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당신의 마나통은 안녕하십니까?-187화 (187/350)

187. 어이없는 일

"한국인끼리 돕고 살자는 것이 뭐가 나쁩니까? 그쪽에서 고소만 취하해주면 아무 문제도 되지 않을 일을···."

<집사! 거머리 집안에서 온 것 같은데?>

"애가 타나보네."

바로 들어갈까 하는데 뒤에서 부르는 소리가 들렸다.

아버지였다.

"아버지! 왜 나와 계셨어요?"

"네게 들은 이야기가 있어서 잠시 나왔다. 얽히고 싶지도 않고. 되지도 않은 말을 들으면 참지 못할 것 같아서. 산책 좀 하자."

아버지께서는 내가 사무실에 들어가는 것을 원하지 않는 모양이었다.

"네 큰아버지가 알아서 할 거다. 순해 보여도 호락호락한 사람 아니잖아."

"그렇죠."

큰아버지께서는 호인(好人)이라고 불릴 정도로 성격이 좋으시지만 성질까지 없는 것은 아니었다.

대변혁 이후 큰아버지와 던전을 누벼봤기 때문에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었다.

"누가 온 거예요?"

"창일의 대표이사가 왔더구나."

"의외네요. 직접 찾아오고."

<창일의 대표이사라면 '박원일'이 왔겠네. '원'자 돌림이었는데 생각을 못했어.>

"워낙 나이 차이가 났으니까."

세 분과 있을 때는 나호와 이야기를 해도 굳이 심상으로 하지 않아도 좋았다.

소환수들과 이야기를 한다는 것을 알고 계시기 때문이었다.

"그 동생이라는 여자와 나이 차이를 말하는 거냐?"

"예. 박원미라는 여자를 보고도 창일과 관계가 있을 것이라고는 생각하지 못했거든요. 닮지도 않았고."

"밖에서 본 딸이라더라."

그새 조사를 하신 모양이었다.

"그런데 박원일이 직접 와요?"

창일의 대표이사 박원일이 직접 왔다는 것은 둘의 사이가 나쁘지 않다는 의미였다.

밖에서 데리고 들어온 여동생이 예쁠 리는 없는데 말이다.

"남자 형제만 자라다가 여동생을 봐서 다들 예뻐했다고 하더라. 어차피······."

회장의 부인이 병으로 세상을 떠난 지 3년 후에 본 여동생이어서 반감도 적었고, 더구나 새엄마가 될 뻔한 사람이 여동생을 낳다 세상을 떠나서 동질감도 느낀 것 같았다.

"새엄마가 될 뻔한 여자가 남긴 재산도 엄청났다고 하더라. 그 재산은 고스란히 여동생 차지가 됐으니 더 싫지 않았겠지."

부에 대한 욕구가 원일보다 강한 사람은 드물었다.

대변혁 이후 잠시 주춤했지만 기존에 가지고 있던 재산을 이용해서 부를 유지했던 몇 되지 않은 기업이었다.

"창일이 이를 갈겠네요."

"압박이 들어오겠지. 직접 왔는데 뜻대로 되지 않을 테니 말이다."

"걱정되세요?"

"우리 아들이 있는데 무슨 걱정을 해? 그런데 컨테이너를 좀 치워야할 것 같은데···."

지금 월평리 2구는 컨테이너로 발 디들 틈이 없었다.

개인 방송을 하는 사람들이 호기심을 가질 수밖에 없었다.

"지금 치울게요. 물량은 얼마나 들어온 거예요?"

"이제 10% 정도 들어왔지. 12월 화물 물량의 대부분은 여기로 온다고 하더구나. 수출에 지장을 준다고 항의까지 들어왔어."

"생각지도 못한 일이네요. 일이 많으면 좋아할 거라고 생각했는데."

"자원과 인력은 한정적이니까."

"관계부처에서는 뭐라고 하지 않고요?"

"왜 안하겠니. 치유률이 올라가니까 대하는 것이 달라지지."

어디나 사람 사는 곳은 비슷했다.

우리나라도 소환이 거듭될수록 치유되었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많아졌다.

