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2. 호구 잡힌 계약
대변혁의 날 많은 사람들이 죽었던 이유는 몬스터 때문이었다.
던전에서 나온 몬스터는 제 배를 충분히 채우기 전에는 살육을 멈추지 않았다.
한밤중에 대변혁을 맞은 우리나라는 그나마 양반이었다.
대낮에 대변혁을 맞은 나라는 몬스터에 의해 죽은 사람보다 서로에게 밟히고 밀쳐져서 죽은 경우가 더 많았다고 한다.
어쨌든 대변혁의 날 모습을 드러낸 던전은 시작을 알리는 것처럼 일시에 몬스터를 토해냈다.
배고픈 몬스터는 살아있는 것은 무엇이든 잡아먹었다.
인간만 몬스터의 먹이가 된 것은 아니었다.
들개나 들고양이를 시작으로 멧돼지, 노루, 사슴, 고라니 등 눈에 띄는 모든 동물은 몬스터에게 먹이로 인식이 되었다.
약해서 손쉽게 잡을 수 있고 잡고 나면 두터운 털가죽이 없는 인간은 몬스터가 특히 좋아하는 먹이였다.
몬스터들이 처음부터 인간을 좋아하는 것은 아니었다.
몬스터들도 처음에는 인간보다 더 큰 동물이 있으면 그 먹이를 차지하기 위해 혈안이 되었다.
하지만 인간을 맛본 이후로는 인간을 더 선호했다.
크르르르! 크르르르!
몬늑대였다.
그것도 검은 몬늑대가 열린 던전에서 튀어나왔다.
스걱!
하지만 검은 몬늑대는 던전에서 단 1미터도 튀어나오지 못한 채 목숨을 잃어야 했다.
"이, 이게 어떻게 된 겁니까? 어어···."
실전 전투에 능하다고 해도 몬스터를 처음 보는 김 코치님이었다.
큰아버지와 어머니도 움찔하시며 뒤로 물러서셨다.
"큰아버지! 어머니! 코치님!"
큰아버지와 김 코치님께는 검을 그리고 어머니에게는 도끼를 건넸다.
날이 예리하게 선 검을 받아든 김 코치님께서 어머니의 도끼를 흘깃 쳐다보셨다.
"두려우시면 지금이라도 돌아가셔도 좋습니다."
"아, 아닙니다! 함께 가겠습니다."
김 코치님의 눈에는 두려움이 가득했지만 물러서지는 않았다.
<전생과 변함이 없네.>
'전생에는 다리에 장애가 있었는데도 '꾼'이었어. 장애가 없는 지금은 날아다니겠지.'
전생에는 생활고로 제대로 치료하지 못해 다리를 살짝 절었다.
그런 몸으로도 싸움꾼이라는 별명을 얻을 정도로 전투에 능했다.
검도 잘 다루었지만 막 싸움을 더 잘한다는 평가를 받았다.
스걱! 스걱!
두 마리의 검은 늑대를 더 잡고 도축을 했다.
"진입할게요. 천천히 따라 들어오세요."
화순던전 입구의 양쪽 기둥에는 덩굴 식물이 멋들어지게 자라있었다.
던전입구로 다가가자 덩굴손이 길을 터주었다.
하지만 다른 세 사람에게까지 길을 터주지는 않았다.
덩굴손이 다가오자 세 분이 놀라 딱딱하게 몸이 굳었다.
"괜찮아요. 가만히 계시면 돼요."
큰아버지와 어머니는 미리 들었는데도 긴장을 하셨다.
<저거 적응하려면 시간 좀 걸리지.>
나호의 눈에 즐거움이 가득했다.
처음 검사는 조금 시간이 걸리기 때문에 먼저 던전의 입구를 통과했다.
그 순간 경쾌한 시스템 메시지가 들렸다.
[띠링! 축하합니다. '최초로 던전에 입장한 각성자'입니다.]
"11분? 12분 정도 된 것 같은데 아무도 입장하지 않았다고? 빨려 들어온 사람도 있을 텐데?"
던전이 도심에 형성이 되면 의사와 상관없이 던전에 입장하기도 했다.
대변혁의 날이니 이런 사람의 수는 셀 수 없을 정도로 많을 것이 분명했다.
[띠링! 저희는 의지를 가지고 자발적으로 입장한 사람만을 계수(計數)합니다. 강대한 님께서는 클리어 의지를 가지고 입장한 최초의 각성자입니다.]
그렇다면 납득이 되었다.
"보상은?"
