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3. 엄마아아!
쿵! 쿵! 쿵! 쿵!
엄청나게 큰 발자국 소리가 마을에 울려 퍼지고 있었다.
사람들이 공포에 질려 바들바들 떨고 있는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그런데 사냥조들은 마을을 벗어나지 않고 그대로 있었다.
"무슨 일이지?"
마을로 달리며 쪼롱이와 꾸루에게 물었다.
그 순간 꾸루의 정찰 내용이 머릿속으로 들어왔다.
그리고 정찰 내용이 머릿속으로 들어온 순간 속도를 늦추었다.
"무슨 일이냐? 위험한 거 아니야?"
큰아버지께서 걱정스런 목소리로 말씀하셨다.
"걱정하지 않으셔도 되는 거예요. 쪼롱아! 처리하라고 해."
쿵! 쿵! 쿵! 쿵!
쿵! 쿵! 쿵! 쿵!
소리만 들었을 때는 거대 몬스터가 마을을 위협하고 있는 것 같았다.
대변혁의 날 거대한 몬스터가 나온 곳도 있지만 한국에서는 거대 몬스터가 나왔다는 보고는 없었다.
물론 알려지지 않은 곳에서 거대 몬스터가 나왔을지도 모를 일이지만 말이다.
사냥조에게 마을을 벗어나도 좋다는 허락을 하고 단 몇 분도 지나지 않아 마을을 공포로 몰아넣던 소리는 멈추었다.
그 소리가 멈추기 전에는 꼭 이런 소리가 났다.
쾍! 쾍!
<저것들이 왜 안 나오네 했어.>
꼬물?
<'허풍오리'야. 허풍오리! 크지도 않은 발인데 걸을 때 저런 소리를 내서 사람들을 공포에 사로잡히게 하지. 저 녀석들 때문에 생긴 문제가 이만저만이 아니었어.>
허풍오리는 사실 F급 몬스터로 사냥하기도 어렵지 않은 몬스터다.
문제는 소리로 사람들에게 지나친 공포감을 조성하거나 반대로 방심하게 만든다는 것이었다.
전생에 허풍오리로 인해 피해는 이루 말로 표현할 수 없을 정도로 많았다.
사냥조들이 사냥한 허풍오리를 물고 방벽을 넘어왔다.
최대 1미터 크기의 허풍오리는 거위와 흡사하게 생긴 녀석이었다.
그래서 일부 사람들은 '허풍거위'라고 부르기도 했었다.
"그것이 조금 전 그런 소리를 냈다는 겁니까?"
"그렇습니다. 영상에 봤던 것처럼 던전이라는 것이 생기고 세상이 바뀐 거지요."
아버지께서 상태창과 던전에 대해 설명을 하신 모양이었다.
"저 장벽들 덕분에 여기는 안전할 수 있었고?"
"그렇습니다."
"그럼 지금 밖은?"
"많이 혼란스러울 겁니다. 하지만 함부로 나갔다가는 죽을 수밖에 없습니다. 강해져야 합니다."
<잘하고 계시네. 맡겨놓고 움직여도 될 것 같아.>
"몬야크 몇 마리까지 여기 두고 가면 안심할 수 있지."
"출발하려고?"
큰아버지께서 물으셨다.
"예. 여기는 제가 없어도 될 것 같아요."
"그래 어서 다녀와."
거기까지 이야기를 한 후 심상으로 큰아버지의 발현율을 물었다.
큰아버지께서도 심상으로 대답을 하셨다.
팀원으로 묶인 모든 사람에게 들리도록 말씀하신 것이 아니라 나만 들을 수 있도록 귓속말로 하신 것이었다.
던전에서 몇 번 연습을 했더니 확실하게 익히신 것 같았다.
'나는 68%다. 이 정도면 괜찮은 편이냐?'
'아주 높은 발현율이에요. 대부분의 각성자가 겨우 50%정도 거든요.'
전생에는 발현율 60%만 되면 높은 편이었다.