처음에는 우리 회사가 없으면 큰일이라도 날 것처럼 대했지만 이제 그럴 필요가 없는 것이었다.

"굳이 컨테이너를 고집할 필요는 없어요."

"그렇지 않아도 다양화시키고 있다."

이제 신경을 쓰지 않는다고 하지만 사람들이 볼 때 컨테이너를 대기실로 넣는 것은 꺼려졌다.

<집사! 주위에 아무도 없어. 이쪽은 넣어도 될 것 같아.>

나호가 위에서 주위를 둘러보며 말했다.

나호의 신호와 함께 컨테이너를 대기실로 넣었다.

원래 대기실에 컨터이너를 마음대로 넣을 수는 없었다.

소환수들이 사용하는 물품이 아니면 지금도 엄격히 통제되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화순던전이 지척이어서 이 정도는 시스템이 양해를 해주었다.

라면이 들었다는 컨테이너가 사라졌다.

"아이고! 이건 아무리 봐도 적응이 되질 않아."

"아버지께서도 내년이 되면 이렇게 하실 수 있어요."

"머리로는 이해가 되는데···."

대변혁 이후 처음으로 인벤토리를 가진 사람을 봤을 때 나도 아버지와 같은 기분을 느꼈었다.

나중에는 지갑보다도 더 편리하게 사용했지만 처음에는 얼떨떨하고 인벤토리가 사라져버릴 것만 같아서 몇 번이고 확인을 하곤 했었다.

빠르게 대기실로 컨테이너를 넣었다.

바닥이 보이지 않던 곳에 공터가 나타나기 시작했다.

하지만 몇 시간도 지나지 않아서 다시 이곳에 컨테이너가 쌓일 것이다.

<집사! 아이들이야.>

"꺄르르르! 꺄르르르!"

"정말이야! 내가 봤어. 여기 형아 마법사야. 컴퓨터에도 나왔다고!"

"피이이! 말도 안 돼. 그건 다 가짜야! 산타클로스 같은 거라고!"

"아니거든! 내가 봤단 말이야!"

"명훈이는 바보래요. 바보래요. 바보래요."

"나 바보 아니야! 우리 형도 같이 봤다고!"

"그럼 너희 형도 바보네. 와아아! 둘 다 바보다아아!"

간혹은 아이들이 더 잔인할 때가 있었다.

순진하고 천진하다고만 생각하면 큰코다칠 수 있었다.

<집사! 명성이 동생이야.>

"알고 있어. 이 녀석들 마법 좀 보여줄까?"

"괜찮겠니?"

"아이들이니 마술처럼 생각하지 않을까요? 곧 더 엄청난 일들도 보게 될 테니 문제없을 것 같은데."

"글쎄다. 애들 교육에 대한 것은 아는 것이 없어서···."

아버지께서 잠시 고민에 잠기시는 동안 아이들의 목소리가 가까워지더니 이내 꼬맹이들이 나타났다.

유치원에 다니거나 초등학교 저학년으로 보이는 아이들이었다.

"어? 마법사 형이다!"

조금 전까지 놀림을 당한 명훈이었다.

이 아이는 세 분과 같은 그룹에서 활동한 '권명성'의 동생이었다.

권명성은 열네 살 어린 나이로 비세계로 소환된 아이였다.

그리고 지금까지 마나통을 잘 지키고 있는 아이이기도 했다.

전생에 마법사로 각성했지만 미우라 길드와 함께 던전 공략 중 사망했다.

그때 나이가 겨우 열아홉이었다.

미우라에 의해 제거되었다고 판단되는 사망이었다.

똘똘하고 야무지기도 해서 큰아버지께 말씀드려서 가족 전체를 이곳으로 이주를 시켰다.

명성의 부모님을 월평에 취직시키는 것으로 이주는 쉽게 이루어졌다.

"마법사 아니야! 우리 아빠가 사장님이라고 했어. 사장님이죠?"

옆의 귀여운 꼬마아가씨가 똘똘해 보이는 눈을 빛내며 말했다.

"형아! 형 마법사 맞지이이!"