[띠링! 지휘 스킬을 구매하시는 것이 어떻겠습니까? 그럼 강대한 님께 꼭 맞는 옵션을 장착해드리겠습니다.]
<우와아아! 하긴! 대변혁이 일어났지. 시스템이 본색을 드러낸 거야. 본격적인 낚시질을 시작하겠다는 거지.>
전생의 시스템이 생각나는 순간이기는 했다.
[보상을 드리기 위해서는 어쩔 수 없습니다.]
"무슨 스킬을 사라는 건데?"
[지휘 스킬을 사시면 강대한 님께 꼭 필요한 옵션을···.]
"살게."
<집사! 무작정 산다고 하면 어떻게 해?>
"세 분 입장하면 바로 공략 시작해야지. 그래야 첫 클리어 보상 놓치지 않지."
<대변혁 이후 첫 클리어이니 보상을 기대해 봐도 좋겠지?>
[만족하실 겁니다.]
나호의 입이 실룩거렸다.
차마 겉으로 욕을 하고 있지 않았지만 속으로는 엄청 씹어대고 있는 것 같았다.
[띠링! 200마나를 투자하여 '지휘(F)' 스킬을 획득합니다. 강대한 님의 지휘 스킬에는 옵션으로 '팀원 간 심상대화'가 장착되었습니다.]
[F급인 현재는 최대 다섯 명과 심상 대화가 가능합니다.]
팀원 간 심상대화를 보상으로 준다는 말에 나호의 눈이 왕방울만 해졌다.
팀원들끼리 심상으로 대화를 나눌 수 있는 것은 엄청난 것이었다.
작전 수행 능력이 현격하게 상승될 것이었다.
"거리는?"
[띠링! 1킬로미터 이상만 떨어지지 않으면 됩니다. 팀원으로 묶어놓으시면 그 범위 안에 있을 때는 언제든 대화가 가능합니다.]
"던전이나 전투 때가 아니고 언제든 된다고?"
[그렇습니다. 보상으로 지급되는 것이기 때문에 그런 제약을 없앴습니다.]
같은 스킬이라도 스킬의 효과는 천차만별이었다.
전생에도 지휘 스킬은 상당히 좋은 스킬로 알려져 있었다.
팀장이나 길드장이 지휘 스킬을 가지고 있으면 팀의 움직임부터 달랐다.
그런데 나는 이런 좋은 스킬을 상시 스킬처럼 사용할 수 있게 되었다.
<아무리 그래도 200마나는 너무 비싸. 보상이라면서···.>
"히든 스킬이어서 그래. 아! SSS급 은신 스킬 사라졌다."
<정말? 매정하게 정말 가져가 버리네. 혹시나 했는데···.>
"그래도 잘 썼잖아."
<흐흐흐흐! 그렇기는 해. 어제, 오늘 재미있기는 했지. 그 무기들은 어떻게 할 거야?>
나호가 막 그 이야기를 꺼냈을 때 세 분이 입장하셨다.
"아이고, 정신이 없구나! 김 코치에게는 내가 대충 이야기했다. 덩굴손 검사 받으면서 말이다."
"잘하셨네요. 상태창은 확인하셨죠?"
"확인했지. 아무것도 없어. 마나통과 마나홀 말고는."
"예. 그럼 우선 팀으로 묶을게요. 팀으로 묶으면 떨어져도 서로 이야기를 나눌 수 있다고 하네요. 팀명은 우선 '월평'으로 하겠습니다."
팀 월평을 만들고 세 분을 팀원으로 받아들였다.
그러자 시스템 메시지가 들렸다.
[띠링! 축하합니다. '최초의 팀'입니다. 팀 '월평'은 공격력과 방어력이 각각 10% 상승하고 경험치도 10% 더 얻게 됩니다.]
"이것이 뭐···."
큰아버지께서 질문을 하시다가 내가 시스템에게 질문을 하시는 것을 보시며 재빨리 말을 멈추셨다.
"혹시 팀명을 바꾸면 어떻게 되지?"
[팀명이 바뀌어도 이 혜택은 지속됩니다.]
"영구적이라는 말이지?"
[그렇습니다.]
"이 팀이 길드가 되고 그 아래로 여러 팀이 생겨도?"
[그렇습니다.]
<그렇다면 우리나라에 단 하나 길드만 두면 좋겠다. 그럼 우리나라가 세계 최강이 되겠어. 공격력과 방어력 10%면 엄청나잖아. 거기다 경험치 10% 상승이라잖아. 그만큼 능력치나 스킬을 빨리 성장시킬 수 있잖아.>
나호의 꿈은 원대했다.