70%가 넘으면 세계적으로 유명한 헌터가 됐었고, 80%가 넘은 경우는 세계적으로도 몇 되지 않았다.
'다행이구나.'
어머니의 발현율은 65%였다.
아직 두 분 모두 이것 이외에는 마나만 쌓여 있는 중이었다.
"마나 천 씩 보내 놨어요. 상점 오픈 하시고, 체력, 민첩, 근력, 감각 개방하시고 10까지 올려두세요. 인벤토리도 F급으로 우선 하나씩 구입하시고요."
"알았다."
"과수 던전 개방할게요. 사냥조와 몬야크가 있으니 충분히 클리어하실 수 있으실 거예요."
"걱정하지 말고 다녀와."
큰아버지와 어머니 배웅을 받으며 마을을 벗어났다.
마을을 벗어나 반반이를 대기실에서 나오게 했다.
그리고 반반이 등에 올라탔다.
지금 도로에 차를 몰고 나가는 것은 어리석은 일이었다.
갑자기 달려든 짐승들로 인해 사고 난 곳이 한두 곳이 아니기 때문이었다.
"반반아! 평택으로 가자."
음머어어!
소환수인 반반이는 굳이 말하지 않아도 내가 가고자 하는 곳을 정확하게 알고 있었다.
<와우! 다른 소환수들이 좋아했던 이유가 있었던 거야. 정말 잘 달리네.>
반반이는 도로를 따라 평택을 향해 달려 나갔다.
어깨 높이만 5미터인 반반이에게 교통 정체는 있을 수가 없었다.
방치된 사고차량은 가볍게 넘어서 달리면 그만이었다.
반반이는 발소리도 크게 내지 않고 달렸다.
도로에 누군가가 있었으면 무척이나 놀랐겠지만 당장 눈에 띄는 사람은 없었다.
있었다고 해도 우리를 볼 수 있는 사람은 거의 없었겠지만 말이다.
<반반이가 탈 것이 될 것이라고는 생각도 못했네. 그런데 정말 빠르다!>
달리는 구간에 따라 도로에 설치된 각종 시설물이 방해가 되기도 했지만 반반이가 요령껏 잘 피해서 달렸다.
그렇게 평택 미군 부대에 도착하자 새벽 두 시가 되어 있었다.
<어제 가지고 갈 수 있었으면 좋았을 텐데···.>
"어쩔 수 없었잖아."
말을 하며 부대로 접근했다.
"은신 스킬 등급 올릴 수 있지?"
부대로 접근하며 시스템에게 물었다.
SSS급 은신 스킬은 사라졌지만 비슷한 시기에 은신 스킬을 사서 현재 E급은 은신 스킬이 있었다.
부대 안에 들어가 안전하게 활동하기 위해서는 은신스킬의 등급을 상승시키는 것이 좋을 것 같았다.
[띠링! 한 단계는 상승시킬 수 있습니다. 상승시키시겠습니까?]
<상승시키려니까 물어보지 왜 뻔한 걸 묻고 그래? 마나가 얼마나 필요한지나 말해줘.>
나호가 퉁명스럽게 말했다.
[D급으로 상승시키기 위해서는 600마나가 필요합니다.]
"상승시켜줘."
싸지는 않지만 이런 금액은 정해진 것이어서 입씨름을 한다고 해서 얻을 것이 있지도 않았다.
600마나가 사라지고 은신 스킬 등급이 상승했다.
SSS급 스킬과는 비교할 수 없지만 D급만 해도 엄청난 것이었다.
"서두르자. 조금만 늦으면 큰일 나!"
어제도 이곳에 왔었다.
하지만 무기까지 챙겨갈 수는 없었다.
미개방 던전으로부터 반경 500미터가 넘었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오늘 이곳부터 온 것이었다.
아직 부대 안은 조용했다.
보초를 서는 사람이 있겠지만 어제와 마찬가지로 눈에 띄는 사람은 없었다.