일곱 살 명훈이가 폭 안겨오며 쳐다보았다.

아기 고양이 같은 눈빛이 참 사랑스럽게 보였다.

꼬물!

^우앙! 귀엽다! 요놈! 마법사가 될 재목이네.^

'뭐라고?'

꼬물이는 간혹 생각지도 못한 말을 할 때가 있었다.

어떻게 아는지 이해할 수 없는 말을 종종 하는데 지금도 마찬가지였다.

비세계로 아직 소환도 되지 않은 아이를 보고 마법사가 될 재목이란다.

꼬물!

^마법의 향기가 나는 꼬맹이! 귀엽다!^

덕담인건지?

예지인건지?

'정말 마법사가 된다고?'

내가 진지하다는 것을 느꼈는지 꼬물이의 하얀 뿌리 한 가닥이 대기실에서 나오더니 내 볼을 타고 입 옆으로 나왔다.

누군가 꼬물이를 볼 수 있다면 기겁을 할 모습이었다.

소환수들을 아무도 볼 수 없다는 사실이 참으로 다행스러운 일이었다.

서늘하지만 나쁘지 않는 감촉이 볼에 느껴지는 순간 뿌리의 끝이 명훈이를 향했다.

마치 청진기를 아이를 향해 들어 올리는 것 같았다.

아이의 가슴에 닿지 않았지만 왠지 뿌리 끝이 명훈이의 가슴에 닿은 것만 같았다.

꼬물!

^마법의 향기가 나는데? 이 아이의 것인지···. 묻어 온 것인지는 아직 정확하지 않아요.^

<좋다 말았네. 쟤 형이 명성이야. 권명성! 전생에 마법사였어. 미우라에게 제거된 것을 보면 제법 재주가 좋았을 거야.>

나호가 명성에 대해서 설명했다.

꼬물!

^명훈이도 재능이 있을 것 같아요. 마법에 대한 호기심도 많고.^

'보여주는 것도 나쁘지 않겠네?'

꼬물!

^마법의 씨앗이 심겨질 수도 있죠.^

꼬물이가 그 말을 하면서 푸른 씨앗을 만지작거렸다.

초거대 바위골렘에게서 얻은 푸른 씨앗은 꼬물이를 줬는데 꼬물이는 단 한 순간도 푸른 씨앗을 떼어놓지 않았다.

일곱 개의 여린 뿌리 중 하나는 반드시 푸른 씨앗을 만지작거리거나 품고 있었다.

너무 만져서 닳아질 것 같지만 그렇지는 않았다.

여전히 꼬물이는 황금을 먹는데 황금은 조금씩 줄어들지만 푸른 씨앗은 줄어들지 않았다.

<살짝 염려스러웠는데 꼬물이가 괜찮다고 하니 걱정하지 않아도 되겠네.>

"형아! 사장 형아! 마법사도 되지? 이거 막 없애기도 하잖아? 내가 지난번에 봤단 말이야. 우리 형아랑 밤에 나왔다가 봤어. 이게 막 사라졌어. 아침에 나오니까 다 없어졌다고!"

"그건 트럭이 가지고 간 거라고 했어! 우리 아빠가!"

꼬마 아가씨가 야무지게 몰아붙였다.

<목소리 큰 사람이 이기는 것은 아이들도 마찬가지네. 후후후!>

나호가 꼬마 아가씨 앞에 앉아서 눈을 떼지 못했다.

예닐곱 살 정도 되어 보이는 아이는 무척이나 총명해보였다.

"내가 봤는데. 형이 지나가니까 사라졌어. 뿅하고 없어졌다고!"

"뿅이래! 꺄르르!"

"뽕이 낫겠다. 하하하! 그러니까 네가 바보라는 거야! 사람이 지나가는데 어떻게 저게 사라져? 그쵸?"

다른 아이도 꼬마 아가씨 편을 들었다.

"글쎄? 가능할 것도 같은데?"

"에엥? 정말요?"

"우와? 정말 마법사에요?"

"우와아아! 형 정말 막 사라지게 하고 그래요? 여기 있는 거 다 사라지게 할 수도 있어요?"