이상적으로는 좋은 생각이지만 뭐든 독점은 좋지 않았다.
"자세한 것은 클리어 후에 설명할게요. 우선 따라오시기만 하세요."
큰아버지와 어머니 발현율이 궁금했지만 우선을 던전 안으로 진입했다.
호위조들이 있기는 했지만 그래도 걱정이 돼서 반반이 가족을 불러냈다.
반반이 가족까지 있으니 세 분은 걱정할 것이 없었다.
창을 들고 달리기 시작했다.
검은 몬늑대가 몰려있는 곳이었다.
검은 몬늑대는 인간의 냄새를 맡고 던전의 입구로 나오다가 몬야크를 보더니 걸음을 멈추었다.
<이거 너무 쉽게 끝나겠는데?>
"그럼 좋지."
스걱! 스걱!
창을 휘두르는 사이 반크가 달아나는 검은 몬늑대를 쫓았다.
캬아악! 컥!
검은 몬늑대들은 공격다운 공격 한 번 제대로 해보지 못하고 나가떨어져 버렸다.
스걱! 스걱!
전생에 이 던전은 대변혁 이후 3년이 지나도록 클리어를 하지 못했다.
골머리를 썩다가 미우라에게 팔아치웠는데 지금은 너무도 쉽게 클리어가 될 것 같았다.
하지만 방심해서는 안 될 던전이기도 했다.
이 던전에는 장프가 있었다.
장프가 있는 던전은 결코 호락호락하지 않았다.
이 던전도 마찬가지였다.
불리할 것 같으면 숨어버리는 몬스터들 때문에 애를 먹었는데 지금은 몬스터들이 숨을 엄두조차 내지 못하고 있었다.
꾸루와 전령조들이 구석구석 정찰을 하고 정확한 위치를 알려주기 때문에 숨을 수도 없었다.
<이거 몇 시간도 되지 않아서 끝나겠는데?>
"그럼 좋지. 어서 나가서 주변도 돌봐야지."
<과수 던전은?>
"과수 던전은 세 분께 맡겨도 될 거야."
이 던전을 클리어 하는 것을 보면 세 분이 충분히 처리하실 수 있을 것이었다.
아직 확인하지 않았지만 분명 세 분 모두 각성하셨을 것이 분명했다.
스걱!
"잡아보세요."
세 마리의 몬늑대를 세 분 앞에 데리고 왔다.
대변혁 이후를 살아가려면 꼭 해야 하는 일이었다.
꼭 필요한 일이라는 것을 아시면서도 큰아버지와 어머니께서 잠시 망설이셨다.
하지만 이내 검으로 목을 베고, 도끼질을 하셨다.
문제는 김 코치님이었다.
검을 오래 잡아왔지만 운동이었지, 살상을 위한 것이 아니었다.
김 코치님께서는 몇 번 망설이다가 겨우 검은 몬늑대를 처리하셨다.
<저 정도면 양호하네. 발현율이 제법 될 것 같아.>
전생에는 50대 후반의 발현율을 가졌던 것으로 알고 있다.
이번에는 아무리 못해도 60은 넘은 것 같았다.
[띠링! 축하합니다. 던전을 클리어 하셨습니다. 클리어 보상으로 월평 팀의 공격력, 방어력, 경험치가 각각 5% 상승합니다.]
[던전에 장거리 워프 게이트가 생성됩니다.]
여기까지는 모두가 들을 수 있는 메시지였다.
하지만 다음부터는 나와 소환수들에게만 들리는 메시지였다.
[미개방 던전에 보관 중이던 물품이 던전 입구에 나타납니다. 던전주의 물품을 보이지 않게 설정하실 수 있습니다.]
[장거리 워프 게이트의 위치를 설정하실 수 있습니다.]
[이 던전은 강대한 님의 던전으로 안전구역을 비롯한 기본적인 설정을 하실 수 있습니다.]
이런 메시지와 함께 상태창에 이 던전의 지도가 나타났다.
"안전구역을 설정할 수 있는 거야?"
[그렇습니다. 현재 강대한 님께서는 입구에서 1킬로미터까지 안전구역을 설정하실 수 있습니다.]
<이거 엄청나다. 입구에서 1킬로미터까지 안전하다면 일반인들이 안심하고 던전에 들어올 수 있다는 거잖아?>
[그렇습니다. 그 안을 꾸미시는 것은 어디까지나 강대한 님 자유이십니다.]
