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당신의 마나통은 안녕하십니까?-190화 (190/350)

190. 숨이 막혔어요.

호텔 방문을 노크한 사람은 의외의 사람이었다.

"이거 실례가 되는 것은 아닌지 모르겠습니다. 가족과 함께 온 것 같아 실례를 무릅쓰고 노크를 했습니다."

"아! 들어오십, 아니 제가 나가겠습니다."

어차피 아람이가 편하게 먹도록 자리를 비켜줄 생각이었다.

내가 자리에서 일어나자 변호사도 함께 자리에서 일어나서 나왔다.

방문 앞에 있는 사람은 '한희준'!

큰아버지와 내가 몇 번 접촉을 했지만 마을로 데리고 오지 못한 사람이었다.

그럴 만도 한 것이 한희준은 배경이 너무 좋았다.

한희준은 의사가문에서 태어난 사람이고 본인도 의사였다.

그리고 전생대로라면 대변혁 이후 치료사로 각성해서 활동할 사람이었다.

대변혁의 날 가족을 모두 잃고 본인만 살아남은 것이 평생 한이라던 사람!

그 한을 풀어주기 위해 몇 번 접촉해서 인연을 만들어보려고 했지만 쉽지 않았다.

마을로 이주는 힘들더라도 연말을 가족과 함께 우리 마을에서 보내라고 했지만 번번이 거절했었다.

그런데 이렇게 먼저 찾아오는 것을 보니 살짝 희망이 엿보였다.

"실례가 되지 않았나 모르겠네요."

"아닙니다. 밑에서 차라도 한 잔 하시죠."

한희준은 세미나 때문에 호텔에 묵고 있다고 했다.

생각지 못한 곳에서 나를 봐서 반가운 마음에 문을 두드렸다고 했다.

"부모님께서 긍정적으로 생각하시는 것 같습니다."

<오오올! 드디어 이주를 결정했나?>

나호가 기대를 했지만 이주까지 할리는 없었다.

번듯한 병원을 소유하고 있는데 왜 굳이 시골에 들어온다고 하겠는가?

"잘됐습니다. 몸만 오시면 됩니다."

"대신 낮에는 저희가 의료봉사를 하겠습니다."

"좋지요."

전생에 같은 길드로 활동을 했거나 좋은 인연이었던 사람들은 어떻게든 대변혁의 풍파에서 안전하게 해주고 싶었다.

그래서 우리 마을로 이주를 시킨 사람도 있고, 그렇지 못한 사람들은 파티를 핑계로 마을로 불러들이려고 준비 중이었다.

이미 초대장은 발송한 상태였다.

<잘됐다. 이번 생에는 정말 좋은 치료사가 될 수 있겠다.>

'전생에도 좋은 치료사였어.'

<좋은 치료사이긴 했지. 하지만 남만 치료하고 자신은 돌보지 않았잖아. 치료사는 자기를 치료하는 것이 기본인데 말이야.>

전생에 한희준은 자신을 돌보지 않는 사람으로 유명했다.

마치 죽음을 향해 달려가는 불나방 같이 보일 때가 많았다.

가족 모두를 눈앞에서 잃은 충격 때문이었다.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는 것을 넘어서 죽음을 갈구하는 것처럼 보일 때가 많았다.

지금은 이렇게 안정적인 정서를 가지고 있는데 말이다.

한참 이야기를 나누다 한희준은 자리를 떠났다.

<집사! 무슨 생각을 그렇게 해?>

한희준이 떠난 자리를 보고 있자 나호가 물었다.

"전생에 희준 형의 빈자리는 정말 컸었어. 기억해?"

<기억만 하겠어? 미우라 놈이 아니었으면 죽지 않았을 텐데.>

생각해보면 미우라가 연관되지 않은 일이 드문 것 같았다.

"이번에는 그렇게 허망하게 보내지 않을 거야."

<그래야지. 그나저나 얼마나 올까?>

"모르지. 자연 치유된 사람들이 많아서 우리 회사의 가치가 하락했다는 말이 많잖아. 그것도 많이 작용할 거야."