"형! 해봐요. 빨리!"

명훈을 몰아붙이던 아이들은 어디 가고 마법에 대한 호기심으로 불타오르는 아이들만 남았다.

조금 전까지만 해도 말도 안 된다고 했던 아이들이 마법을 재촉하기 시작했다.

"해볼까?"

"예에에에!"

"빨리! 빨리 해보세요."

"보고 싶어요! 어? 우리 형도 보여줘야 하는데···."

"안 돼! 너희 형은 학교에 있잖아. 형! 얼른 보여줘요. 얼른!"

명훈은 명성에게도 보여주고 싶어 했지만 다른 아이들은 당장 보여 달라고 재촉을 했다.

"그래! 해보자! 어디부터 할까?"

"여기요! 여기!"

"아니 이것부터!"

"다요. 다 없애 봐요. 인터넷에서 지우개 마법 봤는데······."

재잘재잘!

아이들은 재촉을 하면서도 자신들이 아는 이야기를 하느라 정신이 없었다.

이렇게 한참 이야기를 나누면 마법을 보여주기로 했던 것은 잊고 이야기 속으로 빠져들 것 같기도 했다.

잠시 아이들의 재잘거림을 듣고 있었다.

너무도 사랑스러운 아이들이었다.

<집사! 좋아?>

'좋다 뿐이겠어? 행복해. 아이들의 이런 재잘거림을 원 없이 들을 수 있다는 사실이 말이야.'

<하긴 유치원이나 학교에 가지 않으면 요즘은 아이들 재잘거림 들을 곳도 많지 않더라.>

갈수록 출산율이 떨어져서 아이 울음소리도 웃음소리도 듣기 어려운 세상이 되어버렸다.

그런 것에 비하면 우리 마을은 아이들이 참 많았다.

'어? 그런데 길드장의 딸이 보이지 않네?'

전생에 큰아버지와 내가 소속되어 있던 길드의 길드장은 현재 우리 회사의 요리사이자 검도 지도사로 근무하고 있었다.

인천의 중국집에서 일하고 계신 분을 우리 회사로 모셔 왔는데 딸이 희귀병을 앓고 있었다.

우리 회사로 옮겨온 후 비세계에서 가지고 온 치료수를 계속 먹여서 지금은 말끔히 병이 나았다.

병은 나은 후에는 회사의 유치원을 다니고 있는데 오늘은 보이지 않았다.

<정말? 아이들이 있는 곳에는 늘 있었는데? 무슨 일 있나?>

"아버지. '아람'이가 보이지 않네요?"

"아람이? 아! 황 관장 딸 말이지?"

"예! 뛰어노는 것을 좋아하잖아요. 아이들이 있는 곳에는 늘 있던데."

"그건 이따 이야기하마."

아버지께서 아이들을 보시며 말씀하셨다.

"어디 아픈 것은 아니죠?"

"그런 것은 아니야. 어서 보여줘. 아이들 기다린다."

<아이들 앞에서 할 수 없는 이야기라면 혹시 아람이 엄마 문젠가?>

'이혼했는데? 아픈 아이를 두고도 기어코 이혼하면서 재산 분할까지 착실히 해갔다고 알고 있는데?'

전생에 길드장은 개인사에 대해 잘 이야기를 하지 않았다.

큰아버지께서 전처와 딸에게 어이없는 일을 당하지 않았으면 자신의 이야기를 우리에게 털어놓는 일도 없었을 것이다.

큰아버지와 비슷한 일을 겪었기 때문인지 더 잘 통하던 길드장이었다.

<아이도 낫고 거기다 월평에 근무한다는 말까지 들었으면 욕심이 동할 만도 하지. 우리 회사의 복지는 최고잖아.>

참 어이없는 일이 많은 세상이었다.

"형! 사라지게 해봐요! 어서요!"

"빨리이이!"

아이들의 재촉이 극에 달한 것 같았다.

손을 들어올렸다.

아이들의 시선이 손에 몰렸다.

그 순간!

나쁘지 않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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