이 말과 함께 던전 입구를 꾸밀 수 있는 각종 시설물을 보여주었다.
각종 자판기부터 간단히 샤워를 할 수 있는 샤워장까지 참으로 다양한 상품을 준비해둔 상태였다.
<우와 무섭다. 주인 저거 주인에게 마나 뜯으려고 준비한 거야. 지금 던전에 저런 것을 설치할 수 있는 사람이 주인 말고 또 있겠어?>
나호가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시스템의 장삿속은 정말 놀라울 정도였다.
[저희는 단 한 명의 각성자를 위해서도 최선을 다합니다.]
<그렇겠지. 어련하겠어?>
"워프 게이트의 위치는 한 번 정하면 바꿀 수 없지?"
[한 달에 한 번 바꿀 수 있습니다. 하지만 마나가 들어갑니다.]
"처음 위치를 정할 때는 비용이 발생하지 않지?"
[그렇습니다. 뭐든 이동을 할 때는 비용이 들어가니 위치 선정에는 신중을 기하시는 것이 좋습니다.]
"지금 퇴장하기 전에 정해야하는 거지?"
[현실 시간으로 24시간 안에 정해주시는 것이 좋습니다. 가장 먼저 설치되는 워프 게이트 보상도 있으니까요.]
그렇다면 뒤로 미룰 수 없었다.
평상시에 생각하고 있던 자리로 워프게이트의 위치를 설정했다.
던전 입구에서 1킬로미터 떨어진 곳으로 던전의 왼쪽이었다.
전생의 경험에 미루어봤을 때 이용이 가장 편하면서도 안전한 위치였다.
[워프 게이트는 퇴장하셨다 다시 입장하시면 이용하실 수 있습니다.]
"바로 설치가 되어 있다는 말이야?"
[그렇습니다.]
시스템은 여러모로 놀라운 존재였다.
"장프를 바로 이용할 수 있다는 거지?"
[그렇습니다. 참고로 강대한 님께서 소유한 미개방 던전의 경우 1회에 한해서는 아직 워프 게이트가 활성화 되지 않은 던전도 방문이 가능합니다.]
"뭐라고?"
시스템이 하는 말은 무척이나 놀라운 것이었다.
내가 현재 소유하고 있는 던전은 국내외에 백여 개나 되었다.
시스템의 말대로라면 백여 개의 던전 모두를 당장이라도 방문할 수 있다는 말이었다.
워프게이트가 생성되지 않을 던전까지도 방문이 가능하단다.
이는 놀라움 정도로 표현할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
엄청난 혜택이었다.
[띠링! 워프 게이트를 최초로 활성화시킨 보상입니다. 미개방 던전을 보유하지 않았다면 아무짝에도 쓸모없었을 보상입니다.]
착각인지는 모르겠지만 방금 시스템은 무척이나 만족스럽다는 듯한 목소리였다.
어쨌든 기분 좋은 보상이었다.
"컨테이너는 워프 게이트 옆으로 정리해줘."
[월 100마나를 지불하시면 상시적으로 정리를 해드리겠습니다.]
적지 않은 비용이었다.
지금 소유하고 있는 던전마다 월 100마나를 지불해야 한다면 아찔한 비용이었다.
하지만 100마나를 지불하고 상시적으로 알아서 정리를 해주는 것이 더 나을 것 같았다.
"관리자체를 알아서 해주는 거지? 컨테이너 이외에 향후 설치될 장치들도?"
[최초로 관리 계약을 맺으시는 것이니 그렇게 해드리겠습니다. 안전구역에 설치된 모든 시설물에 대한 관리를 책임지겠습니다.]
<이리 저리 옮겨야 한다고 추가 비용을 요구하면 안 돼!>
[관리를 맡기시면 그런 추가 비용은 발생하지 않습니다. 하지만 안전구역이 넓어지면 비용은 추가될 수 있습니다.]
"그건 당연한 거지. 계약해!"
[아주 좋습니다. 그럼 계약 내용을 다시 확인······.]
시스템과 월 100마나의 관리계약을 맺었다.
여러모로 손해인 것 같지만 결코 그렇지 않았다.
오히려 시스템이 호구 잡힌 계약이었다.
시스템도 충분히 만족하는 것 같았지만 나야말로 매우 만족스러운 계약이었다.
"다 됐지?"
[그렇습니다. 퇴장하셔도 좋습니다.]
그때그때 부산물 거래는 했기 때문에 이곳에 더 있을 이유가 없었다.
우리는 기분 좋게 퇴장했다.
그런데···.
엄마아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