보초 사는 곳의 위치를 모르는 것인지 아니면 모두 자동화가 된 것인지 정확하게 알 수 없었다.
<아직 시간은 있어. 전생에 사고가 일어난 시간은 세 시였어.>
'그래도 서둘러야지.'
전생에 대변혁의 날 이 부대 안에 1회성 던전이 형성되었다.
당시로는 규모도 엄청나고 쏟아져 나온 몬스터의 수도 많았다고 알려져 있다.
갑자기 괴물이 나타나자 당연히 비상이 걸렸고 그 다음부터 이들의 폭주가 시작되었다.
괴물을 처리한다는 명목으로 무차별 총격과 포격을 가한 것이었다.
그 결과 몬스터보다 몇 배는 많은 무고한 시민이 희생되고 말았다.
미군 부대 인근은 물론이고 포격이 닿을 수 있는 곳은 어디든 피해를 입었다.
이러고도 차후 미군은 이에 대해 단 한 마디의 사과도 없었다.
초유의 사태에서 그마나 1회성 던전을 막았다며 오히려 그때 희생된 미군에 대한 보상까지 요구했었다.
말도 안 되는 일이지만 힘이 없던 우리나라는 거의 미국이 원하는 대로 당시 사용한 무기 값까지 갚아주어야 했다.
우리 국민을 쏴 죽인 무기 값을 다시 국민의 혈세로 갚아야 했던 것이다.
미치고 팔짝 뛸 일이었다.
지금 그 일을 미연에 방지하기 위해 미군 부대 안으로 잠입했다.
그리고 미리 파악해둔 무기고로 들어갔다.
생각보다 많은 무기가 보관되어 있었다.
무기는 모두 대기실에 보관했다.
물론 공짜로 보관한 것은 아니었다.
시스템에게 미리 천 마나를 주고 대기실 한 쪽에 보관할 수 있도록 허락을 받아둔 상태였다.
<탱크나 장갑차도 가지고 가면 좋은데···.>
"공간만 차지할 뿐이야. 얼마 가지 않아서 고물이 되기도 하고."
탱크나 장갑차 같은 대형 무기는 가지고 가지 않더라도 포탄은 모조리 챙겼다.
<잘하네.>
나호가 사냥조를 보며 한 이야기였다.
사냥조들은 부대에 설치된 무기를 무력화 시키고 있었다.
대형 무기를 찾아 꼼꼼하게 처리하는 것이 아주 전문가를 부른 것 같았다.
<집사! 여기 1회성 던전 클리어하고 갈 거야? 5분 정도만 있으면 생성될 것 같은데···.>
"글쎄?"
솔직히 고민이 되었다.
피해가 많았다고 하지만 미군들이 미친 짓만 하지 않았다면 문제되지 않았을 던전이었다.
그런데 굳이 내가 클리어를 해야 할까 하는 생각이 든 것이었다.
지금 당장 가야할 곳도 있는데 말이다.
"끌리지 않아. 부대 두 곳 더 들렀다 서울에 가려면 시간도 넉넉한 것이 아니고."
부대로 인한 피해는 평택에서만 있었던 것은 아니었다.
대부분은 몬스터를 제압하는데 무기를 사용했지만 그렇지 않은 경우도 있었다.
<어쩔 수 없지.>
부대를 벗어나자 온갖 소리가 난무했다.
부대는 그나마 평화로웠던 것이다.
스걱! 스걱!
길에 보이는 몬스터들을 베어 넘기며 다시 반반이의 등에 올라탔다.
새벽 다섯 시가 되기 전에 우리는 두 곳의 부대를 더 털었다.
한 곳은 한참 몬스터와 전투를 하고 있는 군인들의 무기를 강탈했다.
몬스터와의 전투 후에 이들이 취할 행동을 알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물론 몬스터는 모조리 처리했지만 말이다.
<원망하겠지?>
무기를 강탈하고 돌아오는 길에 나호가 물었다.