독도와 월평의 이름값은 상당했다.

파티를 연다는 소문이 퍼지자 초대장을 받지 않은 사람까지 참가를 문의하는 전화나 이메일이 왔었다.

하지만 마지막 소환이 끝난 후에는 그런 전화가 몇 통 되지 않는다고 했다.

되도록 초대된 사람만 받아들이겠지만 굳이 참여하겠다고 하는 사람까지 막아설 생각은 없었다.

물론 거머리나 박쥐같은 사람들은 온다고 해도 2구 안으로는 들어오지 못할 것이다.

아무튼 무정한 세월은 잘도 흘러갔다.

기온이 갈수록 떨어지더니 12월 중순에는 첫 눈이 내렸다.

"올해는 추울 것 같네요."

"젊은 사장이 이렇게 함께 걸어주니 내는 춥지 않구만."

"옷을 더 따뜻하게 입으셔야 할 것 같아요."

"아니여. 충분혀. 하나도 춥지 않당께. 젊은 사장이 주는 음료수를 먹고 난 다음부터는 회춘헌 것 같당께. 이러다가 장가간다고 설칠지도 모를 일이여."

아무리 바빠도 이틀에 한 번 정도는 만약고 어르신과 산책을 했다.

돌아가신 할아버지를 보는 것 같아서 어르신과의 산책은 늘 즐거웠다.

재치도 있으시고 아는 것도 많으셔서 이야기할 맛이 났다.

"축제를 헌다고?"

"예. 크리스마스 때부터 외부에서 손님들이 많이 올 거예요."

"그냥 축제가 아닌 것 같어? 그라제?"

"맞아요. 그냥 축제는 아니죠."

"왠지 그럴 것 같았어. 자식 놈들 밖으로 싸돌아댕기지 말라고 말해야 쓰것구만."

"여기에 볼 거리, 놀 거리가 충분해서 밖으로 나가고 싶지 않을 겁니다."

"어긋나서 큰일이제. 청개구리가 따로 없슨께."

<말을 어지간히도 듣지 않는 자식들이야. 정말 청개구리가 따로 없어.>

일본에서 한국으로 돌아와 생활을 하면서 본 만약고 어르신의 자녀들은 정말 청개구리였다.

일부러 저러나 싶을 정도로 만약고 어르신이 말씀하시는 것과 반대로만 하는 자식들이었다.

그래서 어르신이 이렇게 걱정을 내려놓지 못했다.

"고마워."

어르신이 내 손을 꼭 잡으셨다.

날로 손의 힘이 세지는 것 같았다.

치유버섯의 효과가 확실히 좋았다.

"친한 친구 분들 계시면 초대하셔도 돼요."

"친한 친구들은 다 저 위에 있어. 있다고 혀도 자식 새끼들 눈치 보느라 못 오제. 어여 가서 일봐. 내도 꼬마들이랑 놀아볼 테니께."

"무리하지 마시고요."

"알것어."

만약고 어르신은 회사의 유치원에서 시간을 보내실 때가 많았다.

아이들에게 옛날 물건을 가르쳐주기도 하고 옛날이야기를 해주기도 하셨다.

아이들도 어르신을 좋아하고, 잘 따라서 어르신의 큰 기쁨이 되어주고 있었다.

"사장니이임! 사장님! 저 왔습니다."

크리스마스를 하루 앞두고 야마구치와 그의 가족이 화순에 도착했다.

야마구치는 나를 보더니 아이처럼 달려왔다.

<어째 못 보던 사이에 얼굴이 환해진 것 같은데? 좋은 거 먹었나? 집사가 없으니 스트레스가 없었나?>

나호가 짓궂은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

"별일 없죠?"

"있습니다."

당연히 없을 것이라고 대답할 줄 알았는데 있다고 말하는 야마구치였다.

"미우라 씨가 사장님 어디로 사라졌냐고 어찌나 귀찮게 구는지 죽는 줄 알았습니다. 대체 미우라는 왜 그런답니까? 뻔히 알면서? 신종 괴롭힘 같습니다. 제가 여기 온다고 했더니 자기도 올 수 없냐고···. 어휴우."

