."

독도와 복권 수익금 대부분이 대변혁 이후를 준비하는데 쓰이고 있었다.

세 분은 내가 봐도 놀랄 정도로 준비를 철저하게 하고 계셨다.

음머어어! 음머어어!

^데리고 가겠대요.^

"몬야크를 모두 데리고 갈 수 있다는 말이야?"

음머머어!

<와우! 농사일에 능한 몬야크 열 마리야. 이거 엄청나다. 이왕이면 저것도 주면 좋겠다.>

나호가 500자루의 곡물과 곡물을 빻는 돌을 가리켰다.

"멍에까지 다 주면 더 좋지."

[띠링! 던전이 클리어 되었습니다. 강대한 님께 소유권이 넘어갑니다. 던전은 '소리지옥2'로 명명됩니다.]

"우리 말 들었지? 몬야크들은 반반이와 반야 휘하로 들어가서 데리고 갈 수 있을 것 같아. 이왕이면 저것까지 주면 좋겠는데···?"

<이번에는 십 마나 밖에 주지 않았으니까 보상이라고 생각하고 주면 좋겠다.>

이 던전에서는 내가 한 일은 거의 없었다.

그래서 당당하게 요구하기가 살짝 껄끄러웠다.

[천 마나만 주시면 모두 드리겠습니다. 덤으로 이번에 얻은 몬야크들의 충성심도 높여드리겠습니다.]

"충성심이라면 반반이와 반야를 잘 따르게 해주겠다는 거야?"

[강대한 님까지 포함됩니다. 반반이와 반야가 강대한 님의 소환수니까요.]

<겨우 십 마나 주고 천 마나를 뺏어가려고 하네.>

"그래도 나쁘지 않은 거래야. 반반이 가족이 있어서 문제가 없기는 하지만 충성심을 높여둬서 나쁠 것도 없고, 애들이 농사에도 능한 것 같고."

<멍에를 메는 것 보니까 농사에는 아주 도움이 될 것 같기는 해. 저기 봐.>

반반이가 몬야크 열 마리를 데리고 대기실로 들어갔는데 멍에를 멘 채였다.

그런데 그 멍에에 쟁기를 달고는 밭을 갈았다.

쟁기 위에는 꾸루가 앉아 있었다.

"깊게 잘 갈리겠네. 황이, 금이가 좋아하겠다."

황이와 금이가 대기실의 농사는 책임지고 짓고 있었다.

고물고물거리면서 농사를 제법 잘 지었는데 몬야크들이 도와주면 한결 편할 것 같았다.

[장비는 대기실로 옮겨드리겠습니다.]

시스템의 말과 함께 열 개의 대형 연자 맷돌이 대기실로 옮겨갔다.

동시에 천 마나가 사라졌다.

"벌기는 힘든데 사라지는 것은 정말 한 순간이다."

<시스템이 욕심이 많아서 그래. 겨우 십 마나 주고 천 마나를 뜯어가다니···.>

"그래도 한 번에 몬야크를 열 마리나 얻었잖아. 봐! 쟤들 눈이 한결 순해졌어. 황이와 금이도 부리겠다."

<반반이가 말해두면 황이, 금이 말도 잘 듣겠지.>

[클리어 됐기 때문에 퇴장하셔야 합니다.]

"알겠어. 퇴장시켜줘."

퇴장했지만 이번에는 다시 확인하지 않았다.

야스쿠니에서 바로 집으로 돌아와서 짐을 정리했다.

<짐이 사라지니 정말 일본도 끝이구나 싶네.>

꾸우우!

"한 달 정도는 못 오겠지만 그 이후에는 자주 올게."

일본에 자주 오지 않는다고 했더니 꾸루가 아쉬워했다.

<전령의 쉼터는 장프가 있어서 언제든 올 수 있어. 너무 자주 온다고 생각할 만큼 오게 될 거야.>

나호도 꾸루를 위로했다.

<그나저나 몬야크가 열 마리 느니 대기실이 좁게 느껴지네. 몬야크가 사는 지대를 늘려야겠어.>

"연말까지는 참는 수밖에 없어. 애들에게 지금 환경이 좋다고 하잖아."

<알겠어. 집사. 자자. 피곤하다.>

그날은 그렇게 잠이 들었다.

던전에서 보낸 시간이 있었기 때문에 무척이나 긴 하루였다.

다음날 회사로 출근해서 그동안 모아진 마나통을 수거하고 청소를 하고 나니 직원인 야마구치가 출근했다.

"오셨습니까? 가신 일은 잘되셨습니까?"

야마구치가 씩씩한 목소리로 인사했다.

<저 아저씨도 참 많이 변했어.>

"예. 그런데 생각은 해보셨습니까?"

당연히 회사를 다시 인수하겠다고 할 줄 알았는데 아니었다.