"원망 정도가 아니겠지. 하지만 어쩔 수 없어. 총부리가 선량한 시민을 향하게 될 테니까. 일반인들도 어차피 무기 없이 살아냈어."
음머어어!
반반이가 걸음을 멈추며 큰 소리를 냈다.
앞쪽에 전투가 벌어지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으아아악!"
크르르릉! 크릉!
"저리 가! 저리 가라고!"
캬아악! 캭!
십여 마리의 몬들개가 다섯 대의 차를 포위한 채 위협을 가하고 있었다.
차에 갇힌 사람들은 어떻게든 몬들개를 쫓아내려고 했지만 먹이를 두고 물러날 몬들개들이 아니었다.
스걱! 스걱!
아무리 바쁘다고 해도 위험에 처한 사람을 두고 그냥 갈 수는 없었다.
창이 몇 번 지나고 나자 멀쩡히 서있는 몬스터는 없었다.
"어어어어!"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이게 다 무슨 일이지···."
"엄마아아!"
어떤 사람은 바로 정신을 차리고 감사를 표했지만 어떤 사람은 전혀 차에서 나오지 못했다.
"감사합니다. 정말 감사합니다."
"죽는 줄 알았습니다."
"엄마아!"
한 아이가 창밖을 쳐다보며 눈물을 터뜨리고 있었다.
그곳에는 조금 전까지 사람이었을 형체가 있었다.
몬들개들에게 당한 모양이었다.
<왜 차 밖에 있었지?>
'차를 봐. 개들이 차를 심하게 흔들어서 엄마가 유인을 하려고 했던 것 같아.'
아이가 타고 있는 차는 유난히 심하게 찌그러져 있었다.
아이의 엄마 이외에도 한 구의 시신이 더 보였다.
하지만 형체를 알아보기 힘든 것은 마찬가지였다.
"어디로 가시는 길입니까?"
"저, 저희는 서울로 갑니다."
"저희도···."
"그럼 제가 함께 가드리겠습니다."
"차가 움직일 수가 없습니다."
차가 심하게 찌그러지기도 했지만 도로에 차가 많아서 정상적인 운행이 불가능했다.
"제 소에 타시죠."
누가 봐도 소라고 말하기는 어려운 반반이였다.
하지만 이들이 선택할 수 있는 것은 없었다.
대여섯 살로 보이는 아이까지 반야의 등에 태웠다.
많이 놀랐기 때문인지 반야가 대기실에서 나와도 다들 멍하니 쳐다보기만 할 뿐 별 반응을 보이지 않았다.
"꽉 잡으시기 바랍니다."
사람들은 반야의 등에 바짝 엎드렸다.
반야의 등에 네 사람, 반크의 등에 네 사람을 태우고 서울을 향해 다시 출발했다.
"엄마아아! 어어엉!"
아이가 엄마의 시신을 향해 손을 뻗으며 눈물을 흘렸다.
엄마의 시신 위에 깨끗한 천을 덮어주는 것 이외에 해줄 수 있는 것은 없었다.
<이런 일이 비일비재할 텐데···.>
나호가 안타까워했다.
사실이었다.
이제 이런 일은 특별한 일이 결코 아니었다.
<화순까지 아이를 데리고 갈 수 있을까?>
"노력은 해봐야지."
가족이 있다면 가족에게 인계를 해주겠지만 당장은 아이에게 그런 것을 물을 수도 없었다.
반반이를 선두로 반크, 반야 순으로 이동을 했다.
우리는 서울을 향해 이동하면서 몬스터를 닥치는 대로 처리했다.
지금 서울은 난장판일 것이 분명했다.
전생에 서울은 대변혁 첫날 전체 인구의 사분의 일 이상이 죽었다.
워낙 인구 밀집 지역이라 피해가 더 컸었다.
조금이라도 빨리 서울로 가서 한 마리라도 더 많은 몬스터를 처리해야 했다.
<던전을 많이 차지했다고 생각했는데도 이 정도네.>
"그래도 전생에 비하면 양반이야."
아저씨는 마법사에요?