야마구치가 한숨을 폭 내쉬었다.

미우라는 잠깐 같이 사업을 했다고 내가 친구라도 되는 줄 아는 것 같았다.

<정말 웃기지도 않아. 미우라는 도대체 왜 그러는 거야?>

'아마 내가 마나통을 가지고 있어서 더 그럴 거야. 호감도는 상승하고 거부감은 하락하니까.'

<아! 맞아! 그게 있었지. 하하하하! 하하! 기분이 어때? 미운 놈에게 사랑받는 느낌말이야.>

'듣는 것만으로도 역겁 거든.'

<하하하! 하하하!>

나호가 웃음을 감추지 않았다.

"이쪽으로 오십시오. 숙소가 마련됐습니다."

야마구치 가족을 준비된 숙소가 있는 곳으로 안내했다.

많은 사람이 이곳에서 신년까지 보내야하기 때문에 모듈러 주택을 미리 주문해놨다가 며칠 전에 설치를 마무리했다.

그렇게 지은 집이 적지 않았다.

이걸 두고도 말들이 많았지만 이렇게 지은 집들은 한동안 이들이 살아야 하는 집이 될 공산이 컸다.

"아주 마음에 듭니다. 고맙습니다. 사장님!"

"편하게 보내시면 됩니다. 회사 안에 즐길 거리도 많으니 자유롭게 이용하시면 되고 저기 보이는 건물이 식당입니다. 직접······."

야마구치에게 간단하게 설명을 하고 밖으로 나왔다.

신년까지 이곳에서 보내게 된다면 야마구치 가족은 목숨을 잃는 일은 없을 것이었다.

야마구치를 시작으로 초대된 손님들이 하나둘 도착하기 시작하면서 월평리는 축제분위기에 휩싸였다.

지나치게 떠들썩한 분위기를 만들지는 않았지만 크리스마스와 연말 분위기를 즐기기에는 충분했다.

이런 와중에도 방벽 뒤로는 컨테이너가 쌓이고 있었다.

배달을 마치면 바로 비용을 지급하기 때문에 서로 우리 일을 하려고 했다.

간간이 방벽 뒤로 넘어가서 컨테이너를 화순 던전에 넣고 오는 일이 내 일이었다.

주거 공간 뒤로 방벽을 세워서 트럭이 마을로 들어오지 않게 했더니 마을도 한결 조용해졌다.

그렇게 2029년 12월 31일이 되었다.

이제 1월 1일이 되는 순간 대변혁이 시작될 것이었다.

아침 일찍부터 일어나서 문제가 없는지 확인하고 입구를 통제하기 시작했다.

들어오는 사람에 대한 단속보다 밖으로 나가려는 사람에 대한 단속이 심했다.

밖으로 나갔다가 열두 시가 되기 전에 귀가하지 못하면 자칫 대변혁에 휩쓸릴 수 있기 때문이었다.

<집사! 대변혁의 순간 어떤 던전에 들어갈 거야?>

"마을을 위협할 만한 던전에 가장 먼저 가야지."

대변혁의 날 전생에 화순이 어땠는지는 정확하게 알지 못한다.

하지만 월평리 2구가 어땠는지는 알고 있었다.

화순 던전!

쉽사리 클리어가 되지 않는 던전 때문에 많은 사상자가 났었다.

시골이라 많은 사람이 거주하지 않아서 도심에 비하면 피해가 적었지만 쉽게 클리어 할 수 없어서 끝내 미우라에게 팔아야만 했었다.

<화순 던전? 거기는 집사가 시기를 조절할 수 있잖아?>

"조절해야지. 과수 던전 정도는 열 생각이야."

<던전을 열겠다고? 집사 제 정신이지?>

"대변혁이 어떤 것인지 정도는 알아야지. 그래야 함부로 밖으로 나간다는 말도 하지 않을 거고."

<과수 던전이 가장 무난하기는 하네.>

나호와 이야기를 하면서 마을 안팎을 살폈다.