둘이 일했기 때문에 내가 없이 이 사업이 지속되기 어렵다는 것을 누구보다도 잘 아는 것이었다.

"사장님께서 한국으로 가시더라도 지금 같은 방식으로 운영을 하면 좋겠습니다. 어차피 오션 28을 저는 처리할 수 없습니다."

<영리한 사람이야. 우연히 만난 사람치고는 괜찮은 사람이고.>

지금 나호는 사람 욕심을 부리고 있었다.

야마구치가 일본인만 아니면 데리고 갔을 것이다.

하지만 야마구치는 일본인이었다.

지금은 나를 좋게 생각하지만 나중에는 증오하게 될지도 모를 일이었다.

"그럼 회사문을 닫을 수밖에 없습니다."

"그래도 어쩔 수 없죠. 먹지도 못할 것을 욕심내면 탈만 날 뿐입니다. 미우라라면 좋아할지도 모르겠네요."

"노하우를 넘겨줄 수는 없습니다."

넘겨줄 수 있는 것도 아니었고 말이다.

<집사! 청산을 하지 말고 대변혁 직전까지 유지하지 그래? 야마구치가 잘 관리할 것 같은데.>

'대변혁 전날까지 일하게 할 수는 없잖아. 지금까지 충분히 수고했는데···.'

<집사도 야마구치에게 조금 정이 들었구나?>

'나도 사람이야.'

<그럼 데리고 가자. 나중에 일본통으로 써도 좋잖아. 남을 속이는 사람도 아니고.>

야마구치는 눈치가 빨랐다.

내가 솔직한 스타일이라는 것을 알고 난 후부터는 일본인 특유의 답답함을 많이 벗어던졌다.

일본인치고는 분명 마음에 드는 사람이었다.

"사장님! 저 지난 6개월간 한국어 열심히 배웠습니다. 그리고 앞으로도 더 열심히 배우겠습니다. 그러니···."

회사를 이대로 유지하면 나에게는 나쁠 것이 없었다.

"회사를 유지하는 것은 어렵지 않습니다."

"그럼···?"

"원하시면 회사는 이대로 유지하겠습니다. 대신 이번 크리스마스부터 신년까지는 한국에서 보내시죠. 제가 초대하겠습니다."

"그으으···. 월평이라고 하는 곳 말입니까?"

야마구치의 눈이 반짝거렸다.

"그렇습니다. 대신 가족 모두와 함께 오십시오. 약속하시면 회사는 지금과 같은 방식으로 운영하겠습니다."

넘기려고 준비하던 것은 없던 일이 되었다.

그리고 야마구치가 한국으로 온다면 야마구치는 대변혁의 날 누구보다도 안전하게 될 것이다.

그리고 나호의 말처럼 차후에 일본을 담당하게 될지도 모를 일이었다.

"아! 사장님! 그런데 그 여자는 어떻게 합니까?"

"누구요?"

"박 뭐라고 했는데···? 여기 문 차던 여자 말입니다."

"그 여자가 왜요? 훈방되지 않았습니까?"

"아닙니다. 이틀째 구치소에 있습니다."

<문 좀 찼다고 지금까지 구치소에 있다고?>

"사장님 연락을 받고 바로 신고를 했거든요. 그런데 그때 미우라 씨가 왔습니다. 그래서 일이 좀 커졌습니다."

"크게 되다니요?"

"미우라 씨가 이곳이 중요한 곳이라고 해서 테러리스트로 몰렸습니다. 여기가 국책 사업의 중요 사업장이라고 했거든요. 틀린 말이 아니긴 한데···. 오션28의 처리비법을 빼내려는 산업스파이일지도 모른다는 말까지 했습니다."

<으하하하! 어떻게 일이 이렇게 되냐? 미우라 놈이 그렇게까지 말했다면 어지간한 집안이라도 빼내기 쉽지 않지. 하하하!>

우습기는 했다.

끼리끼리 논다더니 꼴통 둘이 만나서 아주 일을 제대로 만든 것 같았다.

'둘 다 보통 성질이 아닌데 볼만했겠네.'

"고생이 많으셨겠네요."

"미우라 씨도 미우라 씨지만 한국 여성분이 정말 장난 아니었습니다. 한국 여자는 다 그렇게 무섭습니까? 눈에서 불이 나올 것 같았습니다. 당당하기가···."

일본 여자들에 비해 강한 것은 분명한 것 같았다.

물론 어디까지나 개인적인 생각이지만 말이다.

"피곤하셨겠네요?"

"아닙니다. 꼴불견인 면도 없지 않았지만 제 딸도 그 여자처럼 당당하면 좋겠더군요. 한국 분들은 시원시원해서 좋습니다. 묘하게 정이 갑니다."

<한번 빠져들면 헤어 나오기 어려운데···.>

혹 떼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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