1회성 던전이 열린 곳이 있는지 특히 신경을 썼다.

하지만 문제 있는 곳은 없었다.

그렇게 밤이 되었다.

평화시대의 종식을 알리는 만찬을 나누고 잔잔한 음악이 깔린 가운데 시간이 흘러갔다.

회사 직원들과 초대 되어 온 손님들이 어우러져 즐거운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열 시가 넘어가기 시작하면서 잠자리에 들기 위해 자리를 뜨는 사람들도 있었다.

하지만 여전히 파티를 즐기는 사람이 많았다.

그렇게 시간이 흘러 대변혁을 30분 남겨두었을 때 한쪽에서 소란이 일었다.

20대 초반의 청년이 소리를 지르고 있었던 것이었다.

파티 중에 어디에서나 있을 수 있는 일이었는데 그 대상이 문제였다.

<어? 만약고 어르신이다. 아니 저 놈은 손자인데?>

"할아버지가 뭔데 제가 외출하는 것 까지 막으세요? 예? 우리 엄마아빠도 뭐라고 하지 않는데 왜?"

"아 글쎄. 오늘만 나가지 말라는 말이여. 이 할아비 소원이여. 그라니 오늘만 나가지 말어! 나가봤자 여기보다 재미도 없잖여?"

"할아버지가 뭘 알아? 아니. 우리 할아버지는 항상 모든 것을 다 아시지. 그게 얼마나 숨이 막히는 줄 알아요? 그냥 내비두라고요? 아버지도 숨이 막힌대요. 할아버지만 보면 숨이 막힌다고요!"

만약고 어르신의 손자가 고래고래 소리를 질렀다.

<으이구! 만약고 어르신 손자만 아니면 나가라고 하고 싶네. 싸가지 없는 새끼!>

나호가 어지간해서는 욕을 하지 않는데 청년을 보고 욕설을 내뱉었다.

그만큼 손자의 언행이 불손했던 것이다.

"그랴. 다 할애비 잘못이여. 그라니께 오늘은 내말 들어."

"어제도, 그제도 그랬잖아요! 내일도 모레도! 10년 후에도! 할아버지가 살아있는 한은 이 굴레를 벗어날 수 없잖아요!"

<저런 느자구 없는 새끼를 봤나! 저 소리가 대체 뭔 소리여?>

나호가 폭발할 것만 같았다.

"오늘만이여. 오늘만!"

"됐어요! 지겨워어! 지겹다고! 할아버지는 보고 있지 않아도 숨이 막혔어요. 늘 바른 소리만 해서 숨이 막혔다고요! 이제는 끝날 줄 알았더니···."

<저놈 저거 할아버지 불치병으로 갈 줄 알았는데 가지 못해서 아쉽다는 소리지? 참말로 썩을 놈이네. 썩을 놈이여!>

더 듣고 있을 수 없었다.

어르신의 자녀들은 모르고 있었지만 만약고 어르신은 우리 마을에서 중요한 존재였다.

저런 말을 들을 분이 아니었던 것이다.

어르신의 손자를 똑바로 쳐다보며 접근했다.

처음에는 어르신과 말다툼을 하느라 내가 다가서는 것을 모르던 손자가 나를 보더니 움찔했다.

민망한지 그렇지 않아도 붉었던 얼굴이 더 붉어졌다.

"이야기 좀 하죠."

생각 같아서는 당장 한 대 치고 싶었지만 만약고 어르신의 체면을 생각해서 꾹 참았다.

"뭐, 뭔 이야기···."

대답을 듣지 하지 않고 돌아 나왔다.

손자가 쭈뼛거리며 따라 나왔다.

따라 나오지 않으면 억지로라도 데리고 나올 생각이었는데 그래도 순순히 밖으로 나와서 다행이었다.

만약고 어르신께서도 마치 죄인이 된 냥 손자의 뒤를 힘없이 따라 나오셨다.

그 순간 눈앞으로 무언가가 빠르게 지나갔다.

대변혁!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